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 똑 똑.
그 소리는 내 의식을 거의 파고들지 못한다. 멀리서 들린다.
똑 똑 똑.
나는 꿈조차 없는 잠에서 깨어난다. “엉?”
똑 똑 똑.
“아침밥.” 나는 웅얼거린다.
기계 팔들이 어느 사물함으로 들어가 포장된 식사를 꺼낸다. 이 동네는 매일 아침이 크리스마스 같다. 내가 포장 윗부분을 뜯자 사방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안에는 아침용 부리토가 있다.
“좋은데.” 내가 말한다. “커피는?”
“준비 중입니다.”
나는 아침용 부리토를 한 입 먹는다. 맛있다. 음식이 전부 맛있다. 상부에서는 우리가 어차피 죽을 거라면 먹을 거라도 잘 먹다가 죽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커피입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기계 팔이 납작한 빨대가 꽂힌 주머니를 내민다. 어른용 카프리썬이랄까. 무중력상태에서 쓰도록 편의 장치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나는 부리토가 근처를 떠다니게 놔두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물론 맛있다. 딱 맞게 크림과 설탕까지 들어가 있다. 이런 건 사람마다 심하게 다른, 대단히 개인적인 취향인데도.
똑 똑 똑.
근데 저건 뭐지?
나는 침대 근처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LCD 화면을 확인한다. 로키가 터널에서 분리용 벽을 두드리고 있다.
“컴퓨터! 나 얼마나 잔 거야?”
“환자는 열 시간 십칠 분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 짜증 나!”
나는 이부자리에서 움찔움찔 나온 다음, 통통 튀며 우주선 전체를 올라가 통제실로 향한다. 배가 너무 고파서 부리토와 커피는 가져간다.
나는 터널로 튀어 들어간다. “미안! 미안!”
내가 나타나자 로키는 전보다도 더 시끄럽게 분리용 벽을 두드린다. 그는 내가 분리용 벽에 붙여놓은 사탕 막대를 가리키고 자기 시계를 가리킨다. 한 손으로 주먹을 쥔다.
“미안해!” 나는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아 쥔다. 달리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행성에서나 통하는, 애원을 상징하는 동작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키는 주먹을 편다.
어쩌면 가벼운 책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다섯 손으로 다 주먹을 쥘 수도 있는데 하나만 쥐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로키를 두 시간 넘게 기다리게 했다. 그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앞으로 내가 보여줄 마술이 보상이 됐으면 좋겠는데.
나는 한 손가락을 든다. 그가 똑같은 동작을 한다.
나는 테이프로 붙인 노트북을 집어 들고, 한쪽 컴퓨터에는 파형 분석기를 켜고 다른 컴퓨터에는 엑셀을 켠다. 그것들을 터널 벽에 대고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한다.
나는 분리용 벽에서 사탕 막대를 떼어낸다. 여기서부터 출발해도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나는 ‘I’를 집어 들고 가리킨다. “1.” 내가 말한다.
나는 내 입을 가리키고, 다시 에리디언 숫자를 가리킨다. “1.” 그런 다음, 나는 로키를 가리킨다.
그는 ‘I’를 가리키고 “♬”라고 말한다.
나는 파형 분석기를 잠시 정지하고 몇 초 뒤로 돌아간다. “어디 보자….” ‘1’을 나타내는 로키의 단어는 단 두 개의 음정만으로 이루어진 화음이다. 엄청나게 많은 배음과 반향도 섞여 있지만, 중요한 주파수 피크는 단 두 개의 음정이다.
나는 다른 컴퓨터의 스프레드시트에 ‘1’이라고 입력하고, 그와 관련된 주파수를 기록한다.
“좋았어….” 나는 분리용 벽으로 돌아가 ‘V’라는 글자를 집어 든다. “2.” 내가 말한다.
“♪.” 그가 말한다. 이번에도 한 음절짜리 단어다. 어떤 언어에서 가장 오래된 단어들은 보통 가장 짧은 단어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네 개의 서로 다른 음정으로 이루어진 화음이다. 나는 ‘2’와 이 단어를 나타내는 주파수를 기록한다.
