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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서 노크했으니, 나도 노크하는 게 예의다. 벽이 뜨거우리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손마디로 최대한 빠르게 벽을 두드린다.

저들이 그랬듯 나도 세 번 노크한다.

즉각적인 반응은 없다. 나는 육각형 여러 개로 이루어진 벽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육각형은 마흔 개로 저마다 독특한 모양이다. 서로 다른 소재를 쓴 것일까?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하지?

저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카메라처럼 생긴 건 안 보이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등 뒤의 내 에어로크를 가리킨다. 저들이 나를 볼 수 있는지, 이 손동작의 의미를 어떻게든 이해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육각형 벽을 차고 에어로크로 돌아가 안쪽 문을 개방한다. 안 될 이유도 없다. 양쪽의 기압이 같으니 에어로크를 열어둬도 괜찮다. 터널의 기압이 떨어지면 선체에서 공기가 빠져나가 에어로크 안쪽 문이 닫힐 것이고 나는 살아남게 된다.

나는 실험실로 간 다음 골라둔 물건 몇 가지가 담긴 가방을 챙겨 터널로 돌아온다.

일단은 통로를 따라가며 여기저기에 LED 전등을 붙이고, 조명 각도를 육각형 벽 쪽으로 향하게 조정한다. 이제는 최소한 내가 뭘 하는지 볼 수 있다. 나의 믿음직스러운 휴대용 엑스레이 분광계를 꺼내 육각형 하나를 살핀다. 제노나이트다. 앞서 저들이 내게 보냈던 원통과 거의 같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미량원소에 약간 차이가 있다. 어쩌면 제노나이트도 강철과 비슷해서 만드는 방법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음 육각형도 확인한다. 이번에도 약간 다른, 독특한 조합이다.

가장 그럴싸한 추측은, 다양한 상황에 저마다 최적인 제노나이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내 대기가 어떤지 몰랐다. 그래서 이 대기를 상대로 시험해 볼 다양한 화합물을 보냈다. 내가 터널을 살펴 가장 적당한 육각형을 정하도록.

그 말은 내가 터널을 비워야 한다는 뜻이다. 저들을 위해서 내 쪽을 감압해 줘야 할까? 그게 예의일 것 같은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냥 에어로크에 회전을 명령하기만 하면 된다. 에어로크야 “세상에, 오늘은 내 배 속에 공기가 엄청나게 들어오는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진공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 공기를 퍼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들에게 이쪽 대기의 표본을 채취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터널을 만든 게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저들도 꽤 똑똑해 보이고.

나는 에어로크 쪽으로 돌아서지만 뭔가가 내 시선을 잡아끈다. 뭔가 움직였다!

나는 재빨리 육각형 벽으로 관심을 돌린다. 아무 변화도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 뭔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 육각형 몇 개가 반짝인다. 아마 반사된 내 모습을 본 것인가 보다.

잠깐….

육각형 하나가 두드러진다. 왜지?

터널 벽과 가까운 육각형이다. 별로 눈에 띄지는 않는 자리인데. 나는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그리로 둥실둥실 떠간다.

“어머 세상에!” 내가 말한다.

이 육각형은 투명하다! 다른 모든 육각형은 불투명하지만, 이 육각형만은 유리 같다! 나는 전등 하나를 벽에서 떼어내 육각형을 비춘다.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뜨거운 벽에 머리를 바싹 댄다.

빛이 반대편으로 투과한다. 육각형 너머의 터널 벽이 보인다. 저쪽은 진공상태이거나, 투명한 대기를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내 시야를 가리거나 흐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갑자기 돌덩어리가 육각형의 반대편에 부딪히더니 가만히 있는다. 나한테서 겨우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이다. 삼각형처럼 보이고, 암갈색 비슷하며, 모서리가 거칠고 울퉁불퉁하다. 동굴에 살던 원시인의 창끝 같은 모습이다.

내가 우주를 여행하는 원시인을 만난 건가?

바보 같은 소리 마, 라일랜드.

왜 저기에 돌을 놔뒀지? 돌이 끈적끈적해서 저 자리에 붙어 있는 건가? 내 시야를 막으려고 붙였나? 그런 거라면 솜씨가 형편없는데. 작은 삼각형은 가장 두꺼운 지점도 겨우 폭이 1~2인치 정도인데, 육각형 벽은 가로가 족히 8인치는 된다.

상황은 점점 터무니없어진다. 이제는 돌덩이의 연결부가 구부러진다. 똑같은 동작을 취하는 비슷한 돌이 두 개 더 있다. 그리고 그 돌덩이들에 이어진 더 긴 돌이….

저건 돌이 아니다. 발톱이다! 손가락 세 개가 달린 발톱!

