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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나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종 칠 때까지 1분 남았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벼락 퀴즈 시간!” 학생들이 소리쳤다.

페트로바선에 관한 발표 이후로도 인생은 놀랄 만큼 변하지 않았다.

상황은 심각하고 치명적이었지만 그게 정상이기도 했다. 제2차세계대전 중 대공습을 당한 런던 시민들도 평소처럼 일상을 이어갔다. 가끔씩 건물들이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누군가는 계속 우유를 배달해야 한다. 그러다가 맥크리디 부인의 집이 밤에 폭격을 당한다면 뭐, 그 집은 배달 고객 명단에서 지우는 것이다.

(외계의 생명체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는) 세계 멸망을 한 세대나 두 세대쯤 앞두고 있는 상황도 그랬다. 나는 아이들 앞에 서서 그 애들에게 기초과학을 가르쳤다. 이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못한다면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뭐겠는가?

아이들은 깔끔하게 늘어선 책상에 앉아 앞을 보고 있었다. 꽤나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교실의 나머지 부분은 미친 과학자의 실험실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완성하느라 여러 해를 보냈다. 한쪽 구석에는 야곱의 사다리라는 번개 재현 장치가 있고(아이들이 감전사하지 않도록 플러그는 빼놓았다), 다른 벽을 따라서는 유리병 속 폼알데하이드에 담긴 동물 신체 부위 표본들로 가득한 책장이 있었다. 한 병에는 스파게티와 삶은 달걀만 담겨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 표본에 대해 아주 많은 추측을 내놓았다.

천장 한복판은 나의 자랑이자 기쁨인 거대한 모빌이 장식하고 있었다. 태양계 모형이었다. 목성은 농구공 크기였고, 작디작은 수성은 구슬 크기였다.

‘쿨한’ 선생님이라는 명성을 일구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렸다. 아이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다. 선생이 자기들을 정말로 신경 쓰는지, 아니면 그냥 그런 시늉만 하는지 구분할 줄 안다. 아무튼 지금은 벼락 퀴즈 시간!

나는 책상에 놓여 있던 콩 주머니를 한 움큼 쥔다. “작은곰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 뭔지 아는 사람?”

“북극성이요!” 제프가 말했다.

“정답!” 나는 제프에게 콩 주머니를 던져주고, 녀석이 콩 주머니를 잡기도 전에 다음 질문을 쏘아댔다. “암석의 기본 종류 세 가지는?”

“화성암, 침전암, 변성암이요!” 래리가 외쳤다. 정말이지 쉽게 흥분하는 녀석이다.

“아깝네!” 내가 말했다.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이에요.” 애비가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저 녀석은 아주 눈엣가시처럼 군다. 하지만 매우 영특하다.

“맞았어!” 나는 애비에게 콩 주머니를 던졌다. “지진이 일어날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지진파는?”

“P파요.” 애비가 말했다.

“또 너야?” 나는 애비에게 콩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빛의 속도는?”

“3 곱하기 10의….” 애비가 입을 열었다.

“c요!” 레지나가 뒷자리에서 소리쳤다. 거의 말하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녀석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걸 보니 좋다.

“조금 얌체 같지만, 정답!” 나는 레지나에게 콩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제가 먼저 대답하고 있었는데요!” 애비가 불평했다.

“하지만 레지나가 먼저 대답을 마쳤잖아.” 내가 말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알파 센타우리!” 애비가 재빨리 말했다.

“틀렸어!” 내가 말했다.

“아니, 맞았는데요!”

“아니, 틀렸어. 다른 사람?”

“아!” 래리가 말했다. “태양이요!”

“맞아!” 내가 말했다. “래리 1점! 고정관념을 조심해야지, 애비.”

애비는 콧김을 뿜으며 팔짱을 꼈다.

“지구의 반지름을 아는 사람?”

트랭이 손을 들었다. “3,900….”

“트랭!” 애비가 말했다. “답은 트랭이에요.”

트랭이 어리둥절해 얼어붙었다.

“뭐라고?” 내가 물었다.

애비가 우쭐하며 말했다. “지구의 반지름을 아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셨잖아요. 트랭이 아니까, 제가 말한 게 정답이죠.”

열세 살짜리의 꾀에 당하다니. 처음도 아니다. 나는 애비의 책상에 콩 주머니를 놓았다. 그 순간 종이 울린다.

아이들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책과 가방을 챙긴다. 승리감에 취한 애비는 다른 애들보다 좀 더 시간을 끈다.

“콩 주머니는 잊지 말고 주말에 가져와서 장난감이나 다른 상품으로 바꿔 가거라!” 나는 아이들의 등에 대고 말한다.

곧 교실은 텅 빈다. 생명의 징후라고는 복도에서 들리는 아이들 목소리의 메아리뿐이다. 나는 책상에서 아이들이 제출한 숙제를 챙겨 작은 여행 가방에 넣는다. 6교시가 끝났다.

