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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홍수가 한순간에 밀어닥쳤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저건 외계인이다. 저 우주선은 이상한데, 어떻게 저런 설계가 가능한 거지? 저들은 여기 사는 건가? 여기가 저들의 별인가? 내가 외계인의 영역으로 흘러들어 와 행성간 무력 충돌이라도 일으키는 건가?

“숨 쉬어.” 나는 자신을 타이른다.

좋다,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하자. 저게 지구에서 보낸 다른 우주선이라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주선이라면? 젠장, 내 이름을 기억해 내는 데만도 며칠이 걸렸다. 어쩌면 지구가 서로 다른 디자인의 우주선을 여러 대 보낸 게 아닐까?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여분이라든지, 최소한 한 대의 우주선은 성공을 거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저 우주선은 ‘알라를 찬양하라’ 혹은 ‘비슈누의 축복’ 같은 걸지도 모른다(‘헤일메리’는 미식축구 및 농구 경기 용어이기도 하지만, 가톨릭 등 기독교 일부 종파의 기도문인 성모송을 일컫기도 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말장난이다‐옮긴이).

나는 통제실을 쭉 둘러본다. 모든 장치에 관한 화면과 제어장치가 있지만 무전 장치는 없다. 선외활동 패널에는 무전 통제장치가 달려 있지만, 그건 승조원들이 밖에 나가 있을 때 그들과 이야기하는 용도로만 쓰는 게 분명하다.

우주선을 여러 대 띄웠다면 우리가 서로 교신할 수 있도록 어떤 무전 시스템을 마련했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저 우주선은…. 저건 말도 안 된다.

나는 내비게이션 조작 화면을 휙휙 넘겨보다가 레이더 패널을 찾아낸다. 이 패널이 있다는 건 전에 알아냈지만 별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소행성이나 다른 물체 근처에 다가갔다가 충돌하는 사태를 막으려고 달아놓은 것 같다.

몇 차례 버벅거리며 시도한 끝에 나는 레이더를 켜는 데 성공한다. 레이더는 다른 우주선을 즉시 포착하고 경보음을 울린다. 날카로운 소음에 귀가 아프다.

“야, 야, 야!” 내가 말한다. 나는 미친 듯이 패널을 훑어보다가 ‘근접 경고음 음소거’라는 이름이 붙은 버튼을 발견한다. 그 버튼을 누르자 소음이 멈춘다.

나는 나머지 화면을 훑어본다. 여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가 있는데, 전부 ‘블립A(블립은 레이더 스크린에 목표가 나타나며 생기는 전자 빔의 빛점을 말한다‐옮긴이)’라는 제목의 창에 들어 있다. 접촉 대상이 여러 개라면 창이 여러 개 뜨는 모양이다. 뭐 어쨌든 표시된 정보는 전부 가공되지 않은 숫자다. 《스타 트렉》의 등축 탐지 장치처럼 유용한 게 아니다.

‘속도’는 0이다. 내 속도와 정확히 같다. 우연일 리는 없다.

‘거리’는 217미터다. 그게 다른 우주선의 가장 가까운 부분까지의 거리인 듯하다. 아니면 평균 거리이든지. 아니, 가장 가까운 부분까지의 거리가 틀림없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충돌을 피하는 데 있을 테니까.

충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항성계의 크기에 비하면 217미터란 말도 안 되게 짧은 거리다. 이게 우연일 리는 없다. 저 우주선은 내가 있기에 일부러 여기에 자리 잡은 것이다.

‘각 크기’라는 다른 수치는 35.44도다. 좋아, 기초적인 계산이면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나는 메인 화면의 ‘유용한 도구’ 패널을 띄우고 계산기 앱을 실행한다. 217미터 떨어진 곳의 어떤 물체가 시야의 35.44도를 점유하고 있다. 레이더가 360도를 전부 볼 수 있다고 가정할 때(그럴 수 없다면 꽤나 저질 레이더일 것이다)… 나는 아크탄젠트 공식을 할 수 있도록 계산기에 숫자를 입력한다.

우주선의 길이는 139미터다. 대충.