더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나는 육각형에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타는 듯 뜨겁지만, 몸을 떼고 싶은 충동에 저항한다. 물론 아프다. 아마 흉터도 남을 것이다. 실험실로 돌아가 카메라를 가져와야 할 텐데. 아니, 진짜로. 하지만 이런 순간에 그런 정신이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얼굴이 아파서 신음하지만 더 나은 시야라는 보상을 얻는다.

외계인의 발톱… 아니지, 손이라고 불러야겠다. 그게 덜 무서우니까. 외계인의 손에는 삼각형 손가락 세 개가 달려 있고 손가락마다 연결부가 있다. 손마디라고 해야겠지. 손은 물방울 모양으로 쥐거나, 일종의 다리 세 개짜리 불가사리처럼 펼칠 수 있다.

피부가 희한하다.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바위 같다. 불규칙적이고 울퉁불퉁하다. 누가 화강암으로 손을 깎았는데, 표면을 연마할 시간이 없었던 것만 같다. 혹시 타고난 갑옷인 걸까? 거북의 껍질과 비슷하지만, 덜 정돈된?

팔도 하나 있다. 뜨거운 고통의 벽에 아무리 열심히, 멍청하게 얼굴을 갖다 대도 이 각도에서는 그 팔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서 이어지는 팔이 하나 있는 건 확실하다. 뭐,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마법의 손이 허공에 둥둥 떠다닐 리는 없으니까.

더는 통증을 참을 수 없다. 나는 머리를 치운다. 얼굴을 더듬어본다. 살갗이 벗겨진 것 같긴 한데, 물집은 없다.

톡 톡 톡.

외계인이 손가락으로 투명한 육각형을 두드린다. 그래서 나도 손가락으로 그 육각형을 세 번 톡톡 친다.

외계인이 다시 세 번 육각형을 두드린다. 그래서 나도 두드린다.

그러자 뭔가 소름 끼치는 것이 다가온다. 발토… 아니, 손이 물러났다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더니 투명한 육각형에 가져다 댄다. 뭔지는 몰라도 작다. 나는 더 잘 보기 위해 몸이 벽 쪽으로 떠가도록 놔둔다. 열기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당연히 그 물체는 제노나이트다. 높이는 0.5인치 정도이고 정교하게 연마돼 있다. 인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머리가 지나치게 크고 팔다리가 정말 두꺼운….

“앗!”

나다. 이건 작고 조그마한 러시아제 올란-MKS2 EVA 우주복이다. 저들이 지금까지 본 모습은 이게 전부다.

다른 손이 나타난다. 아니, 나한테도 손이 두 개 있으니 저들도 손이 두 개라는 걸 알고 놀랄 이유는 없다. 두 번째 손에는 헤일메리호의 모형이 들려 있다. 나를 본뜬 인형과 같은 비율로 축소한 것 같다. 그러더니 손이 작은 나를 작은 헤일메리의 에어로크에 밀어 넣는다.

뜻은 확실하다. ‘네 우주선으로 돌아가.’

나는 엄지를 들어 보인다. 외계인은 작은 나와 헤일메리호 모형이 둥실둥실 떠가도록 손을 떼더니 엄지를 치켜드는 것과 비슷한 모양으로 손을 일그러뜨린다. 손가락 두 개가 둥글게 말려 있고 세 번째 손가락이 위를 가리킨다. 그래도 뭐, 위로 쳐든 게 중지는 아니니까.

나는 헤일메리호로 돌아가 에어로크 문을 닫는다.

나는 흥분해서 헐떡거리고 쌕쌕거리며 숨을 쉰다. 방금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다.

외계인이다. 내가 방금 외계인을 봤다. 외계 우주선만이 아니었다. 외계의 존재를 봤다. 그러니까 … 그의 발톱, 아니지, 손을 본 것뿐이지만. 그래도.

뭐, ‘그의 손’이라고는 했지만 그녀의 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말에는 적당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대명사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야 저들에게 열일곱 가지 생물학적 성별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니까. 아니면 성별이 없을 수도 있다. 지적인 외계 생명체와의 첫 만남에서 정말로 어려운 부분인데, 논의된 적이 없다. 문제는 대명사다. 당장은 ‘그’로 가기로 한다. 사고력이 있는 존재를 ‘그것’이라고 부르는 건 무례한 일 같으니까.

그리고 다른 설명을 듣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바위투성이 ‘로키’다.



자, 인제 어쩌지? 로키는 나한테 우주선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좀 멍청해진 기분이다. 나도 엄청나게 많은 과학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에어로크의 둥근 창을 들여다본다. 전등이 여전히 터널의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각형 벽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없어졌다. 나는 블립A의 선체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선체 로봇이 붙어 있다. 팔을 내밀어 그 작은 로봇 손으로 뭔가 하고 있다.

