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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스트로파지를 노려보았다. “대체 금성에는 왜 가는 거니?”

현미경으로 본 모습이 벽에 걸린 커다란 모니터에 나왔다. 이만큼 확대해 놓고 보면, 작은 세포 세 개는 각기 1피트씩 거리를 두고 있다. 나는 이 세포들이 가진 동기를 알려줄 만한 실마리를 찾아본다. 하지만 래리, 컬리, 모(미국의 코미디 영화 《바보 삼총사》의 세 주인공-옮긴이)는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아, 물론 그건 내가 붙인 이름이다. 선생님 직업병이랄까.

“금성이 뭐가 그렇게 특별해서? 애초에 어떻게 금성을 찾아낸 거야?” 나는 팔짱을 꼈다. 아스트로파지가 보디랭귀지를 읽을 줄 안다면 내가 지금 장난할 기분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우리는 금성에 가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나사에서 일하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을 방 한 가득 불러 모아야 했어. 그런데 너희는 뇌도 없는 단세포생물인데 그 일을 해낸단 말이지.”

스트라트가 나를 실험실에 혼자 남겨 놓고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군인들은 여전히 문을 지키고 있었다. 한 명은 이름이 스티브였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다른 한 명은 내게 절대로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기름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그날 아침에는 샤워를 그냥 건너뛰었다). 그래도 방호복은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된다. 나이로비의 과학자들이 자기네 아스트로파지를 지구의 대기에 노출시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모험을 해봤는데, 아스트로파지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들 덕분에 전 세계의 실험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더는 아르곤으로 가득 찬 실험실에서 연구하지 않았다.

나는 책상에 쌓인 논문 더미를 힐끗 보았다. 과학 공동체는 몹시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과로하기 시작한 터였다. 신중한 동료 심사와 논문 출간의 시대는 흘러가 버렸다. 아스트로파지 연구는 완전히 무질서하게 진행됐다. 연구자들은 발견한 내용을 즉시, 아무 증거도 없이 발표했다. 이런 행위는 오해와 실수로 이어졌지만, 우리에게는 일을 제대로 처리할 시간이 없었다.

스트라트는 내게 계속 소식을 알려주었다. 전부 알려준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스트라트가 또 무슨 해괴한 일을 벌이는지 누가 알겠는가? 천지사방에 온갖 권한을 가지고 있을 텐데.

벨기에의 한 연구팀은 아스트로파지가 자기장에 반응을 보이되, 늘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 냈다. 어떨 때 아스트로파지는 자기장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그냥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벨기에 과학자들은 아스트로파지를 자기장에 집어넣은 다음 자기장의 방향을 변화시킴으로써 (아주 비일관적이게) 아스트로파지의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이게 유용한 정보였을까? 알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세계는 그냥 데이터를 수집할 뿐이었다.

파라과이의 한 연구자는 아스트로파지 근처 몇 센티미터 이내에 접근하면 개미들이 방향을 잃는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건 유용한 정보였을까? 그래, 이건 아마 유용한 정보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기는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퍼스(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옮긴이)의 과학자 집단이 아스트로파지 세포 한 개를 희생하여 그 내부의 세포 기관 전부를 자세히 분석한 것이었다. 그들은 DNA와 미토콘드리아를 발견했다. 상황이 달랐다면 이들의 발견이 이번 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 되었을 것이다. 외계의, 부정할 수 없는 외계의 생명체가 DNA와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다니!

그리고… 흥, 칫… 물도 좀 있고….

문제는 아스트로파지의 내부가 지구에서 발견되는 단세포생물의 내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스트로파지는 ATP(아데노신에 인산기가 3개 달린 에너지 덩어리의 유기화합물로,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대사에 필요한 물질-옮긴이), RNA 전사 등 지극히 익숙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연구자들은 아스트로파지의 기원이 지구라고 생각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분자의 이런 특수한 조합만이 생명체가 발생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아스트로파지는 독립적으로 진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지만 목소리가 큰 한 분파는 생명체는 애초에 지구에서 진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며, 아스트로파지와 지구의 생명체에는 공동의 조상이 있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저기 말이지.” 나는 아스트로파지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사는 행성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지만 않았으면 너희들은 꽤 멋진 녀석들이었을 거야. 수수께끼 속에 또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으니까.”

나는 탁자에 기댔다.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이거지? 좋아. 그 말은 너희들이 우리와 똑같이 ATP를 에너지 저장고로 쓴다는 뜻이야. 하지만 너희들이 돌아다닐 때 사용하는 빛에는 너희 ATP가 간직할 수 있는 것보다 훠어얼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그러니까 너희들은 다른 에너지 저장 수단을 가지고 있을 거야. 우리가 모르는 수단.”

화면의 아스트로파지 하나가 왼쪽으로 약간 움직였다. 꽤 흔한 일이었다. 이따금 녀석들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그냥 움찔거렸다.

“뭐 때문에 움직이는 거야? 왜 움직여?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꿈틀거리면서 태양에서 금성까지는 또 어떻게 가는 거고? 애초에 금성에는 왜 가는 거야?”

수많은 사람들이 아스트로파지의 내부를 연구하고 있었다. 아스트로파지를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녀석들의 DNA를 분석하고. 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스트로파지의 기본적인 생애 주기를 알고 싶었다. 그게 내 목표였다.

단세포생물이 아무 의미 없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우주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일은 없다. 금성에는 아스트로파지에게 필요한 뭔가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스트로파지는 태양에 그냥 머물렀을 것이다. 태양에도 아스트로파지에게 필요한 게 있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아스트로파지는 금성에 머물렀을 테니까.

태양에 관한 부분은 꽤 쉬웠다. 아스트로파지가 태양에 머무는 이유는 에너지 때문이었다. 식물에서 잎이 나는 것과 같은 이유. 생명체가 되려면 그 달디단 에너지를 얻어야만 한다. 완벽하게 말이 되는 일이다. 그럼 금성은?

나는 생각에 잠긴 채 펜을 만지작거렸다.

“인도 우주연구기구에 따르면, 너희들은 광속의 0.92배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 나는 아스트로파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줄은 몰랐지? 너희 속도를 계산하다니. 인도 우주연구기구에서는 너희들이 방출하는 빛에 대해 도플러 효과를 분석하고 활용했어. 덕분에 그쪽에서는 너희들이 양쪽 방향으로 다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됐지. 금성으로 가기도 하고, 금성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는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런 속도로 대기에 부딪히면 너희는 죽는 게 당연해. 그런데 왜 안 죽는 거야?”

나는 손마디로 이마를 두드렸다. “그야 너희들이 아무리 많은 열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지. 맞아. 그러니까 너희들은 대기를 맹렬히 뚫고 들어가면서도 더 뜨거워지지는 않는 거야. 그래, 하지만 최소한 속도는 늦춰야겠지. 그래서 그냥 금성 대기의 상부에만 머물러. 그런 다음에는… 그런 다음에는? 뒤로 돌아서 태양으로 돌아가? 왜?”

나는 생각에 잠긴 채 10분을 꽉 채워서 화면을 응시했다.

“그래, 이 문제는 이제 됐어. 너희들이 금성을 어떻게 찾는지 알고 싶다.”