나는 다른 화면에 아스트로파지 패널을 띄운다. 그 화면의 작은 지도는 헤일메리의 길이가 겨우 47미터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저 외계 우주선은 내 우주선의 세 배 크기다. 지구에서 저렇게 큰 우주선을 보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형태도 그렇다. 대체 저 형태는 어찌 된 영문인가? 나는 페트로바스코프로 관심을 돌린다(지금 페트로바스코프는 그냥 카메라 역할을 하고 있다).

우주선의 중앙은 다이아몬드 형태, 그러니까 마름모꼴이다. 뭐, 실제로는 정팔면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면이 여덟 개고, 각 면이 삼각형인 것으로 보인다. 그 부분만 해도 내 우주선의 크기에 이른다.

그 다이아몬드가 세 개의 두꺼운 막대로(달리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넓은 사다리꼴 기단부에 연결되어 있다. 그 사다리꼴이 우주선의 후미부인 것처럼 보인다. 또 다이아몬드의 앞쪽에는 작은 줄기(이제는 말을 막 만들어낸다)가 있는데, 그 줄기에는 우주선 본체의 축과 평행하게 납작한 판 네 개가 부착되어 있다. 태양 전지판일까? 그 줄기는 앞쪽의 피라미드 모양 노즈콘까지 이어진다. 원뿔(cone)이 아니라 피라미드니까, 노즈피라미드라고 해야겠지만.

선체는 전체가 납작하다. ‘막대’조차 납작한 면을 가지고 있다.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지? 납작한 판이라니, 형편없는 생각이다. 저걸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주선 내부에 공기가 조금은 필요할 것 아닌가? 크고 납작한 판은 공기를 보존하기에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어쩌면 저건 탐사선이지 진짜 우주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안에 살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공기가 없는 걸지도. 내가 보고 있는 건 우주선이 아니라 단순한 외계의 인공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인류 역사상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지만.

저 물체는 아스트로파지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내가 아까 본 안정적인 페트로바 진동수의 빛이 저것이었다. 저들도 우리와 똑같은 추진 기술을 가지고 있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가 현존하는 최고의 에너지 저장 매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유럽의 선원들이 아시아의 선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 두 배에 모두 돛이 달려 있다는 걸 보고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다. 그게 신경 쓰인다. 저것에 타고 있는 어떤 존재가 (컴퓨터든, 승조원이든) 내 우주선으로 다가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애초에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걸까?

아마 내가 저들을 본 것과 같은 방법으로 안 것이겠지. 내 엔진에서 나오는 엄청난 적외선 말이다. 게다가 내 우주선의 후미부는 타우세티를 향하고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저들이 있는 방향으로 540조 와트의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저들의 위치에 따라서 나는 타우세티보다도 밝게 보였을 수 있다. 최소한 페트로바 진동수로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들은 페트로바 진동수를 볼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나는 스핀 드라이브 조작 화면을 휙휙 넘겨보다가 ‘수동 제어’라는 이름의 화면을 발견한다. 그 창을 선택하자 경고창이 든다.


수동 제어는 비상 상황에서만 사용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정말로 수동 제어 모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나는 ‘예’를 누른다.

또 다른 경고창이 뜬다.


2차 확인: 수동 제어 모드를 사용하려면 ‘예’를 입력하십시오.


나는 못마땅해서 꿍얼거리며 ‘ㅇ-ㅖ’를 입력한다.

‘드라이브 1’, ‘드라이브 2’, ‘드라이브 3’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슬라이드 바 세 개가 있고, 지금은 세 슬라이드 바 모두 0에 맞춰져 있다. 각 슬라이드 바의 맨 위에는 ‘107N’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N은 힘의 단위인 ‘뉴턴’을 말하는 게 틀림없다. 세 개의 드라이브를 모두 최대 출력으로 올리면, 3,000만 뉴턴의 힘이 발생할 것이다. 그 정도면 점보 제트기의 엔진이 이륙할 때 내는 추진력의 약 60배다.

과학 교사들은 아주 많은 사실들을 닥치는 대로 알고 있다.

작은 슬라이드 바가 더 많이 존재한다. ‘빗놀이 축’, ‘상하 요동’, ‘기울기’ 같은 이름의 그룹에 묶인 채로. 우주선 측면에는 방향을 조정하기 위한 작은 스핀 드라이브들이 있는 게 틀림없다. 이 패널을 건드리는 게 왜 형편없는 생각인지는 확실히 알겠다.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우주선은 빙빙 돌다가 찢겨나갈 것이다.