그래, 로봇의 손은 대체로 로키의 손과 비슷하게 생겼다. 손가락 세 개. 로키의 손과 거의 같은 크기. 아마 우주선 안에 있는 닌텐도 파워글러브 같은 것으로 조종되는 거겠지.

와, 나 진짜 늙었구나.

로봇은 내가 붙여놓은 전등에 특히 관심을 둔다. 하, 나라도 관심이 가지. 저 전등은 외계의 기술로 만든 외계의 물건이니까. 당연히 그냥 전등일 뿐이지만, 저기 있는 내 에리디언 친구들에게는 외계의 전등이란 말이다. 아마 저들의 역사에서 가장 신나는 과학적 발견일 거다. 로봇 팔은 전등을 블립A 선체의 작은 보관함에 넣는다. 잠금장치가 닫힌다. 장담하는데, 저 전구들은 전구의 역사에서 가장 진지하게 연구되는 전등이 될 것이다.

저들이 발견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건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로써 내 조명은 사라져버렸다. 가끔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터널 안쪽은 칠흑처럼 어둡다.

그 자체가 여러모로 흥미롭기는 하다. 나는 40에리다니의 외계인이 아니지만, 리모컨으로 로봇을 조종한다면 내가 뭘 하는지 보기 위해서라도 로봇 어딘가에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저들에게는 빛이 필요하지 않다.

아니지, 잠깐만. 저들의 가시 범위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온갖 빛의 파장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본다. 우리는 지구에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파장을 보도록 진화했다. 어쩌면 에리디언들은 다른 파장을 보도록 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 공간이 적외선이나 자외선으로 가득 차 환하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흠. 로봇이라. 왜 로봇이지? 몇 분 전에는 저기 사람이, 우리 로키가 있었잖아. 왜 로키를 로봇으로 바꿨을까?

진공이라서.

저들은 아마 터널에서 모든 공기를 제거했을 것이다. 저들은 내 선체 표본을 가지고 있다. 내 선체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과, 그 알루미늄의 대략적인 두께를 안다. 그래서 저들은 내 우주선이 외기압을 잘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저들의 대기가 알루미늄과 별로 좋지 않은 반응을 일으키든지.

그래서 저들은 터널을 진공상태로 유지한다. 그래서 로봇으로 작업해야 한다.

셜록 홈스가 된 기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만 가지고 엄청나게 많은 결론들을 끌어내다니! 대단히 의심스럽고 증명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는 결론이지만 어쨌든 결론이다!

전등은 또 가져올 수 있다. 실험실에 몇 개 더 있으니까. 저 안에 전등을 비춰 로봇 로키가 뭘 하는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곧 알게 될 것이다.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때 우주선의 다른 구역에 가 있고 싶지도 않고.

바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똑 똑 똑.

아니, 안 무서워. 집에서 12광년 떨어진 우주선 안에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는 건 완전히 정상적인 일이야.

자, 이제 전등이 하나 더 필요하다. 나는 전등을 가지러 실험실로 빠르게 퉁퉁 튀어갔다가 다시 통제실로 올라온다. 굳이 EVA 우주복을 입지 않고 에어로크를 회전시킨다. 에어로크의 두 문에 달린 수동 환기 밸브를 열어 터널에 다시 공기를 주입한다. 에어로크는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작동한다. 지금도 터널은 잘 봉인돼 있다.

나는 바깥쪽 문을 열고, 손에 전등을 든 채 터널 안으로 둥실둥실 떠간다.

육각형 벽은 사라지고 없다. 투명한 소재로 된 단단한 벽으로 교체됐다. 그리고 벽 맞은편에는 로키가 있다.

그는 거미다. 궁둥이가 큰 거미.

나는 달아나려고 돌아선다. 하지만 두뇌의 이성적인 부분이 통제권을 쥔다.

“괜찮아…. 긴장 풀어…. 쟤들은 친절하다고.” 나는 나 자신을 타이른다. 돌아서서 눈에 보이는 장면을 자세히 살핀다.

로키는 인간보다 작다. 래브라도 정도 크기다. 등딱지처럼 보이는 중심부에서 다리 다섯 개가 뻗어 나와 있다. 대충 오각형인 등딱지는 가로 18인치 정도이고, 두께는 그 절반 정도다. 어디에도 눈이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리마다 가운데에 관절이 있다. 그걸 팔꿈치라고 부르기로 한다. 각 다리는 (팔이라고 해야 하나?) 끝부분에 손이 하나씩 달려 있다. 그러니까 로키는 손이 다섯 개다. 손에는 내가 지난번에 자세히 본 삼각형 손가락들이 달려 있다. 다섯 손이 모두 똑같아 보인다. 로키는 ‘앞면’과 ‘뒷면’이 없는 듯하다. 오각형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는 옷을 입고 있다. 다리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서 바위 같은 피부가 드러나 있지만, 등딱지에는 천이 걸쳐져 있다. 소매 구멍이 다섯 개 뚫린 셔츠 같은 거다. 무엇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옷보다 두꺼워 보인다. 탁한 녹색과 갈색이 섞인 빛깔이고, 색이 일정하지 않다.