교사 휴게실에 들러 커피나 한잔 마실 시간이다. 집에 가기 전에 숙제 첨삭이나 좀 해줘야겠다. 주차장에만 가지 않을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좋다. 헬리콥터맘 편대가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로 하강하는 중일 테니까. 그 사람들은 나만 보면 늘 불만이나 제안을 늘어놓곤 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탓할 수는 없고, 자녀의 교육에 부모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라일랜드 그레이스?”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성은 40대 중반으로 보였으며, 좋은 맞춤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 맞는데요.” 내가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약간 외국어 억양이 섞여 있었다. 유럽 어느 나라의 말투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에바 스트라트입니다. 페트로바 대책위원회 소속입니다.”

“어디 소속이시라고요?”

“페트로바 대책위원회요. 페트로바선 상황에 대처하고자 설치된 국제 조직입니다. 제가 해결책을 찾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당국에서 일 처리에 필요한 어느 정도의 권한을 제게 주었고요.”

“당국이요? 무슨 당국이요?”

“UN 회원국 전체를 말합니다.”

“잠깐, 뭐라고요? 어떻게 그런….”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설명하자면 복잡합니다. 그레이스 씨가 쓰신 과학 논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비밀투표라고요? 아니, 그건 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논문 쓰던 시절은 옛날에 끝났어요. 학계가 잘 안 맞아서.”

“선생님이시잖아요. 여전히 학계에 있는 셈이죠.”

“뭐, 네.” 내가 말했다. “제 말은, 아시잖아요. 학계 말입니다. 과학자들끼리 동료 심사도 하고….”

“그레이스 씨를 소속 대학교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말이죠, 그 망할 놈들이.” 스트라트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레이스 씨의 연구 자금을 끊어놓고 그레이스 씨의 논문이 다시는 발표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네. 그 학계요.”

스트라트는 서류 가방에서 파일을 하나 꺼냈다.

그녀는 파일을 펼치더니 첫 번째 페이지를 읽었다. “물 기반 이론에 관한 분석과 진화 모델 예측에 관한 재평가.” 스트라트가 눈을 들고 나를 보았다. “그레이스 씨가 이 논문을 쓰셨죠?”

“실례지만 그 논문은 어디서….”

“따분한 제목이지만 내용은 아주 흥미롭다고 해야겠더군요.”

나는 여행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저기요, 그 논문은 상황이 나쁠 때 쓴 겁니다. 아시겠어요? 학계는 겪을 만큼 겪었고 그 논문은 ‘엿이나 먹어라’ 하는 식의 작별 인사였다고요. 저는 선생님이 된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합니다.”

스트라트는 논문을 몇 장 넘겼다. “그레이스 씨는 생명체에 액체 형태의 물이 필요하다는 가정을 반박하며 여러 해를 보내셨죠. 아예 ‘골디락스 지대(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 물이 존재하는 등 행성의 환경이 지구와 비슷해 생명체가 살기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우주 내의 영역을 의미한다‐옮긴이)는 멍청이들이나 믿는 것’이라는 제목을 붙인 절을 통째로 넣으시기도 했고. 저명한 과학자 수십 명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온도 범위가 생명체 존재의 필수 요건이라고 믿는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을 질타하셨네요.”

“네, 하지만 ….”

“박사 학위는 분자생물학으로 받으셨죠? 과학자들은 대부분 생명체의 진화에 액체 상태의 물이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틀렸어요!” 나는 팔짱을 꼈다. “수소와 산소에 마법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지구의 생명체에는 그 둘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다른 행성은 환경이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생명체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최초의 촉매를 복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화학반응뿐입니다. 거기에는 물이 필요 없어요!”

나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아무튼 저는 화가 나서 그 논문을 쓴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교사 자격증을 따고 새 직장을 얻었어요. 막 제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고요. 그러니까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은 게 차라리 잘됐습니다. 덕분에 더 나은 삶을 살게 됐으니까요.”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고맙네요.” 내가 말했다. “근데 제가 숙제 채점을 해야 해서요. 여기 오신 용건이 뭔가요?”

스트라트는 파일을 다시 서류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크라이트 탐사선과 페트로바선에 대해서는 아실 것 같은데요.”

“모르면 무척 형편없는 과학 선생이겠죠.”

“그 ‘점’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스트라트가 물었다.

“글쎄요…. 그냥 자기장 안에서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먼지일 수도 있습니다. 아크라이트가 지구로 돌아오면 알게 되겠죠. 얼마 안 남았잖습니까? 지금부터 몇 주 후던가요?”

“아크라이트는 23일에 돌아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로스코스모스(Roscosmos, 러시아연방우주국‐옮긴이)가 이 임무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 유인우주선을 가지고 지구 저궤도에서 아크라이트를 회수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 알게 되겠네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들이 그 점들을 살펴보고 정체를 알아낼 겁니다. 누가 그 임무를 맡게 되나요? 아십니까?”

“당신이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레이스 씨가 그 일을 하게 될 겁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트라트는 내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댔다. “저기요?”

“제가 그 점들을 살펴봤으면 좋겠다고요?” 내가 물었다.

“네.”

“전 세계가 이 문제 해결을 당신 손에 맡겼는데, 당신은 곧장 중학교 과학 선생을 찾아왔다는 겁니까?”

“네.”

나는 돌아서서 문을 나섰다. “거짓말이거나, 당신이 미친 사람이거나, 둘 다이겠네요.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이건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스트라트가 내 등에 대고 말했다.