최소한 우주선을 만든 사람들은 그 점을 고려해 두었다. 화면 중앙에는 ‘모든 회전을 0으로’라는 이름의 버튼이 있다. 좋군.

나는 페트로바스코프를 다시 확인한다. 블립A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 우주선의 좌현, 약간 앞쪽에 있다.

나는 페트로바스코프를 다시 페트로바 대역 모드로 돌려놓는다. 화면은 거의 검은색이다. 앞서 그랬듯, 블립A로 일부 가려진 배경의 페트로바선이 보인다.

“나한테 할 말이 있나 봅시다 ….” 나는 중얼거린다. 스핀 드라이브2는 우주선의 중심부에 있다. 그 추진력의 방향은 내 우주선의 중심 축과 일치할 것이다. 비행 자세가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디 한번 보자.

나는 스핀 드라이브 2의 동력을 1초간 0.1퍼센트로 올렸다가 다시 0으로 내린다.

겨우 엔진 하나의 동력을 1,000분의 1 수준으로 1초 동안 가동했을 뿐인데도 우주선이 약간 움직인다. 레이더에 잡힌 블립A의 ‘속도’는 초당 0.086미터이다. 그 작디작은 추진력이 내 우주선을 초당 약 8센티미터의 속도로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내 관심사는 다른 우주선이다.

나는 페트로바스코프를 지켜본다. 땀방울이 내 이마에서 분리되어 둥실둥실 떠간다. 심장이 하도 두근거려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그때, 상대 우주선의 뒷부분이 1초간 페트로바 대역에서 반짝 빛난다.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와!”

나는 스핀 드라이브를 몇 차례 켰다 껐다 한다. 세 번 짧게, 한 번은 길게, 또 한 번은 짧게. 무슨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니다. 그저 상대가 이 신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상대는 이번에 좀 더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몇 초 만에 상대 우주선이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나는 숨을 들이켠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그리고 움찔거린다. 그리고 다시 미소 짓는다. 받아들이기엔 벅찬 일이다.

어떤 탐사선도 저토록 빠르게 반응할 수는 없다. 리모콘 같은 것으로 작동되는 거라면, 그 리모콘을 조종하는 자들은 빛의 속도로 몇 분 떨어진 거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주변에는 그들이 있을 만한 곳이 전혀 없다.

저 우주선에는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타고 있다. 나는 진짜 외계인과 약 200미터 떨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내 우주선 자체가 외계 생명체를 동력원으로 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새로운 외계인에게는 지능이 있잖은가!

이런 세상에! 바로 이거야! 최초의 접촉! 내가 해내다니! 최초로 외계인을 만난 사람이 바로 나라니!

블립A는 다시 짧게 엔진을 켠다. 나는 순서를 기억하려고 유심히 지켜보지만 단 한 번, 강도가 낮은 불빛이 들어왔을 뿐이다. 저들은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니다. 우주선을 조작하는 중이다.

나는 레이더 패널을 살핀다. 그럼 그렇지. 블립A는 헤일메리호와 나란히 서서 217미터 거리에서 위치를 유지한다.

나는 과학 패널을 휙휙 넘겨 일반 망원경 카메라를 다시 띄운다. 페트로바스코프의 가시광선 카메라는 주요 카메라의 방향을 잡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 망원경이 훨씬 해상도도 높고 선명하다. 지금에야 이런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주 망원경으로 보니 영상이 훨씬 더 선명하다. 그냥 말도 안 되게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인 것 같다. 지금도 선명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제는 블립A가 아주 잘 보인다.

우주선의 선체는 회색과 황갈색이 얼룩덜룩하게 섞여 있다. 누가 페인트를 섞기 시작했다가 너무 일찍 멈춰버린 것처럼. 그 무늬에는 아무 규칙이 없는 듯하지만 표면은 매끄러워 보인다.

화면 구석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불규칙한 형태의 물체가 선체의 레일을 따라 미끄러진다. 그 물체의 꼭대기에 연결된 ‘팔’ 다섯 개가 막대처럼 보인다. 팔마다 끝에 죔쇠처럼 생긴 ‘손’이 달려 있다.