나는 동네 철물점에 가서 가로세로 2×4인치, 두께 4분의 3인치짜리 합판과 전동 공구 등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군인 스티브가 그중 엄청나게 많은 도구들을 옮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얼간이 군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뒤 나는 여섯 시간 넘게 선반이 들어 있는, 빛이 통하지 않는 함을 만들었다. 내가 들어가고 나갈 수 있을 만큼의 크기였다. 나는 선반에 현미경을 설치했다. ‘문’은 나사를 돌려 제거할 수 있는 합판이었다.

나는 작은 구멍을 통해 전선과 영상 장비의 선들을 함 안에 집어넣고, 그 구멍을 퍼티로 막아 그쪽으로도 빛이 들어가지 않게 조치했다. 그리고 적외선카메라를 현미경에 설치한 다음 함을 밀봉했다.

함 바깥의 실험실에서는 모니터가 카메라에 비친 적외선을 보여주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주파수 변환 화면이었다. 적외선의 아주 낮은 대역은 빨간색으로 표시되었다. 에너지 대역이 높아질수록 색깔은 주황색, 노란색 등 무지개색으로 단계적으로 바뀌었다. 아스트로파지는 작고 빨간 점으로 보였다. 예상대로였다. 96.415도라는 온도를 유지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약 7.8미크론 파장의 적외선을 방출할 테니까. 그건 내가 카메라에 감지되는 하한선으로 설정해 둔 온도이기도 했다. 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게 확인됐다.

하지만 나는 그 짙은 빨간색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밝은 노란색 반짝임을 보고 싶었다. 아스트로파지가 움직일 때 내뱉는 페트로바 진동수가 바로 그것일 테니까. 내 아스트로파지가 한 마리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나는 아주 분명한 노란색 반짝임을 보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런 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보통은 몇 초에 한 번씩, 최소 한 개의 아스트로파지가 움찔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관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다. “너희 말썽꾸러기들이 이제 자리를 잡았다 이거지?”

빛. 아스트로파지가 무슨 항법 장치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스템은 빛에 의해 작동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서 달리 뭘 활용하겠는가? 우주에는 소리가 없다. 냄새도 없다. 아스트로파지는 빛이나 중력이나 전자기를 활용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셋 중 가장 감지하기 쉬운 것이 빛이었다. 최소한 진화적인 측면에서는 그랬다.

다음 실험을 위해 나는 작은 흰색 LED와 시계 배터리를 테이프로 연결했다. 물론, 처음에는 배선을 거꾸로 하는 바람에 LED가 켜지지 않았다. 이건 전자공학의 규칙과도 같은 것이다. 처음 시도에는 절대로 다이오드를 제대로 꼽을 수가 없다. 아무튼 나는 전선을 다시 제대로 연결했고 LED가 켜졌다. 나는 이 장치 전체를 함 내부의 벽에 테이프로 붙였다. 이때, 샘플 슬라이드의 아스트로파지가 이 빛이 향하는 방향에 놓이도록 주의했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을 다시 밀봉했다.

아스트로파지의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가득 찬 검은 허공에 빛나는 흰 점이 하나 있는 셈이었다. 우주에 나가 태양의 반대편을 똑바로 보면 금성이 그렇게 보일지도 몰랐다.

아스트로파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흠.” 내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 통할 것 같은 방법은 아니었다. 태양에 서서, 눈에 띄는 가장 밝은 빛점을 찾아 태양 반대편으로 눈을 돌린다면 금성이 아니라 수성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수성은 금성보다 크기가 작지만, 거리가 훨씬 가까우므로 더 많은 빛이 보이게 된다.

“왜 금성이지?”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때 더 나은 질문이 떠올랐다. “너희들, 그게 금성인지 어떻게 확인하는 거야?”

왜 아스트로파지는 임의적으로 움직일까? 내 가설은 아스트로파지가 순전히 확률에 따라 몇 초에 한 번씩 금성을 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스트로파지는 그쪽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지나면 아스트로파지는 추진을 멈춘다.

열쇠는 빛의 진동수가 틀림없었다. 이 녀석들은 어둠 속에서는 전혀 움찔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빛의 양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LED를 향해 움직였을 테니까. 아스트로파지의 움직임은 빛의 주파수와 관계있는 게 틀림없었다.

행성은 단순히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다. 빛을 방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빛을 낸다. 물체의 온도가 방출되는 빛의 파장을 결정한다. 행성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까 아스트로파지는 금성 특유의 적외선을 찾은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금성은 수성만큼 밝지는 않아도 아스트로파지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색깔’이 달랐을 테니까.

구글 검색을 좀 해보니 금성의 평균 온도가 462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게는 현미경의 교체용 전구 등 실험 장비로 가득 찬 서랍이 하나 통째로 있었다. 나는 그 전구 중 하나를 가져와 다양한 동력원에 연결했다. 백열전구는 가시광선이 방출될 만큼 뜨겁게 필라멘트를 달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온도는 2,500도다. 그렇게까지 극적인 건 필요 없었다. 내게는 그저 462도라는 쥐꼬리만 한 온도만 있으면 됐다. 나는 적외선카메라로 지켜보며 전구를 통과하는 전력을 위아래로 조정하다가 내가 원하는 정확한 진동수를 얻었다.

나는 이 장치 전체를 실험용 함 안에 집어넣고, 우리 아스트로파지 친구들이 떠 있는 모니터를 보며 인공 금성에 불을 켰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 망할 녀석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한테 뭘 어쩌라는 거니!” 내가 물었다.

나는 고글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탁자를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천문학자인데 누가 나한테 작은 빛점을 보여준다면, 그게 금성이라는 걸 어떻게 알까?”

나는 스스로 대답했다. “저 특징적인 적외선을 찾겠지! 하지만 아스트로파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단 말이야. 좋아, 누가 나한테 작은 빛점을 보여주면서 그 천체의 온도를 알아내되 거기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치자. 그게 금성인지 아는 다른 방법은?”

스펙트럼의 활용. 이산화탄소를 찾아본다.

이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빛이 기체 분자에 부딪히면 전자들은 대단히 흥분한다. 그런 다음 침착해지며 흥분했을 때의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한다. 그러나 전자가 방출하는 광자의 진동수는 각각의 분자마다 매우 특수하다. 천문학자들은 저 먼 곳에 어떤 기체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수십 년 동안이나 이 방법을 써 왔다. 분광학이라는 게 다 그 얘기다.

금성의 기압은 지구의 90배에 달하며, 그 공기는 거의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금성이 보여주는 이산화탄소의 분광 신호는 압도적으로 강할 것이다. 수성에는 이산화탄소가 전혀 없으므로 금성과 가장 가까운 경쟁자는 지구가 된다. 하지만 금성과 비교하면 우리의 이산화탄소 신호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어쩌면 아스트로파지가 발광스펙트럼을 활용해 금성을 찾는 게 아닐까?

새로운 실험 계획!

실험실에는 무한히 많은 광 필터가 있는 것 같았다. 진동수를 고르기만 하면 그 진동수의 빛을 걸러낼 필터가 있었다. 나는 이산화탄소의 분광 신호를 찾아보았다. 첨두 파장이 4.26미크론과 18.31미크론이었다.

