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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 도착했을 때쯤 나는 날짜를 완전히 잊었다.

컴퓨터 속 아스트로파지 배양기 모델의 성능은 현실 세계에서의 성능과 별로 일치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거의 20그램의 아스트로파지를 배양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리저리 시도해 봤는데도 항공모함의 원자로는 결국 반응속도를 그 이상 빠르게 할 만큼 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스트라트는 작업을 계속하게 해줄 열원이 제공될 거라는 모호한 말을 반복했지만, 아직까지는 아무 성과가 없었다.

호화로운 자가 항공기가 게이트에 멈춰 섰을 때도 나는 컴퓨터로 타자를 치고 있었다. 나는 스트라트가 옆구리를 쿡 찔러서야 겨우 작업을 멈추었다.

세 시간 뒤, 우리는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늘 회의실이었다. 그즈음 내 삶은 회의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이번 회의실은 다른 대부분의 회의실보다 나았다. 화려한 목재 마감도 있고, 우아한 마호가니 탁자도 있었다. 정말이지 그럴싸했다.

스트라트와 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열전도율 계수를 연구하고 있었고, 스트라트는 알 수 없는 그녀만의 작업을 하느라 노트북 키보드를 쳐댔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뚱한 표정의 여성이 회의실에 들어와 스트라트 맞은편에 앉았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트라트 씨.” 그 여성이 노르웨이어 억양이 섞인 영어로 말했다.

“저한테 고마워하실 건 없습니다, 로켄 박사님.” 스트라트가 말했다.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니까요.”

나는 노트북을 들여다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전 스트라트 씨가 이번 일정을 잡은 줄 알았는데요.”

스트라트는 노르웨이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가 이 일정을 잡은 건, 여섯 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동시에 전화를 걸어서 이 일정을 잡으라고 잔소리를 해댔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물러선 거죠.”

“그런데 그쪽은…?” 로켄이 내게 물었다.

“라일랜드 그레이스입니다.”

로켄은 말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그 라일랜드 그레이스요? 《물 기반 이론에 관한 분석과 진화 모델 예측에 관한 재평가》를 쓴?”

“네, 뭐 문제 있습니까?” 내가 말했다.

스트라트가 내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유명하시네요.”

“악명이 높은 거겠죠.” 로켄이 말했다. “이 사람이 쓴 유치한 논문은 과학자 공동체 전체의 뺨을 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 사람을 밑에 두고 계신가요? 해괴하네요. 이 사람이 외계 생명체에 대해서 내놨던 모든 추정이 틀린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보세요. 제 주장은 생명체가 진화하는 데 물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물을 활용하는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게 제 말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죠.”

“그런 뜻이 맞죠, 당연히. 독자적으로 진화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생명체가 모두 물을 필요로 한다면….”

“독자적이라고요?” 내가 코웃음 쳤다. “미쳤어요? 진심으로 미토콘드리아처럼 복잡한 게 동일한 방식으로 두 번이나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건 명백히 판스페르미아설(지구에 생존하는 생명체의 기원이 우주에서 유입되었다는 가설이다‐옮긴이)을 뒷받침하는 사건입니다.”

로켄은 성가신 날벌레라도 된다는 듯 손을 저어 내 말을 물리쳤다. “아스트로파지의 미토콘드리아는 지구의 미토콘드리아와 아주 달라요. 별개로 진화한 게 분명합니다.”

“그 둘은 98퍼센트가 동일해요!”

“흠흠.” 스트라트가 말했다. “두 분이 뭘 놓고 싸우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이만 ….”

나는 로켄을 가리켰다. “이 멍청이는 아스트로파지가 독자적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답니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와 지구의 생명체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건 분명해요!”

“아주 흥미로운 생각입니다만 ….”

로켄이 탁자를 쾅 쳤다. “도대체, 공통의 조상이 성간 우주를 넘어서 두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까?”

“아스트로파지처럼 했겠죠!”

로켄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럼 우리가 여태껏 성간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요?”

내가 로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몰라요. 우연인가 보지.”

“미토콘드리아의 차이점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40억 년에 걸친 다양한 진화로요.”

“그만하시죠.” 스트라트가 침착하게 말했다. “뭐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 과학자 디스 대회 같은 건가요? 우린 그러자고 여기 온 게 아닙니다. 그레이스 박사님, 로켄 박사님, 앉아 주세요.”

나는 털썩 자리에 앉아 팔짱을 꼈다. 로켄도 똑같이 했다.

스트라트가 펜대를 돌렸다. “로켄 박사님, 저를 괴롭히라고 각국 정부를 괴롭히셨던데요. 그것도 반복적으로, 밤낮으로.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으신 건 알겠습니다만, 저는 이 프로젝트를 거대한 국제적 난장판으로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늘 벌어지는 정치질이나 내 세상 만들기를 할 시간이 없어요.”

“저라고 좋아서 여기 온 줄 아십니까?” 로켄이 말했다. “제가 스트라트 씨만큼이나 큰 불편을 감수하면서 여기에 온 이유는, 헤일메리호의 중대한 설계상 오류를 전달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트라트가 한숨을 쉬었다. “예비 설계도를 발송한 건 일반적인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네바에 출두하시라는 뜻이 아니고요.”