“제가 보기엔 선택 사항입니다만!” 나는 작별의 뜻으로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그래, 뭐.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아파트로 돌아갔는데, 우리 집 현관에 이르기도 전에 잘 차려입은 남성 네 명이 나를 둘러쌌다. 그들은 내게 FBI 배지를 보여주고,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검은 SUV 세 대 중 한 대에 나를 몰아넣었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심지어 나한테 아무 말도 걸지 않은 채 20분간 차를 몰아간 그들은 주차를 한 뒤 평범해 보이는 사무용 건물로 나를 안내했다.

그들은 30피트마다 아무 표시도 없는 문이 나오는 텅 빈 복도로 나를 끌고 갔다. 그러는 내내 내 발은 거의 바닥에 닿지도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복도 끝에 있는 이중문을 열고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건물의 나머지 부분과는 달리, 그 방은 가구며 반짝거리는 첨단 장비로 가득했다. 그곳은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장비가 잘 갖추어진 생물학 실험실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에바 스트라트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레이스 박사님.” 그녀가 말했다. “여기가 박사님의 새 실험실입니다.”

FBI 요원들이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 나와 스트라트만이 실험실에 남겨졌다. 나는 요원들이 나를 끌고 오면서 너무 세게 잡았던 어깨를 문질렀다.

나는 등 뒤의 문을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 ‘어느 정도의 권한’이라는 말이….”

“모든 권한이라는 뜻입니다.”

“외국인 억양이 있는데, 미국 사람이긴 합니까?”

“네덜란드 사람입니다. 원래는 ESA의 사무관이었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은 이 일을 맡고 있으니까요. 느릿느릿 국제 위원회를 열 시간이 없습니다. 태양이 죽어가고 있어요.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제 일은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고요.”

에바 스트라트는 실험실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았다. “이 ‘점’들은 아마 생명체일 겁니다. 태양광의 기하급수적 감소가 전형적인 생명체의 기하급수적 개체수 성장과 일치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점들이… 태양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최소한 태양에너지의 출력 분을 먹고 있기는 하죠.”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래요, 그건…. 뭐, 끔찍하네요. 아무튼 나한테서 뭘 원하는 겁니까?”

“아크라이트 탐사선이 지구로 샘플을 가져오는 중입니다. 샘플 일부가 아직 살아 있을 수 있어요. 저는 박사님이 그것들을 살펴보고,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은 전부 알아내길 바랍니다.”

“네, 그 얘기는 아까도 하셨죠.”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데는 저보다 적합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샘플을 살펴보기는 할 겁니다만 박사님이 가장 먼저 살펴보셨으면 좋겠네요.”

“왜죠?”

“이것들은 태양과 가까운 곳 혹은 태양의 표면에 삽니다. 박사님 보시기에는 그게 물에 기반을 둔 생명체 같으세요?”

스트라트의 말이 맞았다. 물은 그런 기온에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대략 3,000도가 넘어가면, 수소와 산소 원자는 더 이상 서로 붙어 있지 못한다. 태양 표면은 5,500도였다.

스트라트가 말을 이었다. “외계 생물 추정학은 작은 분야입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겨우 500명 정도밖에 없죠. 그리고 옥스퍼드 교수들부터 도쿄대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제가 이야기를 나눠 본 모든 과학자들은, 박사님이 갑자기 학계를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이 분야의 지도자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세상에.” 내가 말했다. “저는 좋게 학계를 떠난 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해줬다니 놀라운데요.”

“이 상황의 심각성은 모두가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해묵은 앙심을 품을 시간 같은 건 없습니다. 아무튼,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박사님은 모두에게 박사님 생각이 맞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생명체에 반드시 물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이죠. 당연히 박사님도 원하시는 일일 텐데요.”

“그럼요.” 내가 말했다. “제 말은…. 네, 맞아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닙니다.”

스트라트는 의자에서 내려서더니 문으로 갔다. “받아들이세요. 23일 오후 7시 정각에 이리로 오십시오. 박사님이 보실 샘플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무슨….” 내가 말했다. “샘플은 러시아로 갈 것 아닙니까?”

“로스코스모스에 유인우주선을 서스캐처원(캐나다 서부에 있는 주‐옮긴이)에 착륙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캐나다 공군이 샘플을 수거하고 전투기를 이용해 샌프란시스코로 곧장 가져올 거예요. 미국은 캐나다가 지나갈 수 있게 영공을 개방해 줄 거고요.”

“서스캐처원이라뇨?”

“소유스 캡슐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했고, 그 우주기지는 고위도에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착륙 지점도 같은 위도에 있고요. 서스캐처원은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가까운 대규모 평지입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러시아, 캐나다, 미국이 전부 당신 지시에 따른다는 겁니까?”

“네. 토 달지 않고 따릅니다.”

“이거 전부 장난입니까?”

“새로운 실험실에 익숙해지세요, 그레이스 박사님. 저는 다른 처리할 일이 있어서.”

스트라트는 다른 말없이 문밖으로 나갔다.



“좋았어!” 나는 주먹질을 한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실험실로 향하는 사다리를 오른다. 일단 실험실에 도착하자, 나는 문제의 사다리를 기어올라 수수께끼의 해치를 잡는다.