로키가 흥분하기 시작한다.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나는 ‘λ’를 집어 든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로키가 그 글자를 가리키며 “♬♪”라고 말한다.
훌륭하다. 처음으로 두 음절짜리 단어가 나왔다. 알맞은 화음을 찾아내려면 파형 데이터를 앞뒤로 조금 왔다 갔다 살펴야 한다. 첫음절은 단 두 음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번째 음절은 다섯 음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키는 동시에 최소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음을 낼 수 있다. 성대가 여러 개든 뭐든 무슨 이유가 있을 게 틀림없다. 뭐, 팔도 다섯 개고 손도 다섯 개니까. 성대가 다섯 개면 안 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음정은 그의 몸통 속 어딘가에서 들려올 뿐이다. 처음 로키의 말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소리가 고래의 노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짐작은 내 생각보다 더 정확했던 걸지도 모른다. 고래들이 그런 소리를 내는 건, 공기를 내뱉지 않고 성대 이쪽저쪽으로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로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똑 똑 똑 똑!
“뭐?” 나는 그를 돌아본다.
그는 아직도 내 손에 들려 있는 글자 ‘λ’를 가리키고, 나를 가리킨다. 그런 다음 ‘λ’를 가리키고, 다시 나를 가리킨다. 거의 미친 사람 같다.
“아, 미안.” 내가 말한다. 나는 숫자를 제대로 들고서 “3.”이라고 말한다.
그는 재즈 손동작을 한다. 나도 재즈 손동작을 해준다.
흠.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
나는 로키도 대화가 끊겼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재즈 손동작을 하며 “그래.”라고 말한다.
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래.”
그도 내게 손동작을 해 보이며 “♬♩”라고 말한다.
나는 노트북에 그 주파수를 기록한다.
“좋아, 이제 우리 사전에 ‘그래’라는 말이 생겼어.” 내가 말한다.
똑 똑 똑.
나는 돌아본다. 내 주의를 끌었다는 걸 알자, 그는 다시 재즈 손동작을 하며 “♬♩”라고 말한다. 전과 같은 화음이다.
“그래.” 내가 말한다. “그건 했잖아.”
그는 한 손가락을 잠시 들어 올리더니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서로 부딪힌다. “♪♪”.
…뭐라고?
“아아아.” 내가 말한다. 나는 선생이다. 방금 “그래”라는 단어를 배운 사람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그건 ‘아니’야.”
아무튼 내 생각엔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서로 부딪힌다. “아니.”
“♬♩.” 그가 말한다. 나는 노트북을 확인한다. 로키는 방금 그렇다고 말했다.
잠깐만. 아닌 게 아니라는 뜻인가? 저것도 그렇다는 뜻인가? 헷갈린다.
“아니라고?” 내가 묻는다.
“아니.” 그가 에리디언어로 말한다.
“그럼 그렇다는 거야?”
“아니, 그래.”
“그렇다고?”
“아니. 아니라니까.”
“그런 게 그렇다고?”
“아니라고!” 그는 나를 보며 주먹을 쥔다. 답답해하는 게 분명하다.
애보트와 코스텔로 콩트에나 나올 법한 종족 간 코미디는 이만하면 됐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로키도 주먹을 풀고 같은 동작을 한다.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주파수를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한다. 내 생각이 틀렸대도 어쩔 수 없다. 그건 나중에 로키랑 같이 생각해 봐야지.
나는 숫자 ‘+’를 집어 든다. “4.”
로키는 한 손에 세 손가락을, 다른 손에 한 손가락을 펴든다. “♩♩.”
나는 주파수를 메모한다.
이어지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쓸 수 있는 단어를 수천 개까지 늘려 간다. 언어는 일종의 기하급수적 체계다. 단어를 알면 알수록 새로운 단어를 설명하기가 쉬워진다.
로키의 말을 듣는 나의 느리고도 서툰 시스템 때문에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다. 나는 한쪽 노트북으로 그가 말하는 주파수를 확인한 다음, 다른 노트북의 스프레드시트에서 그 주파수를 찾아본다. 훌륭한 시스템은 아니다. 이런 방식은 이제 그만.