나는 적당한 필터를 찾아, 그것들을 끼울 만한 작은 상자를 만들었다. 상자 안에는 작은 흰색 전구를 넣었다. 이제 내게는 이산화탄소의 분광 신호를 발산할 상자가 있었다.

나는 그 상자를 실험용 함에 넣고 밖으로 나가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래리, 컬리, 모는 하루 종일 그랬듯 슬라이드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빛 상자에 불을 켜고 반응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아스트로파지가 사라졌다. 그냥 빛 쪽으로 구불구불 나아간 것이 아니다. 사라졌다. 완전히.

“어….”

물론, 나는 카메라에 찍힌 내용을 녹화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돌려보았다. 아스트로파지는 두 프레임 사이에 그냥 사라져버렸다.

“어어!”

좋은 소식. 아스트로파지는 이산화탄소의 분광 신호에 이끌린다!

나쁜 소식. 대체할 수도 없는, 폭 10미크론짜리 아스트로파지 세 개가 어디론가 튀어가 버렸다. 아마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그리고 나는 그 녀석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어어어어무 하잖아.”



자정. 사방이 어두웠다. 군인들은 내가 모르는 두 사람과 교대했다. 스티브가 그리웠다.

나는 실험실 거의 모든 창문을 알루미늄 포일과 절연 테이프로 막아놓았다. 입구와 출구 근처의 균열은 전기식 테이프로 밀봉했다. 표시 장치가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LED가 달려 있는 모든 장비는 껐다. 바늘에 야광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기에 내 손목시계도 서랍에 넣었다.

나는 두 눈이 완전한 어둠에 적응하도록 놔두었다. 내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뭔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나는 빛이 새는 곳을 찾아서 테이프로 막아버렸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어둠에 이르렀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아무 차이가 없었다.

다음 단계는 내가 새로 만든 적외선 고글이었다.

실험실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있었지만, 그중에 적외선 고글은 없었다. 군인 스티브에게 하나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스트라트에게 전화를 거는 방법도 있었다. 그랬다면 스트라트는 페루 대통령이 직접 그 고글을 배달하게 해주든지 뭐 그런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더 빨랐다.

나의 ‘고글’이란 그저 테이프를 둘둘 감은, 내 적외선카메라의 LCD 출력 화면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화면을 얼굴에 바짝 대고 테이프를 더 감았다. 감고, 또 감았다. 분명 내 꼴은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뭐 어때.

나는 카메라를 켜고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열 신호가 충분히 있었다. 벽은 그날 이른 시각에 받은 햇볕으로 아직까지 따뜻했고, 전기가 흐르는 모든 것에서는 빛이 났으며, 내 몸은 등대처럼 반짝였다. 나는 훨씬 더 뜨거운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진동수 범위를 조정했다. 구체적으로는 90도가 넘는 것들만 볼 수 있도록.

나는 임시로 만든 현미경 함에 기어 들어가, 이산화탄소 분광 방출에 활용했던 빛 상자를 바라보았다.

아스트로파지는 폭이 겨우 10미크론이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그렇게 작은 걸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물론, 육안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의 작은 외계인들은 매우 뜨거웠고 그 열기를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움직이고 있지만 않으면 지난 여섯 시간 정도를 주변 온도를 높이며 보냈을 것이다. 그게 내 희망이었다.

그 희망은 점점 커졌다. 나는 플라스틱 빛 필터 중 하나에서 즉시 둥근 빛을 발견했다.

“세상에, 감사합니다.” 나는 숨을 훅 들이쉬었다.

아주 희미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그 점은 직경이 3밀리미터쯤 됐으며,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희미하고 차가워졌다. 이 조그만 녀석들이 몇 시간 동안이나 플라스틱을 데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두 개의 플라스틱 정사각형을 앞뒤로 훑어보고, 금세 두 번째 점을 찾아냈다.

내 실험은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스트로파지는 금성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보고 곧장 그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빛 필터에 도달하자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다. 아마 내가 빛을 끌 때까지 계속 그 필터를 밀어댔을 것이다.

아무튼, 세 개의 아스트로파지가 모두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면 나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현미경과 피펫을 활용해 녀석들을 찾아 거둬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있었다. 세 번째 아스트로파지.

“친구들이 다 모였네!” 내가 말했다. 나는 샘플 봉투를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빛 상자에서 필터를 아주 조심스럽게 떼어낼 준비를 마쳤다. 바로 그때, 나는 네 번째 아스트로파지를 보았다.

그냥… 무심히 그 자리에 있는 네 번째 세포. 그 세포는 처음 세 녀석과 마찬가지로 필터 위에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세상에나 ….”

나는 이 녀석들을 일주일 동안 지켜봐 왔다. 내가 한 마리를 놓쳤을 리는 없었다. 가능한 설명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스트로파지 하나가 분열한 것이다. 내가 우연히도 아스트로파지를 번식시켰다.

나는 1분 내내 그 네 번째 빛점을 바라보며, 방금 일어난 일의 엄청난 규모를 실감했다. 아스트로파지를 번식시킨다는 건 우리에게 연구 재료가 무한히 공급된다는 뜻이었다. 아스트로파지를 죽이고 찌르고 분리하고, 뭐든 원하는 대로 해도 됐다. 이건 게임 체인저였다.

“안녕, 솀프(《바보 삼총사》에서 모의 동생으로 나중에 합류한 인물‐옮긴이)?” 내가 말했다.



다음 이틀 동안 나는 아스트로파지의 이 새로운 행동을 강박적으로 연구했다. 집에도 가지 않았다. 그냥 실험실에서 잤다.

군인 스티브가 내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훌륭한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발견한 내용을 과학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과 공유했어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동료 심사라는 관행은 무너졌지만 최소한 자기 심사는 할 수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가장 먼저 신경에 거슬린 것은 이산화탄소의 첨두 파장이 4.26미크론과 18.31미크론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아스트로파지는 직경이 겨우 10미크론이므로, 그보다 큰 파장을 가진 빛과는 사실상 상호작용할 수 없었다. 애초에 아스트로파지가 18.31미크론짜리 대역을 어떻게 본다는 말인가?

나는 일전의 분광 실험을 18.31미크론 필터만 가지고 다시 해보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었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먼저, 아스트로파지 두 마리가 필터 쪽으로 휙 이동했다. 그 녀석들은 빛을 보고 바로 그리로 이동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스트로파지가 그렇게 큰 파장과 상호작용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내 말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고!

빛이란 재미있는 존재다. 빛의 파장은 빛이 무엇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또 무엇과는 상호작용할 수 없는지 결정한다. 빛의 파장보다 작은 것은 뭐든 해당 광자가 볼 때 기능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자레인지 문에 그물이 달려 있는 이유가 그래서다. 그물 안의 구멍은 극초단파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작다. 그러나 훨씬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은 자유롭게 그 구멍을 드나들 수 있다. 그래서 얼굴을 녹여버리지 않고도 음식이 요리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아스트로파지는 18.31미크론보다 작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진동수를 가진 빛을 흡수했다. 어떻게?

