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머에서 삑삑 소리가 난다. 두 시간 카운트다운을 설정해 뒀는데 방금 0초가 됐다. 나는 두어 번 눈을 깜빡인다. 나는 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통제실을 떠다니고 있다. 숙소까지 가지도 못했다.
나는 전혀 쉬지 못했다. 내게 존재하는 모든 구멍이 다시 자러 가라고 고함을 지르지만, 나는 로키에게 두 시간 뒤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고 그가 인간들이란 믿지 못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게 싫었다.
그러니까 … 우리가 별로 못 믿을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로키한테는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달까.
나는 터덜터덜 (무중력상태에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게 가능하냐고? 그렇다고 해두자) 에어로크를 건너갔다. 로키는 터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바빴던 모양이었다. 그의 터널에는 온갖 물건이 나와 있었다.
에리디언 시계는 여전히 째깍거렸다. 지금은 어느 격자 막대에 얹힌 채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흥미로웠던 것은 분리용 벽에 덧붙여진 상자였다. 그 상자는 가로, 세로, 높이 1피트짜리 정육면체로, 내가 있는 쪽 터널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나머지 벽과 똑같은, 투명한 제노나이트 재질이었다.
로키 쪽에서 보면, 상자에는 불투명한 제노나이트 테두리가 둘러진 납작한 널빤지 문이 달려 있었다. 꼭 맞는 정사각형 파이프가 연결된, 정사각형 구멍도 하나 있었다.
그리고 상자 근처의 파이프에는 무슨… 조종판? 같은 게 있었다. 버튼이려나? 제어기에서 나온 철사가 파이프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파이프가 선체 속으로 사라지는 지점에서 함께 사라졌다.
한편 내 쪽의 정육면체에는 크랭크가 달려 있었다. 내 에어로크 문에 달린 크랭크와 대체로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 크랭크는 로키 쪽에 있는 것과 같은 정사각형 판자에 붙어 있었으며….
“에어로크다!” 내가 말했다. “에어로크 터널 안에 에어로크를 만든 거구나!”
기발하다. 그야말로 기발하다. 로키와 나는 둘 다 이 에어로크에 접근할 수 있다. 그는 수수께끼의 파이프를 사용해 저 작은 방의 공기를 통제할 수 있다. 아마 저 파이프는 블립A의 펌프 같은 것으로 이어질 터였다. 저 버튼인지 뭔지가 제어장치이고. 그렇게 하면 우리는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다.
나는 재즈 손동작을 한다. 로키도 재즈 손동작을 한다.
흠. 이번에도 네모나고 납작한 판자다. 대체 누가 에어로크를 네모나게 만드는 거지? 특히, 에리디언의 기압을 다뤄야 하는 에어로크를 말이다. 심지어 작은 에어로크로 이어지는 파이프조차 사각형이었다. 나는 에리디언들이 둥근 제노나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로키가 보내준 원통들이 둥근 모양이었으니까. 이 터널도 둥글었고.
어쩌면 내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제노나이트는 너무 강해서, 공들여 압력 용기의 형태를 갖출 필요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아마 납작한 판이 더 만들기 쉬운 거겠지.
끝내주는데. 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린다. 그도 같은 동작을 해 보인다. 나는 실험실로 날아 내려가 줄자를 집어 든다. 로키가 내게 시간 단위를 보여주었으니, 내가 그에게 길이 단위를 보여줄 것이다. 다행히 이 줄자는 미터법을 따랐다. 6진법으로 된 에리디언의 초 단위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헷갈리는 상황에서 절대로 집어넣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영국식 단위였다. 나한테는 영국식 단위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터널로 돌아간 나는 줄자를 들어 올린다. 줄을 조금 잡아당겼다가 다시 들어가도록 손을 놓는다. 그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한다. 로키는 재즈 손동작을 한다. 내가 ‘네모로크’(아니면 뭐라고 부르지?)를 가리키자 그가 다시 재즈 손동작을 한다.
지금 네모로크 안에 29기압의 암모니아가 차 있지는 않다는 의미였으면 좋겠다. 곧 알게 되겠지.