나는 프로그램을 짤 시간을 좀 달라고 한다. 내가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방법은 좀 알고 있다. 나는 오디오 분석 소프트웨어에서 출력된 내용을 받아다가 내가 작성한 표에서 해당 단어를 찾는 프로그램을 작성한다. 거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보다는 코드라고 해야 한다. 코드는 효율성이 무척 떨어지지만, 컴퓨터 자체가 빨라서 괜찮다.
다행히도 로키는 음악적인 화음을 써서 말한다. 컴퓨터에게 인간의 말을 글로 바꿔놓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음정을 파악해 표에서 해당 음정을 찾도록 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이때부터는 내 노트북 화면에 로키가 하는 말의 영어 번역본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새로운 단어가 나타나면, 나는 데이터베이스에 그 단어를 입력한다. 그때부터는 컴퓨터가 그 단어를 알아듣는다.
한편 로키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기록하는 시스템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컴퓨터도 없고, 기록용 장치도 없고, 마이크도 없다. 아무것도. 그는 단지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는 내가 해준 모든 말을 기억한다. 모든 단어를, 몇 시간 전에 겨우 한 번 말해준 단어까지도. 내 학생들한테도 이런 집중력이 있었다면!
나는 에리디언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기억력을 가졌을 거라고 추정한다.
인간의 두뇌란 소프트웨어 도구를 모아놨더니 어쩌다가 생긴 기능적 단위와 비슷하다. 각 ‘기능’은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인, 임의의 돌연변이로서 추가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두뇌는 엉망진창이다. 진화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그러므로 나는 에리디언들도 임의의 돌연변이로 이루어진 엉망진창일 거라고 생각한다. 단, 뭔지는 몰라도 그들의 두뇌를 지금처럼 진화시킨 요소는 그들에게 인간이 ‘사진 기억’이라고 말하는 기능을 부여했다.
어쩌면 그보다 복잡한 상황일지 모른다. 인간의 두뇌에는 오직 시각 처리에만 할애되는 엄청나게 큰 부분이 있으며, 그 부분에는 자체 기억 저장소까지 달려 있다. 어쩌면 에리디언들은 그냥 소리를 기억하는 능력이 정말로 뛰어난 것뿐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들에게는 청각이 주된 감각이니까.
너무 이르다는 건 알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다. 나는 실험실 저장고에서 아스트로파지가 들어 있는 약병을 하나 터널로 가져와 들어 보인다. “아스트로파지.” 내가 말한다.
로키의 자세가 완전히 바뀐다. 그는 등딱지를 약간 낮게 웅크린다. 몸을 지지하는 철봉을 발로 꽉 움켜쥔다. “♬♪♬.” 그가 말한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용하다.
나는 컴퓨터를 확인한다. 아직 기록하지 않은 단어다. 아스트로파지를 나타내는 로키의 단어가 틀림없다. 나는 데이터베이스에 그 단어를 기록한다.
나는 약병을 가리킨다. “아스트로파지가 우리 별에 있어. 나빠.”
“♬♩♪♬ ♬♪♬♩ ♬♪♬.” 로키가 말한다.
컴퓨터가 번역한다. “아스트로파지가 나 별에. 나쁨. 나쁨. 나쁨.”
옳지! 가설이 확인됐다. 로키도 나와 같은 이유로 여기에 와 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도 많다. 하지만 단어가 없다. 화가 나 미치겠다!
“♬♬ ♬♩♪♪♬ ♬♪♬.” 로키가 말한다.
컴퓨터가 금방 글자를 표시한다. “넌 어디서 옴, 질문?”
로키는 영어의 기본 어순을 배웠다. 내가 보기에 로키는, 내가 자동으로 뭔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내게 자기 언어를 가르쳐주기보다는 내 시스템에 맞추는 것 같다. 그에게는 내가 좀 멍청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가 쓰는 영어에 에리디언 특유의 문법이 끼어들었다. 그는 언제나 질문을 ‘질문’이라는 단어로 맺었다.
“이해가 안 돼.” 내가 말한다.
“너희 별 이름 무엇, 질문?”