“그럼 제 말을 ‘일반적 피드백’이라고 치세요.”

“이메일로 보내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랬으면 삭제하셨겠죠. 제 말 들으셔야 합니다, 스트라트 씨. 중요한 일이에요.”

스트라트는 몇 번 더 펜을 돌렸다. “뭐, 어쨌든 여기 왔으니까요. 말해보시죠.”

로켄이 목을 가다듬었다. “제가 잘못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헤일메리호의 목적은 실험실 역할을 하는 겁니다. 타우세티로 실험실을 보내서 왜 타우세티라는 별이, 오직 그 별만이 아스트로파지에 면역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거죠.”

“맞습니다.”

로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주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탑재된 실험실이라는 점에는 스트라트 씨도 동의하시겠네요?”

“네.” 스트라트가 말했다. “실험실이 없다면 이 임무는 무의미합니다.”

“그럼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로켄이 핸드백에서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스트라트 씨가 탑재하고 싶어 하는 실험실 장비 목록을 가져왔습니다. 분광계, DNA 염기 서열 분석기, 현미경, 화학 실험실용 유리제품….”

“목록은 알고 있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 목록을 결재해 준 사람이 접니다.”

로켄 박사는 탁자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 장비 대부분은 무중력상태에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스트라트가 눈알을 굴려댔다. “그런 문제야 당연히 생각해 뒀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회사들이 무중력상태에서 작동되는 버전의 이 실험 장비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로켄은 고개를 저었다. “전자현미경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 개발이 이루어졌는지 알기는 아세요? 가스 크로마토그래프에는요? 이 목록에 들어가 있는 다른 모든 장비는요? 이건 백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루어낸 과학적 성과입니다. 이런 장비를 무중력상태에서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작업이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할 거라고 그냥 가정하실 생각인가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인공 중력을 발명할 게 아니라면.”

“우린 인공 중력을 이미 발명했어요.” 로켄이 주장했다. “한참 전에요.”

스트라트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분명 예상치 못한 말인 듯했다.

“원심분리기 얘긴 거 같네요.” 내가 말했다.

“원심분리기 얘기라는 건 알아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각 안 해봤습니다. 제 생각엔… 가능은 할 것 같은데….”

스트라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택도 없습니다. 우린 단순성을 유지해야 해요. 최대한 단순해야 합니다. 크고 단단한 우주선에, 움직이는 부분은 최소로 합니다. 복잡해질수록 더 많은 오류를 감수해야 할 거예요.”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입니다.” 로켄이 말했다.

“그런 걸 만들려고만 해도 헤일메리호에 엄청나게 큰 균형추를 달아야 합니다.” 스트라트가 입을 꽉 다물었다. “유감입니다만, 현재의 질량 한계를 감당할 만큼의 아스트로파지를 만들 에너지도 간신히 확보했어요. 아스트로파지를 그냥 두 배로 늘릴 수는 없습니다.”

“잠깐만요. 연료를 만들 에너지를 전부 확보했습니까? 대체 언제…?” 내가 말했다.

“질량을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로켄이 말했다. 로켄은 핸드백에서 다른 종이를 꺼내 탁자에 쾅 내려놓았다. “현재 설계대로 가되 승조원실과 연료 탱크 사이를 반으로 나누세요. 양측의 질량비가 원심분리기를 만들기에 적당합니다.”

스트라트는 도면을 들여다보았다. “연료 전부를 한쪽에 몰아놓으셨네요. 200만 킬로그램을.”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연료는 다 쓰고 없을 겁니다.”

둘 다 나를 보았다.

“자살 임무잖아요.” 내가 말했다. “승조원들이 타우세티에 도착했을 때쯤엔 연료가 없을 겁니다. 로켄 박사는 우주선 뒤쪽이 앞쪽의 세 배 무게가 되는 점에 분할 점을 설정했습니다. 원심분리기로 쓰기에는 적절한 질량비예요. 말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로켄이 말했다.

“우주선을 어떻게 반으로 자릅니까?” 스트라트가 물었다. “그 우주선이 어떻게 원심분리기가 되죠?”

로켄은 도면을 뒤집었다. 반으로 나뉜 우주선 두 부분의 연결부를 그린 자세한 그림이 드러났다. “승조원실과 우주선 나머지 부분 사이에 자일론 케이블이 감긴 스풀을 둡니다. 100미터 간격을 두면 중력 1g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스트라트가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여기, 혹시 누가 생각을 바꾸셨나요?

“복잡해지는 건 마음에 안 듭니다만 ….” 그녀가 말했다. “위험 요소가 마음에 안 들어요.”

“이렇게 하면 복잡성도, 위험도 제거됩니다.” 로켄이 말했다. “우주선도, 승조원도, 아스트로파지도… 이 모든 게 실험 장비를 지원할 시스템일 뿐이에요. 믿을 만한 실험 장비가 꼭 필요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백만 시간에 이르는 상업적 이용 시간을 확보한 물건들이요. 이런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오류가 해결됐습니다. 1g의 중력만 있으면, 이 장비들의 완성도를 높일 때와 같은 환경만 확보하면 그 모든 신뢰성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흠.”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레이스 박사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저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입니까?”