나는 크랭크를 돌려 내 문을 연다. 문은 바깥쪽, 내가 있는 쪽으로 쉽게 열린다.
아무것도 폭발하지 않는다. 사실, 암모니아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네모로크 안이 진공이었던 것도 아니다. 만약 진공상태였다면 내가 문을 잡아당겨 열 수 없었을 것이다. 로키는 네모로크의 기압을 정확히 내 기압과 맞춰놓았다. 친절하기도 하지.
나는 줄자를 대충 상자의 가운데에 떠다니게 놔둔다. 문을 닫고 크랭크를 돌린다.
로키가 제어기의 버튼을 누르자 후웅 하는 소리에 이어 지속적인 쉬익 소리가 먹먹하게 들린다. 안개처럼 보이는 기체가 파이프에서 빠르게 들어온다. 암모니아겠지. 줄자가 안에서 튀어 다닌다.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처럼 이리저리 떠밀린다. 곧 쉬익 소리가 잦아들다가 점점이 이어진다.
그때, 나는 실수를 깨닫는다.
이 줄자는 공사장에서 쓰는 단단한 줄자로, 평범한 공구에 쓰는 고무 손잡이와 금속 줄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에리디언들이 뜨거운 걸 좋아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뜨거울까? 확실히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줄자에 붙은 고무의 녹는점보다 뜨겁다는 건 알 수 있다.
액체 고무방울이 줄자에서 우그러지다가 표면장력 때문에 줄자에 들러붙는다. 로키가 자기 쪽 문을 열더니 금속 부분을 조심스럽게 잡고 엉망진창이 된 내 선물을 꺼낸다. 최소한 금속 부분은 아직 고체다. 그 부분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에리디언의 공기가 알루미늄까지 녹여버릴 만큼 뜨겁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된 건 좋은 일이다.
로키가 줄자를 잡아당기자 고무방울이 줄자에서 떨어져 나가 로키 쪽 터널에서 떠다닌다.
로키가 고무방울을 쿡 찌르니 고무방울이 그의 발톱에 달라붙는다. 그는 별로 어렵지 않게 고무방울을 털어낸다. 확실히 그에게 저 온도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손에서 물을 털어내는 것과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인다.
내가 있는 곳의 대기에서라면, 저 정도로 뜨거운 고무는 화상을 일으킬 것이다. 고약하고 지독한 온갖 기체도 나오게 된다. 하지만 벽 너머 로키 쪽에는 산소가 없다. 그래서 고무는 액체로 남아 있다. 고무방울은 터널 벽으로 둥실둥실 떠가더니 거기에 들러붙는다.
나는 로키를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로키도 이 동작이 ‘미안해’라는 뜻임을 알지도 모른다.
로키도 어깨를 으쓱하다시피 한다. 하지만 어깨 다섯 개를 모두 써서 그렇게 한다. 이상해 보인다. 내 뜻을 알아들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는 줄자를 약간 빼보더니 손을 놓고 줄자가 다시 탁 들어가게 놔둔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음에도 놀란 게 분명하다. 그는 줄자에서 아예 손을 떼고 줄자가 눈앞에서 빙빙 돌아가게 놔둔다. 그는 줄자를 잡고 다시 그렇게 한다. 한 번 더.
한 번 더.
“그래, 웃기다.” 내가 말한다. “하지만 눈금을 봐. 그게 센티미터야. 센-티-미-터.”
그가 또 줄자를 끄집어내자, 나는 자 부분을 가리킨다. “봐!”
그는 계속 줄자를 뺐다가 다시 집어넣기만 한다. 그가 줄자에 적힌 것에 조금이라도 신경 쓴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에휴!” 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린다. 나는 실험실로 가서 다른 줄자를 가지고 온다. 원래 장비가 많이 갖춰진 실험실이다. 여벌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우주 임무도 완수할 수 없기도 하고. 나는 터널로 돌아온다.
로키는 여전히 줄자를 가지고 놀고 있다. 이젠 정말로 즐기는 듯하다. 대략 1미터쯤 되는 줄자를 최대한 길게 당겨 빼더니, 자와 줄자의 감기는 부분을 동시에 놓는다. 그 결과로 줄자가 다시 감기며 탁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자 줄자 통이 로키 앞에서 미친 듯이 돌아간다.