“아!” 내가 말한다. 그는 내 별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한다. “태양. 내 별은 ‘태양’이라고 해.”
“이해함. 너희 별의 에리디언 이름은 ♬♩♬♪♩♩.”
나는 새로운 단어를 메모한다. 이것이 ‘태양’을 의미하는 로키의 단어다. 인간끼리 더듬더듬 의사소통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로키와 나는 서로의 고유명사를 제대로 발음할 수조차 없다.
“너희 별을 부르는 우리 이름은 ‘에리다니’야.” 내가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그 별을 ‘40에리다니’라고 부르지만 간단히 하기로 했다.
“내 별의 에리디언 이름은 ♬♩♪♪♪.”
나는 그 단어를 사전에 추가한다. “이해했어.”
“좋음.”
이번 번역만큼은 컴퓨터 화면을 보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너’, ‘나’, ‘좋음’, ‘나쁨’ 등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 일부를 알아듣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도 예술적인 성향을 보인 적이 없었고, 그 누구보다도 음악적인 귀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같은 화음을 백 번쯤 듣고 나면 기억이 나기 마련이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그래, 이제 나한테는 손목시계가 생겼다. 스톱워치에 시계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른 일들을 생각하느라고 그런 거다.
우리는 온종일 이 작업을 했고, 나는 기진맥진했다. 에리디언들은 잠이 뭔지 알기는 아는 걸까? 이제는 물어볼 때가 된 것 같다.
“인간의 몸에는 잠이 필요해. 잠은 이런 거야.” 나는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잠을 과하게 연극적으로 표현하며 눈을 감는다. 가짜로 코 고는 소리를 낸다. 나는 연기 솜씨가 형편없으니까.
나는 평소로 돌아와 그의 시계를 가리킨다. “인간은 2만 9,000초 동안 자.”
에리디언들은 완벽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계산 능력이 극도로 좋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로키는 그렇다. 과학적 단위들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눈 깜빡할 사이에 자기 단위를 내 단위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그는 10진법을 이해하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
“많은 초….” 그가 말한다. “왜 그렇게 많은 초 가만히, 질문…? 이해함!”
그가 다리에 힘을 풀자 다리가 축 늘어진다. 그는 죽은 벌레처럼 몸을 말고 잠깐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에리디언도 같음! ♪♬♬♪!”
정말 다행이다. 한 번도 잠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 ‘잠’에 대해 설명한다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저기, 내가 잠깐 의식을 잃고 환각을 볼 참이야. 그건 그렇고, 나는 하루의 3분의 1을 이 짓을 하면서 보내. 한동안 이 짓을 하지 못하면 미쳐서 결국 죽어. 괜찮아, 걱정은 하지 마.’라고 해야 하나?
나는 로키의 ‘잠’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더한다.
나는 떠나려고 돌아선다. “이젠 자러 갈 거야. 2만 9,000초 후에 돌아올게.”
“나 지켜봄.” 그가 말했다.
“네가 지켜본다고?”
“나 지켜봄.”
“어….”
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다른 상황이었다면 소름 끼쳤겠지만 새로운 생명체를 연구할 때는 적절한 행동인 것 같다.
“난 2만 9,000초 동안 가만히 있을 거야.”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엄청나게 많은 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나 지켜봄. 기다려.”
그는 자기 우주선으로 돌아간다. 이제야 메모를 할 뭔가를 가져오려는 걸까? 몇 분 뒤, 그는 한 손에 어떤 장치를, 다른 두 손에는 주머니를 들고 돌아온다.
“나 지켜봄.”
나는 장치를 가리킨다. “그건 뭐야?”
“♬♪♩♬.” 그가 주머니에서 어떤 도구를 꺼낸다. “♬♪♩♬ 작동 안 함.”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도구로 장치를 몇 차례 쿡 찌른다. “나 바꿈. ♬♪♩♬ 작동함.”
나는 굳이 새 단어를 받아적지 않는다. 뭐라고 입력할까? “로키가 그때 내밀었던 물건”? 뭔지는 모르지만, 저건 그냥 전선 몇 개가 튀어나와 있고, 복잡한 내부가 드러나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장치일 뿐이다.