나는 그제야 선체 전체에 그물망처럼 설치된 레일을 발견한다.

우주선 안에서 누군가 로봇을 조종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작은 초록색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고, 외계인의 EVA 우주복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 난 저게 선체에 탑재한 로봇이라는 확신이 든다. 지구로 돌아온 우주정거장에도 저런 로봇들이 있다. 우주복을 챙겨 입지 않고도 우주선 밖의 여러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다.

로봇은 헤일메리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이를 때까지 선체를 따라 길을 헤치고 나온다. 녀석의 작은 죔쇠 손 중 하나에는 원통형 물체가 들려 있다. 나는 크기 감각이 별로 없지만 로봇은 우주선에 비해 아주 작아 보인다. 내 몸집 정도이거나 그보다 작을 것 같지만 어림짐작이다.

로봇은 멈춰서 내 우주선 쪽으로 다가오더니 원통을 우주 공간으로 부드럽게 놓아 보낸다.

원통은 천천히 내 쪽으로 움직인다. 약간 회전이 걸려 있어서 빙글빙글 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도 아주 매끄럽게 놓아 보낸 셈이다.

나는 레이더 패널을 확인한다. 블립A의 속도는 0이다. 이제는 ‘블립B’ 화면도 떠 있다. 이 화면은 초속 8.6센티미터의 속도로 다가오는, 훨씬 작은 원통을 보여준다.

재미있는데. 저건 내가 방금 인사를 하느라 엔진을 깜빡이던 때 헤일메리호를 움직였던 것과 정확히 같은 속도다. 우연일 리 없다. 저쪽에서는 내게 원통을 전해주고 싶어 하며, 내가 편안히 다룰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속도로 저 통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너희 참 친절하구나 ….” 내가 말한다.

영리한 외계인들이다.

이 시점에서는 저들에게 우호적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저 녀석들은 인사를 건네고 친절하게 굴겠다고 원래 궤도를 벗어난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저 녀석들에게 적대적인 의도가 있다 한들 내가 뭘 어쩌겠는가? 죽어야지. 내가 하게 될 일은 그것이다. 나는 과학자이지 벅 로저스(1939년에 개봉한 공상과학영화 《벅 로저스》의 주인공‐옮긴이)가 아니니까.

뭐, 내 말은, 저 녀석들의 우주선에 스핀 드라이브를 겨냥하고 출력을 최대로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녀석들이 증발… 근데 말이지, 지금 당장은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빠르게 계산을 해보니 저 원통이 내게 닿을 때까지는 40분 이상이 걸릴 것이다. EVA 우주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 외계인 쿼터백과 인류의 첫 터치다운 패스를 받을 자세를 잡기까지 그 정도 시간이 남았다.

나는 우주선의 동료들을 우주에 매장할 때 에어로크에 대해 많이 배웠고….

일류키나라면 이 순간을 무척 좋아했을 것이다. 아마 신이 나서 선실을 이리저리 튀어 다녔을 게 분명하다. 야오는 엄격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겠지만 우리가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면 살짝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눈물로 시야가 흐려진다. 중력이 없기에 눈물은 내 눈에 막을 씌운다. 꼭 물속에서 보는 것 같다. 나는 눈물을 닦아 통제실 저편으로 날려 보낸다. 눈물은 반대쪽 벽에 철퍽 튄다. 이럴 시간이 없다. 잡아야 할 외계인 물건이 있으니까.

나는 의자의 벨트를 풀고 에어로크 쪽으로 떠간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과 질문 들이 소용돌이친다. 나는 이쪽저쪽으로 거칠게, 아무 근거 없는 결론으로 도약한다. 어쩌면 지능이 있는 이 외계인 종이 아스트로파지를 발명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들이 우주선의 연료를 ‘배양하려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아스트로파지를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태양에너지의 궁극인 아스트로파지를. 내가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지마자 저들이 해결책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 우주선에 올라와 내 머릿속에 알을 까든지. 확신할 수는 없는 거니까.

나는 안쪽 에어로크 문을 열고 EVA 우주복을 꺼낸다. 음, 내가 이걸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 아니면 이걸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든지?

