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날, 다른 관계자 회의. 세상을 구하는 일이 이렇게 지루해질 수도 있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과학팀은 회의실 탁자에 둘러앉았다. 나와 디미트리, 로켄이었다. 관료제를 배제하겠다고 그렇게 떠들어대더니, 스트라트는 결국 엄청나게 많은 장관들과 매일 관계자 회의를 하는 신세가 됐다.
가끔은 우리 모두가 싫어하는 일이 일 처리를 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상석에 앉은 건 스트라트였다. 그녀 옆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성이 있었다.
“여러분.” 스트라트가 말했다. “이쪽은 프랑수아 르클레르 박사님입니다.”
그녀의 왼쪽에 앉아 있던 프랑스인이 별 열의 없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르클레르 박사님은 파리 출신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상학자이십니다. 내가 이분에게 아스트로파지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 및 이해하고, 가능하면 개선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아, 겨우 그 정도 임무를 맡겼단 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르클레르는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는 빠르게 희미해졌다.
“그래서, 르클레르 박사님.” 스트라트가 말했다. “태양에너지의 감소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관해 상반되는 보고가 쏟아지고 있는데요. 의견이 같은 기상학자를 두 명 찾기도 어렵더군요.”
르클레르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렌지의 색깔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가진 기상학자 두 명을 찾으려 해도 어려울 겁니다. 사실 기상학은 별로 정확하지 않은 분야거든요. 불확실성이 아주 높고, 솔직히 말해서 때려 맞추는 게 절반입니다. 기후 과학은 아직 초창기예요.”
“박사님 본인의 공로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시는군요. 모든 전문가 중에서, 지난 20년간 계속해서 맞는 것으로 판명된 기후 예측 모델은 박사님의 것이 유일했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라트는 회의실 탁자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종이 더미를 가리켰다. “경미한 흉작에서부터 세계적인 생물권 붕괴에 이르는 온갖 예측을 받아봤는데요. 박사님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예측된 태양의 출력 지수는 보셨겠죠.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당연히 재앙일 겁니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수많은 생물의 멸종과 전 세계에 걸친 생물군계의 완전한 대격변, 기후 패턴의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고….”
“인간이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나는 이 일이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습니다. 항문 세 개짜리 진흙 나무늘보의 짝짓기 영역이든, 다른 무슨 생물군계든 관심 없어요.”
“우리는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스트라트 씨. 우리도 생태계의 바깥에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먹는 식물들, 우리가 기르는 동물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이 모든 게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모든 게 연결돼 있어요. 생물군계가 붕괴하면 인류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옵니다.”
“네, 그럼 숫자로 말해주시죠.” 스트라트가 말했다. “나는 숫자가 필요합니다. 애매한 추측이 아니라, 분명히 실재하는 것들이 필요해요.”
르클레르 박사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알겠습니다. 19년이요.”
“19년이요?”
“숫자를 원하신다면서요.” 그가 말했다. “숫자를 드린 겁니다. 19년입니다.”
“네, 뭐가 19년이죠?”
“현재 살아 있는 인간의 절반이 죽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추정한 겁니다. 지금부터 19년.”
이어진 침묵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침묵과도 달랐다. 스트라트조차 놀랐다. 로켄과 나는 서로를 보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디미트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절반이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35억 명을 말하는 겁니까? 그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요?”
“네.” 그가 말했다. “이 정도면 분명히 실재하는 사실로 느껴지십니까?”
“그걸 대체 박사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스트라트가 말했다.
르클레르 박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바로 이렇게, 기후 과학 부정론자가 또 한 명 태어나는군요. 참 쉽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실을 말하기만 하면 된다니.”
“나를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르클레르 박사님. 묻는 말에나 대답하십시오.”
르클레르 박사는 팔짱을 꼈다. “우리는 이미 심각한 이상기후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로켄이 목을 가다듬었다. “유럽에 토네이도가 불었다지요?”
“네.” 그가 말했다. “게다가 더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럽의 언어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북아메리카에서 토네이도를 목격하기 전까지 토네이도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어요. 이제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에서 토네이도가 불고 있습니다.”
