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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들으니 왠지 짜증이 난다. 피곤하다.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든다.

몇 분이 지나자 다시 그 소리가 들린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여성의 조용한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고, 발음은 지난번과 똑같다. 컴퓨터다. 컴퓨터가 나를 귀찮게 군다. 이젠 더 짜증이 난다.

“내블도.” 내가 말한다. 놀랍다. 나는 ‘내버려 둬’라고 말하려 했다. 제법 합리적인 응답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말을 할 수가 없다.

“틀렸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실험을 해볼 시간이다. 인사나 한번 해볼까.

“안는쎄오?” 내가 말한다.

“틀렸습니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지? 알아보고 싶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 보이지가 않는다. 컴퓨터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촉감조차 없다. 아니, 그건 아니다. 뭔가 느껴진다. 나는 누워 있다. 몸 아래 부드러운 것이 닿아 있다. 침대다.

두 눈이 감겨 있는 것 같다.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뜨기만 하면 되니까. 눈을 뜨려 노력해 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 눈을 뜰 수가 없지?

떠져라.

준비하시고… 뜨세요!

…떠지라고, 젠장!

오오! 이번에는 뭔가 씰룩거리는 게 느껴졌다. 눈꺼풀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느껴졌다.

떠져라!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가고,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이 망막에 후끈 쳐들어온다.

“으으아!” 나는 순전한 의지력으로 눈을 계속 뜨고 있는다. 다양한 통증이 모든 것을 희게 색칠한다.

“안구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는 나를 계속 괴롭힌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흰 빛이 가라앉는다. 눈이 적응하고 있다. 슬슬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만 아직은 하나도 못 알아보겠다. 어디 보자. 손은 움직여지나? 아니. 발은? 아니.

하지만 입은 움직일 수 있는 것 맞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잖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말하기는 했다.

“느에네네.”

“틀렸습니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이제는 조금씩 사물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침대는 뭐랄까 … 타원형이다.

LED 조명이 나를 내리쬐고 있다. 천장에 달린 카메라들이 내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본다. 소름끼치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걱정되는 것은 로봇 팔들이다.

광택 처리가 된 강철 골조 두 개가 천장에 걸려 있다. 둘 다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어떤 도구들이 달려 있다. 불안하게도 구멍 뚫는 데 쓰면 딱 좋게 생겼다. 마음에 든다고는 못하겠다.

“느… 에에… 엣.” 내가 말한다. 이 정도면 될까?

“틀렸습니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망할. 나는 모든 의지력과 내면의 힘을 끌어모은다. 동시에 조금씩 공포감도 찾아온다. 잘됐다. 그것도 이용해야지.

“느에에엣.” 결국은 내가 말한다.

“정답입니다.”

천만다행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뭐, 이런 것도 말이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잠깐, 방금 호흡을 통제했다. 나는 일부러 한 번 더 숨을 들이쉰다. 입 속이 쓰리다. 목구멍도 쓰리다. 하지만 이건 나의 쓰라림이다. 내게 통제력이 있다.

나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다. 마스크는 얼굴에 단단히 매여 있으며, 내 머리 뒤쪽으로 돌아가는 호스와 연결되어 있다.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 하지만 고개는 약간 움직일 수 있다. 내 몸을 내려다본다. 나는 알몸이고 셀 수 없이 많은 관에 연결되어 있다. 관은 두 팔에 하나씩 있고 두 다리에도 하나씩 있으며, ‘남성의 물건’에도 하나 꽂혀 있다. 관 두 개는 내 허벅지 아래쪽으로 들어간다. 그중 하나는 내 엉덩이 사이, 햇빛이 들지 않는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좋은 일일 리가 없다.

게다가 나는 전극으로 뒤덮여 있다. 심전도 검사 장비에 달린 것 같은 붙이는 센서다. 심전도 검사 장비와 다른 점은, 전극이 온 사방에 붙어 있다는 것이다. 뭐, 그래도 이것들은 몸에 쑤셔 넣어지는 대신 그냥 피부에 붙어 있는 거니까.

“여기….” 나한테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난다. 다시 말한다. “여기…가 … 어디지?”

“8의 세제곱근은 무엇입니까?” 컴퓨터가 묻는다.

“여기가 어디야?” 나는 다시 말한다. 이번은 좀 더 쉽다.

“틀렸습니다. 8의 세제곱근은 무엇입니까?”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천천히 대답한다. “2 곱하기 e의 2i 파이 승(2 × e2iπ).”