나는 올란-MKS2 EVA 우주복이라는 고치에 달린 자물쇠를 해제하고 뒤쪽 해치를 연다. 벨트에 달린 스위치를 젖혀 주 전원을 가동한다. 우주복은 거의 즉시 작동되고, 가슴 부품에 장착된 상태 패널에는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표시된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 있다니.

아마 우리는 이런 일에 관한 광범위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물리학에 대해 아는 것만큼이나 EVA 우주복 작동법을 잘 알고 있다. 관련된 정보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데,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

러시아제 우주복은 단일 압력식이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착용한 다음 헬멧과 장갑으로 쓸 복잡한 장비를 여러 개 장착하는 미국제 우주복과는 달리 올란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등에 해치가 달린 원피스다. 우주복 안으로 들어가서 해치를 닫으면 끝이다. 곤충이 껍질을 벗고 나오는 과정을 거꾸로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우주복 뒤쪽을 열고 우주복 안으로 몸을 욱여넣는다. 이럴 때는 무중력상태가 정말 행운이다. 평소라면 우주복과 한참 씨름해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상한 일이다. EVA 우주복을 착용했던 다른 경우보다 지금이 더 쉽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 ‘다른 경우’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니. 그놈의 혼수상태 때문에 뇌손상을 입은 것 같다.

그래도 당장은 움직일 수 있다. 나는 계속 밀어붙인다.

두 팔과 다리를 각각의 맞는 구멍에 집어넣는다. 올란 안에서 입고 있자니 작업복이 불편하다. 원래 올란을 착용할 때는 특수 속옷을 입어야 한다. 나는 그 속옷이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옷은 그냥 체온 조절과 생체 신호 관찰을 위한 것이다. 그 옷을 찾을 시간은 없다. 나는 지금 원통과의 데이트를 앞두고 있으니까.

우주복을 입고 난 지금, 나는 열려 있는 우주복 뒤의 덮개를 벽에 대고 닫느라 에어로크 벽에 기대고 두 다리로 반대쪽 벽을 민다. 덮개가 몇 인치 안에 들어오자(센티미터라고 해야겠지. 어쨌든 이건 러시아제이니 말이다) 가슴에 장착된 상태 패널에 초록색 불이 들어온다. 나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을 그 패널에 대고 자동 밀폐 버튼을 누른다.

철컥하는 큰 소리가 연달아 나면서 우주복은 구멍을 래칫(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게 되어 있는 톱니바퀴‐옮긴이)으로 잠근다. 마지막으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외부 봉인이 제자리에 들어간다. 상태창은 초록색이다. 나는 일곱 시간 동안 생명 유지 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 내부 기압은 400헥토파스칼이다. 지구 해수면 기압의 40퍼센트 정도다. 우주복에서는 이 정도가 정상이다.

이 모든 과정에 겨우 5분이 걸렸다. 이젠 나갈 준비가 되었다.

재미있는데. 나는 감압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 고향의 우주정거장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EVA 우주복에 필요한 저기압에 천천히 순응하느라 몇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한테는 그런 문제가 없다. 헤일메리호 전체가 40퍼센트 기압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괜찮은 설계다. 지구 주변 우주정거장들이 온전한 기압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주비행사들이 임무를 중지하고 서둘러 지구로 귀환해야 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헤일메리호의 승조원들은… 우리야 어디로 가겠는가? 늘 저기압을 쓰는 게 낫지. 그러면 선체에서의 작업도 쉬워지고, 신속하게 선외활동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등 뒤 어딘가에서 부드럽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시원한 공기가 등과 어깨를 따라 흐른다. 에어컨. 기분 좋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몸을 돌린다. 에어로크 내부 문을 당겨서 닫은 다음, 주 레버를 돌려 순환 단계를 시작한다. 펌프가 작동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끄럽다. 시동을 건 채 세워둔 오토바이 같은 소리가 난다. 나는 레버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그 레버를 원래 자리로 다시 밀면 순환이 취소되고 기압이 원 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우주복 패널에 빨간 불이 들어오려는 기미라도 보이면, 나는 머리가 핑핑 돌 만큼 빠른 속도로 그 레버를 젖힐 것이다.