“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린 이미 1.5g 정도에서 4년 동안의 지속적인 가속력을 견딜 수 있는 우주선을 설계해야 하잖아요. 우주선은 꽤 튼튼할 겁니다.”

스트라트는 로켄의 도표를 더 오래 살펴보았다. “이렇게 하면 승조원실의 인공 중력은 방향이 반대가 되지 않습니까?”

스트라트의 말이 맞았다. 헤일메리호는 ‘아래쪽’이 ‘엔진 방향’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우주선이 가속하면 승조원들은 바닥을 향해 ‘아래쪽’으로 압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원심기 내에서 ‘아래쪽’은 늘 ‘회전축에서 먼 쪽’이다. 그러므로 승조원은 모두 우주선의 앞쪽으로 밀리게 된다.

“네, 그게 문제일 거예요.” 로켄은 도면을 가리켰다. 케이블은 승조원실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양옆의 커다란 원반 두 개에 부착되어 있었다. “케이블은 이 커다란 경첩에 연결됩니다. 우주선의 앞쪽 절반 전체는 180도 회전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원심분리기 모드일 때는 우주선의 앞쪽이 나머지 절반이 있는 쪽, 그러니까 안쪽을 향하게 됩니다. 승조원실 내부에서는 중력이 우주선 앞부분에서 먼 쪽으로 작용할 겁니다. 엔진이 추진하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죠.”

스트라트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건 상당히 복잡한 기계 장치예요. 우주선을 반으로 나누게 될 거고요. 진심으로 이게 위험 요소를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막 출시되어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실험 장비를 쓰는 것보다는 위험도가 낮죠. 제 말 믿으세요. 저는 거의 커리어를 쌓는 내내 민감한 장비를 다뤄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런 장비들은 이상적인 환경에서도 지나치게 까다롭고 망가지기 쉬워요.”

스트라트는 펜을 들고 탁자를 몇 번 두드렸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로켄이 미소 지었다. “잘 됐네요. 보고서를 작성해 UN 쪽으로 보내겠습니다. 위원회를 만들고….”

“아뇨, 내가 그렇게 하자고 했잖습니까.” 스트라트가 일어섰다. “이제부터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겁니다, 로켄 박사님. 짐 싸서 제네바 공항으로 나오세요. 3번 터미널, ‘스트라트’라는 이름이 붙은 전용기입니다.”

“뭐라고요? 저는 ESA 소속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뭐, 걱정 마세요.” 내가 말했다. “스트라트 씨가 로켄 박사님 상사인지 상사의 상사인지 뭔지한테 전화를 걸어서 박사님을 자기 밑으로 발령 내 달라고 할 겁니다. 방금 선발되신 거예요.”

“전…. 저는 직접 이걸 설계하겠다고 자원한 게 아닌데요.” 로켄이 항의했다. “단순히 지적만 하려던….”

“로켄 박사님이 자원하셨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만.” 스트라트가 말했다. “어느 모로 보나 이건 자발적 참여가 아닙니다.”

“나한테 그냥 당신 밑에서 일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스트라트는 이미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 시간 뒤 공항에서 봅시다. 아니면 스위스 헌병대를 시켜서 두 시간 뒤 박사님을 끌고 오라고 하겠습니다. 박사님이 선택하세요.”

로켄은 얼이 빠진 채 문을 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있다 보면 익숙해져요.” 내가 말했다.



이 우주선은 원심분리기다! 이제 전부 기억난다!

‘케이블 연결부’라는 이름의 신비스러운 영역이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스풀에 감긴 자일론 케이블이 있는 곳이 그곳이다. 이 우주선은 절반으로 나뉘어 승조원실을 뒤집은 다음 회전할 수 있다.

승조원실을 뒤집는 부분. 선외활동을 하던 중 내가 선체에서 보았던 그 이상한 고리가 바로 그 부분이다! 이제는 설계도가 기억난다. 우주선에는 커다란 경첩 두 개가 달려 있어서, 원심분리기를 작동시키기 전에 승조원실을 뒤집을 수 있다.

이상하게도 아폴로 우주선이 생각나는 설계다. 아폴로호 역시 발사시에는 달 착륙선이 사령선 아랫부분에 부착되어 있지만, 달로 가는 동안에는 사령선이 분리되어 뒤집힌 다음, 달 착륙선과 다시 연결된다. 보기에는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경우다.

나는 조종실로 다시 둥실둥실 떠올라, 다양한 제어판의 화면들을 휙휙 넘겨본다. 내가 원하는 화면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화면으로 이동한다. 마침내 나는 문제의 화면을 발견한다. ‘원심분리기’ 화면이다. 이 화면은 생명 유지 장치 화면 속의 하위 패널로 숨겨져 있었다.

아주 단순해 보인다. 빗놀이 축, 상하 요동, 기울기를 나타내는 수치가 우주선의 현재 상태를 보여준다. 내비게이션 패널과 똑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승조원실 각도’라는 이름이 붙은 별도의 수치들이 있다. 이게 승조원실을 뒤집는 부분일 것이다. 각 수치는 ‘초당 0°’다.