지난번과 똑같이, 내가 손잡이에 손을 대자마자 컴퓨터가 말한다. “해치의 잠금을 해제하려면, 이름을 말하세요.”

“라일랜드 그레이스.” 나는 우쭐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

내게 들려온 대답은 해치에서 나는 작은 찰칵 소리뿐이다. 나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그 모든 명상과 성찰을 한 만큼 좀 더 신나는 일이 벌어졌으면 했는데. 색종이라도 뿌려준다든지.

나는 손잡이를 쥐고 돌린다. 돌아간다. 내 영토가 최소한 새로운 방 한 개만큼 늘어날 예정이다. 나는 해치를 위로 밀어젖힌다. 침실과 실험실의 연결부와는 달리 이 해치는 옆으로 미끄러진다. 다음 방이 꽤 작은 걸 보니, 해치가 안쪽으로 젖혀질 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방은 바로… 음…?

LED 등이 들어온다. 방은 다른 두 방과 마찬가지로 둥글지만 원기둥 형태가 아니다. 천장 쪽으로 갈수록 벽이 안쪽으로 점점 좁아진다. 끝이 잘려나간 원뿔 모양이다.

지난 며칠 동안 내게는 앞길을 밝혀줄 정보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정보가 사방에서 나를 공격한다. 모든 표면이 컴퓨터 모니터와 터치스크린으로 덮여 있다. 깜빡이는 빛과 색깔이 너무 많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어떤 화면에는 숫자들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고, 다른 화면에는 도표가 있으며, 다른 화면은 그냥 검게 보인다.

원뿔형 벽의 가장자리에는 다른 해치가 하나 더 있다. 그러나 이번 해치는 별로 신비로울 게 없다. 맨 위에 ‘에어로크(출입구에 설치하여 외기압과 작업 공간의 기압을 조절하는 공간‐옮긴이)’라는 단어가 스텐실 되어 있고, 해치 자체에도 둥근 창문이 달려 있다. 창문 너머로는 아주 작은 방이 보인다. 딱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그 안에는 우주복이 있다. 저쪽 벽에 또 다른 해치가 있다. 그래. 저건 에어로크다.

그리고 모든 것의 한복판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모든 화면과 터치패널에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위치에 완벽하게 배치됐다.

나는 사다리를 마저 기어올라 그 방으로 들어간 다음 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편안하다. 자동차 시트 같다.

“조종사가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각도 이상.”

조종사라… 그래.

“이상이 발생한 위치는?” 내가 묻는다.

“각도 이상.”

이 컴퓨터는 HAL 9000(아서 클라크의 소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공지능‐옮긴이)이 아니다. 나는 힌트를 찾으려고 주변의 수많은 화면들을 돌아본다. 의자는 쉽게 돌아간다. 이 움푹한 자리를 중심으로 360도 전체에 컴퓨터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잘 된 일이다. 나는 빨간색 경계선이 깜빡이는 화면을 발견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그쪽으로 몸을 숙인다.


각도 이상: 상대적 이동 오류

예상 속도: 11,423kps

측정 속도: 11,872kps

상태: 경로 자동 수정 중. 추가 조치 불필요


그렇군.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정보다. kps만 빼고. kps는 아마 ‘초속 킬러미터’를 의미할 것이다.

글자 위에는 태양의 사진이 떠 있다. 약간씩 흔들리는 모습이다. 동영상일까? 생중계 동영상 같은. 아니면 그냥 내가 상상한 걸까? 문득 드는 예감에, 나는 두 손가락을 화면에 대고 벌려본다.

그럼 그렇지. 동영상이 확대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영상의 왼쪽에는 태양의 흑점이 두어 개 있다. 나는 그 흑점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까지 영상을 확대한다. 영상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도를 유지한다. 극도로 해상도가 높은 사진이거나, 극도로 해상도가 높은 태양망원경인 모양이다.

흑점의 군집은 폭이 태양면의 약 1퍼센트로 추산된다. 흑점으로서는 정상적인 일이다. 그 말은, 내가 지금 태양 둘레를 0.5도 각도에서 보고 있다는 뜻이다(아주 대략적인 계산이다). 태양은 약 25일에 한 번씩 자전한다(과학 교사는 이런 일들을 알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흑점이 화면에서 사라지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려야 한다. 나중에 정말 그렇게 됐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만일 그렇다면, 이 화면은 생중계 동영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진이고.

흠, 초속 1만 1,872킬로미터라.

속도란 상대적인 것이다. 두 사물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면 속도라는 개념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고속도로의 자동차는 땅에 비교했을 때 시속 70마일로 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옆의 자동차와 비교하면, 거의 0의 속도로 움직이는 셈이다. 그럼 저 ‘측정 속도’란 무엇의 속도를 측정한다는 뜻일까? 답을 알 것 같다.

내가 지금 우주선에 있는 것 맞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 값은 아마 내 속도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속도일까? 글자 위의 큼지막한 태양 그림으로 미루어 보건대 태양에 대한 속도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태양과 비교해 초속 1만 1,872킬로미터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래쪽 문구가 반짝이는 것을 포착한다. 뭐가 바뀐 건가?