하지만 가장 이상한 일은 그게 아니었다. 그랬다. 아스트로파지 두 마리는 필터 쪽으로 향했지만, 다른 둘은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 녀석들은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슬라이드에 머물러 있었다. 그 녀석들은 자기보다 큰 파장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걸까?

그래서 나는 실험을 하나 더 했다. 그 녀석들에게 4.26미크론의 빛을 다시 비춘 것이다. 그러자 또 같은 결과가 나왔다. 같은 아스트로파지 두 마리는 전처럼 곧장 필터로 향했고 다른 둘은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거였다.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방금 아스트로파지의 생애 주기 전체를 밝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맞아 들어가는 퍼즐 조각처럼 녀석들의 생애 주기가 내 머릿속에서 찰칵 맞물렸다.

이동을 거부하는 두 녀석은 더 이상 금성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태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왜? 그 녀석들은 방금 분열된 녀석들이니까.

아스트로파지는 열을 통해 에너지를 모으며 태양의 표면에서 머문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방법으로 그 에너지를 내부에 저장한다. 그런 다음, 충분한 에너지가 모이면 금성으로 이주해 번식한다. 이때 저장해 둔 에너지를 써서, 적외선을 추진력으로 활용해 우주 공간을 가로지른다. 번식을 위해 이동하는 종은 아주 많았다. 아스트로파지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을까?

아스트로파지의 내부가 지구의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들이 이미 밝혀냈다. 아스트로파지가 DNA나 미토콘드리아처럼 세포 안의 재미있는 것들에 필요한 복합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탄소와 산소가 필요하다. 수소는 태양에 충분히 있다. 그러나 다른 원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스트로파지는 가장 가까운 이산화탄소 공급처인 금성으로 이동한다.

아스트로파지는 먼저 태양의 자기장선을 따라간 다음, 태양의 북극을 등지고 위쪽으로 곧장 이동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너무 눈부셔 금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극지에서 위쪽으로 곧장 올라간다는 것은 아스트로파지가 금성의 공전궤도 전체를 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금성의 어떤 부분도 태양에 가려지지 않으니까.

아, 그래서 아스트로파지가 자기장에 그토록 비일관적인 방식으로 반응했구나. 아스트로파지는 여행의 극 초반에만 자기장에 신경을 쓸 뿐이었다.

그런 다음, 아스트로파지는 금성의 엄청난 이산화탄소 분광 신호를 찾는다. 뭐, 사실 ‘찾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보다는 4.26미크론 및 18.31미크론의 광대역으로 단순한 자극 반응이 촉발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무튼, 아스트로파지는 금성을 ‘보는’ 즉시 금성으로 곧장 이동한다. 아스트로파지가 택하는 경로, 그러니까 태양의 극지에서 곧바로 벗어났다가 금성 쪽으로 가파르게 방향을 트는 그 경로가 페트로바선이다.

우리의 위대한 아스트로파지는 금성 대기의 윗부분에 도달해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수집한 다음에야 번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 부모와 자식이 모두 태양으로 돌아가 생애 주기를 새로 시작한다.

사실은 간단하다. 에너지를 얻고, 자원을 얻고, 복제품을 만든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나의 바보 삼총사들 중 두 마리가 빛을 향해 나아가지 않은 이유가 그거였다.

그럼 아스트로파지는 어떻게 태양을 찾는 걸까? 그야 엄청나게 밝은 것을 찾아가겠지.

나는 모와 솀프(태양바라기)를 래리와 컬리(금성바라기)와 분리했다. 래리와 컬리를 다른 슬라이드에 놓은 다음, 그 슬라이드를 빛이 들어가지 않는 샘플 용기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나는 어두운 함 안에 모와 솀프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그 안에 밝은 백열전구를 놓고 불을 켰다. 나는 그 녀석들이 곧장 전구 쪽으로 가리라고 예상했지만, 천만에. 녀석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마 충분히 밝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시내의 사진 용품 판매점으로 가서(샌프란시스코에는 사진광들이 아주 많았다),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밝고 강력한 플래시를 샀다. 나는 백열전구를 그 플래시로 바꾸고 다시 실험을 했다.

모와 솀프는 미끼를 물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낮잠을 자뒀어야 하는 건데. 서른여섯 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스트라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트라트는 첫 번째 신호음이 반쯤 울렸을 때 전화를 받았다.

“그레이스 박사님.” 그녀가 말했다.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네.” 내가 말했다. “아스트로파지가 번식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실제로 아스트로파지를 번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스트로파지를 성공적으로 번식시켰다는 말입니까?”

“네.”

“아스트로파지를 망가뜨리지 않고요?” 스트라트가 물었다.

“원래 저한테는 아스트로파지 세포가 세 개 있었습니다. 지금은 네 개 있고요. 전부 잘 살아 있습니다.”

잠시 또 한 번의 침묵이 흘렀다. “거기 가만히 계세요.”

스트라트가 전화를 끊었다.

“흠.” 내가 말했다. 나는 핸드폰을 다시 실험실 가운에 집어넣었다. “오려나 보네.”

군인 스티브가 실험실로 뛰쳐 들어왔다. “그레이스 박사님!”

“무슨…. 어, 네?”

“따라오십시오.”

“그러죠.” 내가 말했다. “제 아스트로파지 샘플만 챙기고….”

“그런 문제는 지금 오는 실험실 기술자들이 전부 처리할 겁니다. 박사님은 지금 당장 저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그… 알겠습니다 ….”



이후 열두 시간은… 독특했다.

군인 스티브가 나를 고등학교 축구장까지 태워다 줬는데 거기에는 미국 해병대의 헬리콥터가 이미 착륙해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헬기에 서둘러 태웠고, 우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애써 아래를 보지 않았다.

헬기는 나를 트래비스 공군기지로 데려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약 60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해병이 공군기지에 착륙하는 게 항상 있는 일인가? 나는 군대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그건 이상해 보였다. 내가 두어 시간 정도 막히는 도로를 운전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해병대를 파견하는 것도 좀 과하게 보였지만, 뭐 그렇다 치고.

헬리콥터가 착륙한 아스팔트 도로에는 지프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 공군에서 나온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자기소개를 했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제트기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아니, 여객용 제트기가 아니었다. 전용기 같은 것도 전혀 아니었다. 전투기였다. 종류는 모르겠다. 나는 군대 일은 잘 모른다.

안내자는 내게 사다리를 올라가 조종사 뒷좌석에 앉으라고 재촉했다. 그는 내게 알약과 물이 담긴 종이컵을 내밀었다. “드십시오.”

“이게 뭡니까?”

“우리의 멋진 조종석에 박사님이 토하지 않도록 막아줄 약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알약을 삼켰다.

“그리고 잠드시는 데도 도움을 줄 겁니다.”

“뭐라고요?”

그는 떠나버렸고 지상 승조원들이 사다리를 치웠다. 조종사는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10분 후, 우리는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살면서 그런 식의 가속력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약은 제 역할을 해냈다. 그 약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구토했을 것이다.

“어디로 갑니까?” 나는 헤드셋 너머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저는 박사님께 말을 걸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 지루한 여행이 되겠네요.”

“이 일이 보통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다.