“틀렸습니다. 8의 세제곱근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난 틀리지 않았다. 그냥 컴퓨터가 얼마나 똑똑하지 알고 싶었을 뿐. 답은, 그리 똑똑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2.” 내가 말한다.

“정답입니다.”

나는 후속 질문을 기다리지만 컴퓨터는 만족한 듯하다.

피곤하다. 나는 다시 잠들고 만다.



나는 눈을 뜬다.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걸까? 푹 쉰 기분이 드는 걸 보면 꽤 시간이 흐른 게 분명하다. 나는 딱히 어렵지 않게 눈을 뜬다. 나아진 셈이다.

손가락들을 움직여 본다. 손가락은 내 지시대로 씰룩거린다. 좋다. 이젠 뭔가 될 것 같다.

“손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가만히 계십시오.”

“뭐? 왜….”

로봇 팔들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빠르게.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 팔들이 내 몸에 연결된 관 대부분을 제거했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피부가 얼얼해서 별 감촉이 없긴 하지만.

남은 관은 딱 세 개다. 팔에 꽂힌 링거 줄, 엉덩이로 들어간 관 그리고 소변줄. 특히 뒤의 두 가지는 꼭 제거해 줬으면 하는 시그니처 아이템 같은 것이었지만, 뭐 괜찮다.

나는 오른팔을 들었다가 팔이 다시 침대로 툭 떨어지게 놔둔다. 왼팔도 똑같이 해본다. 둘 다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진다. 나는 같은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한다. 내 두 팔은 근육질인데, 이렇게 힘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 몸에 엄청난 의학적 문제가 있어서 이 침대에 꽤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왜 나한테 저것들을 덕지덕지 달아뒀겠나? 근무력증 같은 것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의사도 있어야 할 텐데? 아니면 병원 소리라도 들리든지? 게다가 이 침대는 또 뭐람? 침대는 직사각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다. 게다가 바닥이 아니라 벽에 붙어 있다.

“관을 …” 내 말꼬리가 흐려진다. 지금도 좀 피곤하다. “관을 빼줘….”

컴퓨터는 반응하지 않는다.

나는 몇 번 더 팔을 들어본다. 발가락을 움직거린다.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

발목을 앞뒤로 움직여 본다. 잘 된다. 두 무릎을 들어본다. 다리도 근육이 탄탄하다. 보디빌딩 선수처럼 굵은 건 아니지만,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건강해 보인다. 하긴 얼마나 굵어야 정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침대에 두 손바닥을 대고 밀어본다. 상체가 일으켜진다. 내가 정말 일어나고 있다! 온 힘이 다 들지만 계속한다. 몸을 움직이자 침대가 약간 흔들린다. 일반적인 침대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고개를 더 들자 타원형 침대의 머리맡과 발치가 힘 좋아 보이는 벽의 거치대에 연결된 것이 보인다. 침대가 아니라 딱딱한 해먹이라고 해야 할까. 기괴하다.

얼마 후, 나는 엉덩이 관을 깔고 앉아 있다. 아주 편안한 느낌이라고는 못 하겠다. 하긴, 엉덩이에 관을 꼽고 있는 게 언제는 편안할까?

이제는 주변이 더 잘 보인다. 이곳은 평범한 병실이 아니다. 벽은 플라스틱처럼 보이고, 방 전체가 둥글다. 천장에 달린 LED 조명에서 삭막한 느낌의 흰 빛이 나온다.

벽에는 해먹 비슷한 침대 두 대가 더 걸려 있고, 침대마다 환자가 있다. 우리는 삼각형의 꼭짓점에 배치되어 있고, 고문관 로봇 팔은 천장 중앙에 달려 있다. 그 팔들이 우리 셋을 모두 돌보는 것 같다. 동료 환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랬듯, 그들도 침구에 파묻혀 있다.

문이 없다. 그냥 벽에 사다리가 하나 달려서 무엇으로 이어지는 거지? 저건 해치일까? 둥글고 가운데에 바퀴 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래, 일종의 해치가 틀림없다. 마치 잠수함에 달린 것 같은 생김새다. 어쩌면 우리 세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 밀폐된 이곳에 격리된 건지도 모른다. 벽에는 여기저기 작은 환기구가 달려 있고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느껴진다. 이곳은 통제된 환경인 걸까.

나는 침대 가장자리로 한쪽 다리를 미끄러뜨려 내린다. 침대가 흔들린다. 로봇 팔이 서둘러 내게 다가온다. 나는 움찔하지만 로봇 팔은 딱 멈춰서 내 근처에 머무른다. 내가 넘어지면 잡아주려는 듯하다.

“전신 동작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참 나, 장난해?” 내가 묻는다.