그 물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로키가 그걸 고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한테는 새로운 단어다.
“고친다.” 내가 말한다. “고친다.”
“♬♪♬♪.” 그가 말한다.
나는 ‘고치다’라는 단어를 사전에 추가한다. 이 단어가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 같다.
로키는 내가 자는 걸 지켜보고 싶어 한다. 그게 신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어쨌든 그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도록 할 일을 가져왔다.
뭐 그래.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거지.
“기다려.” 내가 말한다.
나는 우주선으로 돌아가 숙소로 향한다.
매트리스 패드와 이불, 담요를 내 침대에서 끌어낸다. 다른 두 침대의 침구를 쓸 수도 있겠지만 … 죽은 내 친구들이 썼던 침대라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매트리스 패드와 이불을 끌고 실험실을 통과하고, 어색하게 통제실을 지난 다음 터널로 들어간다. 엄청난 양의 테이프를 사용해 매트리스 패드를 벽에 붙인 다음 이불과 담요도 떨어지지 않게 잘 고정한다.
“나 이제 자.” 내가 말한다.
“자.”
터널의 불을 끈다. 나한테는 완전한 어둠이지만, 나를 지켜보고 싶어 하는 로키에게는 아무 차이가 없다. 두 세계 모두에 최고의 방법이다.
나는 몸을 움찔거리며 침대로 들어가고,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는다. 그 말을 해봤자 더 많은 질문이 이어질 뿐이다.
나는 가끔 로키가 장치를 만지는 찰캉 소리와 끽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잠든다.
이후의 며칠은 반복적이었다. 하지만 지루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공유할 단어를 엄청나게 늘렸고, 문법도 상당히 발전했다. 시제, 단수와 복수, 조건문… 언어는 까다롭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게다가 느리기는 해도 나는 그의 언어를 조금씩 외워가고 있다. 전처럼 컴퓨터가 자주 필요하지는 않다. 다만 지금 컴퓨터 없이 완전히 의사소통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에리디언 단어를 익히는 데 매일 한 시간을 쓴다. 나는 엑셀 스프레드시트에서 아무 단어나 뽑아서 MIDI 프로그램으로 재생해 주는 간단한 코드를 짰다. 이번에도 기초적인, 비효율적으로 작성된 프로그램이었지만 컴퓨터 속도가 빨라서 괜찮다. 나는 최대한 빨리 스프레드시트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스프레드시트가 필요하다. 그래도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컴퓨터에 의지하지 않고도 완전한 문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걸음마 단계랄까.
나는 매일 밤 터널에서 잠을 잔다. 로키가 지켜본다. 이유를 모르겠다. 아직 그 얘기를 해보지도 못했다. 둘 다 다른 일로 너무 바빴으니까. 희한하게도 로키는 자기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내가 잠드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 짧은 낮잠이라도.
오늘은 우리 둘 모두에게 까다롭게 느껴지던, 극도로 중요한 과학적 단위를 처리해야 한다. 이 단위가 이토록 까다로워진 이유는 대체로 우리가 무중력상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질량 얘기를 해야 해.”
“그래. 킬로그램.”
“맞아. 어떻게 해야 킬로그램을 설명할 수 있으려나?” 내가 묻는다.
로키는 주머니에서 작은 공을 하나 꺼낸다. 탁구공 정도 크기다. “나 이 공 질량 알아. 너 나한테 공 몇 킬로그램인지 말해. 그럼 내가 킬로그램 알아.”
알아냈구나!
“좋았어! 공 줘 봐.”
그는 여러 개의 손으로 몇 군데 지지대에 매달려, 공을 소형 에어로크에 집어넣는다. 나는 공이 식을 때까지 몇 분 기다린 뒤 집어 든다. 공은 매끄럽고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꽤 밀도가 높은 것 같다.
“이 공 무게를 어떻게 재지?” 내가 웅얼거린다.
“26.”로키가 불쑥 말한다.
“26이 왜?”
그는 내 손의 공을 가리킨다. “공은 26.”