셔츠 위쪽에는 커다랗게 뚫린 구멍이 있다. 인간의 티셔츠에서 목이 나오는 부분과 같다. 그 구멍은 등딱지보다 작다. 그러니까 로키는 셔츠를 위에서 아래로 당겨 입은 다음 팔을 각각의 구멍에 집어넣는 방법으로 저 옷을 입었을 것이다. 이 점도 인간의 셔츠와 비슷하다.

하지만 위쪽의 저 구멍으로 나올 만한 목이나 머리는 없다. 그냥 딱딱한 껍질 같은 피부에 약간 위로 튀어나온,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오각형이 있을 뿐이다.

그가 있는 쪽 터널은 벽에 손잡이 여러 개와 격자가 붙어 있다. 그는 손 두 개를 사용해 막대 한두 개에 편하게 매달린다. 손이 다섯 개면 무중력상태가 별일이 아닌가 보다. 그냥 자세를 잡는 일은 손 한두 개에 시키고, 다른 손 세 개를 사용해 작업을 하면 된다.

나한테는 터널이 약간 작다. 하지만 그에게는 널찍한 게 분명하다.

로키는 빈 팔을 내게 흔든다. 그는 인간의 인사법을 하나 알고 있고, 세상에나, 그 인사법을 사용할 생각이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든다. 그가 다시 손을 흔든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인제 그만 인사해.

그는 ‘어깨’를 축으로 삼아 등딱지를 앞뒤로 회전한다. 최대한 ‘고개를 저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날 따라 해봐요 이렇게’ 게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문제는 로키가 처리해 준다.

그는 손가락으로 투명한 벽을 세 번 두드리더니, 손가락을 뻗은 채로 가만히 있다. 그가… 뭔가를 가리키는 걸까?

나는 손가락의 선을 따라가 본다. 와, 터널 안에는 나와 함께 어떤 물건이 있다! 저들이 내게 선물을 남겨줬다!

알아채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외계인을 보니까, 뭐랄까, 터널 벽에 붙어 있는 작은 물건들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알았어.” 내가 말한다. “뭘 주고 갔는지 볼게.”

♩♬♪♪♬.” 로키가 말한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그렇다. 나는 무중력상태에 있다. 그래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발음도, 억양도 없다. 그저 음정이 있을 뿐이다. 고래의 노래 같다. 단지, 몇 가지 음이 동시에 나는 만큼 그렇게까지 고래의 노래 같지는 않을 뿐이다. 고래의 화음이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로키는 내게 응답하고 있다. 그 말은 로키가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그 소리가 내 가청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음정은 낮았고 어떤 음정은 높았지만, 소리만은 확실히 들렸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서 완전히 다른 진화 과정을 거쳤는데도 가청 범위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소리를 내자 로키가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너 언어가 있구나!” 내가 말한다. “어떻게 언어가 있어? 넌 입이 없는데!”

♬♬♩.” 로키가 설명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문명 없이 우주선을 만들 수는 없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데 문명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저들에게 언어가 있는 건 당연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 의사소통이 인간들 사이에서처럼 소리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소리가 의사소통이라는 기능을 발전시키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 로키는 내게 남겨준 물건들을 가리킨다.

“아, 맞아.” 내가 말한다. 내게는 언어와 관련된 온갖 것들이 훨씬 더 흥미롭다. 나는 언어를 더 탐구해 보고 싶다. 하지만 일단은, 로키가 자신이 남긴 선물에 대해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하니까.

나는 그 물건들 쪽으로 떠간다. 물건들은 내가 썼던 테이프로 벽에 붙어 있다.

한 쌍의 구체다. 각 구체의 표면에는 그림이 하나씩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하나는 헤일메리호이고, 다른 하나는 블립A다.

나는 헤일메리 공을 테이프에서 떼어낸다. 따뜻하지 않다. 사실, 터널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다. 흥미로운걸. 어쩌면 저들은 내가 좀 더 시원한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내가 터널을 더 편안하게 느끼도록 무슨 조치를 한 것인지도 몰랐다.

구체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구체를 흔들어보며 귀를 기울인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더 난다.