정확히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륙하고 나서 몇 분 안이었을 것이다. 서른여섯 시간 동안 미친 과학자 놀음을 한 데다,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 알약의 기운이 더해지자 나는 주변의 터무니없는 제트엔진 소음과 무관하게 곧장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흠칫하며 깨어났다. 우리는 이미 착륙해 있었다.

“하와이입니다.” 조종사가 말했다.

“하와이요? 내가 왜 하와이에 있는 겁니까?”

“그 정보는 받지 못했습니다.”

제트기는 곁다리 활주로인지 뭔지로 천천히 달려갔고, 지상 승조원들이 사다리를 가져왔다. 내가 사다리를 채 반도 내려가지 않았는데 “그레이스 박사님? 이쪽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국 해군 제복을 입은 남성이었다.

“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내가 물었다.

“진주만 해군기지입니다.” 장교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 오래 계시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오십시오.”

“네에. 그래야죠.”

그들은 나를 또 다른 말없는 조종사가 모는 또 다른 제트기에 집어넣었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번에는 공군 제트기가 아니라 해군 제트기를 탔다는 것뿐이었다.

오랜 시간을 날아갔다. 나는 시간 감각을 잃었다. 어쨌거나 시간을 계속 확인한다는 게 무의미하기도 했다. 나는 얼마나 오래 그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결국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항공모함에 착륙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멍청이 같은 모습으로 비행갑판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귀마개와 코트를 내주고 나를 헬기 착륙장으로 데려갔다. 해군 헬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여행이… 끝나기는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 언젠가는요?” 내가 물었다.

그들은 내 말을 무시했고 나는 안전벨트에 묶였다. 헬기는 즉시 이륙했다. 이번에는 비행이 그리 길지 않았다. 겨우 한 시간 정도.

“재미있을 겁니다.” 조종사가 말했다. 비행 내내 그가 한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우리는 하강했고 착륙용 장비가 펼쳐졌다. 아래쪽에는 또 다른 항공모함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항공모함을 바라보았다. 뭔가 달라보였다. 왜지… 아, 맞네. 이 항공모함의 위쪽에서는 커다란 중국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저거 중국 항공모함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우리가, 미국 해군 헬리콥터가 중국 항공모함에 착륙한다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그렇군요.”

우리는 항공모함의 헬기 착륙장에 착륙했고, 중국 해군에 속한 사람들이 흥미로운 듯 우리를 지켜보았다. 우리 헬기를 맞이하는 착륙 환영 행사 같은 건 없을 듯했다. 조종사는 창문 너머로 중국인들에게 험악한 시선을 던졌고 그들도 바로 노려보았다.

내가 내리자마자 조종사는 다시 이륙했다. 이제 나는 중국의 손아귀에 있었다.

해군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대충 상황은 파악됐다. 그는 나를 탑 모양 구조물의 문으로 데려갔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통로와 계단, 나로서는 용도조차 알 수 없는 방들을 지나 구불구불 나아갔다. 그러는 내내 중국 선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결국 그는 한자가 쓰인 문 앞에 멈춰 서더니 문을 열고 안쪽을 가리켰다. 내가 들어가자 그는 문을 쾅 닫았다. 참으로 훌륭한 안내자님이셨다.

그곳은 장교 회의실인 듯했다. 열다섯 사람이 둘러앉아 있는 큰 탁자를 보고 든 생각은 그랬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아시아인도 있었다. 몇 명은 실험용 가운을 입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정장 차림이었다.

물론 스트라트가 탁자의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레이스 박사님, 여행은 어떠셨습니까?”

“여행이 어땠냐고요?” 내가 말했다. “아무 얘기도 못 듣고 너무 너무 정신없게 온 세상을 끌려 다녔는데….”

스트라트가 손을 들었다. “그냥 인사였습니다, 그레이스 박사님. 사실은 박사님 여행이 어땠든 아무 관심이 없어요.” 스트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분은 미국에서 온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님이십니다. 이분이 아스트로파지를 번식시키는 방법을 알아내셨습니다.”

테이블 여기저기서 놀라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한 남성이 벌떡 일어나더니 진한 독일어 억양으로 말했다. “정말입니까? 스트라트, 바룸 하벤 지…?”

“누어 엥글리시.” 스트라트가 말을 끊었다.

“어째서 지금에야 이 얘기를 해주는 겁니까?” 독일인이 물었다.

“알려드리기 전에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레이스 박사님이 여기로 오시는 동안, 제가 기술자들을 시켜 박사님의 실험실을 정리하게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박사님의 실험실에서 살아 있는 아스트로파지 세포 다섯 개를 수거했습니다. 저는 박사님에게 세 개만을 남겨드렸었고요.”

실험용 가운을 입은 노인이 침착하게 달래는 듯한 일본어로 말했다. 그보다 젊은 정장 차림의 일본인이 그의 옆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마쓰카 박사님께서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하십니다.”

스트라트는 옆으로 물러나며 자기 의자를 가리켰다. “박사님, 여기 앉아서 설명해 주시죠.”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저는 왜 중국 항공모함에 타고 있는 거죠? 그리고 혹시, 스카이프라는 앱은 들어보셨습니까?”

“이분들은 제가 소집한 과학자와 정계 인사 들로 이루어진 국제단체 소속으로, 헤일메리 프로젝트를 이끌어주실 분들입니다.”

“그게 뭔데요?”

“그걸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께서는 박사님이 아스트로파지에 대해 알아낸 내용을 무척 듣고 싶어 하시고요. 그것부터 시작하죠.”

나는 발을 끌며 방 앞으로 걸어가, 탁자 상석에 어색하게 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무로 만든 상자 안에서 했던 실험부터 내가 했던 모든 실험들을 전부 다 설명했다. 각 실험을 위해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에 관해서. 그런 다음에는 아스트로파지의 생애 주기에 대한 내 가설과 그 생애 주기가 어떻게, 왜 돌아가는지에 관한 내 결론도 설명했다. 모여 있던 과학자들과 정치인들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을 뿐 대체로는 그냥 귀를 기울이며 메모만 했다. 통역사들이 귀엣말을 속삭여주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그러니까 ….” 내가 말했다. “네, 거의 다 설명된 것 같네요. 제 말은… 아직 엄격한 검증을 거친 이론은 아닙니다만, 꽤 단순한 걸로 보입니다.”

독일인이 손을 들었다. “아스트로파지를 대규모로 번식시키는 것도 가능할까요?”

모두가 몸을 앞으로 조금 내밀었다.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었던 게 분명했다. 모두가 그 질문을 떠올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방에 갑자기 감도는 긴장감에 깜짝 놀랐다.

스트라트까지도 평소와 달리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자.” 그녀가 말했다. “포그트 장관님께 대답해 주시죠.”

“그러죠.” 내가 말했다. “…안 될 것 없겠죠?”

“어떻게 하면 됩니까?” 스트라트가 물었다.