“틀렸습니다. 두 번째 시도.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연다.

“어….”

“틀렸습니다. 세 번째 시도.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제야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음.” 내가 말한다.

“틀렸습니다.”

피로가 나를 휩쓴다. 그보다 왠지 기분 좋은 느낌이다. 컴퓨터가 링거를 통해 내게 진정제를 주사한 게 틀림없다.

“…잠까아아 ….” 나는 웅얼거린다.

로봇 팔들이 나를 다시 침대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나는 다시 깨어난다. 로봇 팔 하나가 내 얼굴에 닿아 있다. 무슨 짓이야?

나는 몸을 떤다. 그 어느 때보다도 깜짝 놀랐다. 팔들은 천장의 집으로 다시 물러난다. 나는 상처가 났는지 얼굴을 더듬어본다. 한쪽에는 깎고 남은 수염 자국이 있고, 다른 쪽은 매끈하다.

“면도를 해준 거야?”

“의식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틀렸습니다. 두 번째 시도.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백인 남성이고, 영어를 쓴다. 어디 찍어보자. “조…존?”

“틀렸습니다. 세 번째 시도.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팔에서 링거 줄을 뽑아낸다. “배 째.”

“틀렸습니다.” 로봇 팔이 나를 잡으려 든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굴려 떨어진다. 실수다. 다른 관들이 아직 연결돼 있다.

엉덩이 관은 바로 뽑힌다. 아프지도 않다. 뽑히지 않도록 안쪽에 바람이 들어가 있는 소변줄도 성기에서 홱 당겨져 나온다. 그건 아프다. 오줌 대신 골프공을 싸는 것 같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뒹군다.

“신체적 고통.” 컴퓨터가 말한다. 로봇 팔들이 따라온다. 나는 도망치려고 바닥을 기어 다른 침대 밑으로 들어간다. 팔들은 바로 멈추지만 포기하지는 않고 기다린다. 그 팔을 작동시키는 건 컴퓨터다. 인내심을 잃거나 하는 일은 없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숨을 고른다. 잠시 후에 통증이 잦아든다. 나는 눈물을 훔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이봐!” 내가 소리친다. “누구 좀 일어나 봐!”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컴퓨터가 묻는다.

“인간 좀 일어나 보라고, 제발.”

“틀렸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사타구니가 너무 아파서 웃음이 나온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엔돌핀이 돌아 현기증이 난다. 나는 내 침대 옆의 소변줄을 돌아본다. 놀라서 고개를 젓는다. 저게 내 요도에 들어 있었다니. 와.

그리고 소변줄이 뽑히면서 상처가 났다. 바닥에 작은 핏줄기가 그어져 있다. 저 빨갛고 가느다란 선은 ….



나는 커피를 홀짝이고 남은 토스트 조각을 입에 던져 넣은 다음, 종업원에게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손짓했다. 매일 아침 식당에 가지 않고 집에서 밥을 먹었다면 돈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월급이 몇 푼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그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싫어하고, 달걀과 베이컨을 무척 좋아한다.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산을 해주려고 계산대로 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다른 손님이 들어와 자리를 안내해 달라고 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살펴봤다. 오전 7시 정각을 겨우 지난 시간이었다. 서두를 건 없었다. 나는 7시 20분까지 넉넉하게 출근해 그날 일과를 준비하는 편을 좋아했지만 원칙으로는 8시 정각까지만 도착하면 됐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이메일을 확인했다.


수신: 천문학의 신비 astrocurious@scilists.org

발신: (이리나 페트로바 박사) ipetrova@gaoran.ru

제목: 빨갛고 가느다란 선


나는 눈을 찌푸리며 화면을 보았다. 이 메일링 리스트는 구독을 끊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의 삶과는 오래전에 작별했으니까. 이 리스트는 그냥 천문학자와 천체물리학자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 수다를 떠는 공간으로, 메일이 발송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간혹 발송되는 메일 내용은 꽤 흥미로웠다.

나는 종업원을 힐끗 보았다. 손님들이 메뉴에 관해 온갖 질문을 던져대고 있었다. ‘샐리네 식당’에 채식주의자용 글루텐 프리 풀 쪼가리 같은 게 있는지 묻는 듯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선량한 시민들은 가끔 진상이 된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이메일을 읽었다.


전문가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리나 페트로바 박사입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플코보 천문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문법이 틀려도 이해해 주세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서 이 메일을 씁니다.

지난 2년간, 저는 성운의 적외선 방사와 관련된 이론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 결과 빛의 특수한 적외선 대역 몇 곳을 관찰하게 됐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성운이 아니라 바로 우리 태양계에서요.