구체를 봉인한 부분이 보인다. 구체의 위아래를 잡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돌아간다. 물론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나는 로키에게 허락을 구하는 의미로 그를 돌아본다. 로키는 얼굴이 없기에 표정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 둥둥 떠서 나를 지켜볼 뿐이다. 아니, 지켜보는 건 아니다. 눈이 없으니까. 근데 잠깐. 로키는 내가 뭘 하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그는 분명히 알고 있다. 손을 흔들기도 하고 이것저것 했으니까. 분명히 어딘가에 눈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못 알아본 것뿐이겠지.

나는 구체로 관심을 돌린다. 위아래를 분리하자 안에는… 작은 구체들이 한 무더기는 더 들어 있다.

나는 한숨을 쉰다. 이 선물은 답을 주기보다 의문을 일으킨다.

작은 구슬들이 흘러나와 내 시야를 가로질러 떠간다. 독립된 물건들이 아니다. 구슬들은 작은 실로 서로 연결돼 있다. 복잡한 목걸이 같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펼쳐 본다.

이건 꼭…. 더 나은 표현이 생각나면 좋겠지만, 구슬로 만들어진 수갑처럼 생겼다. 실로 연결된 구슬 원 두 개가, 실로 만들어진 작은 다리로 서로 연결돼 있다. 각 원에는 구슬이 여덟 개 있다. 두 원을 연결하는 실에는 구슬이 하나도 없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체 의미를 알 수 없다.

어쩌면 블립A 그림이 있는 다른 공을 보면 뭔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갑을 떠다니게 놔두고 블립A 공을 벽에서 떼어낸다. 흔들어보니 안에서 엄청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공을 돌려 연다. 또 다른 구슬 세트가 나온다.

수갑과는 달리, 이 구조물에는 고리가 하나뿐이다. 구슬도 여덟 개가 아니라 일곱 개다. 또, 원에서 나오는 연결용 실은 세 가닥이며 각각의 실이 구슬 하나와 연결돼 있다. 무슨 장식 같은 게 늘어뜨려진 목걸이 모습이다.

블립A의 공 안에는 그것 말고도 많은 물건들이 들어 있다. 모형을 흔들어보니 다른 목걸이가 둥둥 떠 나온다. 살펴보니 방금 내가 관찰했던 것과 같다. 계속 흔들어 보니까 더 많은 목걸이들이 나온다. 모두가 같은 목걸이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모아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이걸 보니까 뭔가 생각나는데….” 나는 내 이마를 때린다. “뭐가 생각나는 거지…?”

로키는 발톱으로 자기 등딱지를 두드린다. 나는 그가 단지 내 동작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꼭 그가 “생각 좀 해봐, 바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내 학생들한테라면 뭐라고 말해줬을까?

왜 갑자기 학생들이 생각나는 거지? 문득 내 교실이 떠올랐다. 번뜩하는 기억. 내가 분자 모형을 들고서 설명하는….

“분자!” 나는 수갑을 낚아채 로키에게 내밀었다. “이건 분자야! 나한테 화학에 관해서 뭔가 말해주고 싶은 거구나!”

♬♪♬♬♪.”

근데 잠깐만. 이건 좀 이상한 분자들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수갑을 바라본다. 그 무엇도 이런 식의 분자를 이루지는 않는다. 한쪽에는 원자가 여덟 개 있고, 다른 쪽에도 원자가 여덟 개 있는데, 그 둘을 연결하고 있는 건… 뭐지? 아무것도 없다고? 두 원을 서로 연결하는 실은 구슬과 이어져 있지도 않다. 그저 두 원의 실과 각기 T 자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원자야!” 내가 말한다. “구슬은 양성자고, 구슬이 이루고 있는 원은 원자인 거지. 그럼 두 원을 연결한 실은 화학결합을 말하는 거구나!”

“좋아, 그런 거라면….” 나는 수갑을 들고 모든 것을 다시 세어 본다. “그럼 이건 각기 양성자 여덟 개를 갖추고 있으면서 서로 연결된 원자 두 개야. 원자번호 8번은 산소지. 산소가 두 개라. O2구나! 이게 헤일메리호 공에 들어 있었어.”

나는 모형을 로키에게 내민다. “이 영리한 녀석, 이건 이곳 대기를 말하는 거였어!”

나는 다른 구슬 세트를 집어 든다. “그럼 그쪽 대기는… 양성자 일곱 개가, 각각 한 개의 양성자를 갖춘 독립된 원자 세 개와 연결돼 있어. 수소 세 개와 연결된 질소 한 개라. 암모니아네! 당연히 암모니아지! 너는 암모니아를 마시고 사는구나!”

이것으로 그들이 내게 남겨준 모든 작은 선물에 구석구석 스며 있던 냄새가 설명된다. 그 냄새는 저들의 공기가 남긴 흔적이었다.