그 수치 아래에는 ‘원심분리기 가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버튼이 있다. 그 아래에는 회전 가속도, 최종 속도, 스풀 속도, 실험실 바닥의 중력 추정치와 관련된 숫자들이 있고, 스풀 상태를 나타내는 네 개의 화면(스풀이 양쪽에 두 개씩 네 개 있는 모양이다)과 문제가 발생할 경우 따라야 하는 비상 프로토콜, 나로서는 이해한다는 시늉조차 못할 아주 많은 정보가 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표지에 값이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란 사랑스러운 존재다. 사람이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모든 생각을 대신해 주니까.

비상 프로토콜 모드를 더 자세히 살펴본다. 그냥 ‘회전 속도 줄이기’라고만 적혀 있다. 내가 그 표시를 건드리자 드롭다운 메뉴가 나타난다.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은 ‘회전 속도 줄이기’, ‘모든 스풀 정지’ 그리고 ‘분리’라는 빨간색 선택지인 듯하다. 확실히 ‘분리’는 안 하고 싶다. ‘회전 속도 줄이기’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우주선을 천천히 감속하는 데 쓰는 것 같다. 괜찮아 보여서, 그 선택지를 설정해 둔다.

나는 원심분리기를 작동시키려다 말고 멈춘다. 모든 게 잘 연결되어 있으려나? 갑자기 우주선에 엄청난 힘을 가해도 안전할까? 나는 그런 우려를 떨쳐버린다. 이 우주선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속해 왔다. 원심분리기 조금 작동시킨다고 무슨 문제가 있을 리는 없겠지?

그렇지?

수백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그래왔듯 나는 이 시스템을 설계한 엔지니어들의 손을 믿고 내 목숨을 맡긴다. 그 엔지니어가 아마 로켄 박사이겠지. 일을 제대로 해준 거였으면 좋겠는데.

나는 버튼을 누른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버튼을 제대로 누른 건지, 과거에 핸드폰에 대고 여러 번 해왔듯 그냥 화면을 더듬거렸을 뿐인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우주선 전체에 경고음이 울린다. 귀청을 찢을 듯한 세 차례의 삐 소리가 몇 초마다 반복된다. 어떤 승조원이 됐든 이런 식의 신호를 놓칠 리는 없다. 승조원이 의사소통에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한 최후의 경고인 모양이다.

내 머리 위에서는 페트로바스코프 화면이 잠금 상태로 바뀐다. 이로써 이 우주선을 작동시키는 엔진이 아스트로파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나의 앞선 추정이 확인된다. 뭐, 생각해 보면 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는 확신이 없었다.

삐삐 소리가 멈추고, 사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가 전보다 내비게이션 패널에 가까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나는 통제실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나는 자세를 유지하고 평상시로 돌아오기 위해 팔을 뻗는다. 그런 다음 다시 내비게이션 패널 쪽으로 밀려난다.

“오오.” 내가 말한다.

시작됐다. 나는 내비게이션 패널 쪽으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다. 조종간 전체가 내 쪽으로 밀려오고 있다. 우주선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급격히 방향을 튼다. 우주선이 회전하는 동시에 승조원실이 뒤집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잘못될 수도 있다.

“어…. 좋아!” 나는 벽을 차고 와서 조종석에 앉는다.

몸이 기울어진다. 아니, 통제실이 기울어진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무엇도 기울어지지 않는다. 우주선이 점점 더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가속도를 가속하고 있다. 동시에 우주선의 앞쪽 절반이 뒤쪽과 분리되고 두 개의 커다란 경첩이 회전한다. 이 작업이 종료되면, 우주선의 맨 앞이 우주선의 뒤쪽 절반을 향해 안쪽을 바라볼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힘들은 정말이지 이상하다. 극도로 복잡하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건 컴퓨터의 역할이다.

나는 원심분리기 패널을 지켜본다. 상하 요동율은 초속 0.17도다. ‘구역 간 거리’라고 적힌 수치는 2.4미터다. 작은 삑 소리가 들리고 ‘승조원 구역 각도’의 수치가 깜빡인다. 180도다. 이 모든 단계가 시스템이나 승조원, 혹은 둘 모두에게 전해질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잘 계산된 듯하다.

좌석이 내 몸을 밀어내면서, 나는 엉덩이에 약간의 압력을 느낀다. 변형은 아주 매끄럽게 이루어진다. 나는 기울어지는 방처럼 느껴지는 공간에서 점점 더 커지는 중력을 경험한다. 이상한 감각이다.

나도 논리적으로는 내가 빠르게 회전하는 우주선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는 밖을 내다볼 만한 창문이 없다. 그저 화면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블립A를 가리키고 있는 망원경을 확인한다. 배경의 별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망원경이 나의 회전을 어떤 식으로든 고려해 상쇄시키고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건 아마 까다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카메라가 회전 중심축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두 팔이 점점 무거워져서 나는 팔걸이에 팔을 얹는다. 꽤 오랜만에 처음으로 목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

원심분리기로의 변환 단계가 시작된 지 약 5분 뒤, 나는 정상적인 지구 중력에 약간 못 미치는 중력을 경험한다. 네 번의 신호음이 변환 단계가 종료되었음을 알린다.

