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이제는 저 화면들을 아주 열나게 겁나게 오래 들여다볼 시간인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다른 태양계에 있을 수가 있지? 말도 안 되잖아! 그건 그렇고 저건 무슨 별이야? 세상에 나 죽으려나 봐!
잠시 과호흡이 찾아온다.
나는 학생들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불안해지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10초를 세렴. 그 방법을 쓰자 우리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성질을 터뜨리는 일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숨을 들이쉰다. “하나 … 둘… 세에…안 통하잖아! 난 죽게 될 거야!”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다. “세상에, 난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모니터들을 뒤진다. 정보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넘쳐났으면 넘쳐났지. 각 화면에는 윗부분에 알아보기 쉬운 이름표가 붙어 있다. ‘생명 유지 장치’, ‘에어로크 상태’, ‘엔진’, ‘로봇 관리’, ‘아스트로파지’, ‘발전기’, ‘원심분리기’…. 잠깐. 아스트로파지라고?
나는 ‘아스트로파지’ 패널을 자세히 살펴본다.
잔량: 20,906kg
소비 속도: 6.056g/s
이 숫자들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아래에 있는 도표다. 도표는 헤일메리호처럼 보이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이 우주선의 전체 모습을 처음으로 살펴보는 순간이다.
우주선의 윗부분은 원통형으로 앞에 뾰족한 원뿔이 붙어 있다. 내가 여태 봐왔던 로켓들과 다르지 않다. 점점 좁아지는, 통제실의 원뿔형 벽을 생각해 보면 이곳은 우주선의 맨 앞부분이 틀림없다. 내 아래쪽에는 실험실이 있다. 도표에는 그 방에 ‘실험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아래쪽이 내가 깨어났던 방이다.
죽은 내 친구들이 있는 곳.
나는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낸다. 지금 당장은 이럴 시간이 없다. 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계속 도표를 살펴본다. 그 방에는 ‘숙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좋다, 그러니까 이 도표 전체는 내 경험과 일치하는 셈이다. 이런저런 존재의 공식적 이름을 알게 되니 좋기도 하고. 숙소 밑에는 훨씬 더 길이가 짧은 공간이 있다. 아마 높이가 1미터쯤 되는 듯하다. 그곳의 이름은 ‘창고’다. 아하! 바닥에 내가 놓친 판이 있었나 보다. 나중에 확인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훨씬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창고 아래에는 ‘케이블 연결부’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저게 뭔지, 왜 존재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우주선은 그 밑으로 점점 넓어진다. 그곳은 내가 있는 작은 공간과 폭이 동일한 세 개의 원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통들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내 생각에 이 우주선은 우주에서 조립한 것이고 지구에서 우주 공간으로 발사할 수 있었던 최대 반경이 대략 4미터였던 것 같다.
세쌍둥이 원통에는 ‘연료’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어림잡아 보면 이 통들이 우주선 전체 부피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것 같다.
연료 구역은 아홉 개의 작은 원통들로 나뉘어 있다. 나는 호기심에 그중 하나를 건드려 보는데, 그러자 그 연료통에 관한 화면이 표시된다. ‘아스트로파지: 0.000kg’라고 적혀 있다. ‘버리기’라는 버튼도 있다.
뭐,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것들이 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리기’라는 이름이 붙은 버튼은 전혀 건드리고 싶지 않다.
보이는 것만큼 극적인 효과를 낳는 버튼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들은 연료 탱크다. 연료를 다 쓰면, 우주선은 선체의 질량을 줄이고 남은 연료를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연료 탱크를 버릴 수 있다. 지구에서 발사될 때 로켓이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도 그래서다.
연료 탱크가 비는 순간 우주선이 연료 탱크를 자동으로 방출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는 해당 화면을 끄고 우주선 주 도면으로 돌아온다.
커다란 연료 구역들 아래에는 각기 ‘스핀 드라이브’라는 이름이 붙은 사다리꼴 구역이 있다. 스핀 드라이브라는 용어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위치가 우주선의 뒤쪽이고 이름에 ‘드라이브’가 들어가는 걸 보면 추진 시스템인 것 같다.
스핀 드라이브라… 스핀 드라이브…. 나는 눈을 감고 그에 관해 떠올려 본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대로 기억을 불러낼 수가 없다.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나는 도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째서 2만 킬로그램의 아스트로파지가 이 우주선에 실려 있는 걸까? 한 가지 강하게 의심되는 가설이 있다. 아스트로파지가 연료라는 가설.
아닐 이유가 있나? 아스트로파지는 빛을 추진력으로 사용하며 말도 안 되는 에너지 저장 능력을 가지고 있다. 녀석은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 수십억 년, 혹은 그 이상 상상조차 못할 만큼 긴 시간 동안 진화를 거쳤다. 말의 에너지 효율이 트럭보다 높은 것처럼 아스트로파지는 우주선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다.
그래, 그러면 이 우주선에 아스트로파지가 잔뜩 실려 있는 이유가 설명된다. 아스트로파지는 연료다. 하지만 왜 이 화면에 우주선의 도면을 뜨게 한 거지? 이건 마치 연료 계기판에 자동차 설계 도면을 띄우는 것과 같다.