아, 이해했다. 공은 26 어쩌고의 무게가 나간다. 단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공의 질량을 알아내서 26으로 나눈 다음 로키에게 답을 알려주는 것뿐이다.
“이해했어. 공의 질량이 26이라는 거지.”
“아니. 아님.”
나는 잠시 멈춘다. “아니라고?”
“아님. 공은 26.”
“이해가 안 가.”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기다려.”
그는 자기 우주선으로 사라진다.
그가 떠나 있는 동안, 나는 무중력상태에서 뭔가의 무게를 잴 방법을 생각한다. 당연히 무중력상태에서도 질량은 있다. 단, 물건을 저울에 올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중력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헤일메리호를 회전시켜 원심력을 얻을 수도 없다. 터널이 우주선의 앞부분에 연결돼 있으므로.
작은 원심분리기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초소형 실험실에 적합한 크기의 원심분리기면 되겠지. 그 원심분리기 안에 저울을 두고, 일정한 속도로 원심분리기를 돌린다. 내가 질량을 알고 있는 뭔가의 무게를 측정한 다음 공의 무게를 측정한다. 그러면 두 측정값의 비율을 가지고 공의 질량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정하게 회전하는 원심분리기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실험실의 무중력 환경에서 뭔가를 회전시키는 건 쉬운 일이지만, 여러 번 실험하는 동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뭘까?
아아아! 일정한 속도는 필요하지 않다! 그저 중간 지점이 표시된 실만 한 가닥 있으면 된다.
나는 헤일메리호로 날아 들어간다. 로키는 내가 떠나버린 것을 용서해 줄 것이다. 그야, 로키는 자기 우주선 어디에 있든 아마 나를 ‘관찰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공을 실험실로 가지고 내려간다. 나일론 실 한 가닥을 가져다가 양쪽 끝을 플라스틱 통에 감아 묶는다. 이제는 양옆에 작은 통이 달린 실이 생겼다. 나는 통을 나란히 두고, 이제는 반으로 접혀 있는 실을 팽팽하게 당긴다. 펜을 가지고 가장 먼 점에 표시한다. 그 점이 이 장치의 정확한 중심점이다.
나는 손으로 공을 앞뒤로 흔들며 그 공의 질량을 느껴본다. 아마 1파운드도 안 될 것이다. 0.5킬로그램에도 못 미친다.
나는 모든 걸 실험실에 떠다니게 놔두고 발을 차며 숙소로 간다.
“물.” 내가 말한다.
“물을 요청합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금속 팔이 내게 무중력상태에서 ‘빨아 먹는’ 물을 준다. 작은 클립이 풀릴 때만 물이 나오는, 빨대가 달린 비닐봉지다. 그 안에는 물이 1리터 들어 있다. 기계 팔은 늘 내게 물을 한 번에 1리터씩 준다. 세상을 구하려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야 하니까.
나는 실험실로 돌아간다. 물 절반을 쭉쭉 짜서 표본 상자에 넣고 밀봉한다. 반쯤 빈 물주머니를 한쪽 통에 넣고, 다른 쪽 통에는 금속 공을 넣는다. 그 장치 전체를 공중에서 빙빙 돌린다.
두 물체가 같지 않은 건 확실하다. 연결된 통 두 개가 비스듬하게 회전하는 모습은 물 쪽이 훨씬 무거움을 보여준다. 좋다. 내가 원했던 그대로다.
나는 장치를 공중에서 집어 들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다시 돌린다. 여전히 중심이 벗어나 있지만, 전처럼 심하지는 않다.
나는 물을 조금씩 더 마시고 장치를 더 많이 돌려본 다음 물을 더 마시는 식으로 계속한다. 결국 내 작은 장치는 표시된 중심점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회전한다.
그 말은 물의 질량이 공의 질량과 같다는 뜻이다.
나는 물주머니를 꺼낸다. 물의 밀도는 알고 있다. 리터당 1킬로그램이다. 그러니까 이 물의 질량을 알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부피뿐이다. 그걸로 금속 공의 질량을 구하면 된다.
나는 비품에서 커다란 플라스틱 주사기를 꺼낸다. 주사기는 최대 100시시의 부피를 빨아들일 수 있다.