“♩♪♬♪!!!” 그가 말한다. 확신하는데, 신나서 소리 지르는 거다.
“저기, 여기 좀 봐.” 내가 말한다. “로키, 로키! 야!”
그제야 그는 의도치 않게 장난감이 되어버린 줄자와의 놀이를 그만둔다.
나는 내 줄자를 조금 당겨 빼낸 다음 눈금을 가리킨다. “봐! 여기 말이야! 보여?”
로키도 자기 줄자를 대략 비슷한 길이만큼 빼낸다. 그의 줄자에도 아직 눈금이 표시돼 있는 게 보인다. 살갗이 일그러질 만큼 뜨거운 에리디언의 열기에 눈금이 날아가 버리거나 한 게 아니다. 뭐가 문제지?
나는 1센티미터 눈금을 가리킨다. “봐. 1센티미터야. 이 선. 여기.” 나는 선을 반복해서 두드린다.
로키는 두 손으로 줄을 빼 들고 세 번째 손으로 톡톡 두드린다. 내가 두드리는 박자를 따라하기는 하지만, 1센티미터 선에 닿으려면 어림도 없다.
“여기라니까!” 나는 눈금을 더 세게 두드린다. “눈이 멀었…구나?”
나는 잠시 말을 멈춘다.
“잠깐만. 너 눈이 안 보여?”
로키는 줄을 좀 더 두드린다.
나는 처음부터 로키의 몸 어딘가에 눈이 있지만 내가 못 알아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예 눈이 없는 거라면?
블립A의 에어로크는 어두웠지만, 로키는 그 안에서 활동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내게는 안 보이는 파장의 빛을 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자는 흰색 바탕에 검은 눈금이 표시된 형태였다. 어느 스펙트럼을 보는 어느 시각이든 흰 바탕의 검은 눈금은 읽을 수 있다. 검은색은 빛이 없는 상태이고 흰색은 모든 파장이 동등하게 반사되는 상태니까.
잠깐만.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로키는 내가 뭘 하는지 안다. 내 동작을 흉내 낸다. 시각이 없다면 내 시계는 어떻게 본 거지? 어떻게 자기 시계를 만든 걸까?
흠…. 로키의 시계는 숫자가 입체적이었다. 두께가 8분의 1인치쯤 됐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실제로 내 시계를 보는 건 좀 어려워했다. 로키는 내가 시계를 분리용 벽에 테이프로 붙여주기를 바랐다. 시계가 1인치 정도 멀어지자 당황했다. 로키에게는 시계가 분리용 벽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벽에 닿아 있어야 했다.
“소리인 거야?” 내가 말한다. “소리로 ‘보는’ 거야?”
그러면 말이 됐다. 인간도 3차원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전자파를 활용하는데, 다른 종족이 음파를 사용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같은 원리다. 지구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 박쥐와 돌고래는 소리를 가지고 ‘보는’, 반향 위치 측정법을 활용한다. 어쩌면 에리디언들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다만 매우 강하게. 박쥐나 돌고래와는 달리 에리디언들에게는 굳이 작동하지 않아도 늘 켜져 있는 음파탐지기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먹이를 쫓기 위해 특별한 소리를 내는 대신 주변의 음파를 활용해 환경을 파악한다.
그냥 가설이다. 하지만 자료와 부합하는 가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로키의 시계 숫자가 두꺼웠던 것이다. 그의 음파탐지기로는 너무 얇은 것을 감지할 수 없기에. 내 시계는 그에게 어려운 과제였다. 그는 잉크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시곗바늘은 단단한 물체였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모든 게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 있었는데….
나는 이마를 탁 쳤다. “그래서 시계를 벽에 바싹 대 달라고 한 거구나. 시계 안에서 튀어 다니는 음파가 더 쉽게 전달되도록. 그럼 방금 내가 너한테 건네준 줄자는 쓸모가 없네. 넌 잉크를 아예 못 보니까!”