흥미롭게도 도면은 실내 공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각 공간 안에 뭐가 있는지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각 공간의 이름이 있을 뿐이다. 단, 우주선의 선체와 뒷부분에는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
연료 구역에서 스핀 드라이브로 이어지는 붉은 관들이 보인다. 아마 연료가 엔진으로 들어가는 길일 것이다. 그 관들이 선체 전체를 따라 배치된 것도 보인다. 게다가 이 파이프들은 케이블 연결부도 가르고 지나간다. 그러니까 아스트로파지 연료는 대부분 연료 탱크에 있으나, 선체 전체를 감고 있는 외부 구조물에도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아, 그리고 사방에 온도가 표시되어 있다. 온도가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선체를 따라서 몇 미터마다 수치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수치에 ‘96.415℃’라고 적혀 있다.
어라, 이거 내가 아는 온도인데. 난 정확하게 저 온도를 안다고! 어떻게 아는 거지? 얼른, 머리야… 힘 좀 써봐….
‘96.415℃’라고, 화면에는 적혀 있었다.
“흠.” 내가 말했다.
“뭐죠?” 스트라트가 즉시 물었다.
실험실에 간 두 번째 날이었다. 스트라트는 아스트로파지를 당분간이라도 오직 나 혼자만 살펴봐야 한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스트라트는 태블릿을 탁자에 내려놓고 관찰실 창문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게 나왔습니까?”
“그런 것 같네요. 아스트로파지의 주변 온도는 섭씨 96.415도입니다.”
“꽤 뜨겁네요?”
“네, 거의 물의 끓는점에 가까워요.” 내가 말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인 온도죠. 하지만 태양 주변에서도 편안히 잘 사는 존재한테는 어떨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그 수치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이 이상 뜨겁게 할 수도, 차갑게 할 수도 없어요.” 나는 앞서 가스 배출용 후드 내부에 마련해 두었던 실험 장치를 가리켰다. “아스트로파지 일부를 한 시간 동안 얼음물에 담가 두었습니다. 꺼내보니까 96.415도더군요. 그런 다음에는 1,000도의 실험용 가마에 넣어뒀어요. 이번에도 꺼내보니 96.415도였습니다.”
이어 스트라트는 창문 옆을 서성거렸다. “극도로 단열이 잘 되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실험도 해봤습니다. 극소량의 물방울을 가져다가 그 안에 아스트로파지를 집어넣었어요. 몇 시간 후에는 물방울 전체의 온도가 96.415도가 되었습니다. 아스트로파지가 물을 가열한 거죠. 열에너지가 아스트로파지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결론은요?” 스트라트가 물었다.
나는 머리를 긁으려 했지만 비닐 방호복이 방해가 됐다. “뭐, 아스트로파지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제 생각에는 아스트로파지가 그 에너지를 사용해 체온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스트라트 씨나 저와 마찬가지로요.”
“온혈 미생물이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보여요. 저기, 언제까지 저 혼자 이 일을 하는 겁니까?”
“새로운 사실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실 때까지요.”
“실험실 하나에 사람 하나만 두겠다는 거예요? 과학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이 이 일을 하고 있어야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레이스 박사님만이 아니에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오늘만 해도 세 명의 서로 다른 국가수반이 저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럼 다른 과학자들도 참여시키세요!”
“안 됩니다.”
“왜요?”
스트라트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창문 너머 나를 보았다. “아스트로파지는 외계의 미생물입니다. 인간한테 감염되기라도 하면요? 치명적이라도 하면? 방호복이나 네오프렌 장갑도 충분한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하면 어쩝니까?”
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잠깐만요! 내가 기니피그라는 겁니까? 내가 기니피그라니!”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도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그녀를 노려보았다.
“네, 뭐 정확한 지적이었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세상에!” 내가 말했다. “그건 참 너무하잖아요!”
“오버하지 마세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안전하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내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인들에게 아스트로파지를 보냈는데 아스트로파지가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인다고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사람들을 순식간에 잃게 될 겁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
나는 눈을 부라렸다. “이건 무슨 신파 영화가 아닙니다, 스트라트. 병원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화한 다음에야 특정한 숙주를 공격하는 거예요. 아스트로파지는 지구에 와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인간에게 ‘감염될’ 방법이 없다고요. 게다가 며칠 지났는데 제가 아직 죽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진짜 과학자들한테 보내세요.”
“박사님도 진짜 과학자가 맞잖아요. 게다가 어느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전을 보이고 있고요. 박사님이 혼자 잘 하고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장난해요?” 내가 말했다. “수백 명이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많은 진전이….”
“또한, 수많은 치명적 질환에는 2주간의 잠복기가 있습니다.”
“저 봐, 결국 그거네.”
스트라트는 탁자로 돌아가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전 세계 나머지 사람들한테도 다 차례가 갈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박사님만의 차례예요. 최소한 저것들이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는 말해주세요. 그때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스트로파지를 넘길지 얘기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스트라트는 다시 태블릿을 읽기 시작했다. 대화는 끝났다. 그것도 내 학생들이 ‘뼈 때리기’라고 부를 만한 방법을 써서. 최선을 다했지만 아스트로파지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스트로파지는 어떤 파장의 빛을 비춰봐도 불투명했다.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엑스레이, 극초단파…. 심지어 아스트로파지 몇 마리를 방사선 차단 용기에 넣고 세슘-137이 내뿜는 감마선에 노출시키기까지 했다(이 실험실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나는 그 실험을 ‘브루스 배너(《인크레더블 헐크》 등의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헐크의 또 다른 자아‐옮긴이) 시험’이라고 불렀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감마선조차도 그 쪼그만 악당들을 관통하지는 못했다. 이건 마치 50구경 권총을 종이에 대고 쐈는데, 총알이 튕겨 나오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시무룩하게 다시 현미경으로 돌아갔다. 작은 점들은 몇 시간째 그대로 슬라이드에서 놀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통제군이었다. 다양한 광원으로 실험해 보지 않은 녀석들. “어쩌면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실험 장비를 뒤진 끝에 필요한 물건을 찾아냈다. 나노 주사기였다. 희귀하고 비싼 물건이었지만, 이 실험실에는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매우 작은 바늘이었다. 미생물을 찌르는 데 쓸 수 있을 만큼 작고 뾰족한 바늘. 이 녀석을 쓰면 살아 있는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채취할 수 있었다.