각도 이상: 상대적 이동 오류

예상 속도: 11,422kps

측정 속도: 11,871kps

상태: 경로 자동 수정 중. 추가적인 동작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숫자가 달라졌네! 둘 다 1씩 떨어졌다. 아니, 이런. 잠깐만. 나는 토가에서 스톱워치를 꺼낸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일류는 늘 토가 안에 스톱워치를 넣고 다녔다). 그런 다음, 거의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화면을 바라본다. 포기하기 일보 직전에 두 숫자가 다시 1씩 떨어진다. 나는 스톱워치를 작동시킨다.

이번에 나는 대기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대비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 시간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견뎌낸다. 결국 두 숫자가 다시 떨어지고 나는 스톱워치를 멈춘다.

66초.

‘측정 속도’는 66초당 1씩 떨어지고 있다. 재빨리 계산해 보니, 그 말은… 15m/s2이라는 뜻이다. 내가 앞서 계산했던 것과 동일한 ‘중력’ 가속도다.

내가 지금 느끼는 힘은 중력이 아니다. 원심력도 아니다. 나는 직선상에서 계속 가속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다. 뭐, 숫자가 떨어지니까 사실은 감속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리고 저 속도는… 엄청난 속도다. 그래,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와!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정상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고작 초속 8킬로미터의 속도만이 필요한 데에 비해 나는 초속 1만 1,0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태양계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다. 그렇게 빠른 것은 무엇이든 태양의 중력에서 벗어나 성간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

표시된 숫자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상대적인 속도만 표시될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던질 질문은 하나다. 내가 태양을 향해서 가는 것일까, 태양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일까.

거의 학술적인 의미밖에 없는 물음이다. 나는 태양과 충돌할 예정이거나 돌아올 가망성이 전혀 없는 채로 심우주를 향해 떠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로 태양 방향이기는 하되 태양과 부딪히지는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경우라면 태양을 비켜 나가겠지만 …. 그다음에는 돌아올 가망성이 전혀 없이 심우주로 날아가게 될 것이다.

뭐, 태양 사진이 실시간이라면 내가 이동하고 있는 만큼 화면에 표시된 흑점도 커지거나 작아질 것이다. 그러니까 저 그림이 실시간 영상인지 확인하려면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약 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스톱워치를 작동시킨다.

나는 작은 방에 있는 수많은 화면들을 익힌다. 대부분은 내게 뭔가 말해주려는 것 같지만, 한 화면은 그냥 둥근 문양만을 보여주고 있다. 대기 화면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건드리면 컴퓨터가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저 대기 화면이야말로 이곳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전해준다.

임무 로고다. 나는 나사 다큐멘터리를 하도 많이 봐서 이런 문양은 보기만 해도 안다. 둥근 문양의 바깥쪽에는 흰 글자가 들어간 푸른 고리가 둘러져 있다. 위쪽 전체를 가로질러 ‘헤일메리(HAIL MARY)’라는 글자가, 아래쪽에는 ‘지구(EARTH)’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이 우주선의 이름과 ‘기항지’다.

이 우주선이 지구가 아닌 어딘가에서 발사한 우주선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뭐 그래, 아무튼 이제야 내가 타고 있는 우주선의 이름을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헤일메리(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 버저가 울리는 순간에 득점할 것을 노리고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이기도 하다‐옮긴이) 호에 타고 있다.

이 정보로 뭘 어째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문양이 전달하는 정보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푸른 띠 안에는 검은 원이 있다. 검은 원 안에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한 작은 세 개의 원이 있고, 각각 가운데에 점이 찍힌 노란 원, 흰 십자가가 들어간 파란 원, 소문자 ‘t’가 들어간 작은 노란 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검은 공간의 가장자리에는 ‘’, ‘ИЛЮҲИҢА’, ‘GRACE’가 적혀 있다.

우리.

내가 ‘그레이스’이니까, 나머지 둘은 아래층 침대에 누워 있는 미라의 이름인 게 틀림없다. 중국인과 러시아인. 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수면으로 떠오르지만 건져내기가 어렵다. 내면의 방어기제가 그 기억을 억누르는 것 같다. 두 사람을 기억하게 되면 마음이 아플 테니까 두뇌가 그들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걸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나는 과학 선생이지 외상 심리학자가 아니니까.

나는 눈을 깨끗이 닦아낸다. 지금은 그 기억을 너무 열심히 들여다보기에 아직 이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시간을 죽여야 한다. 또 무엇이 생각날지 모르니 정신이 마음껏 헤매고 다니게 놔둔다. 그러기가 점점 쉬워진다.



“이 모든 게 100퍼센트 편안한 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는 방호복을 착용한 탓에 먹먹하게 들렸다. 숨결이 얼굴을 가린 창문 같은 투명한 비닐을 흐렸다.

“괜찮아질 겁니다.” 스트라트의 목소리가 인터콤을 통해 들려왔다. 그녀는 이중창으로 된, 아주 두꺼운 유리 너머에서 나를 지켜보았다.