그는 줄자를 가지고 좀 더 장난을 친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린다. 그는 줄자 장난감에 더 흥미가 가는 듯하지만 남는 손으로 별생각 없이 내 동작을 따라 한다.
나는 우주선으로 돌아가 통제실을 지나서 실험실로 들어간다. 드라이버를 하나 집어 들고 숙소까지 더 내려간다. 나는 바닥 판을 하나 떼어낸다. 단순한 알루미늄판이다. 아마 두께는 16분의 1인치쯤 될 테고, 우리가 만지다가 손을 베지 않도록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했다. 강하고 내구력이 있으며 가볍다. 우주여행을 위한 완벽한 소재다. 나는 터널로 다시 날아간다.
로키는 자기 터널의 손잡이에 줄자의 한쪽 끝을 감아서 조악하게 매듭지어 두었다. 그는 한 손으로 줄자 통에 매달린 채 다른 네 손을 이용해 철봉을 따라 거꾸로 기어 온다.
“로키.” 내가 말한다. 나는 손을 든다. “야!”
그는 잠시 줄자 놀이를 멈춘다. “♩♪♩?”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편다.
로키도 손가락 두 개를 편다.
“응. 그렇구나. 또 흉내 놀이가 시작됐어.” 나는 한 손가락을 편 다음 둘로 바꾸었다가 다시 하나로 바꾸고, 마지막으로는 세 개로 바꾼다.
로키도 그 순서를 따라 한다. 내가 기대했던 그대로다.
이제, 나는 알루미늄판을 내 손과 로키 사이에 둔다. 판 뒤에서 나는 손가락을 두 개, 한 개, 세 개, 다섯 개 들어 보인다.
로키는 손가락을 두 개, 한 개, 그다음에는 세 개 전부 들어 보인다. 그는 총 다섯 개의 손가락을 보여주려고 두 번째 손을 가져다 손가락 두 개를 더 편다.
“와아!” 내가 말한다.
16분의 1인치짜리 알루미늄은 거의 모든 빛을 차단한다. 말도 안 되게 진동수가 높은 빛은 알루미늄을 통과할 수도 있지만, 그런 파장은 나까지도 그대로 통과할 것이다. 그러면 로키는 내 손을 볼 수 없다. 반면 소리는 금속을 아무 문제없이 통과한다.
이게 증거다. 로키는 빛을 활용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지하는 게 아니다. 소리를 활용하는 게 틀림없다. 로키에게는 이 금속판이 유리창과 똑같다. 금속판 때문에 상이 조금 흐려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왜곡이 심하지는 않은 것이다. 세상에, 그는 아마 헤일메리호의 통제실이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이유가 없다. 선체는 그저 더 많은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니까.
내가 우주에 나가 있는 건 어떻게 봤을까? 우주에는 공기가 없고, 따라서 소리도 없는데.
잠깐, 아니지. 이건 멍청한 질문이다. 로키는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원시인이 아니다. 선진적인 우주 여행자다. 그에게는 기술이 있다. 아마 데이터를 그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는 카메라와 레이더 같은 것들이 있겠지. 내 페트로바스코프도 그와 다를 게 없다. 나는 적외선을 볼 수 없지만, 페트로바스코프는 볼 수 있다. 그리고 페트로바스코프는 적외선을 내가 볼 수 있는 진동수의 빛으로 모니터에 표시한다.
블립A의 통제실에는 아마 멋지게 생긴, 점자 표시자들이 있을 것이다. 뭐, 그보다는 훨씬 발달한 모습이겠지만.
“와아….” 나는 그를 바라본다. “인간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별을 쳐다보면서 저 바깥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했어. 너희들은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그런데도 우주여행을 해냈구나. 너희 에리디언들은 정말 놀라운 민족이 틀림없어. 과학 천재들이야.”
줄자의 매듭이 풀어져 미친 듯이 감기더니 로키의 손을 탁 때린다. 로키는 잠깐 아파하며 얻어맞은 손을 흔들더니 계속 줄자를 가지고 논다.
“그래. 넌 확실히 과학자다.”
“모두 기립하십시오.” 법정 관리인이 말했다. “워싱턴 서부 연방 지방법원을 개정합니다. 재판은 메러디스 스펜서 대법관님이 주재하십니다.”