다시 현미경으로. “좋아, 이 조그만 말썽쟁이들아. 방사선은 튕겨낸다 이거지? 그건 인정해 주겠어. 하지만 대놓고 찌르면 어떨까?”
보통 나노 주사기는 정밀하게 조정한 장비를 통해 제어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막 찔러보는 싶은 것뿐이었고, 도구가 망가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나는 콜릿(칩을 팽창 테이프에 접착시켜 납 틀에 붙이는 도구‐옮긴이)을 집어 들고 (보통은 이곳에 통제용 기기를 놓는다) 바늘을 현미경의 시야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름은 나노 주사기이지만, 사실 나노 주사기는 폭이 50나노미터쯤 된다. 그래도 10미크론이라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아스트로파지와 비교하면 작디작다. 폭이 겨우 200분의 1 정도니까.
나는 바늘로 아스트로파지를 찔렀다. 그리고 다음에 벌어진 일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일단, 바늘이 아스트로파지를 관통했다. 그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빛과 열에 대한 저항이 그토록 강했던 아스트로파지이지만, 뾰족한 물건을 다루는 실력은 다른 세포와 다를 것도 없었다.
내가 구멍을 뚫자마자 세포 전체가 투명해졌다. 더는 아무 특징 없는 검은 점이 아니라, 세포 기관 등 나 같은 미생물학자가 보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세포가 되었다. 스위치를 탁 켜는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아스트로파지는 죽어버렸다. 찢어진 세포벽이 죽더니 완전히 풀어졌다. 아스트로파지는 응집된 둥근 물체에서 천천히 퍼져가는, 경계선이 없는 물웅덩이 같은 것으로 변했다. 나는 근처 선반에서 일반 주사기를 가져다가 그 끈적끈적한 물질을 빨아들였다.
“좋았어!” 내가 말했다. “하나 죽였어요!”
“잘하셨네요.” 스트라트가 태블릿에서 눈을 들지 않고 말했다. “외계인을 죽인 첫 인간이라니. 《프레데터》에 나오는 아널드 슈워제네거랑 똑같네요.”
“네에, 유머 감각을 자랑하고 싶으신 건 알겠지만 그 프레데터는 자폭했습니다. 프레데터를 실제로 죽인 첫 인간은 마이클 해리건이었어요. 대니 글로버가 연기했죠…. 《프레데터 2》에서.”
스트라트는 창 너머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고 눈을 굴려댔다.
“요점은 제가 마침내 아스트로파지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정말이에요?” 스트라트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죽이는 게 비법이었나요?”
“그랬나 봐요. 더는 검은색이 아닙니다. 빛이 통과하고 있어요. 무슨 이상한 효과가 빛을 가로막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아닙니다.”
“어떻게 하신 거죠? 뭘로 죽였어요?”
“외부 세포막을 나노 주사기로 관통했습니다.”
“막대기로 찔렀다고요?”
“아뇨!” 내가 말했다. “뭐, 맞긴 맞아요. 하지만 아주 과학적인 막대기를 가지고 아주 과학적으로 찔렀습니다.”
“막대기로 찔러봐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기까지 이틀이 걸리신 거네요.”
“당신 진짜… 조용히 하세요.”
나는 바늘을 분광계로 가져가 아스트로파지 진액을 받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나는 분광계의 시료실을 봉인하고 열띤 분석을 시작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린애처럼 두 발을 번갈아 짚어가며 깡충깡충 뛰었다.
스트라트가 목을 길게 빼고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지금은 뭘 하시는 건가요?”
“저건 원자 발광 분광기입니다.” 내가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엑스레이를 샘플로 보내 원자를 자극한 다음 돌아오는 파장을 관찰하는 겁니다. 살아 있는 아스트로파지에 써봤을 때는 아무 효과가 없었지만, 빛을 차단하는 마법의 속성이 사라진 지금은 정상적으로 통할 거예요.”
기계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좋았어! 한번 봅시다! 물을 사용하지 않는 생명체에는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지 알아볼 순간이네요!” 나는 LCD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삐죽삐죽한 선들과 각 선이 나타내는 성분이 표시돼 있었다. 나는 조용히 화면을 응시했다.
“그래서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뭡니까?”
“음. 탄소와 질소가 있지만 … 샘플의 대부분은 수소와 산소예요.” 나는 한숨을 쉬고 기계 옆에 놓여 있던 의자에 주저앉았다. “산소에 대한 수소의 비율은 2대 1입니다.”
“그게 뭐가 문제죠?” 스트라트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물이에요. 아스트로파지는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트라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떻게요? 태양 표면에 존재하는 물질에 어떻게 물이 들어 있을 수 있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부 온도를 96.415도로 유지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스트라트가 물었다.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제가 여태까지 써온 모든 과학 논문이 틀렸다는 뜻이요.”