나는 원심분리기 화면을 확인한다. 화면에는 초당 20.71도의 상하 요동율과 총 104미터의 구역 간 거리, 1.00g의 ‘실험실 중력’이 표시된다.

우주선 도면은 우주선이 두 부분으로 쪼개져, 승조원 구역의 앞부분이 나머지 절반을 향해 안쪽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부분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시스템 전체가 천천히 회전한다. 뭐, 실제로는 꽤 빠르게 회전하는 것이지만 이런 규모에서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의자에서 일어나 에어로크로 간 다음 해치를 연다. 암모니아 냄새가 다시 조종석으로 흘러들어 오지만, 전처럼 고약하지는 않다. 외계의 물건이 바닥에 놓여 있다. 나는 온도를 헤아려 보려고 손가락으로 그 물건을 빠르게 만져본다. 여전히 따뜻하지만, 더는 살가죽을 벗겨버릴 만큼 뜨겁지는 않다. 내부 가열기라든가 하는 이상한 물건은 없다. 그냥 정말로 뜨거운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는 원통을 집어든다. 이 원통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조종석을 떠나기 전, 나는 망원경 화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근처에 있는 외계 우주선이 뭘 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은가 보다.

블립A가 우주에서 빙빙 돌고 있다. 빙글빙글 회전한다. 아마 헤일메리호와 정확히 같은 속도로 회전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원심분리기를 회전시키자, 이게 또 한 번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지능이 있는 외계 종족과 나눈, 인류의 첫 의사소통 오류. 내가 거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니 기분이 좋다.



실험대에 원통을 올려놓는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어디든 좋지!

나는 가이거계수기를 가지고 원통이 방사선을 내뿜는지 확인한다. 그렇지 않다. 좋은 일이다.

원통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껴보려고 단단한 물건으로 그것을 찔러본다. 단단하다.

금속처럼 생겼지만, 감촉은 별로 금속 같지 않다. 나는 멀티미터(전압・전류・저항 등 많은 전기량을 재는 다목적 계기‐옮긴이)를 사용해 이 원통이 열이나 전기 등을 전달하는지 확인한다. 전달하지 않는다. 흥미로운데.

나는 망치와 정을 가지고 온다. 원통 재질의 조각을 작게 떼어내 가스 크로마토그래프에 돌려보고 싶다. 그러면 이 원통이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망치로 몇 번 내리치자 정이 이가 빠진다. 원통에는 작은 흠집 하나 생기지 않는다.

“흠.”

그대로 가스 크로마토그래프에 넣기엔 원통이 너무 크다. 하지만 나는 손에 들고 쓰는 엑스레이 분광계를 찾아낸다. 바코드 리더처럼 생겼다. 쓰기 쉽고, 이 원통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대략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크로마토그래프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빠르게 스캔하자 분광계는 내게 원통이 제논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알려준다.

“…뭐?”

나는 분광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려고 강철 실험대를 스캔해 본다. 분광계는 실험대가 철, 니켈, 크롬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원통을 확인해 보고, 첫 번째 실험에서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얻는다. 네 차례 더 실험해 보지만 계속 같은 답이 돌아온다.

왜 그렇게 여러 번 실험했느냐고? 결과가 말이 안 되니까. 제논은 비활성기체다. 그 무엇과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 무엇과도 결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제논은 실온에서 기체 상태다. 그런데 제논이 이 단단한 물질의 일부라고?

그리고 물론 이게 제논으로 가득 차 있는 원통인 것도 아니다.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분광계는 깊은 곳까지 투과하는 스캔 장치가 아니다. 그저 표면에 뭐가 있는지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분광계로 도금된 니켈을 스캔하면, 분광계는 ‘100% 금’이라고 알려줄 것이다. 분광계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니까. 분광계는 원통의 표면에 있는 분자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만 알려줄 수 있다. 그 분자들이 제논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양이다.

손으로 들고 쓰는 이 분광계는 알루미늄보다 원자번호가 낮은 성분은 감지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저 안에는 탄소, 수소, 질소 같은 것들도 들어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지 범위에 들어오는 성분에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나는 순수한 제논을 보고 있다.

“어떻게?”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원통을 빤히 바라본다. 이 얼마나 이상한 물건인가? 영어에서 비활성기체는 ‘고귀한 기체’라고 한다. 그럼 다른 사물과 반응하는 비활성기체는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비천한 기체?

당황하는 데에는 한 가지 좋은 부작용이 따른다. 덕분에 나는 미친 듯이 원통에 덤벼드는 대신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처음으로, 나는 맨 위에서 아래로 1인치 정도 떨어진 곳에 원통의 둘레를 따라 가느다란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본다. 나는 손톱으로 그 선을 더듬어본다. 확실히 움푹 패인 자리다. 뚜껑일까? 어쩌면 그냥 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통을 집어 들고 뚜껑을 당겨 빼본다. 뚜껑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문득 든 생각에 나는 뚜껑을 나사처럼 돌려 빼보려 한다. 뚜껑은 그래도 꼼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계인이 오른쪽은 잠그기, 왼쪽은 열기라는 규칙을 따를 이유는 없지 않을까?