판사가 자리에 앉는 동안 법정의 모든 사람은 일어서 있었다.
“앉으십시오.” 법정 관리인이 말했다. 그는 대법관에게 파일을 하나 건넸다. “재판장님, 오늘 다룰 사건은 지적재산권연맹 대 헤일메리 프로젝트 사건입니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고, 재판 준비됐습니까?”
원고석은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60대 남성이 일어서서 대답했다. “준비됐습니다, 재판장님.”
“피고, 재판 준비됐습니까?”
스트라트는 피고석에 혼자 앉아 태블릿에 뭘 입력하고 있었다.
대법관이 목을 가다듬었다. “피고?”
스트라트가 입력을 마치고 일어섰다. “준비됐습니다.”
스펜서 대법관이 스트라트의 자리를 가리켰다. “변호인, 나머지 팀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뿐입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리고 전 변호인이 아닙니다. 피고죠.”
“스트라트 씨.” 스펜서는 안경을 벗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사건의 피고는 상당히 유명한, 국제과학자협회입니다.”
“제가 이끄는 협회죠.” 스트라트가 말했다. “저는 소송 기각을 신청합니다.”
“아직 뭘 신청할 수 없습니다, 스트라트 씨.” 스펜서가 말했다. “재판을 진행할 준비가 됐는지만 말해주세요.”
“준비됐습니다.”
“좋습니다. 원고, 모두진술 시작하세요.”
남성이 일어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배심원 여러분, 저는 이 재판에서 지적재산권연맹의 변호인을 맡은 시어도어 캔턴입니다.
이번 재판에서, 원고 측은 헤일메리 프로젝트가 디지털 데이터 획득 및 사용권 문제에 관하여 권한을 남용했음을 입증할 것입니다. 피고 측은 거대한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하드디스크에 현재까지 디지털 형태로 이용할 수 있었던, 모든 책과 서류는 물론 지금껏 저작권을 부여받은, 말 그대로 모든 소프트웨어를 복사해 두었습니다. 이 모든 행위는 적절한 저작권 소유자나 지적재산권 소유자에게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혹은 그들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기술적 설계는 특허권을 침해….”
“재판장님.” 스트라트가 끼어들었다. “이제 신청할 수 있습니까?”
“굳이 따지면 그렇지요.” 대법관이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상적이지 않….”
“소송 기각을 신청합니다.”
“재판장님!” 캔턴이 항의했다.
“근거가 뭡니까, 스트라트 씨?” 대법관이 말했다.
“이런 개소리를 들어줄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인류라는 종을 구원하기 위한 우주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해낼 시간은 아주 조금밖에 없고요. 그 우주선에는 우주비행사 세 명이, 단 세 명이 탑승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실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다고 보는 계통의 연구라면 뭐든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려 합니다. 인류의 지식을 모아, 모든 소프트웨어와 함께 제공하려는 겁니다. 그런 자료 중에는 멍청한 것들도 있습니다. 아마 윈도우 3.1 버전의 지뢰 찾기 같은 건 필요하지 않겠죠. 산스크리트어-영어 대사전 같은 것도 아마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우주비행사들은 그것도 갖게 될 겁니다.”
캔튼이 고개를 저었다. “재판장님, 제 의뢰인들은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고결한 속성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소가 이루어진 건, 저작권이 부여된 자료와 특허를 취득한 메커니즘이 불법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스트라트가 고개를 저었다. “모든 회사와 사용 계약을 맺는 데는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계약은 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만, 스트라트 씨, 당신도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대법관이 말했다.
“그것도 제가 따르고 싶을 때나 해당하는 얘깁니다.” 스트라트가 종이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이 국제조약에 따르면, 저는 개인적으로 지구에서의 모든 범죄에 대한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상원이 두 달 전에 해당 조약을 비준했습니다.”
그녀는 두 번째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간소화하기 위해, 미합중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관할지역 내에서의 모든 혐의에 대한 사전적 사면을 받았습니다.”
법정 관리인이 종이를 가져다 대법관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대법관이 말했다. “정말 그렇군요.”