미소가 흐려진다. “이럴 수가. 암모니아를 마시고 살아?”

나는 저들이 내게 준 작은 암모니아 목걸이 세 개를 세어 본다. 나는 산소 분자를 겨우 한 개 받았는데, 암모니아는 스물아홉 개나 받았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 내가 말한다. “알겠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다.”

나는 외계인을 바라본다. “지구보다 기압이 29배 높구나.”

와. 두 가지가 즉시 떠오른다. 첫째, 에리디언은 기압이 엄청나게 높은 곳에서 산다. 그러니까 … 지구로 돌아간다면, 해저 1,000피트쯤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둘째, 제노나이트는 대단히 놀라운 물질이다. 저 벽의 두께는 정확히 모르겠다. 0.5인치쯤 되려나? 그조차 못 되려나? 하지만 저 벽은 28기압이라는 상대 압력을 버텨내고 있다. 크기도 크고, 달리 지지대도 없는 납작한 널빤지 형태인데도(이건 압력 용기를 만들기에는 절대적으로 나쁜 방법이다). 허 참, 저들의 우주선 전체가 크고 납작한 널빤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제노나이트의 항장력은 일반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게 틀림없다. 저들이 앞서 보냈던 물건들을 내가 구부릴 수도, 부러뜨릴 수도 없었던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환경은 이와 눈곱만큼도 비슷하지 않다. 로키 쪽 터널에 들어가면 나는 몇 초 안에 죽을 것이다. 추측건대, 암모니아가 전혀 없고 기압이 로키 쪽의 29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이곳에서는 로키도 잘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뭐, 문제없다. 우리에게는 소리가 있고 팬터마임도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좋은 출발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느라 잠시 시간을 들인다. 놀랍다. 외계인 친구가 있고, 그 친구와 수다를 떠는 중이라니!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힘들다! 문제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로가 너무 심하게 밀려와 집중하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잔 게 이틀 전이다. 계속해서 뭔가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영원히 깨어 있을 수는 없다. 자야 한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린다. ‘잠깐만 기다려’라는 동작이다. 지난번에 한 번 썼던 동작이니 로키가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는 나와 똑같이 한 손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나는 우주선으로 빠르게 들어가 실험실로 비스듬하게 내려간다. 벽에 아날로그시계가 걸려 있다. 네에, 모든 실험실에는 아날로그시계가 필요합니다. 약간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시계를 벽에서 떼어내 겨드랑이에 낀다. 작업대에서 화이트보드용 마커도 하나 챙긴다.

나는 통제실을 지나 외계인들의 터널로 돌아간다. 로키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내가 돌아오자 그는 귀를 쫑긋 세우는 것 같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모른다. 로키는 그냥, 뭐랄까, 자세를 바로잡았고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에게 시계를 보여주고 뒷면의 시간 설정용 다이얼을 돌린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는 손으로 원을 그려 보인다. 알아듣는다!

나는 시계를 12시 정각에 맞춘다. 그런 다음, 화이트보드 마커를 사용해 가운데에서 숫자 12가 있는 곳까지 긴 선을 긋고, 가운데에서 숫자 2까지 짧은 선을 긋는다. 여덟 시간을 꽉 채워서 자고 싶지만, 로키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두 시간짜리 낮잠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시계가 이거랑 똑같이 되면 돌아올게.” 나는 말한다. 말로 하면 로키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 로키가 어떤 동작을 한다. 그가 두 손을 앞으로 뻗어서 잡으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를 자기 쪽으로 당긴다.

“뭐?”

그는 벽을 두드리며 시계를 가리키더니 그 동작을 반복한다. 시계가 벽과 더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걸까?

나는 시계를 더 가까이 밀어준다. 그러자 그가 흥분하는 듯하다. 그는 더 빠르게 그 동작을 해 보인다. 나는 시계를 더 앞으로 밀어준다. 이제는 시계가 거의 벽에 닿아 있다. 그는 같은 동작을 한 번 더 하지만, 이번에는 속도가 좀 느리다.

나는 그가 뭘 원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시계를 벽에 바짝 대준다. 이제는 시계가 벽에 닿아 있다. 로키는 손을 들어 흔든다. 외계인의 재즈 손동작. 좋은 건가?

뭐, 내가 두 시간 뒤에 돌아오리라는 걸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돌아서서 떠나려 하지만, 즉시 톡 톡 톡 소리가 들린다.

“뭔데에?” 내가 말한다.

♪♪♬♪.” 그가 시계를 가리키며 말한다. 시계가 벽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로키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음, 알았어.” 내가 말한다. 나는 벽에서 테이프를 내려 푼 다음 반으로 찢는다. 반절짜리 테이프로 시계의 왼쪽과 오른쪽을 투명한 벽에 붙인다.