1분 뒤에는 펌프가 조용해진다. 그런 뒤에는 더 조용해진다. 어쩌면 전혀 조용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주복 내부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바닥 벨크로 패드에 닿아 있는 내 두 발을 통하지 않고는 소음이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펌프가 멈춘다. 우주복 내부의 환풍기 소리가 날 뿐 나는 완전한 정적 속에 있다. 에어로크 제어반은 내부 기압이 0임을 보여준다. 노란 불이 초록색으로 바뀐다. 이제는 외부 문을 개방해도 된다.

나는 해치의 크랭크를 잡고 망설인다.

“나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말한다.

이게 정말 좋은 생각일까? 나는 저 원통을 너무 갖고 싶어서, 계획 비슷한 것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게 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그럼. 말할 것도 없다.

그래, 그렇지만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내가 일을 망치고 여기에서 죽어버리면 헤일메리 프로젝트 전체가 쓸모없게 될 테니 말이다.

흠.

그래. 그렇더라도 가치가 있다. 나는 저 외계인들이 어떤 존재인지, 저들이 뭘 원하는지, 또 뭘 말하려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정보가 있을 것이다. 어떤 정보라도 정보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차라리 몰랐으면 싶은 정보라 하더라도.

나는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연다. 우주의 공허한 암흑이 펼쳐져 있다. 타우세티의 불빛이 문에 닿아 반짝인다. 나는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내 두 눈으로 직접 타우세티를 본다. 이 정도 거리에서 보니, 타우세티는 지구에서 본 태양보다 살짝 덜 밝다.

나는 우주선에 잘 연결되어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느라 연결용 사슬을 두 차례 확인한 다음 우주로 나선다.



나, 꽤 잘하잖아?

엄청 연습을 한 게 틀림없다. 중성 부력 탱크 같은 데서 했겠지. 내게는 이 움직임이 제2의 본능처럼 느껴진다.

나는 에어로크에서 나가 연결용 사슬 중 하나를 선체 외부의 레일에 죔쇠로 연결한다. 사슬은 늘 두 개를 가지고 다니며 최소 한 개는 언제나 연결해 둔다. 그렇게 하면, 우주선에서 멀리 둥실둥실 떠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올란-MKS2는 여태까지 만들어진 EVA 우주복 중 가장 좋은 것일지 모르나, 나사의 EMU 우주복과는 달리 SAFER(Simplified Aid For EVA Rescue, 긴급한 상황에 사용하는 유인 기동장치‐옮긴이) 장치가 없다. 적어도 SAFER 장치가 있으면, 표류한 뒤에도 우주선으로 돌아올 수 있는 최소한의 추진력이 생기는데 말이다.

그 모든 정보가 즉시 내 머릿속으로 흘러든다. 나는 우주복에 대해서 매우 오랫동안 생각해 본 듯하다. 혹시 내가 우리 팀의 선외활동 전문가인 걸까? 모르겠다.

나는 선바이저를 밀어올리고 블립A 쪽을 바라본다. 직접 블립A를 보면 특별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블립A는 꽤 멀리 떨어져 있다. 헤일메리호의 망원경으로 보는 게 훨씬 나았다. 그렇긴 해도 외계 우주선을 직접 보는 데는 뭔가…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원통의 반짝임이 내 눈에 포착된다. 부드럽게 구르는 원통 양쪽 끝이 이따금 타우빛을 반사한다.

아, 나는 ‘타우빛’이라는 말을 한 단어로 쓰기로 했다. 타우세티에서 나오는 빛이라는 뜻으로, 저게 ‘햇빛’은 아니니까. 타우세티는 해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 타우빛이다.

원통이 우주선에 닿기까지는 20분이 넉넉하게 남아 있다. 나는 원통이 우주선의 어느 부위에 닿을지 짐작해 보며 그것을 잠시 지켜본다. 레이더 기지에 동료 승조원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어디든 동료 승조원이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5분 뒤, 나는 원통의 향방을 제대로 추측한다. 원통은 대략 우주선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다. 외계인이 조준하기에는 그만한 자리도 없다.

나는 선체를 가로질러 나아간다. 헤일메리호는 꽤 크다. 기압이 존재하는 나만의 작은 공간은 헤일메리호 전체 길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우주선의 뒤쪽 절반은 이제 보니 폭이 세 배쯤 된다. 그 대부분이 지금은 비어 있을 것이다. 이곳까지 편도 여행을 올 때는 가득 차 있었겠지만.