태양계에는 24.984마이크론 파장으로 적외선을 방사하는, 아주 희미하지만 탐지 가능한 선이 존재합니다. 파장은 이 수치에서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데이터를 정리한 엑셀 파일을 첨부합니다. 데이터를 3D 모델로 렌더링한 결과도 몇 가지 첨부합니다.

모델을 보시면 알겠지만, 문제의 선은 태양의 북극 바로 위로 3,700만 킬로미터 지점까지 상승하는 기울어진 호선입니다. 해당 지점부터는 문제의 선이 가파르게 꺾어져 태양에서 멀리, 금성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곡선의 정점을 지나면서부터는 구름 형태의 무언가가 부채꼴로 펼쳐지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금성에 이르면 호선의 횡단면이 금성의 폭과 일치할 만큼 넓어지고요.

적외선은 아주 희미합니다. 제가 그 빛을 조금이나마 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성운에서 방사되는 적외선을 찾기 위해 극히 민감한 탐지 장치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칠레 소재의 아타카마 천문대에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해당 천문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적외선 관측소이기 때문입니다. 아타카마에서도 제 발견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행성 간 공간에서 적외선이 관찰되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태양광을 반사하는 우주먼지 등의 분자가 있을 수도 있고, 몇몇 분자 화합물이 에너지를 흡수했다가 적외선대에서 재방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적외선이 전부 같은 파장을 보이는 이유까지도 설명됩니다.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호선의 형태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호선이 자기장의 선을 따라 움직이는 입자들의 집합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금성에는 이렇다 할 자기장이 없습니다. 천체 자기권도 없고, 전리층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어떤 힘이 입자들을 끌어당기는 걸까요? 입자들이 빛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의견과 가설을 환영합니다.


방금 건 대체 뭐였지?

갑자기 그 모든 게 기억났다. 그 장면은, 아무 경고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건 별로 없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산다. 그건 기억이 난다. 아침 식사를 챙겨먹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천문학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

내 이름처럼 사소한 문제보다도 그 이메일을 기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무의식이 뭔가를 전달하려 한다. 그래서 피로 그려진 선을 보자 ‘빨갛고 가느다란 선’이라는 이메일 제목이 생각난 게 틀림없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벽에 기대앉는다. 로봇 팔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지만 여전히 나를 잡지는 못한다.

이제는 동료 환자들을 살펴볼 차례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다. …근데 저 사람들이 죽어 있네.

그래, 확실히 죽었다. 나와 가까운 쪽에 있던 사람은 여성이었던 것 같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머리는 길다. 그 점을 제외하면 그녀는 거의 미라 상태다. 건조한 피부가 뼈를 덮고 있다. 냄새는 나지 않는다. 부패가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녀는 오래전에 죽은 게 틀림없다.

다른 침대에 있는 사람은 남성이었다. 그는 죽은 지 더 오래된 것 같았다. 그의 피부는 건조하고 가죽처럼 변했을 뿐만 아니라 부스러져 가고 있다.

그래. 그러니까 난 죽은 두 사람과 함께 이곳에 있다는 말이다. 역겨움과 공포가 느껴질 법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사람들은 죽은 지 너무 오래돼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핼러윈 장식처럼 보이지. 두 사람 다 나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혹시 친했다면, 그 사실이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죽은 사람 자체도 걱정되기는 하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두 사람이 여기에 아주 오랫동안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여기가 격리 구역이라 해도 죽은 사람은 치워줘야 하지 않을까? 뭐가 잘못됐는지는 모르지만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일어선다. 동작이 느리고 힘도 많이 든다. 나는 미라 아가씨의 침대 모퉁이를 잡고 버틴다. 침대가 흔들리고 나도 함께 흔들리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

로봇 팔들이 내게 구애하려는 듯 다가오자 나는 다시 벽에 몸을 납작하게 붙인다.

나는 혼수상태였던 게 확실하다. 그래, 생각할수록 나는 혼수상태였던 것 같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나를 룸메이트들과 동시에 이곳에 넣었다면 그건 꽤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반만 면도된 얼굴을 문지른다. 저 팔들은 오랜 기간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들을 관리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내가 혼수에 빠져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혹시 저 해치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한 걸음을 디뎌본다. 그리고 또 한 걸음. 그런 다음 바닥에 주저앉는다.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쉬어야 한다.