그렇군. 큰코다쳤는걸.
하지만 그 실험실 안에서 나는 어쨌든 행복했다. 아마 당국에서는 더 똑똑한 사람들을 데려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 다른 별에 있는 거겠지. 아스트로파지로 동력을 공급받는 우주선을 타고.
하지만 대체 여기 있는 사람이 나인 이유는 뭘까? 내가 한 일이라고는 평생 가져온 신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 것뿐이었는데.
그 부분은 나중에 기억날 것 같다. 일단 지금은 저게 무슨 별인지 알고 싶다. 왜 우리가 이곳으로 사람을 보낼 우주선을 만들었는지도.
물론 이 모든 게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주선 전체에 내가 아직 탐사하지 못한 구역이 너무 많다.
“창고.”
어쩌면 임시로 만든 토가 말고 입을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실험실로 갔다가 더 아래쪽의 숙소까지 내려간다.
친구들은 아직 거기 있었다. 여전히 죽은 채로. 나는 그들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판이 있는지 바닥을 살펴본다.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엎드려 무릎걸음으로 기어다닌다. 결국은 찾아낸다. 남성 동료의 침대 바로 아래에, 정사각형 모양의 가느다란 이음새가 있다. 너무 가늘어서 손톱도 안 들어가는 틈.
실험실에는 온갖 도구가 있었다. 이걸 비틀어 열 만한 납작 드라이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니면….
“어이 컴퓨터! 이 판을 열어줘.”
“개방할 입구를 특정하십시오.”
나는 판을 가리킨다. “이거. 이것 말이야. 이걸 열어줘.”
“개방할 입구를 특정하십시오.”
“음… 비품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어줘.”
“비품실을 개방합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찰칵하는 소리가 나더니 판이 2인치쯤 올라온다. 그 과정에서 이음새 주변에 둘러진 고무 개스킷이 찢어진다. 판이 닫혀 있을 때는 모든 게 너무 꽉 다물려 있어서 그 고무가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비틀어 열지 않은 게 다행이다. 너무 너무 너무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
판에서 남은 봉인을 뜯어내자 판이 구멍에서 느슨하게 떨어져 나온다. 나는 판을 좀 흔들어본 뒤에야 흔드는 게 아니라 돌리는 것임을 알게 된다. 90도 돌리자 판이 떨어져 나온다. 나는 판을 옆에 내려놓는다. 아래쪽 공간에 머리를 집어넣자 부드러운 소재의 흰 정육면체들이 한 무더기 보인다. 말 되네. 부드러운 용기에 짐을 싸면 더 많은 걸 집어넣을 수 있다.
통제실의 도면에서 봤듯, 창고는 약 1미터 높이이며 부드러운 용기들로 꽉꽉 차 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만 해도 그런 짐을 한 무더기는 치워야 할 것이다. 굳이 들어가야겠다면 말이지만. 아마 언젠가는 들어가야겠지. 솔직히 말해, 좀 폐소공포증이 생기려 한다. 주택 밑에 파놓은 방공호 같다.
나는 가장 가까운 짐을 가져다가 구멍으로 끌어올린다.
짐은 밸크로로 묶어 놨다. 끈을 풀어 열자 짐은 중국요리 테이크아웃 상자처럼 펼쳐진다. 안에는 제복이 한 무더기 들어 있다.
엄청난데! 사실 우연은 아니지만 말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짐을 싼 사람은 계획을 신중하게 세워 짐을 쌌을 것이다. 승조원들이 깨어나자마자 제복을 찾으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테고, 그래서 제복을 첫 번째 꾸러미에 넣었다. 짐 안에는 최소 열두 벌의 제복이 들어 있다. 각자 진공 비닐 안에 포장돼 있다. 아무거나 하나 풀어본다.
하늘색에, 상하의가 한 벌로 된 작업복이다. 우주인 옷. 소재는 얇지만 편안하게 느껴진다. 왼쪽 어깨에는 헤일메리 로고 패치가 붙어 있다. 통제실에서 봤던 것과 같은 디자인이다. 그 아래에는 중국 국기가 들어가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흰 패치가 붙어 있는데, 파란색 브이(V) 자 계급장이 화환과 ‘CNSA’라는 글자로 감싸인 디자인이다. 나는 즉시 그 로고를 알아본다. 그만큼 ‘덕후’니까. 이건 중국 항공우주국의 로고다.
왼쪽 가슴 주머니 위에 이름표가 달려 있다. ‘姚’. 헤일메리 로고에서 봤던 것과 같은 글자다. 발음은 ‘야오’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당연히 안다. 야오 사령관. 그는 우리의 리더였다. 이제는 그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젊고 눈에 띄는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두 눈은 결의로 가득했다. 그는 이 임무의 심각성이나 자신이 얼마나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임무를 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완고했지만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누구든 그냥 알 수 있었다. 야오라면 이 임무나 승조원들을 위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목숨을 내놓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다른 제복을 꺼낸다. 사령관의 제복보다 훨씬 작다. 임무 로고는 동일하지만 아래쪽에는 러시아 국기가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원으로 둘러싸인, 비스듬한 빨간색 브이 자 계급장이 달려 있다. 러시아 항공우주국 로스코스모스의 상징이다. 이름은 ‘ИЛЮҲИҢА’라고 적혀 있다. 이것 역시 로고에서 봤던 이름이다. 이건 ‘일류키나’의 제복이다.