“제가 여기에 온 건 그저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아예 올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계와 특허 괴물, 그 외에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뭉쳐 단 한 번의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으니, 이 법정에 나오는 것이 애초에 싹을 잘라버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녀는 가방을 집고 안에 태블릿을 넣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스트라트 씨.” 스펜서 대법관이 말했다. “그렇더라도 이곳은 법정이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싫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법정 관리인이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 법정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제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나라 군대를 동원할 생각인가요?” 스트라트가 물었다.
군복을 입은 무장한 남성 다섯 명이 법정으로 들어와 스트라트 주위에 늘어섰다. “저한테는 미군이 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되게 괜찮은 군대죠.”
나는 땅콩버터 토르티야를 우적거리면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훑어본다. 이름만 들으면 맛없을 것 같겠지만, 맛있다.
나는 노트북을 사용하면서 몸이 둥실둥실 뜨지 않도록 실험실 의자를 두 다리로 잡고 있는 방법을 배웠다. 알고 보니 나한테는 노트북이 여러 대 있었다. 지금까지 창고에서 찾은 것만 최소 여섯 대다. 그리고 이 노트북들은 전부 우주선 전체에 깔려 있는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다. 편리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우주선 안 어딘가에는 사실상 모든 소프트웨어가 숨겨져 있어야 한다. 문제는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찾는 것이다. 무슨 소프트웨어를 찾아야 할지 이름조차 모르겠는데. 다행히, 디지털 도서관에 있는 어느 책에 소프트웨어 목록이 있다. 그게 도움이 됐다.
결국 나는 쓸 만한 소프트웨어를 찾아낸다. ‘팀파눔 연구소 파형 분석기’. 내 라이브러리에는 온갖 종류의 파형 분석 소프트웨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이 분석기는, 파형 분석기를 검토한 2017년 컴퓨터 잡지에서 가장 높은 별점을 받았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노트북 한 대에 설치한다. 프로그램은 사용이 꽤 간편하고 기능이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내가 가장 관심을 두는 기능은 푸리에 변환이다. 푸리에 변환은 음파 분석에서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며,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푸리에 변환을 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수학이 필요하지만, 최종 결과는 이렇다. 푸리에 변환으로 음파를 변환하면, 동시에 연주되는 음정 각각의 목록이 나온다. 그러니까 C장조 화음을 연주해 이 프로그램에 들려주면 프로그램이 C, E, G음이 났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용하다.
더는 팬터마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에리디언어를 배울 때가 됐다. 그렇다. 에리디언어라는 말은 방금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아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기서 수많은 일들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고 있다.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다. 그냥, 내가 나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것저것 이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 바란다.
나는 다른 노트북에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을 켜놓고, 두 노트북의 뒤쪽을 서로 맞대 테이프로 붙인다. 물론, 노트북 하나로 프로그램 두 개를 다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계속 전환해 가며 쓰기가 싫다.
나는 우주선을 날아 올라가 터널로 돌아간다. 로키가 없다.
흠.
로키도 온종일 나만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은 늘 터널에 둘 수 있는 것 아닐까? 내 동료들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돌아가면서 보초를 섰을 것이다. 세상에, 일류키나라면 아마 쉼 없이 여기에서 야영하다가 잠을 자야 할 때만 자리를 비웠을 것이다.
혹시 저들이 터널에 다른 사람을 교대로 보내고 있는 거라면? 로키가 한 명인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에리디언들을 구분하는 방법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서로 다른 여섯 사람과 이야기한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심란해졌다.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나는 로키가 로키라고 확신한다. 그의 등딱지에서 튀어나온 부분과 손에 있는 바위처럼 두드러진 부분들은 독특하다. 그의 한쪽 손가락에 우락부락해 보이는, 불규칙한 부분이 튀어나와 있던 것도 기억난다. …그래. 같은 녀석이다.
몇 시간 동안 돌덩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 돌덩이를 아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돌로 바꿔놓는다면 누구든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그럼 나머지 대원들은 어디 있을까? 내가 혼자인 까닭은 동료들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리디언들은 더 나은 우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우주선도 더 크고, 선체의 소재는 거의 부수기가 불가능하다. 저 안에는 다른 대원들이 있을 게 틀림없다.