“저라면 팔꿈치 모양으로 생긴 커다란 관을 만들고, 그 관을 이산화탄소로 가득 채울 겁니다. 관의 한쪽 끝은 최대한 뜨겁게 하고, 밝은 광원을 그쪽에 설치합니다. 태양의 자기장을 흉내 낼 수 있도록 그 부분을 자석 코일로 감쌉니다. 관의 반대쪽 끝에는 적외선 방사기를 설치하고, 4.26미크론과 18.31미크론의 빛을 방사하도록 합니다. 관 내부는 최대한 어둡게 하고요. 그러면 될 겁니다.”

“그러면 왜 ‘되는’ 겁니까?” 스트라트가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스트로파지는 ‘태양’ 쪽에서 에너지를 모으고, 번식할 준비가 되면 자기장을 따라 관의 굽어진 부분으로 이동할 겁니다. 그곳에서는 반대쪽 끝의 적외선을 보고 그쪽으로 가겠죠. 그 빛을 보고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아스트로파지는 번식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 딸세포 두 개가 다시 태양 쪽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간단하죠.”

정치인 같이 생긴 남성이 손을 들고, 아프리카 쪽 억양이 섞인 영어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 아스트로파지를 얼마나 만들 수 있습니까?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배가(倍加)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말했다. “바닷말이나 박테리아처럼요. 그게 얼마나 긴 시간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태양이 어두워지는 속도를 생각하면 꽤 빠를 겁니다.”

실험용 가운을 입은 한 여성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심한 중국어 억양으로 말했다. “우리 쪽 과학자들이 박사님의 실험 결과를 재현했습니다.”

포그트 장관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대체 실험 과정은 어떻게 안 겁니까? 그레이스 박사가 방금 말해준 건데요!”

“스파이가 있는 거겠죠, 아마.” 스트라트가 말했다.

독일인이 “감히 어떻게 우리 몰래….”라며 콧김을 뿜어댔다.

“조용.” 스트라트가 말했다. “우리에게 그런 문제는 전부 과거의 일입니다. 시 선생님, 공유할 만한 정보가 더 있으십니까?”

“네.” 그녀가 말했다. “최적의 환경에서, 배가시간은 여드레를 조금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프리카 외교관이 말했다. “얼마나 만들 수 있는 거죠?”

“글쎄요.” 나는 핸드폰 계산기 앱을 켜서 버튼을 몇 개 눌렀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아스트로파지 150개로 시작해 1년 동안 배양한다면, 1년이 지날 때쯤에는 약… 17만 3,000킬로그램의 아스트로파지를 얻게 됩니다.”

“그 아스트로파지의 에너지밀도는 최대치일까요? 재생산할 준비가 된 아스트로파지입니까?”

“그러니까 지금 원하시는 게… ‘강화된’ 아스트로파지라고 해도 될까요?”

“네.” 그가 말했다. “완벽한 단어네요. 우리에게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아스트로파지가 필요합니다.”

“음… 그야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일단 필요한 만큼의 아스트로파지를 번식시킨 뒤, 그것들을 열에너지에 노출시키되 이산화탄소 스펙트럼선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스트로파지는 에너지를 모은 뒤, 이산화탄소를 얻을 만한 곳이 보일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릴 겁니다.”

“강화 아스트로파지 200만 킬로그램이 필요하다면요?” 외교관이 말했다.

“아스트로파지는 여드레에 한 번씩 두 배가 됩니다.” 내가 말했다. “200만 킬로그램이라면 그런 과정을 약 네 번 더 거쳐야겠죠. 그러니까 한 달이 더 걸립니다.”

한 여성이 두 손의 손가락을 뾰족하게 모은 채 탁자 쪽으로 몸을 숙였다. “가까스로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미국 억양을 썼다.

“실낱같은 기회죠.” 포그트가 말했다.

“희망이 있습니다.” 일본인 통역사가 말했다. 아마 마쓰카 박사 대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끼리 얘기를 좀 해봐야겠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가서 좀 쉬세요. 바깥에 있는 선원이 침상으로 안내해 줄 겁니다.”

“저도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아, 아시게 될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나는 열네 시간을 잤다.

항공모함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훌륭했지만, 오성급 호텔은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내게 장교 선실의 깨끗하고 편안한 간이침대를 내주었다. 불만은 없었다. 너무 피곤해 갑판 활주로에서라도 잘 수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마에 뭔가 이상한 게 닿는 것을 느꼈다. 나는 손을 뻗었다가 그게 포스트잇 메모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는 동안 누가 내 머리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나는 그것을 떼어 읽어보았다.


침대 밑 자루에 깨끗한 옷과 세면도구가 들어 있습니다. 다 씻고 나면 이 쪽지를 아무 선원에게나 보여주세요. 请带我去甲板7的官员会议室

-스트라트


“참 싹수가 없으신 분이야….” 나는 웅얼거렸다.

나는 간이침대에서 굴러 나왔다. 장교 몇 명이 나를 힐끔거렸을 뿐 그 외에는 나를 모른 체했다. 나는 자루를 찾았다. 그 안에는 스트라트가 말한 대로 옷과 양치 도구와 비누가 들어 있었다. 나는 침실을 둘러보다가 탈의실로 이어지는 문을 찾아냈다.

나는 화장실을 썼다(아니, 배에 있으니까 ‘선수 변소’라고 해야 할까). 그런 다음 모르는 세 남성과 함께 샤워를 했다. 몸을 말리고 자루에 있던 상하의가 한 벌로 된 작업복을 입었다. 작업복은 밝은 노란색이었고 등에는 한자가 적혀 있었으며, 바지 왼쪽 다리에는 크고 빨간 세로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외국 민간인이며,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려는 듯했다.

나는 지나가던 선원을 불러 세우고 쪽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전부 비슷해 보이는 20개의 작은 통로로 이루어진 미로를 지나 나를 안내했고, 결국 우리는 내가 전날 들렀던 그 방에 돌아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스트라트와 스트라트의… 팀원(?)들이 보였다. 어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있는 건 아니었다. 포그트 장관, 중국인 과학자(이름이 시였던 것 같다), 러시아 군복을 입은 남성 한 명뿐이었다. 러시아인은 전날에도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모두 깊이 집중하고 있는 듯했으며, 탁자는 종이가 잔뜩 흩어져 있어 어지러웠다. 그들은 때때로 서로에게 웅얼거렸다. 나는 이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스트라트가 상석에 앉아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내가 들어가자 스트라트가 눈을 들었다.

“아, 그레이스 박사님. 잘 쉬셨나 보네요.” 스트라트는 자기 왼쪽을 가리켰다. “캐비닛에 음식이 있습니다.”

정말이었다! 밥과 찐빵, 튀긴 막대 과자, 주전자에 든 커피. 나는 그리로 달려가 양껏 음식을 덜었다.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나는 접시 가득 음식을 담고 커피도 한 잔 따라 회의용 탁자에 앉았다.

“그러면,” 나는 밥을 가득 물고 말했다. “이제는 왜 우리가 중국 항공모함을 타고 있는 건지 얘기해 주실 겁니까?”

“전 항공모함이 필요했고, 중국에서 항공모함을 내줬습니다. 뭐, 빌려준 거죠.”

나는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예전 같았으면 그 얘기를 듣고 놀랐겠지만 … 아시다시피…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네요.”