이렇게 근육이 잘 발달돼 있는데 왜 이토록 힘이 없는 걸까? 아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면 애초에 왜 근육이 탄탄한 걸까?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다면 해수욕장을 누비는 몸짱처럼 생길 게 아니라 가냘프게 시들어가고 있어야 마땅한데 말이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된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뭘 어째야 하나? 내가 정말 아픈 건가? 똥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아픈’ 것 같지는 않다. 구역질이 나지 않는다. 두통도 없다. 열이 나는 것 같지도 않다. 병이 걸린 게 아니라면 난 왜 혼수상태에 빠졌던 걸까? 신체적 부상을 입어서?

나는 머리를 더듬어본다. 혹도, 흉터도, 붕대도 없다. 신체의 나머지 부분도 꽤 멀쩡해 보인다. 멀쩡한 것 이상이다. 나는 근육맨이다.

꾸벅꾸벅 졸고 싶지만 참는다.

다시 시도해 볼 때다.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난다. 웨이트트레이닝이라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쉽다. 내 몸은 점점 회복되고 있다(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나는 발을 끌며 벽을 따라 걸어간다. 발만큼이나 등에도 몸무게를 싣는다. 로봇 팔이 계속 내 쪽으로 뻗어오지만 나는 놈들이 닿지 않는 곳에 머문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씨근거린다. 마라톤이라도 뛴 것 같다. 혹시 폐가 감염된 걸까? 나를 고쳐주려고 격리한 건가?

나는 결국 사다리에 다다른다. 나는 앞으로 휘청하며 사다리의 가로대를 잡는다. 너무 힘이 없다. 10피트짜리 사다리를 어떻게 올라간담?

10피트짜리 사다리라니.

생각이 영국식 단위로 떠오른다. 이게 한 가지 실마리다. 나는 아마 미국인일 것이다. 영국인이거나 캐나다인일지도 모른다. 캐나다인들은 짧은 거리를 잴 때 피트와 인치를 사용하니까.

나 자신에게 묻는다. LA부터 뉴욕까지의 거리는? 당장 떠오르는 대답은 3,000마일이라는 것이다. 캐나다 사람이라면 킬로미터를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인이거나 미국인이다. 아니면 라이베리아 출신이든지.

라이베리아에서 영국식 단위를 쓴다는 건 아는데 내 이름은 모르다니. 짜증 나네.

나는 심호흡을 한다. 두 손으로 사다리에 매달려 맨 아래 가로대에 한쪽 발을 얹는다. 몸을 끌어올린다. 불안한 동작이지만 해낸다. 이제는 두 발이 다 아래쪽 가로대에 놓여 있다. 나는 위로 손을 뻗어 다음 가로대를 잡는다. 좋아, 진척이 있다. 온몸이 납덩이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모든 움직임에 너무 큰 힘이 든다. 나는 위쪽으로 몸을 끌어올려 보려 하지만, 손에 그만한 힘이 없다.

나는 사다리에서 뒤로 떨어진다. 아야.

그러나 아프지 않다. 내가 땅에 닿기 전에 로봇 팔이 나를 잡는다. 내가 손 닿는 범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빈틈없는 놈들. 로봇 팔은 나를 침대로 돌려놓고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처럼 내 자리를 잡아준다.

근데 말이지, 그게 나쁘지 않다. 이제 진짜 피곤해진 모양이다. 눕는다는 건 뭐랄까, 지금의 나한테 잘 맞는 행동이다. 침대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것도 편안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졌을 때의 느낌이 뭔가 거슬리기는 한다. 나는 머릿속에서 그때 일을 재생한다. 딱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뭐랄까 …. ‘다른’ 점이 있다.

흠.

나는 곯아떨어진다.



“드십시오.”

내 가슴에 치약 튜브가 놓여 있다.

“응?”

“드십시오.” 컴퓨터가 다시 말한다.

나는 튜브를 들어올린다. 흰색이고 검은 글자가 적혀 있다. ‘1일차, 1식’.

“이게 뭐야?” 내가 말한다.

“드십시오.”

나는 뚜껑을 돌려 연다.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기대감에 침이 고인다. 그제야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실감이 난다. 내가 튜브를 짜자 역겨운 생김새의 갈색 진흙 같은 것이 나온다.

“드십시오.”

내가 누구라고 소름끼치는 고문관 로봇 팔의 지배자에게 의문을 제기하겠는가? 나는 조심스럽게 그 물질을 핥아본다.

세상에, 끝내준다! 너무 맛있다! 진하지만 너무 느끼하지는 않은 그레이비소스 같다. 나는 내용물을 입에 직접 더 짜 넣고 맛을 본다. 장담하는데, 섹스보다 이게 나을 거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겠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다. 굶어 죽을 지경이 되면 두뇌는 음식을 입에 넣은 우리에게 후한 보상을 내린다. ‘잘했어.’ 뇌는 그렇게 말한다. ‘당분간은 안 죽겠네!’