로키는 다시 재즈 손동작을 해 보인다. ‘그래’라거나 ‘마음에 든다’라는 뜻 같다.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

나는 다시 떠나려 하지만, 톡 톡 톡!

나는 한 번 더 홱 돌아선다. “인마, 낮잠 좀 자자고!”

그는 한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내가 썼던 손동작을 나한테 사용하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기다려야 한다니! 공평한 것 같다.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손가락을 든다.

그는 자기 우주선으로 이어지는 둥근 문을 연다. 에리디언에게 딱 맞는 크기다. 혹시 그 문을 비집고 들어갈 일이 생기면 나는 고생을 좀 할 것 같다. 그는 문을 열어둔 채 안으로 사라진다.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너무 알고 싶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안은 칠흑처럼 어둡다.

흠. 흥미로운데. 그의 우주선 안은 완전히 어둡다. 저 문은 아마 에어로크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에어로크도 안에 조금은 빛이 있기 마련 아닐까?

로키는 아무 문제없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내 동작에 반응한다. 이런 사실은 에리디언의 시각과 관련하여 내가 앞서 세웠던 이론을 뒷받침한다. 내 생각에 저들은 인간과는 다른 스펙트럼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완전히 적외선만 보거나 완전히 자외선만 볼 수도 있다. 로키가 보기에는 저 에어로크가 환히 밝혀져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으로, 내가 보는 빛은 그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

우리가 공통으로 보는 파장이 있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빨간색(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낮은 파장의 색깔)이 에리디언이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파장인 ‘♪♬♩’일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르고. 알아볼 가치는 있겠다. 무지개 색깔 조명을 가지고 와서, 로키가 볼 수 있는지 알아보… 아, 돌아왔다.

로키는 통통 튀며 터널로 들어오더니 난간을 따라서 분리용 벽까지 거미처럼 기어온다. 그 모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하다. 로키가 무중력상태에서 지내는 데 이골이 났든지, 에리디언들이 기어다니는 데 매우 능숙한 것이겠지. 에리디언들에게는 인간의 엄지처럼, 다른 손가락을 마주 보는 손가락이 여러 개 달린 손 다섯 개가 있다. 게다가 로키는 우주 여행자다. 그러니까 아마 두 가지 이유가 다 조금씩 맞을 것이다.

그는 여러 손 중 하나로 내게 보여줄 장치를 들어 올린다. 그건… 뭔지 모르겠네.

1피트 길이에, 폭은 아마 6인치 정도 되는 원통이다(세상에, 이 사람들은 원통을 정말 좋아한다). 로키의 손가락 힘 때문에 통이 약간 일그러진 것이 보인다. 기포 고무 같은, 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것이다. 원통에는 수평으로 배열된 네모난 창문 다섯 개가 달려 있다. 각 창 안에는 어떤 형태가 들어 있다. 아마 에리디언들의 글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냥 종이에 잉크로 쓴 게 아니다. 납작한 표면에 적혀 있긴 한데, 글자 자체는 8분의 1인치 정도 솟아 있다.

“흠.” 내가 말한다.

오른쪽 글자가 빙글빙글 돌더니 새로운 글자로 바뀐다. 몇 초 뒤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한 번 더.

“시계구나!” 내가 말한다. “내가 너한테 시계를 보여줘서 너도 나한테 시계를 보여준 거야!”

나는 그때까지도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던 내 시계를 가리킨 다음 그의 시계를 가리킨다. 로키는 쓰지 않던 두 손으로 재즈 손동작을 한다. 나도 재즈 손동작을 한다.

나는 에리디언 시계를 잠시 살펴본다. 로키는 그냥 내게 보여주려고 시계를 가만히 들고 있다. 시계의 글자들, 아마 숫자일 그 모양들이 가장 오른쪽 창문에서 돌아가고 있다. 숫자들은 회전자에 붙어 있다. 우리 고향에서 쓰는 구식 디지털시계 같다. 잠시 후에는 바로 왼쪽 회전자가 한 칸 돌아간다. 아하!

내 생각이 맞는다면 오른쪽 회전자는 2초에 한 번씩 돌아간다. 아마 2초가 좀 더 될 것이다. ‘’, ‘I’, ‘V’, ‘λ’, ‘+’, ‘V’ 등 여섯 개의 독특한 글자들이 제시한 순서대로 한 차례 돌아가고, 이 순서가 다시 반복된다. “”이 나올 때마다 왼쪽 회전자가 한 단계 나아간다. 1분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오른쪽에서 두 번째 회전자가 모든 숫자를 지나고, ‘’이 나오면 오른쪽에서 세 번째 회전자가 움직인다.