실험실은 몇 차례 업그레이드 된 상태였다. 아, 장비는 전부 동일했다. 하지만 이제는 실험실 전체의 공기가 차단됐다. 벽에는 두꺼운 플라스틱 시트가 둘러졌고, 그 모든 것이 일종의 특수 테이프로 연결됐다. 사방에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옮긴이)’ 로고가 보였다. 격리 절차에 따른 것이다. 전혀 편안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실험실의 입구는 커다란 플라스틱 에어로크를 지나는 길뿐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들어가기 전에 방호복을 입으라고 했다. 천장의 스풀에서 내 방호복으로 공기 배관이 연결됐다.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에든 쓸 수 있는 최상위급 장비가 전부 준비됐다. 나는 그렇게 장비가 잘 갖춰진 실험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실험실 중앙에는 원형 통이 들어 있는 바퀴 달린 카트가 있었다. 원통에 적힌 글자는 ‘образец(‘견본’이라는 뜻의 러시아어‐옮긴이)’였다. 그렇게까지 유용한 정보는 아니군.

관찰실에 있는 사람은 스트라트만이 아니었다. 군복을 입은 사람 대략 스무 명이 그녀와 함께 서서, 모두 흥미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인 몇 명과 러시아인 몇 명, 중국인 장교 몇 명이 있는 건 확실했고 나로서는 알아볼 수조차 없는 독특한 제복을 입은 사람도 많이 있었다. 국제적인 대규모 집단이었다. 그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이른바 침묵이라는 합의를 통해 그들 모두가 스트라트에게서 몇 피트쯤 물러나 있었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공기 호스를 잡고 스트라트에게 손짓했다. “이게 꼭 필요합니까?”

스트라트는 인터콤 버튼을 눌렀다. “그 원통 안의 샘플이 외계 생명체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

“잠깐만요…. 당신이야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죠. 난 감수해야 한다고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왜 아닌데요?”

스트라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뭐, 네. 박사님 말이 정확히 맞습니다.”

나는 원통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까?”

스트라트는 군인들을 돌아보았고 군인들은 그녀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알잖아요.” 내가 말했다. “샘플을 이 통 안으로 옮긴 사람들 말입니다.”

“그건 캡슐에서 꺼내온 샘플 용기입니다. 3센티미터 두께의 납덩이가 1센티미터 두께의 강철을 감싸고 있어요. 통은 금성을 떠나는 순간 봉인됐습니다. 샘플 자체를 꺼내려면 자물쇠 열네 개를 열어야 하고요.”

나는 원통을 보고, 스트라트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원통을 보고, 다시 스트라트를 보았다. “이거 참, 너무 너무 너무 별로네요.”

“긍정적인 면을 보세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레이스 박사님은 외계 생명체와 처음 접촉한 사람으로 영원히 기록될 겁니다.”

“이게 생명체라면 말이죠.” 내가 웅얼거렸다.

나는 꽤 노력을 들여 자물쇠 열네 개를 풀었다. 뻑뻑했다. 애초에 아크라이트 탐사선이 어떻게 이 자물쇠들을 잠근 건지 좀 궁금해졌다. 끝내주는 동작 시스템이 있었나 보다.

내부는 별다를 게 없었다.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저 작고 깨끗한, 텅 빈 것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공이 하나 있었을 뿐. 신비의 점들은 현미경으로나 보일 만큼 작았으며 그 수도 많지 않았다.

“방사선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스트라트가 인터콤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를 휙 돌아보았다. 그녀는 자기 태블릿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나는 플라스틱 공을 오랫동안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거 진공상태입니까?”

“아뇨.” 스트라트가 말했다. “1기압의 아르곤 가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탐사선이 금성에서 돌아오는 동안에도 점들은 계속 움직였어요. 그러니까 아르곤 가스는 샘플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실험실 전체를 둘러보았다. “글로브박스(방사선 물질 등을 다루기 위한 밀폐 투명 용기‐옮긴이)가 없는데요. 정체 모를 샘플을 표준상태의 공기에 그냥 노출시킬 수는 없습니다.”

“실험실 전체가 아르곤 가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공기 배관이 꼬이거나 방호복이 찢기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아르곤 가스를 흡입하면….”

“질식하는 줄도 모르고 숨이 막혀 죽겠죠.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공을 트레이로 가져가 조심스럽게 비틀었다. 공은 두 부분으로 쪼개졌다. 나는 반쪽을 봉인된 플라스틱 용기에 놓고, 다른 반쪽은 마른 면봉으로 닦아냈다. 그 면봉을 슬라이드에 대고 문지른 다음 슬라이드를 현미경으로 가져갔다.

찾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녀석들은 바로 거기 있었다. 수십 개의 작고 검은 점. 그것들은 정말로 꿈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거 전부 촬영 중이십니까?”

“서른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 중입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샘플은 여러 개의 둥근 물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크기는 거의 변동이 없고요. 개체 하나의 크기가 대략 반경 10미크론으로 보입니다 ….”

나는 초점을 조정하고 배면광을 다양한 강도로 조정했다. “샘플은 불투명합니다 …. 내부가 보이지 않아요. 현재 활용 가능한 가장 강한 조명 설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샘플이 살아 있습니까?” 스트라트가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눈알을 굴려댔다. “한번 휙 보고 그런 걸 알 수는 없죠. 뭘 기대하는 겁니까?”

“저는 그 샘플이 살아 있는지 그레이스 박사님이 알아내 주기를 바랍니다. 만일 살아 있다면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지도요.”

“엄청난 주문이네요.”