나는 주사기를 물주머니에 연결하고 빨대의 죔쇠를 푼다. 물 100시시를 꺼낸 다음, ‘버린 물 상자’에 뿜어낸다. 몇 차례 이 과정을 되풀이한다. 마지막 주사기가 겨우 4분의 1 정도 찼을 때 물주머니가 빈다.
결과는 물 325시시다. 그리고 그 무게는 325그램! 그러므로 로키의 공도 325그램이다.
나는 로키에게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전부 말해주려고 터널로 돌아간다.
내가 들어가자 그가 내게 주먹을 쥐어 보인다. “너 떠남! 나쁨!”
“난 질량을 측정하고 왔어! 아주 똑똑한 실험을 했다고.”
그는 구슬이 달린 실을 들어 올린다. “26.”
구슬 달린 실은 우리가 서로의 대기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그가 보내준 것과 똑같다.
“아.” 내가 말한다. 이건 원자다. 로키는 원자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말한다. 나는 구슬들을 세어 본다. 모두 합해 스물여섯 개다.
그는 26번 원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흔한 원소 중 하나다. “철.” 내가 말한다. 나는 목걸이를 가리킨다. “철.”
로키는 목걸이를 가리키며 “♬♩♪♬♬”라고 말한다. 나는 사전에 그 단어를 기록한다.
“철.” 그가 목걸이를 가리키며 다시 말한다.
“철.”
그는 내 손에 들린 공을 가리킨다. “철.”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런 다음에야 나는 이마를 탁 친다.
“너 바보.”
흥미로운 실험이기는 했지만, 완전히 시간 낭비였다. 로키는 내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줬다. 최소한 그러려고 했다. 나는 철의 밀도를 알고 있었으며, 구체의 부피를 계산하는 방법도 알았다. 거기서부터 질량을 구하는 것은 단순한 계산일 뿐이었다.
나는 터널에 보관해 둔 공구 상자에서 캘리퍼스(둥근 물체의 직경을 재는 기구‐옮긴이)를 꺼내 구체의 지름을 쟀다. 4.3센티미터였다. 그로부터 부피를 구하고 철의 밀도를 곱해, 훨씬 더 정확하고 명료한 328.25그램이라는 질량을 알아냈다.
“나도 겨우 1퍼센트 틀렸어.” 내가 투덜댄다.
“너 너한테 말함, 질문?”
“그래! 혼잣말하는 거야.”
“인간 이상함.”
“그래.” 내가 말한다.
로키가 다리를 쭉 편다. “나 이제 잠.”
“와아.” 내가 말한다. 우리가 만난 이후로 그가 자려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좋다. 그러면 실험실에서 작업할 시간이 좀 생길 것이다. 얼마나 생기려나?
“에리디언은 얼마나 자?”
“모름.”
“모른다고? 네가 에리디언이잖아. 에리디언이 얼마나 자는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에리디언들은 잠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름. 짧을 수도 있음. 길 수도 있음.”
에리디언들은 예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잔다. 정기적인 패턴의 수면 시간을 갖도록 진화하라는 규칙은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수면 시간의 범위는 알고 있지 않을까?
“최단 시간이 있어? 최장 시간이나?”
““최단 시간 1만 2,265초. 최장 시간 4만 2,928초.”
로키와 이야기하다 보면, 대략적인 추정치여야 하는 문제에 대해 이상하게 구체적인 숫자를 듣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지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은 알게 됐다. 로키는 대략적인 어림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로키의 단위로 되어 있는 데다 6진수였다. 로키에게는 그런 숫자들을 떠올린 다음 지구의 10진법 초로 변환하는 것이 처음부터 지구의 초 단위로 직접 생각하는 것보다 쉬웠던 것이다.
그 숫자를 다시 에리디언 초로 바꾸어 6진수로 살펴보면, 어떤 어림수가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아주 게으르다. 로키가 이미 변환해 준 자료를 뭐하러 다시 변환하나? 로키가 계산을 틀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반면 나는 내가 사는 행성에서 쓰는 한 단위를 그 행성의 다른 단위로 바꿀 때도 계산기를 사용해 60으로 두 번 나눠야 한다. 로키는 최소 세 시간 반에서 열두 시간까지 잘 것이다.