뚜껑을 왼쪽으로 돌리자 뚜껑이 돌아간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나는 계속해서 뚜껑을 돌린다. 90도를 지나자 뚜껑이 헐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두 부분을 당겨 분리한다.

각 부분의 안쪽에서는 복잡한 뭔가가 작동하고 있다. 이것들은 꼭… 무슨 모형 같은데? 두 모형에는 기단에 꼽힌, 고양이 수염처럼 가는 장대들이 달려 있다. 그 장대들이 다양한 크기의 구체로 이어진다. 움직이는 부분은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원통과 똑같이 기이한 물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아래쪽 부분부터 살펴본다. 뭐든 먼저 살펴봐야 하니까.

한 가닥 고양이 수염에 매달린 것은… 추상 조각상인가? 세로로 된 중심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더 가느다란 고양이 수염에 구슬 크기의 구체와 비비탄 크기의 구체가 각기 연결되어 있다. 두 구체의 꼭대기를 연결해 주는, 특이한 포물선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왜지…?



“페트로바선!” 나는 불쑥 소리친다.

나는 외울 만큼 그 호선을 여러 번 보았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나는 큰 구체를 가리킨다. “그럼 네가 항성이겠구나. 그리고 이 작은 녀석이 행성일 테고.”

이 외계인들은 아스트로파지를 알고 있다. 아니면, 최소한 페트로바선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 외계인들은 아스트로파지 동력 장치가 달린 우주선을 타고 있다. 당연히 아스트로파지에 대해서 알겠지. 게다가 우리는 페트로바선이 있는 태양계에서 수다를 떨고 있으니, 그들이 페트로바선을 알고 있다는 점도 별로 놀랍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은 저 외계인들의 고향 항성계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출발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엔진을 깜빡임으로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 저들은 내가 아스트로파지를 사용한다는 것과 내가 (우주선의 도움을 받아) 페트로바 대역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를 통해, 저들은 내가 페트로바선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똑똑하다.

나는 이 뭐시기의 다른 반쪽을 살펴본다. 기단에서 고양이 수염이 수십 가닥이나 솟아올라 있다. 모두 길이가 다른 고양이 수염들은 각기 폭 1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는 구체로 끝난다. 나는 손가락으로 고양이 수염 한 가닥을 건드려 본다. 고양이 수염은 구부러지지 않는다. 나는 점점 더 세게 힘을 준다. 결국, 이 뭐시기가 통째로 실험대에서 미끄러진다. 이 고양이 수염들은 그 정도로 가느다란 다른 어떤 물체보다도 강하다.

다른 물질과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제논은 상당히 강한 물질이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상처를 잘 받는 내 과학자의 마음은 분노하고 만다! 나는 애써 이 문제를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당장의 과제로 돌아간다.

세어 보니 고양이 수염은 모두 서른한 가닥이고, 그 끝마다 구체가 달려 있다. 세는 도중 나는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한다. 고양이 수염 한 가닥이 원반의 정중앙에서 뻗어 나와 있다. 그러나 다른 선들과는 달리 이 가닥은 구체로 연결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잘 살펴보려고 눈을 가늘게 뜬다.

단일한 구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크기의 구체 두 개와 호선이 달려 있다. 그래, 알겠다. 이것은 뭐시기의 다른 절반에 들어 있던 페트로바선 모형을 아주 작게 본뜬 복제품이다. 약 20분의 1 규모로.

그리고 이 작은 페트로바선 모형에는 더 가느다란 고양이 수염이 달려 있다. 그 고양이 수염이 이 모형을 다른 고양이 수염의 끄트머리에 달린 구체와 연결한다. 아니, 구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것도 또 다른 페트로바선 모형이다. 나는 그런 모형이 또 있는지 살펴보려고 뭐시기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지만,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정중앙에 있는 것과 옆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 하나뿐이다.

“잠깐… 자암깐만 ….”

나는 실험실 컴퓨터 패널이 들어 있는 서랍을 꺼낸다. 사실상 무한한 참고 자료를 써볼 시간이다.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는 엄청난 규모의 스프레드시트를 찾아 엑셀에 띄우고(스트라트는 수많은 검증을 거친 기성품들을 좋아한다), 몇 가지 작업을 한다. 머잖아 내가 원하는 데이터 플롯이 마련된다. 결과가 일치한다.

항성들. 고양이 수염 끄트머리마다 달려 있는 작은 구체들은 항성들이다. 당연하다. 항성이 아닌 곳에 페트로바선이 있을 리 없잖은가?

하지만 그냥 아무 항성이나 표시한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특별한 항성이다. 가운데에 있는 타우세티를 기준으로, 이 항성들은 전부 서로에 대해 정확한 상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도의 시점은 조금 이상하다. 구체들을 내가 가진 항성 위치에 관한 데이터 플롯과 일치시키려면, 나는 뭐시기를 30도 각도로 들고 약간 회전시키다시피 해야 한다.