“민항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연착될 위험도 있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군용기는 원하는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고, 초음속으로 운행하죠. 저는 지구 곳곳에 있는 전문가들을 지체 없이 한 방에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스트라트 씨가 참 언변이 좋아요.” 포그트 장관이 말했다.

나는 더 많은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저 분한테 모든 권한을 준 사람을 탓해야죠.” 내가 말했다.

포그트가 씩 웃었다. “실은 저도 그런 결정을 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는 독일 외교부 장관이거든요. 박사님 나라로 치면 국무장관과 같습니다.”

나는 잠시 씹던 것을 멈추었다. “와.” 간신히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입안 가득 담긴 음식을 꿀꺽 삼켰다. “제가 여태 만나본 사람 중 가장 계급이 높은 분이시네요.”

“그럴 리가요.” 그는 스트라트를 가리켰다.

스트라트는 내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려놓았다. “이게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씨앗입니다.”

“그레이스 박사님한테도 보여드리는 겁니까?” 포그트가 말했다. “지금요? 비밀 정보 사용 허가를 받아드린 것도 아닌데….”

스트라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님, 현 시간부로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정보에 대해 최상위 비밀 정보 사용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포그트가 말했다. “절차라는 게 있고, 신원조회도 해야 하고….”

“시간이 없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런 걸 할 시간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저한테 이 일을 맡기신 것 아닙니까? 속도 때문에요.”

스트라트는 나를 돌아보며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전 세계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읽어낸 내용입니다. 이걸 보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여러 숫자가 칸칸이 적혀 있었다. 나는 각 칸의 제목을 보았다. ‘알파 센타우리’, ‘시리우스’, ‘루이텐 726-8’ 등등.

“별?” 내가 말했다. “전부 우리가 속한 국부 성단의 별이군요. 그런데 잠깐… 아마추어 천문학자라고 하셨습니까? 독일 국무장관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데, 왜 전문 천문학자들을 고용하지 않는 겁니까?”

“고용은 이미 했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하지만 이건 지난 몇 년 간 수집된 역사적 데이터예요. 전문 천문학자들은 국부 성단의 항성을 연구하지 않습니다.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들을 보죠. 우리 근처의 존재들에 관한 데이터를 기록하는 건 아마추어들입니다. 기차 수집가 같은 사람들이죠. 뒤뜰에 나와 취미로 별을 보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 중에는 수만 달러짜리 장비를 갖춘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게 뭔데요?”

“밝기를 기록한 겁니다. 아마추어가 생산한 데이터를 수천 세트 수집해 오류를 줄이고, 알려진 날씨나 가시성 변수를 고려해 수정한 겁니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했어요. 중요한 건 점점 어두워지는 항성이 우리 태양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정말이요?” 내가 말했다. “아아! 그럼 완벽하게 말이 되네요! 아스트로파지는 광속의 0.92배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휴면기에 접어들어 충분히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 근처의 항성들을 감염시킬 수도 있겠죠. 포자를 퍼뜨리는 겁니다! 곰팡이처럼요! 이 별에서 저 별로 퍼져나가는 거예요.”

“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이 자료는 수십 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단히 신뢰성이 높은 자료는 아닙니다만, 경향은 뚜렷하게 보입니다. NSA가 역산을 해봤는데….”

“잠깐, NSA요? 미국 국가안보국 말하는 겁니까?”

“거기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슈퍼컴퓨터가 몇 대 있거든요. 아스트로파지가 은하계를 돌아다니는 방법에 관한 모든 시나리오와 증식 모형을 시험하기 위해서 NSA의 슈퍼컴퓨터와 엔지니어들이 필요했습니다. 요점으로 돌아오면, 우리 근처의 이 별들은 수십 년에 걸쳐 어두워져 왔습니다. 어두워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요. 태양에서 보이는 현상과 똑같습니다.”

스트라트는 내게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선으로 연결된 점들이 한 무더기 있고 각 점 위에 별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광속 때문에, 별이 어두워지는 현상에 대해 관찰한 결과는 별까지의 거리 등을 감안해 조정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별에서 별로 ‘감염’이 이루어지는 패턴은 뚜렷합니다. 우리는 각 항성이 언제 감염됐는지, 또 어떤 항성을 통해 감염됐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태양은 WISE 0855-0714라는 별을 통해 감염됐어요. 그 별은 시리우스를 통해서 감염됐고, 시리우스는 엡실론 에리다니에 의해서 감염됐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추적이 불가능하고요.”

나는 차트를 들여다보았다. “흠. WISE 0855-0714가 울프 359, 랄랑드 21185, 로스 128도 감염시켰네요.”

“네. 각 별은 결국 이웃 별을 전부 감염시키게 됩니다. 데이터로 보면, 아스트로파지가 감염시킬 수 있는 최대 범위는 8광년에 약간 못 미치는 듯합니다. 감염된 별과의 거리가 그 범위 안에 들어가는 모든 별은 결국 감염됩니다.”

나는 자료를 살펴보았다. “왜 8광년이죠? 더도 덜도 아니고.”

“가장 좋은 가설은 아스트로파지가 별을 떠나 살 수 있는 기간 동안 최대 약 8광년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말이 되네요.” 내가 말했다. “대부분의 별은 8광년 거리 안에 다른 별을 두고 있으니, 아스트로파지는 포자를 퍼뜨리면서 여행하기 위해 그만큼 진화해야 했던 겁니다.”

“아마 그렇겠죠.” 스트라트가 말했다.

“이 별들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그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건가요?” 내가 말했다.

“별들은 약 10퍼센트 정도 어두워진 뒤 더 이상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육안으로 보면 확실하지 않지만 ….”

“하지만 우리 태양이 10퍼센트 어두워지면,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겠죠.”

중국인 과학자 시가 테이블 쪽으로 몸을 숙였다. 자세가 대단히 예의 발랐다. “스트라트 씨는 아직 박사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을 얘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러시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인 것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가 말을 이었다. “타우세티가 뭔지 아십니까?”

“아냐고요?” 내가 말했다. “그야… 타우세티가 별이라는 건 알죠. 아마 12광년쯤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요.”

“11.9광년입니다.” 시가 말했다. “아주 훌륭하시네요.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인데.”

“제가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거든요.” 내가 말했다. “이런 것들은 그냥 떠오릅니다.”

시와 러시아인이 놀란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둘 다 스트라트를 보았다.

스트라트가 시선으로 그들을 찍어 눌렀다. “그냥 중학교 선생님이 아닙니다.”

시는 자세를 가다듬었다(자세가 많이 흐트러졌었던 건 아니지만). “엣헴. 아무튼, 타우세티는 감염된 별들의 군집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실은 중심에 가깝죠.”

“알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타우세티에 뭔가 특별한 점이 있나 보군요?”

“타우세티는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시가 말했다. “타우세티 주변의 모든 별은 감염됐는데도요. 타우세티로부터 8광년 이내에 존재하는 별들 중에는 아주 심하게 감염된 별이 두 개 있어요. 그런데도 타우세티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왜죠?”

스트라트가 서류를 펄럭펄럭 넘겼다. “그걸 알아내려는 겁니다. 그래서 우주선을 만들어 타우세티로 보낼 거예요.”