“알았어.” 내가 말한다. 나는 에어로크로 돌아가려 한다.
“너 지켜봄, 질문?” 로키가 묻는다.
로키도 내가 자는 것을 지켜봤으니 나한테도 그를 지켜볼 기회를 준다는 건 공평한 일이다. 지구의 과학자들은 분명 에리디언이 자는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있다면 사방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즐거워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제노나이트를 심층 분석할 시간이 생겼고, 제논이 다른 요소들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알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려면 내 실험실 장비가 하나라도 무중력상태에서 작동해야겠지만 말이다.
“괜찮아.”
“너 지켜봄, 질문?” 로키가 다시 묻는다.
“아니.”
“지켜봐.”
“내가 네 자는 모습을 지켜봤으면 좋겠어?”
“그래. 원함, 원함, 원함.”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우리 사이에서 같은 단어를 세 번 말하는 것은 엄청난 강조를 의미하게 됐다.
“왜?”
“네가 지켜보면 더 잘 잠.”
“왜?”
그는 표현할 방법을 찾으려는 듯 팔 몇 개를 흔든다. “에리디언들은 그렇게 함.”
에리디언들은 서로 자는 모습을 지켜본다. 특이한데. 뛰어난 문화 감수성을 보여줘야겠지만, 내가 혼잣말을 할 때 로키도 날 깎아내렸으니까. “에리디언들은 이상하네.”
“지켜봐. 나 더 잘 잠.”
개 정도 크기의 거미가 몇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는 않다. 저 안에도 승조원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중 한 명에게 시키면 될 일인데. 나는 로키의 우주선을 가리킨다. “다른 에리디언한테 지켜봐 달라고 해.”
“싫음.”
“왜?”
“여기 에리디언은 나뿐임.”
나는 입이 쩍 벌어진다. “저 큰 우주선에 네가 유일한 사람이라고?”
그는 잠시 조용하더니 말한다. “♬♩♪♬♩♪♬ ♬♪ ♩♪♬ ♬♪♬♪♩ ♬♪♩♪ ♬♩ ♪ ♬♩♪ ♬ ♩♪♬♩♪ ♬♩♪ ♬.”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조잡하게 짜 맞춘 번역 프로그램이 고장 난 걸까? 나는 프로그램을 확인한다. 아니, 프로그램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나는 파형을 살펴본다. 전에 봤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더 낮다. 생각해 보니, 문장 전체의 음조가 로키가 전에 했던 그 어떤 말보다도 낮은 것 같다. 나는 소프트웨어의 녹음 기록에서 이 부분 전체를 선택해 한 옥타브 올린다. 옥타브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 옥타브를 올린다는 건 모든 음의 주파수를 두 배로 한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즉시 결과를 번역한다. “원래 대원 스물셋. 지금은 나뿐.”
옥타브가 낮아진 이 현상은… 감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원들은… 죽었어?”
“그래.”
나는 눈을 비빈다. 와. 블립A에는 승조원 스물세 명이 있었지만 로키만이 살아남았다. 지금 그가 동요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무슨…. 어….” 나는 말을 더듬는다. “나쁘다.”
“나쁨, 나쁨, 나쁨.”
나는 한숨을 쉰다. “우리 쪽은 원래 대원이 세 명이었어. 이제는 나뿐이야.” 나는 분리용 벽에 손을 댄다.
로키가 내 손 맞은편 분리용 벽에 발톱을 댄다. “나쁨.”
“나쁨, 나쁨, 나쁨.” 내가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가만히 있는다. “네가 자는 걸 지켜볼게.”
“좋음. 나 잠.” 그가 말한다.
그의 팔이 축 늘어진다. 어느 모로 보나 죽은 벌레 같다. 로키는 자기 쪽 터널에서 아무렇게나 둥둥 떠다닌다. 더는 지지대에 매달려 있지 않다.
“뭐, 이젠 혼자가 아니야, 친구.” 내가 말한다. “우리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