하지만 물론, 지구의 모든 자료는 지구의 궤도면을 참조점으로 삼는다.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우리와 다른 좌표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든, 최종 결과는 똑같다. 뭐시기는 지역 항성들의 지도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중앙의 구체(타우세티)를 다른 구체와 연결하는 작고 가는 실에 엄청난 흥미를 느낀다. 나는 내 자료에서 해당되는 항성을 확인한다. 그 항성의 이름은 ‘40에리다니’이다. 하지만 장담한다. 블립A의 승조원들은 그 항성을 ‘집’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게 메시지였다. “우리는 40에리다니에서 왔습니다. 지금은 여기, 타우세티에 있고요.”

하지만 그것조차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타우세티와 마찬가지로 40에리다니에는 페트로바선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나는 이 사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너희들도 같은 처지란 말이야?” 내가 말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아스트로파지는 인근의 모든 항성을 감염시키고 있다. 이 사람들은 40에리다니에서 왔고, 40에리다니도 지구의 태양처럼 감염된 상태다! 저 사람들도 꽤 괜찮은 과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 우주선을 만들어 타고 타우세티로 가, 왜 타우세티는 죽어가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

“세상에!” 내가 말한다.

그래, 이런 결론은 비약이다. 어쩌면 저들은 자기 항성의 페트로바선에서 아스트로파지를 채취하고 그걸 행운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저들이 아스트로파지를 발명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저들은 페트로바선이 단지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메시지의 의미는 아주 다양할 수 있었다. 그래도 편견을 가진 내 의견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저들도 해결책을 찾으러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외계인이다.

진짜 외계인.

40에리다니에서 온 외계인들. 그럼 저들이 ‘에리다니언’이 되는 건가? 발음도 어렵고, 기억하기는 더 어렵다. ‘에리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에리디언’은 어떨까? ‘이리듐’과 다소 비슷하게 들린다. 주기율표상의 원소 중에서 발음이 괜찮은 축에 드는 원소다. 그래, 에리디언이라고 불러야겠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는 뻔하다.

나는 며칠 전 실험실을 철저히 수색했다. 어느 서랍에 전자 장치 키트가 들어 있다. 문제는 어느 서랍인지 기억하는 것이다.

물론,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심한 욕을 하지 않으면서 실험실을 다시 뒤지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나는 키트를 찾아낸다.

나한테는 ‘제노나이트’(내가 이 기이한 외계인 합성물에 붙인 이름이다.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다)가 없다. 하지만 땜납과 납땜 인두는 있다. 나는 땜납을 작게 떼어내 한쪽 끝을 녹인 다음, 그것을 타우세티 구체에 붙인다. 꽤 잘 붙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제노나이트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모형의 작은 항성들 중 어느 것이 태양인지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나는 철사의 다른 쪽을 태양에 납땜질한다.

나는 실험실을 뒤진 끝에 딱딱한 파라핀을 조금 찾아낸다. 이리저리 찔러대고, 불꽃을 뿜어대고, 약간 욕설을 한 끝에 나는 저들이 내게 보낸 페트로바선 아이콘을 정말이지 형편없이 흉내 낼 수 있게 된다. 나는 그 아이콘을 모형 속 태양에 붙인다. 괜찮아 보인다. 최소한, 저들이 이해할 정도는 되어 보인다.

나는 모형을 한 번 살펴본다. 제노나이트 고양이 수염의 날렵하고 가느다란 선은 내가 덧붙인,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땜납과 쓰레기 같은 밀랍으로 이루어진 모형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다. 다빈치 작품 한 귀퉁이에 크레용으로 낙서를 한 것 같지만, 이 정도면 될 것이다.

나는 뭐시기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다시 끼우고 돌려본다. 맞지 않는다. 다시 해본다. 그래도 맞지 않는다. 에리디언들이 왼손잡이용 나사 깎기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래서 반대로 뚜껑을 돌린다. 내게는 나사를 푸는 동작이다. 그러자 두 부분이 완벽하게 연결된다.

이제는 이것을 다시 저들에게 던질 차례다. 정중하게.

다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지금은 우주선이 빙빙 돌고 있으니까. 에어로크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나는 우주 저 멀리 날아가게 된다.

나는 뭐시기를 들고 통제실로 올라간다.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찬 다음, 우주선에게 회전 속도를 늦추라고 명령한다.

지난번에 그랬듯 나는 통제실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다. 단, 이번에는 통제실이 반대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사실 통제실이 기울어지는 건 아니며 측방 가속에 대한 나의 인지가 적응해 가는 것뿐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뭐, 어쨌든.

나는 중력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내가 무중력상태로 돌아올 때가지 통제실의 기울기가 감소한다. 이번에 나는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다. 나의 파충류의 뇌(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후뇌로, 기본적인 생각과 행동을 관장하는 부분‐옮긴이)가 중력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듯하다. 방향이 재설정된 승조원 구역이 우주선 뒤쪽 절반과 결착됨을 알리는 마지막 “철컹!” 소리와 함께 작업이 마무리된다.