올레샤 일류키나.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다. 만난 지 30초 만에 상대방을 배꼽이 빠지도록 웃길 수 있는 사람. 그녀는 애쓰지 않고도 주변 사람들을 쾌활하게 만들어주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야오가 진중한 성격이라면 일류키나는 태평한 성격이었다. 둘은 그 점 때문에 때때로 부딪쳤지만 야오조차도 일류키나의 매력에 저항하지는 못했다. 일류키나가 농담을 했을 때, 결국 야오가 항복하고 웃음을 터뜨렸던 게 기억난다. 언제까지나 100퍼센트 진지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일어서서 시신들을 바라본다. 더는 완고한 사령관이 아니고, 더는 쾌활한 친구가 아니다. 한때는 영혼을 담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텅 빈 껍데기 두 개일 뿐이다. 둘은 이것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묻어줘야 마땅한 사람들.
꾸러미에는 승조원 한 명, 한 명을 위한 옷이 여러 벌 들어 있다. 나는 결국 내 옷을 찾아낸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다. 아래쪽에 미국 국기가 박힌 헤일메리 로고와, 오른쪽 어깨에 달린 나사 로고 그리고 ‘GRACE’라고 적힌 이름표.
나는 작업복을 입는다. 창고 구역을 더 뒤져보고 신을 만한 것도 발견한다. 진짜 신발이라고 할 만한 물건은 아니다. 그냥 고무 밑창이 달린 두꺼운 양말 같은 거다. 마찰력이 있는 아기 양말 같은 거랄까. 이 임무에 필요한 건 이게 전부인가 보다. 나는 그것들도 신는다.
그런 다음, 나는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게 옷을 입히는 우울한 작업을 시작한다. 깡마르고 건조한 그들의 시신에 입히니 작업복은 터무니없이 커 보인다. 양말도 신겨준다. 안 될 것도 없잖아? 이건 우리의 제복이다. 우주 여행자에게는 제복을 입고 묻힐 자격이 있다.
일류키나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몸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는다. 통제실까지 사다리를 올라가는 내내 나는 그녀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다. 통제실에 도착한 뒤에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에어로크를 개방한다. 에어로크 안에 들어 있는 우주복은 부피가 크고 거치적거린다. 나는 그 우주복을 한 부분, 한 부분씩 통제실로 옮겨 조종석에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일류키나를 에어로크에 집어넣는다.
에어로크 제어판은 작동법이 뻔하다. 에어로크 내부의 기압은 물론 바깥쪽 문까지도 통제실 내의 제어판으로 통제할 수 있다. ‘버리기’ 버튼까지 있다. 나는 문을 닫고 버리기 과정을 시작한다.
과정은 경보음으로 시작된다. 에어로크 안에서 불빛이 깜빡거리며 카운트다운을 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어로크 안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비상 정지 버튼이 깜빡이고 있다. 버리기 과정이 진행 중일 때 에어로크에 갇힌 사람은 누구든 쉽게 그 과정을 취소할 수 있다.
일단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에어로크는 정상 기압의 10퍼센트 수준으로 감압된다(표시된 숫자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 다음, 에어로크가 바깥쪽 문을 개방한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일류키나가 사라진다. 우주선이 계속 가속하는 가운데 시신은 그냥 멀어져 간다.
“올레샤 일류키나.” 나는 그렇게 말한다. 그녀의 종교도, 아니 그녀에게 종교가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기를 바랐을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그녀의 이름만큼은 기억난다. “당신의 몸을 별들에게 맡깁니다.” 적당한 말인 것 같다. 진부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다음으로 나는 야오 사령관을 에어로크로 운반한다. 그를 안에 넣고 에어로크를 밀봉한 다음, 같은 방식으로 그의 유해도 떠나보낸다.
“야오 리지에,” 나는 그렇게 말한다. 그의 이름이 어째서 온전히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순간 떠올랐다. “당신의 몸을 별들에게 맡깁니다.”
에어로크가 휙 돌고, 나는 혼자가 된다. 그동안도 내내 혼자였지만, 이제는 정말로 혼자다. 나는 최소 몇 광년 내에 살아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이제 뭘 하지?
“그레이스 선생님이 다시 오셨어!” 테리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 과학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맙다, 테리사.” 내가 말했다.
마이클이 끼어들었다. “임시 선생님은 너어어어어어무 지겨웠어요.”
“뭐, 난 안 지겨운 선생님이니까.” 내가 말했다. 나는 구석에서 플라스틱 통 네 개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암석을 살펴볼 거야! 음 그래, 이건 약간 지루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네 명씩 조를 짓고 각 조마다 통을 하나씩 받아 가거라. 안에 들어 있는 암석을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으로 구분해야 해. 가장 먼저 과제를 마치고 모든 암석을 제대로 분류한 팀한테 콩 주머니를 줄게.”
“조원은 알아서 고르면 돼요?” 트랭이 흥분해서 물었다.
“아니. 그럼 아침 드라마를 찍게 될걸. 아이들이란 짐승 같은 존재니까. 무시무시한 짐승들이지.”
모두가 웃었다.
“조는 이름 알파벳 순서로 짜거라. 그러니까 첫 번째 팀은….”
애비가 손을 들었다. “그레이스 선생님,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그럼.”