“왜죠? 생물학자들은 박테리아가 활동하는 방식도 알아냈어요. 그 사람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걸 알아내기까지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200년 동안 노력해야 했어요!”

“뭐… 그럼 그것보다 빨리 해보세요.”

“저기 말이죠.” 나는 현미경을 다시 손짓했다. “이제 다시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뭐든 알아내면 그때 말씀드리죠. 그때까지는 조용히 공부나 하세요.”

나는 여섯 시간 동안 점점 더 많은 실험을 했다. 그동안 군인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결국 스트라트를 혼자 남겨놓고 떠났다. 스트라트의 인내심에는 존경심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관찰실 뒤쪽에 앉아 태블릿 작업을 하며 가끔 눈을 들어 내가 뭘 하는지 살펴보았다.

내가 에어로크를 지나 관찰실로 나오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뭔가 얻었나요?” 스트라트가 물었다.

나는 지퍼를 풀고 방호복에서 걸어 나왔다. “네, 가득 찬 방광을 얻었습니다.”

스트라트는 태블릿에 계속 입력해 나갔다. “그건 생각 못했네요. 오늘 밤 격리 구역 내에 화장실을 설치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화학식 변기여야 할 거예요. 배관을 드나들게 할 수 없으니까.”

“네, 그러시든지요.” 내가 말했다. 나는 볼일을 보러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돌아와 보니 스트라트가 작은 탁자와 의자 두 개를 관찰실 가운데에 끌어다 놓고 있었다. 그녀는 한 의자에 앉아서 다른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전 지금 한창….”

“앉으세요.”

나는 자리에 앉았다. 스트라트는 위압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건 확실했다. 어조 때문일까, 대체로 자신감 넘치는 태도 때문일까? 어쨌든 스트라트가 입을 열면 그녀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게 그냥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지금까지 뭘 발견하셨습니까?” 스트라트가 물었다.

“겨우 한나절 살펴봤습니다.” 내가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물어본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뭘 발견했느냐고 물었죠.”

나는 머리를 긁었다. 방호복을 입고 여러 시간을 보낸 터라 나는 땀에 젖어 있었고, 아마 고약한 냄새를 풍겼을 것이다. “그게… 이상하더군요. 저 점들이 뭐로 만들어져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알고 싶은데 말이죠.”

“지금 없는 장비 중에 필요한 게 있나요?” 스트라트가 물었다.

“아뇨, 아뇨. 있을 만한 건 저 안에 전부 다 있습니다. 그냥… 이 점들에는 통하지 않을 뿐이에요.”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거의 하루 종일 서 있었던 만큼 잠깐의 휴식은 좋은 일이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본 건 엑스레이 분광계였습니다. 엑스레이를 샘플에 송출해서 샘플이 광자를 배출하게 하는 거죠. 그러면 광자의 파장을 통해 어떤 성분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뭘 알게 됐습니까?”

“아무것도요. 제가 알아낸 바로는 이 점들이 그냥 엑스레이를 흡수해 버립니다. 엑스레이가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않아요.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에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물질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스트라트는 태블릿에 뭔가를 써넣었다. “다른 건요?”

“다음으로는 가스 크로마토그래피를 써봤습니다. 샘플을 증발시킨 다음, 그 결과로 나온 기체를 가지고 어떤 성분이나 화합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도 통하지 않았어요.”

“왜죠?”

나는 두 손을 들었다. “이 망할 게 증발하지를 않으니까요. 그래서 버너니, 오븐이니, 용광로니 온갖 복잡한 방법들을 써봤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다. 그 점들은 섭씨 2,000도까지의 온도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아요. 전혀.”

“그게 이상한 일인가요?”

“미친 일이죠.”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태양에서도 사니까요. 최소한 얼마 동안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열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것도 말이 되는 것 같네요.”

“태양에서 산다고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러니까 생명체라는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네.”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뭐, 이것들은 움직입니다. 현미경으로도 잘 보이고요. 그것만으로 이 점들이 살아 있다는 증명이 되는 건 아니죠. 무생물도 정전하든, 자기장이든, 뭐로든 늘 움직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걸 하나 발견했어요. 그게 이상한 건데, 그 점을 생각하면 모든 게 맞아 떨어져요.”

“계속 말해보세요.”

“제가 이 점 몇 개를 진공상태에 집어넣은 다음 분광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그냥 이 점들이 빛을 발산하는지 알아보는 간단한 실험이었어요. 물론, 점들은 빛을 발산했습니다. 파장 25.984미크론의 적외선을 방사하더군요. 페트로바 진동수와 같은 수치입니다. 페트로바선을 구성하는 빛이라는 말이에요. 그럴 거라고는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 점들이 오직 움직일 때만 빛을 발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정말이지 엄청난 빛을 내더군요. 그러니까 우리 관점에서 볼 때는 엄청난 빛이 아니지만, 이렇게 작은 단세포생물치고는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겁니다.”

“그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종이 뒷면에 간단하게 계산을 좀 해봤는데요. 이 녀석들은 바로 그 빛을 가지고 움직이는 게 거의 확실합니다.”

스트라트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잘 이해가 안 갑니다만.”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빛에는 운동량이 있어요.” 내가 말했다. “힘을 낸단 말입니다. 우주에 나가서 손전등을 켜면 그것 때문에 아주 아주 작은 추진력을 얻게 돼요.”