레일과 EVA 우주복을 연결할 연결 지점들이 선체를 십자로 뒤덮고 있다. 차례차례 연결하고 레일을 지나며 나는 우주선의 중심부로 나아간다.

나는 두꺼운 고리를 넘어가야 한다. 그 고리는 우주선의 승조원실 부분을 휘감고 있다. 넉넉히 2피트 두께는 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무거울 것이다. 우주선 설계에서는 질량이 모든 것을 말하므로 중요한 게 틀림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 봐야지.

나는 선체 연결 부위를 한 번에 하나씩 지나며 계속 나아간 끝에, 선체의 중심부쯤에 도착한다. 원통이 천천히 가까워진다. 나는 원통과 박자를 맞추려고 자세를 약간 조정한다. 견디기 힘들 만큼 오래 기다린 끝에, 원통이 거의 내 손 닿는 곳에 이른다.

나는 기다린다. 욕심 낼 필요 없다. 너무 일찍 건드리면 원통을 지금의 궤도에서 쳐내 우주로 날려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면 원통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외계인들 앞에서 멍청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녀석들은 지금 틀림없이 나를 보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내 팔다리 수를 헤아려보고, 내 몸집을 가늠해 보고, 어느 부위부터 먹어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어쨌든.

나는 원통이 점점 다가오게 내버려둔다. 원통은 시속 1마일에 못 미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딱히 송곳처럼 정확하다고는 못하겠다.

이제 원통은 내가 그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다. 전혀 크지 않다. 캔 커피 모양에 크기도 비슷하다. 투박한 잿빛에,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좀 더 어두운 회색의 얼룩무늬가 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블립A의 선체와 유사하다. 색깔은 다르지만 부스럼이 핀 것 같은 모습은 똑같다. 어쩌면 멋이라고 낸 걸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난 얼룩무늬가 이번 시즌 ‘잇템’이라든지.

원통이 내 품으로 날아 들어오고 나는 두 손으로 원통을 잡는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질량이 적다. 어쩌면 텅 비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원통은 뭔가를 담는 용기다. 이 안에 외계인들이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물건이 들어 있다.

나는 한쪽 팔에 원통을 끼고 다른 팔을 사용해 연결용 사슬을 다룬다. 나는 서둘러 에어로크로 돌아간다. 멍청한 짓이다. 서두를 필요 같은 건 없다. 게다가 서두르면 문자 그대로 내 목숨이 위험해진다. 한 번만 실수해도 나는 우주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도무지 기다릴 수가 없다.

나는 우주선으로 돌아와 에어로크를 순환시킨 다음 나의 상품을 손에 들고 통제실로 둥실둥실 떠간다. 나는 올란 우주복을 연다. 머리로는 이미 원통에 어떤 실험을 해볼지 생각하고 있다. 나는 실험실 하나를 통째로 쓸 수 있으니까!

냄새가 즉시 코를 찌른다. 나는 헛숨을 들이켜고 기침한다. 나쁜 원통!

아니, 나쁘지 않다. 냄새가 나쁜 것이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다. 익숙한 화학적 냄새다. 뭐지? 고양이 오줌?

암모니아. 암모니아다.

“그래.” 나는 숨쉬기가 힘들어 쌕쌕거린다. “그래. 생각해 보자.”

내 직감은 우주복을 다시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는 이미 여기에 들어와 있는 암모니아와 함께 부피가 작은 공간에 갇힐 뿐이다. 원통이 뿜어낸 기체를 우주선 안, 부피가 더 큰 공간으로 내보내는 게 낫다.

암모니아는 독성이 없다. 소량의 암모니아는 그렇다. 내가 아직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통해 암모니아가 소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폐는 부식성 화상을 입었을 테고 나는 지금쯤 의식을 잃거나 죽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고약한 냄새가 날 뿐이다. 고약한 냄새쯤은 견딜 수 있다.

내가 우주복 뒤로 기어 나오는 동안 원통은 제어실 한가운데를 떠다닌다. 암모니아가 더 이상 놀랍게 느껴지지 않자 나는 암모니아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이건 작은 방에서 윈덱스(유리 세정제의 상표‐옮긴이)를 사용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기분은 나쁘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나는 원통을 잡는데… 세상에, 너무 뜨겁다!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뗀다. 나는 잠시 두 손에 바람을 불며 화상을 살핀다.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가스레인지처럼 뜨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뜨겁긴 했지만.