“태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반 아이들이 갑자기 더 집중했다.
“우리 아빠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던데.” 마이클이 말했다.
“우리 아빠는 정부의 음모래.” 터모라가 말했다.
“그래….” 나는 통을 내려놓고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러니까 … 기본적으로, 너희들도 바다에 바닷말이 있다는 건 알지? 그러니까, 일종의 우주 바닷말이 태양에서 자라고 있는 거야.”
“아스트로파지요?” 해리슨이 말했다.
나는 하마터면 책상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무슨… 어디서 그 단어를 들었니?”
“이젠 그렇게 부르던데요.” 해리슨이 말했다. “대통령이 어젯밤 연설에서 그렇게 불렀어요.”
나는 실험실에 고립되어 있었기에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는 바로 어제 스트라트를 위해 그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그 단어가 스트라트에게서 대통령에게로, 다시 언론으로까지 퍼져나가다니. 우와.
“음, 그래. 아스트로파지. 그게 태양에서 자라고 있어. 아니면 태양 근처에서든지. 확실히는 모른단다.”
“그럼 뭐가 문제예요?” 마이클이 물었다. “바닷말은 우리한테 아무 피해를 주지 않잖아요. 태양에 사는 바닷말은 왜 문제가 되는데요?”
나는 마이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좋은 질문이야. 문제는, 아스트로파지가 태양에너지를 엄청나게 많이 흡수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음, 많다고는 할 수 없겠다. 퍼센트로 따지면 아주 작은 양이거든. 하지만 그 말은 지구가 태양의 빛을 조금씩 덜 받게 된다는 뜻이야. 그러면 심각한 문제들이 벌어질 수 있어.”
“좀 추워진다는 거 아니에요? 1도나 2도쯤요.” 애비가 물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에요?”
“너희들도 기후변화에 대해서 알지?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환경에 어떤 식으로 엄청난 문제들을 일으켰는지 말이야.”
“우리 아빠는 지구온난화가 사기래요.” 터모라가 말했다.
“음, 사기 아니야.” 내가 말했다. “아무튼. 우리가 지금 기후변화로 겪고 있는 모든 환경문제들 있지? 그런 문제가 벌어진 이유는 세계의 평균기온이 1.5도 올랐기 때문에 벌어진 거란다. 그게 전부야. 딱 1.5도.”
“그 아스트로파지라는 건 지구 기온을 얼마나 바꾸게 되는데요?” 루서가 물었다.
나는 일어서서 아이들 앞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모르지. 하지만 기후학자들 말로는 아스트로파지가 바닷말처럼, 거의 비슷한 속도로 증식한다면 지구의 기온이 10도에서 15도 떨어질 거래.”
“그럼 어떻게 돼요?” 루서가 물었다.
“심각할 거다. 아주 심각할 거야. 수많은 동물들이, 동물의 종 전체가 죽어서 없어질 거야. 서식지가 너무 추워지니까 바닷물도 식어버리겠지. 그러면 먹이사슬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낮은 기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녀석들도 먹이가 모두 죽어 없어지기 때문에 굶어 죽게 될 거야.”
아이들은 기가 질려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이 녀석들의 부모는 이런 설명을 해주지 않은 걸까? 아마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하긴,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가르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부모를 때리고 싶어질 때마다 동전을 한 푼씩 모았다면… 글쎄… 양말 한 짝을 그 동전으로 꽉 채워서 학부모들을 후려칠 수 있었을 것이다.
“동물들도 죽는다고요?” 애비가 끔찍하다는 듯 물었다.
애비는 말을 잘 탔고, 할아버지의 목장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은 아이들에게 추상적인 개념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물들의 고통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 안됐지만 가축들도 엄청나게 많이 죽을 거야. 더 나쁜 일도 일어나겠지. 땅에는 흉년이 들 거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희귀해질 거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보통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나는 그쯤에서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이 녀석들은 그냥 어린애들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나?
“얼마나 ….” 애비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애비가 할 말을 잃은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얼마나 있다가 일어나는 일이에요?”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 내가 말했다.
바로 그렇게, 모든 아이들이 안심했다.
“30년이요?” 트랭이 웃었다. “엄청 나중이네!”
“그렇게까지 먼 미래는 아닌데….” 내가 말했다. 하지만 열두 살, 열세 살짜리 아이들에게는 30년이 100만 년이나 마찬가지였다.
“암석 구분하기 할 때 트레이시랑 같은 조 해도 돼요?” 마이클이 물었다.
30년. 나는 아이들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30년 뒤면 이 아이들 모두가 40대 초반이 된다. 이 아이들이 그 모든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아이들은 목가적인 세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계 멸망이라는 악몽 속에 내던져진다.
이 아이들은 제6차 대멸종을 겪게 될 세대였다.
나는 배 속이 꽉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로, 행복한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은 문자 그대로 굶어 죽을 가능성이 컸다.
“선생님은….” 내가 말을 더듬었다. “선생님은 가서 뭘 좀 해봐야겠다. 암석 과제는 잊어버리려무나.”
“뭐라고요?” 루서가 물었다.
“너희들은…. 자습을 해. 나머지 시간은 자습 시간이야. 그냥 다른 수업 숙제를 하렴. 자리에 앉아서, 종이 울릴 때가지 조용히 공부하는 거야.”