아! 로키가 선장인가 보구나! 로키는 무서운 외계인과 이야기하는 위험을 직접 감수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대원은 우주선에 남아 있다. 커크 선장(《스타 트렉》 TOS와 리부트 극장판의 주인공으로,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장‐옮긴이)이라면 그렇게 할 거다. 로키 선장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아무튼, 나는 끝내주는 일을 하고 싶어서 좀이 쑤신다.
“어이! 로키!” 내가 소리친다. “이리 와!”
나는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인다. “얼른, 인마! 네 원거리 감각 정보는 전부 소리로 이루어져 있잖아. 1마일 떨어진 데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거라는 거 알아! 내가 널 부르는 걸 알잖아! 궁둥이… 아니, 뭐든 네 궁둥이 역할을 하는 걸 떼고 좀 움직이라고! 얘기하고 싶어!”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로키는 오지 않는다.
내 생각에, 나는 그에게 우선순위가 꽤 높다. 그러니 뭔지는 몰라도 그가 지금 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한 게 틀림없다. 어쨌든 그에게는 관리해야 할 우주선이 있으니까. 아마 먹기도 하고 잠도 자야 할 것이다. 뭐, 어쨌든 먹긴 먹어야겠지. 모든 생물학적 유기체는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에리디언들이 잠을 자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잠을 자는 것도 그렇게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지난 마흔여덟 시간 중에서 나는 겨우 두 시간 낮잠을 잤을 뿐이다. 로키의 시계는 여전히 손잡이용 철봉과 분리용 벽 사이에 끼워져 있다. 평소처럼 째깍째깍 움직인다. 그의 시계에 숫자가 겨우 다섯 개밖에 없다니 흥미롭다. 내 계산대로라면, 이 시계는 다섯 시간에 한 번씩 ℓℓℓℓℓ로 돌아온다. 어쩌면 에리디언의 하루가 다섯 시간인 것 아닐까?
그건 나중에 생각해야지. 중요한 건 잠을 자는 거다. 나는 엑셀에 로키의 시간을 내 시간으로, 또 내 시간을 로키의 시간으로 변환해 줄 스프레드시트를 작성한다. 여덟 시간을 자고 싶다. 나는 로키의 시계에 떠 있는 현재 시각인 IℓIVλ를 입력하고, 스프레드시트에 지금부터 여덟 시간 후에는 시계에 어떤 문자가 표시될지 표시하라고 한다. 답은 I+VλλV이다.
나는 서둘러 실험실로 돌아가 막대 사탕 한 꾸러미와 테이프를 가져온다. 로키가 잉크를 못 보니 임시방편을 써야 한다.
나는 로키에게 내가 돌아올 시간을 알려주려고 분리용 벽에 사탕 막대를 테이프로 붙인다. I+VλλV. 다행히 숫자들이 거의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내 보잘것없는 솜씨로도 로키가 읽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내가 돌아올 시간은 여섯 자리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로키의 시계에 표시되는 것보다 숫자가 하나 더 많다. 하지만 로키라면 분명 알아낼 것이다. 로키가 ‘37시 정각에 돌아올게’라고 말했다면 나도 그 말뜻을 알아들었을 테니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실험실의 진공실에서 소형 카메라를 꺼낸다. 진공실에 붙어 있는 휴대용 LCD에 연결된, 조그마한 무선 카메라다. 나는 테이프를 사용해 그 카메라를 터널에, 분리용 벽을 향하도록 붙인다. 화면은 내 침대로 가져간다.
자. 이제는 터널에 베이비 모니터까지 설치해 두었다. 소리는 나지 않는다. 카메라는 실험 관찰용이지 수다를 떨기 위한 용도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침대의 담요와 이불을 모두 타원형의 밑판에 팽팽하게 끼워 넣는다. 그 팽팽한 이부자리 사이로 움찔거리며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잠들어 있는 동안 떠다니지 않을 수 있다.
로키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나의 원대한 계획이 실현되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 약간 답답하지만, 오랫동안은 아니다. 나는 바로 곯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