퍼즐 조각이 맞아 들어간다.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다면 누군가 나에게 음식을 먹였을 것이다. 깼을 때 배에는 관이 꼽혀 있지 않았으니, 아마 콧줄을 통해 식도로 음식을 넣었을 것이다. 그게 음식을 먹을 수는 없지만 소화기관에는 문제가 없는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가장 부담이 덜한 방법이니까. 게다가 이 방법을 쓰면 소화기관이 건강하게 계속 활동한다. 내가 깨어났을 때 관이 없었던 이유도 설명된다. 가능하다면, 콧줄은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빼야 하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난 의사인가?

나는 찐득찐득한 그레이비소스를 한 번 더 입에 짜 넣는다. 여전히 맛있다. 나는 게걸스럽게 그것을 먹어 치운다. 머지않아 튜브가 텅 빈다. 나는 튜브를 들어올린다. “이거 더 줘!”

“식사가 끝났습니다.”

“난 아직 배고프다! 튜브 하나 더 줘!”

“이번 식사를 위한 음식 배급은 완료되었습니다.”

맞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내 소화기관은 유동식에 익숙해져 있다. 무리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원하는 만큼 먹으면 탈이 날 테니까. 컴퓨터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음식 더 줘!” 그리고 배고플 때 뭐가 옳은 일인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이번 식사를 위한 음식 배급은 완료되었습니다.”

“쳇.”

하지만 전보다는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음식을 먹은 덕분에 에너지를 공급받았을 뿐 아니라 더 쉬기도 했으니까.

나는 침대에서 굴러 나온다. 로봇 팔을 피해 바로 벽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하지만 로봇 팔이 나를 쫓아오지 않는다. 먹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 침대 밖으로 나와도 되는 모양이다.

나는 벌거벗은 내 몸을 내려다본다. 이건 뭔가 아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라고는 죽은 사람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옷 좀 없나?”

컴퓨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 맘대로 해라.”

나는 침대에서 이불보를 벗겨내 상체에 두어 번 감는다. 한쪽 귀퉁이를 등 뒤에서 어깨로 넘겨, 앞쪽의 다른 귀퉁이에 묶는다. 즉석 토가가 완성됐다.

“자체 보행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혼수에서 깨어난 혼수투스 황제다. 짐의 앞에 무릎을 꿇으라.”

“틀렸습니다.”

이제는 사다리 위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차례다.

좀 불안정하긴 하지만 나는 방을 가로질러 걷는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성과다. 흔들거리는 침대도, 벽에 기댈 필요도 없다. 나는 두 발로 서 있다.

나는 사다리로 다가가 사다리를 붙든다. 뭔가에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매달리면 인생이 좀 쉬워지기는 하니까. 위쪽의 해치는 엄청 단단해 보인다. 공기로 밀폐하는 방식인 것 같다. 잠겨 있을 확률도 아주 높다. 그래도 최소한 시도는 해보는 게 좋겠지.

나는 한 단을 올라간다. 힘들지만 할 만하다. 또 한 단. 그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천천히, 꾸준하게.

나는 해치에 다다른다. 한 손으로 사다리에 매달리고 해치의 원형 크랭크를 다른 손으로 돌린다. 진짜 돌아간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말한다.

‘어머나, 세상에’라고? 놀랐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어머나, 세상에’란 말인가? 아니, 뭐 그것도 나쁠 건 없다. 난 그냥 좀 덜 ‘1950년대적’인 것을 기대했었다. 나, 뭐가 문제인 거지.

크랭크를 세 바퀴 완전히 돌린다. 철컥하는 소리가 난다. 해치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지고, 나는 해치에 맞지 않으려고 비킨다. 해치는 툭 떨어지듯 열린다. 무거운 경첩만이 해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걸려 있다. 나는 자유다!

뭐, 굳이 따지자면 말이지.

해치 너머로는 어둠뿐이다. 좀 위협적이지만 어쨌든 진척이 있는 셈이다.

나는 새로운 공간으로 손을 뻗고 바닥 위로 몸을 끌어올린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탁 하며 불이 들어온다. 아마 컴퓨터가 한 일이겠지.

그 공간은 내가 떠나온 공간과 크기도, 모양도 같아 보인다. 이번에도 둥근 방이다.