에리디언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보를 읽는 것 같다. 영국인들처럼 말이다. 멋진 우연이다. 하긴, 터무니없이 가능성이 낮은 얘기는 아니다. 사실상 선택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 위에서 아래로 읽기, 아래에서 위로 읽기 등 네 가지뿐이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읽을 확률은 4분의 1이다.

그래서 나도 로키의 시계를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시계는 주행 기록계처럼 작동한다. ‘’이 에리디언들의 0인 건 확실하다. 여기에서부터 나는 ‘I’이 1이고 ‘V’는 2이며, ‘λ’은 3, ‘+’는 4, ‘V’는 5라는 것을 알아낸다. 6부터 9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V’ 다음에는 다시 ’로 돌아간다. 에리디언들은 6진수를 사용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중에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어려워하는 개념이 진법이다. 숫자 10에는 특별한 점이 전혀 없다. 우리에게 열 개의 숫자가 있는 이유는 우리 손가락이 열 개이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 로키는 한 손에 손가락이 세 개 있고, 내 생각에는 숫자를 셀 때 손을 두 개만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 듯하다(아마 다른 세 개의 손, 발은 안정적으로 서 있느라 땅을 딛는 데 쓸 것이다). 그러니까 쓸 손가락이 여섯 개인 셈이다.

“너 마음에 든다, 로키! 넌 천재야!”

정말 그렇다! 이 간단한 행동만으로 로키는 내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에리디언의 숫자 체계 (6진법)

에리디언 숫자의 생김새 (ℓ, I, V, λ, +, V)

에리디언이 정보를 읽는 방법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에리디언 1초의 길이


나는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스톱워치를 가져오려고 내 우주선으로 달려 들어간다. 나는 돌아와서 로키가 보여준 시계의 시간을 잰다. 세 번째 회전자의 상태가 변하는 순간에 타이머를 누른다. 가장 오른쪽 회전자는 약 2초에 한 번씩 계속해서 움직이고, 6단계마다 그다음 회전자가 한 단계 전진한다.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대한 정확하게 세어 보고 싶다. 세 번째 회전자가 딱 한 단계 움직이는 데에는 약 1분 36초가 걸린다. 10분 정도면 시계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전부 지켜볼 생각이다.

로키가 지루해한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는 조바심 내기 시작하더니 시계가 분리용 벽 근처에서 떠다니게 놔두고 자기 쪽 터널을 돌아다닌다. 그가 딱히 뭘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자기 우주선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더니 멈춘다. 그는 다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생각을 바꾼다. 그는 문을 닫는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내가 뭔가 흥미로운 말이나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 그가 말한다.

“알아, 알았다고.” 내가 말한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린다.

그도 손가락을 들더니 이 벽에서 저 벽으로 다시 천천히 통통 튀어 다닌다. 무중력 산책이다.

결국 세 번째 회전자가 완전히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나는 타이머를 멈춘다. 총 시간은 511.0초다. 계산기가 없는데, 계산기나 가져오자고 우주선으로 들어가기에는 내가 너무 신나 있다. 나는 펜을 꺼내 다른 손의 손바닥에 긴 나눗셈을 한다. 에리디언의 1초는 지구의 2.366초다.

나는 손바닥에 적은 답에 동그라미를 치고 빤히 바라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근처에 느낌표를 몇 개 덧붙인다.

별것 아닌 일로 보이리라는 건 알지만, 이건 엄청난 사건이다. 로키와 나는 우주비행사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우리는 과학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시간의 기본단위를 설정하다니! 다음은 길이와 질량이다!

아니, 솔직히 그건 아니다. 다음은 낮잠이다. 너무 피곤하다. 나는 벽에서 시계를 떼어내 화이트보드 마커로 ‘2’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냥 최대한 확실히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나는 시계를 다시 제자리에 붙인다. 나는 손을 흔든다. 그도 손을 흔든다. 그런 다음, 나는 다시 낮잠을 자러 간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자라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대체 누가 잘 수 있는 거지? 나는 지금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고민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저 바깥에 외계인이 있다니.

그가 아스트로파지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다니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팬터마임으로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일지라도 공동 언어가 필요하다.

난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과학적 의사소통 방법을, 물리학의 동사와 명사 들을 전달할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우리에게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 있다면 그건 물리학의 개념이었다. 물리학적 법칙은 어디에서나 같으니까. 그리고 과학에 대해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눌 만큼 많은 어휘가 생긴다면, 우리는 아스트로파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에리디언 시간으로 ‘VVℓλI’초 뒤면, 나는 그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런 상황을 앞두고 도대체 누가 잠을 잘 수 있다는 거지? 그건 도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