나는 EVA 우주복에 다시 들어가 뭐시기를 꽉 잡고, 다시 한번 우주로 나간다. 이번에는 연결용 사슬을 써서 선체를 따라 움직일 필요가 없다. 나는 연결용 사슬을 그냥 에어로크에 채운다.

블립A가 회전을 멈추었다. 아마 헤일메리호가 멈추었을 때 그랬을 것이다. 블립A는 여전히 217미터 떨어져 있다.

꼭 조 몬태나(미식축구 선수‐옮긴이)가 되어야만 이번 패스를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블립A 방향으로 뭐시기를 움직이게 하면 된다. 블립A는 폭이 100미터가 넘는다. 저 정도는 틀림없이 맞힐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뭐시기를 민다. 뭐시기는 그럭저럭 괜찮은 속도로 내게서 멀어져 간다. 초속 약 2미터쯤 될 것이다. 대략 조깅하는 속도쯤이다. 이것도 일종의 의사소통이다. 나는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내가 약간 더 빠른 배달도 감당할 수 있음을 알려주려 한다.

뭐시기가 에리디언의 우주선을 향해 떠가고 나는 내 우주선으로 돌아온다.

“좋아, 얘들아.” 내가 말한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랬어. 아스트로파지가 너희들의 적이라면, 난 너희들의 친구야.”



나는 망원경 화면을 지켜본다. 가끔 화면에서 눈을 돌린다. 가끔은 내비게이션 패널에 클론다이크 솔리테어 게임을 띄워놓고 플레이한다. 하지만 연속으로 몇 초 이상 망원경을 확인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앞서 실험실에서 가져온 두꺼운 장갑 한 켤레가 저 멀리 떠가려 한다. 나는 그 장갑들을 잡아 조종석 뒤쪽에 꽂아 넣는다.

두 시간이 됐지만 나의 외계인 친구들은 아무 말이 없다. 내가 뭔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걸까? 나는 방금 저들에게 내가 어느 항성에서 왔는지 말해주었다. 이제는 저들이 말할 차례 아닌가?

저들에게 차례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 걸까? 혹시 차례란 순전히 인간들만의 개념인 게 아닐까?

에리디언의 수명이 200만 년이고, 저들에게는 백 년쯤 기다렸다가 답장을 쓰는 것이 예의 바른 일이라면?

맨 오른쪽 더미에서 빨간색 7을 어떻게 없애지? 내 패에는 검은색 8이 없는데….

움직임이다!

망원경 화면 쪽으로 너무 빠르게 몸을 돌린 나머지, 내 두 다리가 둥실둥실 떠올라 통제실 한가운데로 향한다. 내 쪽으로 또 다른 원통이 다가오고 있다. 팔 여러 개 달린 선체 로봇이 방금 저 원통을 던진 것 같다. 나는 레이더 화면을 확인한다. 블립B가 초속 1미터가 넘는 속도로 날아오고 있다. 우주복을 입을 시간이 겨우 몇 분밖에 없다!

나는 EVA 우주복을 다시 입고 에어로크를 돌린다. 외부 문을 여는 순간, 원통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보인다. 전의 그 원통일 수도 있고 새 원통일 수도 있다. 이번에 원통은 곧장 에어로크로 향한다. 저들은 내가 에어로크를 통해 우주선을 드나드는 것을 보고, 내 일을 좀 편하게 만들어주기로 한 듯했다.

매우 배려심이 깊다.

정확하기도 하다. 잠시 후, 원통은 열린 해치 한가운데를 곧장 관통한다. 나는 원통을 잡는다. 블립A에 손을 흔들어 보이고 해치를 닫는다. 저들은 아마 손을 흔드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손을 흔들어야 하다는 강박이 느껴진다.

나는 통제실로 돌아와 씰룩거리며 EVA 우주복을 벗고, 원통을 에어로크 근처에서 떠다니게 놔둔다. 암모니아 냄새가 강하지만 이번엔 나도 대비하고 있다.

나는 두꺼운 실험용 장갑을 끼고 원통을 잡는다. 방화 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온기가 느껴진다. 원통이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원통은 전과 똑같이 생겼다. 나는 왼손잡이 방향으로 나사를 푼다. 이번에는 항성 지도가 없다. 대신 어떤 모형이 들어 있다. 이건 뭐지?

기단에 꼽힌 단 하나의 기둥이 어떤 불규칙한 형체를 지탱하고 있다. 아니, 관으로 연결된 두 개의 불규칙한 형체다. 어어, 잠깐. 두 형체 중 하나는 헤일메리호다. 아, 다른 형체는 블립A다.

모형은 상세하지도 않고 질감도 없다. 그러나 나도 그 모형들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이 모형은 제 역할을 해낸 셈이다. 헤일메리호는 겨우 3인치 길이인 반면, 블립A는 거의 8인치에 달한다. 세상에, 엄청 큰 우주선이다.

그럼 둘을 연결하는 저 관은? 저 관은 헤일메리호의 에어로크를 블립A의 다이아몬드 모양 부분의 중심부와 연결한다. 터널의 폭은 딱 내 에어로크의 문을 덮을 만큼이다.

저들은 만남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