“그건 몰랐네요.”

“이제 아셨으니까 됐죠. 그리고 아주 아주 작은 질량에 대한 아주 아주 작은 추진력은 효과적인 추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점들의 평균 질량을 측정해 보니 대략 약 20피코그램(1조분의 1그램‐옮긴이)이더군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시간은 오래 걸렸어도 저 실험실 장비는 끝내주던데요. 아무튼 제가 관찰한 움직임은 발산된 빛의 운동량과 일치했습니다.”

스트라트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내가 스트라트의 관심을 온전히 받는다는 희귀한 업적을 이루어 낸 모양이었다. “자연계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죠. 자연계에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 저장고를 가진 존재가 없습니다. 이 점들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방출하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이건 마치… 질량에너지 전환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E=mc2 같은 거요. 이 작은 점들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뭐, 방금 태양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태양이 에너지를 잃고 있기도 하고.”

“네. 그래서 제가 이것들이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이 점들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방식으로 저장했다가 추진력으로 활용합니다. 그건 단순히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과정이 아니에요. 복잡하고 방향성도 있죠. 진화 과정을 거친 존재가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페트로바선이… 아주 작은 로켓들의 불꽃이라는 말인가요?”

“아마 그럴 거예요. 그리고 장담하는데, 우리한테 보이는 건 페트로바 대역에서 나오는 전체 빛의 일부에 불과할 겁니다. 이 녀석들은 금성으로 갈 때나 태양으로 갈 때 빛을 추진력으로 활용합니다. 두 과정 모두에 활용하는 걸 수도 있고요. 잘 모르겠네요. 중요한 건 빛이 이 녀석들의 진행 방향과 먼 쪽으로 발산된다는 겁니다. 지구는 그 방향과 같은 선상에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근처의 우주먼지에 반사되는 빛만을 보게 됩니다.”

“이것들이 왜 금성으로 이동하는 거죠?” 스트라트가 물었다. “번식은 어떻게 하고?”

“좋은 질문인데요. 저로서는 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단세포로 이루어져 자극 반응의 형태로만 활동하는 생명체라면, 아마 체세포분열을 통해 번식할 겁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세포가 반으로 쪼개져서 두 개의 새로운 세포가 된다는….”

“네, 그 정도는 저도 아네요.” 스트라트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은 늘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와의 첫 만남은 UFO를 타고 온 작은 초록색 인간들과의 만남이 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죠. 이렇게 단순하고 지능이 없는 종과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내가 말했다. “벌컨족(영화 《스타 트렉》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옮긴이)이 인사하겠다고 잠깐 들른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우주 해조류네요.”

“침입종이죠.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수두꺼비처럼.”

“괜찮은 비유입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어요. 빠르게요. 이 녀석들 숫자가 늘어날수록 태양에너지도 더 많이 소모될 겁니다.”

스트라트는 아래턱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박사님이라면 별을 먹고 사는 생명체를 뭐라고 부르시겠어요?”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을 애써 떠올렸다. “‘아스트로파지[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와 세균을 숙주세포로 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하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의 합성어‐옮긴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네요.”

“아스트로파지.”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녀는 그 단어를 태블릿에 써 넣었다. “좋아요. 다시 일하러 가세요. 아스트로파지의 번식 방법을 찾아내십시오.”



아스트로파지!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내 몸의 모든 근육이 오그라든다. 납덩이처럼 나를 후려치는 싸늘한 공포심.

그 이름이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존재, 아스트로파지.

나는 확대된 태양 영상이 떠 있는 모니터를 힐끗 본다. 흑점이 눈에 띄게 움직였다. 좋다, 저건 실시간 영상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좋은 일이다.

자아아암깐…. 맞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은데. 나는 스톱워치를 확인한다. 나는 겨우 10분 정도 공상에 잠겨 있었을 뿐이다. 흑점은 아주 조금만 움직였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면의 절반 정도를 이동했다. 움직였어야 하는 거리보다 훨씬 멀리까지.

나는 토가에서 줄자를 꺼낸다. 영상을 확대하고 화면에 뜬 태양과 흑점 무리의 폭을 실제로 측정한다. 대략적인 추정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진짜 계산이 필요하다.

태양면의 폭은 화면상에서 27센티미터이고, 흑점의 폭은 3밀리미터이다. 그리고 흑점은 10분 동안 자기 폭의 절반(1.5밀리미터)을 움직였다. 스톱워치를 살펴보니 실제로 경과한 시간은 517초다. 나는 종이에 몇 가지 계산을 슥슥 휘갈겨 내려간다.

그 답을 보면, 흑점은 매 344.66초마다 1밀리미터를 이동하는 셈이다. 27센티미터 전체를 가로지르는 데는 (슥슥) 9만 3,000초가 조금 넘게 걸린다. 그러니까 흑점들이 태양의 이쪽 면 가까이로 가로지르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완전히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는 그 두 배가 걸리게 된다. 그러니까 18만 6,000초다. 이틀이 좀 넘는 시간이다.

태양의 자전 속도보다 열 배 넘게 빠르다.

내가 보고 있는 저 별은…. 저 별은 우리 태양이 아니다.

나는 다른 태양계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