보아하니 실험대처럼 생긴 커다란 탁자 하나가 바닥에 설치돼 있다. 근처에는 실험실용 의자가 세 개 있다. 벽 전체를 따라 실험 장비가 놓여 있고. 그것들 전부가 바닥에 고정된 탁자나 벤치 위에 놓여 있다. 이 방은 밀폐된 공간에서 지진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만들어진 것만 같다.

벽에 기대어 있는 사다리 하나가 천장의 또 다른 해치로 이어진다.

나는 장비가 잘 갖추어진 실험실에 있다. 대체 언제부터 격리 병동의 환자들을 실험실에 들어가게 해줬다고? 게다가 여기는 의학 실험실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대체 무슨 쌍쌍바 같은 상황이람?

쌍쌍바라고? 진짜? 난 어린 자식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욕을 절대 안 쓰는 독실한 신자이든지.

나는 주변을 좀 더 잘 살펴보려고 일어선다.

실험실에는 탁자에 나사로 고정된, 더 작은 장비가 있다. 8,000배율 현미경, 가압 멸균처리기, 시험관 여러 개, 공구 보관용 서랍 여러 개, 샘플 보관용 냉장고, 전기로, 피펫… 잠깐만. 대체 난 왜 이런 용어들을 전부 알고 있는 거지?

나는 벽을 따라 놓여 있는 더 큰 장비들을 살펴본다. 주사형 전자현미경, 서브밀리미터 3D프린터, 11축 밀링머신(커터를 회전시켜 공작물을 절삭하는 공작 기계‐옮긴이), 레이저 간섭 관측기, 1세제곱미터짜리 진공실…. 나는 이 모든 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 사용 방법까지도.

나, 과학자구나! 이제야 좀 알겠네. 내가 과학을 써야 할 시간인 거야. 좋아, 천재 두뇌씨. 뭐라도 생각해 보라고!

…나는 배고프다.

실망이다, 두뇌야.

지금도 나는 여기에 왜 이런 실험실이 있는지, 왜 내가 여기에 들어와도 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 계속 가 보자!

천장의 해치는 땅에서 10피트 정도 떨어져 있다. 또 한 번의 사다리 대모험이 펼쳐질 예정이다. 그래도 지금은 힘이 좀 더 생겼으니까.

나는 몇 차례 심호흡하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한다. 전에도 그랬듯, 이 단순한 행동에는 엄청난 노력이 따른다. 나아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난 ‘괜찮지’ 않다.

세상에, 몸이 엄청 무겁다. 나는 꼭대기까지 간신히 올라간다.

나는 사다리의 가로대에 불편하게 자세를 잡고 해치 손잡이를 밀어본다. 꿈쩍도 안 한다.

“해치의 잠금을 해제하려면 이름을 말하세요.” 컴퓨터가 말한다.

“이름을 모른다니까!”

“틀렸습니다.”

나는 손바닥으로 손잡이를 쾅 친다.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고 이제는 손바닥까지 아프다. 그래, 별 보람이 없네.

이건 좀 이따가 해야겠다. 어쩌면 머잖아 이름이 기억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딘가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을 발견하든지.

나는 사다리를 내려온다. 그게 내 계획이다.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게 쉬울 것 같지만, 절대로 아니다. 우아하게 사다리를 내려오는 대신, 나는 이상한 각도로 다음 가로대를 디디고 해치 손잡이를 놓치며 멍청이처럼 추락한다.

나는 화난 고양이처럼 버둥거리며 뭐든 잡으려고 손을 뻗는다. 알고 보니 그건 최악의 발상이었다. 나는 탁자에 떨어져 정강이로 공구 보관용 서랍을 쾅 찍어버린다. 너무나 아프네요!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픈 정강이를 움켜잡고서 실수로 탁자 위를 굴러 바닥에 떨어진다.

이번에는 나를 받아줄 로봇 팔이 없다. 나는 등부터 떨어진다. 잠깐 숨이 안 쉬어진다. 게다가 부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치욕스러운 일까지 벌어진다. 공구 서랍장이 넘어지면서 서랍들이 열리고, 실험 장비들이 내 위에 우수수 떨어진다. 면봉쯤이야 별 문제가 아니다. 시험관은 약간 아픈 정도다(놀랍게도 깨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줄자는 내 이마를 정통으로 후려친다.

더 많은 잡동사니가 쏟아지지만, 나는 부풀어 오르는 이마를 부여잡느라 바빠 눈치채지 못한다. 저놈의 줄자, 대체 얼마나 무거운 거야? 3피트짜리 탁자에서 떨어졌다고 내 머리에 혹을 내다니.