나는 다른 말없이 교실을 나섰다. 하마터면 몸이 떨려 복도에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근처 음수대로 가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그런 다음 심호흡을 하고, 어느 정도 자제력을 되찾은 다음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서둘러 운전했다. 지나칠 만큼 빠르게. 빨간불도 그냥 지나갔다. 사람들을 칠 뻔했다. 나는 원래 그런 일을 절대로 하지 않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그날은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끼익 소리를 내며 실험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이상한 각도로 차를 대놨다.
미군 두 명이 빌딩 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던 지난 이틀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쿵쾅거리며 그들을 지나쳤다.
“막아야 되나?” 한 병사가 다른 병사에게 물었다. 나는 답이 뭐든 관심 없었다.
나는 발을 구르며 관찰실로 들어갔다. 역시나 스트라트는 그곳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나는 그녀의 얼굴에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레이스 박사님? 여기서 뭐하세요?”
그녀의 등 뒤, 창 너머로는 방호복을 입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 네 명이 보였다.
“저 사람들은 누굽니까?” 나는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실험실에서 뭐하는 거예요?”
“박사님 말투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뭐 어쩌라고요.”
“…게다가 저긴 박사님 실험실이 아닙니다. 제 실험실이죠. 저 기술자들은 아스트로파지를 수거하는 중입니다.”
“수거해서 어쩌려고요?”
스트라트는 팔에 태블릿을 꼈다. “박사님 꿈이 실현될 예정이거든요. 저는 아스트로파지를 나눠서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실험실 서른 곳에 보낼 생각입니다. 세른(CERN, 순수과학을 연구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1954년에 공동 설립한 가속기 연구소로,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 연구소 중 하나‐옮긴이)부터 CIA 생화학 무기 실험실까지 전부 말이죠.”
“CIA에 생화학 무기 실험실이 있어요…?”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이 작업을 좀 더 진행하고 싶습니다.”
스트라트가 고개를 저었다. “박사님 몫은 충분히 하셨어요. 우린 아스트로파지가 무수(無水) 생명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니었고요. 박사님이 그 점을 증명하셨죠. 그리고 외계인이 박사님 가슴을 찢고 나오지도 않았으니, 기니피그 단계도 끝났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박사님은 할 일 다 하신 거예요.”
“아뇨, 다 못했습니다. 알아내야 할 게 훨씬 더 많아요.”
“당연히 그렇죠.”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걸 알아내는 작업을 시작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실험실이 서른 군데 있고요.”
내가 앞으로 나섰다. “아스트로파지를 일부라도 여기 남겨 주세요. 조금 더 연구하게 해주십시오.”
스트라트도 앞으로 나섰다. “안 됩니다.”
“왜요?”
“박사님 메모에 따르면, 샘플에는 살아 있는 아스트로파지 세포가 총 174개 있었습니다. 박사님이 어제 그중 하나를 죽였으니까 그 수가 173개로 줄었고요.”
스트라트는 태블릿을 가리켰다. “이 실험실들은 전부 국가 단위의 거대한 실험실입니다만 각자 대여섯 개의 세포를 받을 겁니다. 그게 다예요. 그 정도로 아스트로파지가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그 173개의 세포들이야말로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에요. 우리가 그 세포들을 분석한 결과가 인류의 생존을 결정하게 됩니다.”
스트라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박사님은 생명체에 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느라 평생을 보내셨죠.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실제의 외계 생명체를 얻었는데 알고 보니 그 생명체에게도 물이 필요한 겁니다.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죠. 미련은 버리고 박사님 인생을 사세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지금도 제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이론적 모형을 만드는 데에 경력을 다 바친 미생물학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의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는 기술을 가진, 쓸모 있는 자원이에요.”
“그레이스 박사님, 박사님의 상처 입은 자아를 어루만져 주겠다고 샘플을 여기 남겨둘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상처 입은 자아요? 이건 제 자아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 아이들 문제라고요!”
“아이 없으시잖아요.”
“아니, 있어요! 수십 명이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제 수업을 들으러 와요.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 아이들 모두가 매드맥스식의 악몽 같은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네, 물 얘기는 제가 틀렸어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제 관심사는 아이들이에요. 그러니까 그 못된 아스트로파지 녀석들 좀 주시겠어요!”
스트라트는 한 걸음 물러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내 말을 곱씹으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다음 다시 나를 보았다. “셋이요. 아스트로파지 세 개를 받으세요.”
나는 힘을 풀었다. “알았어요.” 나는 조금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그때야 알았다. “좋아요. 세 개. 그거면 돼요.”
스트라트는 태블릿에 뭔가를 입력했다. “이 실험실은 열어두겠습니다. 박사님이 마음대로 쓰세요. 몇 시간 후에 돌아오시면 제가 불러온 사람들은 떠나고 없을 겁니다.”
나는 이미 방호복을 반쯤 입고 있었다. “지금 당장 작업을 다시 시작할 겁니다. 저 사람들한테 방해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스트라트는 나를 노려봤지만,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 애들이 내 자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다.