맨손으로 원통을 잡은 것은 멍청한 일이었다. 논리적 오류다. 전에 원통을 들고도 괜찮았으니 지금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전에는 내 손을 보호해 주는 아주 두꺼운 우주복 장갑이 있었다.

“너 정말 나쁜 외계인 원통이로구나.” 나는 원통에게 말한다. “생각하는 의자에 보내야겠어.”

나는 소매에 팔을 집어넣고 손을 소맷부리로 감싼다. 나는 이제 보호받고 있는 손마디로 원통을 툭 쳐 에어로크에 집어넣는다. 일단 원통이 안에 들어가고 나자 문을 닫는다.

지금은 원통을 가만히 놔둘 것이다. 원통은 결국 주변 기온에 맞게 식을 터였다. 나는 원통이 그렇게 식어가는 동안 내 우주선 안을 아무렇게나 떠다니는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 에어로크 안에는 열기 때문에 손상될 만한 것이 없을 듯하다.

얼마나 뜨거웠더라?

글쎄, 나는 아주 잠깐 동안 (멍청이처럼) 두 손을 원통에 댔다. 내 반응 속도만으로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니까 원통은 아마 섭씨 100도 미만일 것이다.

나는 몇 차례 손을 폈다가 쥔다. 더는 아프지 않지만 고통의 기억은 남아 있다.

“그 열이 어디서 온 걸까?” 나는 웅얼거린다.

원통은 저 바깥 우주에 40분은 머물렀다. 그 시간 동안 원통은 흑체 복사(일정한 온도에서 열평형을 이루는 물체가 복사만으로 열을 내보내는 현상‐옮긴이)를 통해 열을 방출했어야 한다. 원통은 차가웠어야지, 뜨거워서는 안 됐다. 나는 타우세티에서 1천문단위쯤 떨어져 있고, 타우세티는 태양의 절반에 해당하는 밝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타우빛이 원통의 온도를 많이 올렸을 리는 없을 듯하다. 흑체복사로 원통이 식는 것 이상으로 온도를 높였을 리는 절대로 없다.

그러니까 원통 안에 가열기가 들어 있든지, 원통이 이동을 시작했을 때 극도로 뜨거웠다고 봐야 한다. 그야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원통은 별로 무겁지 않으니, 아마 겉면이 얇을 것이다. 내부에 열원이 없다면 이곳의 공기에 맞춰 매우 빠르게 식을 것이다.

통제실에서는 아직도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우웩.

나는 실험실로 둥실둥실 떠내려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원통이 어떤 물질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블립A의 승조원들에게는 무해한 것이 내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유독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블립A의 승조원도, 나도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방사선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나는 실험대로 떠가서 손을 뻗어 자세를 잡는다. 무중력에서 뭔가 하는 데 점점 익숙해져 간다. 어떤 사람들은 무중력상태에서도 잘 지내고, 다른 사람들은 심하게 고생한다던 우주비행사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나는 운 좋은 축에 드는 듯하다.

여기서 ‘운 좋다’는 말은 막연하게 쓴 것이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러니까 … 뭐.

실험실은 미스터리다. 미스터리가 된지 꽤 됐다. 이 실험실은 중력이 있으리라는 가정 하에 설치된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는 탁자, 의자, 시험관 거치대 등이 있다. 무중력 환경에서 볼 만한 평범한 물건들은 하나도 없다. 벽에 벨크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바닥’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

우주선은 아무 문제없이 가속할 수 있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우주선은 아마 몇 년 동안 나를 1.5g 상태에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실험실의 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냥 엔진을 켜놓고 원을 그리며 날아다닐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실험 장비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긴장한 마음을 풀어보려 한다. 실험실이 이런 모양인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내 기억 어딘가에 있을 테고. 비법은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되, 그 생각에 너무 힘을 주지는 않는 것이다. 잠들 때와 비슷하다. 너무 집중하면 사실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최첨단 실험 장비가 아주 많다. 나는 그 모든 장비를 훑어보면서 마음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게 놔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