“실패했구나.” 나는 듣는 사람도 없는데 말한다. 이번 경험 전체가 그냥 우스꽝스럽다. 찰리 채플린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실… 정말로 비슷했다. 좀 지나칠 정도로.

아까 느꼈던 뭔가 ‘다른’ 감각이 다시 느껴진다.

나는 근처의 시험관을 잡고 허공에 던져본다. 시험관은 당연히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하지만 왠지 신경에 거슬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물체가 떨어지는 모습이 왠지 거슬린다. 이유를 알고 싶다.

뭘 가지고 알아보면 될까? 나는 실험실 하나를 통째로 가지고 있고, 그 실험실을 사용할 줄 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건? 나는 바닥으로 떨어진 모든 잡동사니를 둘러본다. 시험관 한 무더기, 샘플 채취용 면봉, 나무 꼬챙이, 디지털 스톱워치, 피펫, 스카치테이프, 펜….

좋아, 나한테 필요한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일어나서 토가의 먼지를 털어낸다. 물론 먼지는 없다. 내가 속한 세계 전체가 깨끗한 무균상태로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먼지 털어내는 시늉을 한다.

나는 줄자를 집어 들고 살펴본다. 미터 단위로 되어 있다. 내가 유럽에 있는 건가? 그러든지 말든지. 그런 다음 스톱워치를 집어 든다. 꽤 튼튼한 것이다. 하이킹을 갈 때 들고 갈 만한 것. 겉이 단단한 플라스틱 통으로 되어 있고, 주변에 딱딱한 고무링이 둘러져 있다. 방수가 되는 제품일 테지만 완전히 맛이 갔다. LCD 화면이 먹통이다.

버튼 몇 개를 눌러보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스톱워치를 뒤집어 배터리 넣는 곳을 살펴본다. 무슨 배터리가 들어가는지 알면, 그 배터리가 들어 있는 서랍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뒤쪽으로 삐져나온 빨갛고 작은 플라스틱 끈이 보인다. 조금 당겨보니 끈 전체가 나온다. 스톱워치가 삑삑 소리를 내며 살아난다.

일종의 ‘배터리 내장형’ 장난감 같은 것이다. 주인이 최초로 사용하기 전에 배터리가 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넣어두는 방식. 좋다. 이건 신상 중의 신상 스톱워치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 실험실의 모든 것이 신상으로 보인다. 깨끗하고, 깔끔하고, 닳은 흔적이 전혀 없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잠시 스톱워치를 만지작거리다가 작동법을 알게 된다. 사실 꽤 간단하다.

줄자를 사용해 실험대 높이를 잰다. 실험대는 밑판이 바닥과 91센티미터 떨어져 있다.

시험관을 집어 든다. 유리가 아니다. 고밀도 플라스틱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3피트 높이에서 단단한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도 깨지지 않았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공기저항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밀도가 높다.

시험관을 실험대에 올려놓고 스톱워치를 준비한다. 한 손으로 실험대에서 시험관을 밀치며 다른 손으로 스톱워치를 작동시킨다. 시험관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잰다. 대략 0.37초가 나온다. 꽤 빠른 속도다. 내 반응시간이 결과를 왜곡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펜으로 팔에 시간을 메모한다. 아직 종이를 못 찾았다.

나는 시험관을 되돌려 놓고 실험을 반복한다. 이번에는 0.33초가 나온다. 도합 스무 번의 실험을 하며 결과를 기록한다. 스톱워치를 작동시키고 멈출 때의 오차가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나는 결국 0.348초라는 평균값을 얻는다. 팔이 수학 선생님의 칠판처럼 보이게 됐지만 그건 괜찮다.

0.348초라니. 거리는 가속도의 2분의 1 곱하기 시간의 제곱이다. 그러니까 가속도는 2 곱하기 거리 나누기 시간의 제곱이다. 이런 공식이 쉽게 떠오른다. 제2의 본능처럼. 나는 물리학에 능숙한 게 확실하다. 좋은 정보다.

숫자를 계산해 보고 얻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방은 중력이 너무 크다. 원래 지구의 중력가속도는 9.8m/s2이어야 하는데, 이 방의 중력가속도는 15m/s2이다. 낙하하는 물체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너무 빨리 떨어지니까. 이렇게 근육이 많은데도 내가 힘이 없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원래의 무게보다 1.5배는 더 나간다.

문제는, 중력에 영향을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중력은 증가시킬 수도, 감소시킬 수도 없다. 지구의 중력가속도는 9.8m/s2이다. 끝. 그런데 나는 그 이상의 중력을 경험하고 있다. 가능한 설명은 한 가지뿐이다.

내가 있는 곳은 지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