나는 눈앞에 배치된 화면들을 바라본다.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내 기억은 드문드문하다. 충분히 믿음직스러운 것 같지만 불완전하다. 모든 것을 갑자기 기억하게 될 순간을 기다리는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지구가 곤경에 빠져 있다. 태양이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됐다. 나는 우주선을 타고 다른 태양계에 와 있다. 이 우주선을 만드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고, 우주선의 승조원들은 국제적으로 모집된 사람들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항성계를 넘나드는 임무다. 우리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일. 좋다, 그러니까 인류는 이 임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아스트로파지가 바로 이 임무를 가능하게 한 빠진 고리였다.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이곳에 아스트로파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 아니면 잠재적인 해결책이라도. 엄청난 자원을 투자할 만큼 전망이 밝은 뭔가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더 많은 정보를 찾아 화면들을 뒤진다. 대부분의 화면은 우주선에서 볼 법한 것들이다. 생명 유지 장치, 항법 장치, 뭐 그런 것들. 어떤 화면에는 ‘딱정벌레’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다음 화면에는….
잠깐, 딱정벌레라고?
그래, 이게 무엇과 어떻게 관련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우주선에 딱정벌레가 있다면 알아봐야겠다. 그런 것이야말로 알아봐야 할 문제다.
화면은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각 화면은 거의 동일한 장면을 보여준다. 작은 도면과 글자 뭉텅이로 이루어진 정보다. 도면은 각기 머리 부분이 뾰족하고 뒷부분은 사다리꼴로 이루어진, 둥글납작한 타원형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고개를 딱 맞는 각도로 기울이고 눈을 가늘게 뜨면 딱정벌레처럼 보일 것도 같다. 각 딱정벌레의 위에는 이름도 붙어 있다. ‘존’, ‘폴’, ‘조지’, ‘링고’.
아하, 그렇군. 웃기지는 않지만, 뭔지는 알겠다(존, 폴, 조지, 링고는 그룹 비틀스의 멤버 이름이다. 딱정벌레라는 뜻의 beetle과 발음이 같은 것을 활용한 말장난이다‐옮긴이).
나는 임의로 ‘존’이라는 딱정벌레를 골라 자세히 살펴본다.
존은 곤충이 아니다. 우주선이 틀림없다. 사다리꼴 뒷부분에 ‘스핀 드라이브’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전체적으로 동글납작한 부분에는 ‘연료’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작은 머리에는 ‘컴퓨터’와 ‘무전기’가 들어 있다.
더 자세히 살펴본다. ‘연료’의 정보 창에는 ‘아스트로파지: 120kg, 온도: 96.415℃’라고 적혀 있다. 컴퓨터 창에 쓰인 말은 ‘마지막 메모리 확인: 3일 전. 5TB 정상 작동 중’이다. 무전 정보에는 그냥 ‘상태: 100%’라고만 적혀 있다.
존은 무인 탐사선이다. 아마 규모가 작을 것이다. 연료의 전체 질량이 120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다. 엄청난 양은 아니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는 소량만 있어도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다. 따로 이름이 붙은 과학적인 기구는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싣지 않은 무인 우주선이라니, 대체 무슨 소용일까?
잠깐… 이 탐사선이 존재하는 의미가 5테라바이트의 저장 공간이 라면?
문득 어떤 깨달음이 든다.
“이런, 너무한걸.” 내가 말한다.
나는 우주에 나와 있다. 다른 항성계에 들어와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아스트로파지가 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엄청난 양일 것이다. 다른 별로 우주선을 보내는 데에는 아마 터무니없는 양의 연료가 필요했을 테니까. 그 우주선을 다른 별로 보냈다가 다시 데려오는 데에는 그 열 배는 되는 연료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아스트로파지’ 창을 확인한다.
잔량: 20,862kg
소비 속도: 6.043g/s
소비 속도가 전에는 초당 6.045그램이었다. 그러니까 약간 줄어든 셈이다. 그리고 연료의 양도 줄어들었다. 기본적으로, 연료가 소비될 수록 우주선 전체의 질량도 낮아지므로 지속적인 가속력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초당 연료의 양은 적어지게 된다. 좋다, 전부 말이 된다.
헤일메리호의 질량이 얼마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초당 몇 그램의 연료를 사용해 1.5g의 중력가속도로 이 우주선을 밀고 간다니…. 아스트로파지는 놀라운 물질이다.
아무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 속도가 어떻게 변할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내 말은, 계산이야 할 수 있겠지만 복잡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대략 초당 6그램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연료는 얼마나 오래 갈까?
작업복을 입고 있으니 좋다. 온갖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들이 달려 있으니까. 아직 계산기를 찾지 못했으므로 펜과 종이를 가지고 계산을 한다. 전체를 더해보니, 약 40일 안에 연료가 바닥나게 된다.
저게 무슨 별인지는 모르지만, 태양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별에서든 1.5g의 중력가속도로 겨우 40일 안에 지구에 도착할 방법은 전혀 없다. 아마 지구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을 것이다. 내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재미있네.
아무튼 이 모든 것의 의미는 한 가지뿐이다. 헤일메리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왕복이 아니라 편도다. 이 딱정벌레들은 내가 지구로 정보를 보낼 방법일 것이다.
나한테 몇 광년이나 떨어진 곳으로 송출할 만큼 강력한 무전 송신기가 있을 리는 없다. 그런 무전 송신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대신 내게 각각 5테라바이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작은 ‘딱정벌레’ 우주선 네 대가 주어진 것이다. 이 녀석들이 지구로 돌아가 데이터를 송출할 것이다. 네 대가 있는 이유는 여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아마 나는 내가 알아낸 내용의 사본을 각각의 탐사선에 싣고 탐사선 네 대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탐사선이 최소 한 대라도 살아남는다면 지구는 구원받는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 존, 폴, 조지, 링고는 집에 돌아가지만, 길고도 험난한 나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혼자서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