나는 코웃음 쳤다. “성간 우주선을 그냥 ‘만들’ 수는 없어요. 우리한테는 그럴 기술이 없습니다. 그런 기술 비슷한 것조차 없어요.”

러시아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이죠, 친구. 있습니다.”

스트라트가 러시아인에게 손짓했다. “코모로프 박사님은….”

“디미트리라고 부르세요.” 그가 말했다.

“디미트리는 러시아 연방의 아스트로파지 연구를 지휘하고 계십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그가 말했다. “성간 항해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드리게 되어 기쁘네요.”

“아니, 불가능해요.” 내가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해주지 않은 외계 우주선을 가지고 계신 게 아니라면요.”

“어떤 면에서는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그가 말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외계 우주선이 있습니다. 우린 그 우주선을 아스트로파지라고 부르죠. 아시겠습니까? 제 팀은 아스트로파지의 에너지 관리 방식을 연구해 왔습니다. 대단히 흥미롭죠.”

순간, 나는 그 방 안에서 벌어지는 다른 모든 일을 잊어버렸다. “세상에, 그 열이 다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신 거군요. 저는 아스트로파지가 열에너지로 대체 뭘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네, 알아냈습니다.” 디미트리가 말했다. “레이저를 써서요. 어둠을 밝혀주는 실험이었죠.”

“그거, 말장난인가요?”

“맞아요!”

“멋진데요!”

우리는 둘 다 웃었다. 스트라트가 우리를 노려봤다.

디미트리가 목을 가다듬었다. “어… 네. 우리는 좁은 초점의 1킬로와트짜리 레이저를 아스트로파지 세포 한 개에 쏘았습니다. 늘 그렇듯 아스트로파지는 뜨거워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25분이 지나자 빛이 튕겨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우리 꼬마 아스트로파지가 배가 부른 겁니다. 충분히 먹은 거죠. 아스트로파지는 빛 에너지 1.5메가줄을 소비했어요. 그 이상은 원하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죠! 이 모든 에너지를 어디에 저장하는 걸까요?”

나는 탁자 너머로 너무 깊이 몸을 내민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인데요?”

“물론 우리는 실험 전후의 아스트로파지 세포 무게를 측정했습니다.”

“그러셨겠죠.”

“아스트로파지 세포는 17나노그램 더 무거워져 있었어요. 이 실험의 결론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시겠죠?”

“아니, 그럴 리가요. 아스트로파지 세포는 공기와의 작용이라든가, 다른 무슨 이유 때문에 무거워졌을 겁니다.”

“아뇨, 당연한 얘기지만 실험 공간은 진공상태였어요.”

“세상에.”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17나노그램이라니… 곱하기 9 곱하기 10의 16승이… 1.5메가줄!”

나는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에나, 세상에…. 제 말은 그냥… 와아!”

“저도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질량에너지 변환. 위대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E=mc2’이다. 질량에는 엽기적일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들어 있다. 현대의 핵발전소는 겨우 1킬로그램의 우라늄에 저장된 에너지로 한 개의 도시 전체에 1년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그래, 원자로의 1년치 출력은 질량 단 1킬로그램에서 나온다.

아스트로파지는 이런 일을 쌍방향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열에너지를 받아들여, 어떤 식으로든 질량으로 바꾼다. 그런 다음 다시 에너지를 쓸 때가 되면 그 질량을 에너지로 도로 바꾸어 놓는다. 페트로바 주파수의 빛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그리고 아스트로파지는 우주에서 그 빛을 추진력으로 활용한다. 그러니까 아스트로파지는 완벽한 에너지 저장 매체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우주선 엔진이기도 했다.

십억 년 동안 가만히 놔두면, 진화란 말도 안 되게 효과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나는 머리를 문질렀다. “이건 그냥 미친 소리예요. 그래도 좋은 쪽으로 미친 소리죠. 아스트로파지가 내부에서 반물질을 생성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비슷한 걸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의 질량이 늘어나는 것만은 확실해요. 그러다가 빛을 추진력으로 쓴 다음에는, 방출된 에너지에 비례해서 질량을 잃죠.”

“그건…! 디미트리 박사님, 친해지고 싶어요. 우리… 놀러 나갈까요? 제가 맥주를 사죠. 보드카라든지 뭐든지요. 이 배에도 장교 클럽은 틀림없이 있겠죠?”

“저야 좋죠.”

“두 분이 친구가 된다니 좋은 일이네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하지만 술집에 드나들기 전에 두 분이 처리하셔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요?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박사님은 아스트로파지 배양기를 설계하고 만드셔야 합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런 다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스트로파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우주선을 만들려는 거군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수가! 아스트로파지는 현존하는 가장 효율적인 로켓 연료예요! 얼마나 필요하려나 …. 아. 200만 킬로그램이겠군요? 그래서 200만 킬로그램의 아스트로파지를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싶어 하셨던 거였어요.”

“네.” 시가 말했다. “10만 킬로그램짜리 우주선을 타우세티로 보내기 위해서는 아스트로파지 200만 킬로그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박사님 덕분에, 이제 우리는 아스트로파지를 활성화시키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아스트로파지가 추진력을 만들어내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계산기 앱을 켰다. “여기에는, 그러니까 …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겁니다. 제 말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요. 10의 23승 줄 정도가 될 거예요. 지구에서 가장 큰 원자로가 대략 8기가와트의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10의 23승 줄에 이르는 에너지를 만들려면 그 원자로를 200만 년 동안 가동해야 해요.”

“에너지를 얻을 방법은 생각해 냈으니까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박사님이 하실 일은 배양기를 만드는 겁니다. 일단은 작게, 프로토타입부터 만들어보시죠.”

“네, 그럼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로 올 때 했던 ‘전 세계 군대 체험전’ 같은 엄청난 여행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집에 갈 때는 여객기를 타도 될까요? 마차도 괜찮겠네요.”

“여기가 박사님 집입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격납고가 비어 있어요. 뭐가 필요하신지만 말씀해 주시죠. 팀원들을 포함해서요. 그럼 제가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회의실의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시, 포그트, 디미트리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건 현실이야. 스트라트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야.

“왜요?” 내가 물었다. “왜 그냥 정상인처럼 굴지 못하는 겁니까, 스트라트! 빠른 군대식 이동수단을 원한다면 뭐, 그래요. 그건 좋습니다. 하지만 공군기지에서 일한다든지 하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 할 만한 일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뭐예요?”

“아스트로파지를 배양해 내면, 그걸 가지고 실험하게 될 테니까요. 실수로 아스트로파지를 1~2킬로그램이라도 활성화했다간 역사상 존재했던 가장 큰 핵폭탄보다 큰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차르 봄바(세계 최강의 핵폭탄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핵폭탄‐옮긴이).” 디미트리가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거죠. 50메가톤짜리. 쾅.”

스트라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어떤 도시도 박멸하지 않도록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편이 낫습니다.”

“아.” 내가 말했다.

“아스트로파지를 더 많이 확보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먼 바다로 나아갈 겁니다. 아무튼, 격납고로 가세요. 지금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내 지시를 받은 목수들이 숙소와 사무실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차지하시면 됩니다.”

“이제는 이게 우리의 인생이에요.” 디미트리가 말했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