그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부분적으로는 기후 패턴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웬 미치광이가 사하라사막을 검은 직사각형으로 포장하기로 했기 때문이고요. 지중해 인근에서 주요한 열 분배가 일어나더라도 아무 결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죠.”
스트라트가 눈알을 굴려댔다. “기후에 영향이 있으리라는 건 알았습니다. 그냥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에요.”
르클레르 박사는 밀어붙였다. “당신이 사하라사막을 오용한 일을 차치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해괴한 현상이 보이고 있어요. 사이클론 계절이 두 달이나 앞당겨졌습니다. 저번 주에는 베트남에서 눈이 내렸어요. 제트기류는 매일매일 대단히 난해한 패턴으로, 엉망진창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북극 공기는 한 번도 닿았던 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고, 열대의 공기는 북쪽으로든 남쪽으로든 훨씬 먼 곳에 이르고 있어요. 대혼란입니다.”
“35억 명 사망 얘기로 돌아가죠.” 스트라트가 말했다.
“그럽시다.” 그가 말했다. “기아로 죽는 사람을 계산하는 건 사실 꽤 쉬운 일입니다. 매일 세계에서 농사 및 농업으로 생산하는 칼로리를 전부 더한 다음 약 1,500으로 나눠 보세요. 인구는 이 숫자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아무튼, 꽤 오랫동안은 말이죠.”
그는 탁자에 놓인 펜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모델들을 돌려봤습니다. 흉년이 들 거예요. 세계의 주요 작물로는 밀, 보리, 수수, 감자, 콩 그리고 가장 중요한 쌀이 있습니다. 이 모든 작물이 기온교차에 상당히 민감해요. 논이 얼면 벼가 죽습니다. 감자 농장에 홍수가 나면 감자가 죽고요. 밀 농장의 습도가 평소보다 열 배 높아지면, 기생 곰팡이가 생겨 밀이 죽어요.”
그는 다시 스트라트를 보았다. “항문 세 개짜리 진흙 나무늘보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면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스트라트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19년으로는 부족해요. 헤일메리호가 타우세티까지 가는 데 13년이 걸릴 테고, 무슨 결과나 자료가 되돌아올 때까지 또 13년이 걸릴 겁니다. 최소 26년이 필요해요. 27년이면 더 좋고.”
르클레르 박사는 스트라트에게서 머리가 하나 더 돋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보았다. “무슨 말입니까? 이건 선택에 의한 결과가 아니에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녀가 말했다. “인류는 100년 동안 실수로 지구온난화를 일으켜 왔어요. 작정하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면 뭘 할 수 있을지 봐야죠.”
르클레르 박사가 움찔했다. “뭐라고요? 장난합니까?”
“온실가스를 배출해 멋진 담요를 씌운다면 시간을 좀 벌 수 있겠죠? 그 덕분에 지구가 파카를 입은 것처럼 단열 효과를 누릴 테고, 우리가 얻는 에너지도 더 오래 지속될 테니까요. 내 말이 틀렸습니까?”
“무슨….” 르클레르 박사가 말을 더듬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게다가 온실가스 배출을 일부러 일으킨다는 건 도덕적으로도….”
“난 도덕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진짜로 관심 없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인류를 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온실효과를 일으키세요. 박사님은 기상학자입니다. 우리가 27년을 버틸 수 있게 해줄 뭔가를 생각해 내세요. 난 인류의 절반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르클레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스트라트는 개를 쫓듯 손을 저었다. “가서 일하세요!”
세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공유하는 단어도 쉰 개가 더 추가된다. 하지만 나는 결국 방사선과 생물에 미치는 방사선의 영향을 로키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감사.” 그가 유난히 낮은음으로 말한다. 슬픈 음이다. “이제 내 친구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나빠, 나빠, 나빠.” 내가 말한다.
“그래.” 그도 맞장구친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블립A에 방사선 방호 장치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에리디언들이 어째서 방사선을 발견하지 못했는지도 알아냈다. 이 정보 전체를 조합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내가 알아낸 바는 이렇다.
에리디언의 고향은 40에리다니 항성계의 첫 행성이다. 인간은 사실 꽤 오래전에 그 행성을 발견했다. 물론, 거기에 하나의 문명이 온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말이다. 이 행성의 고유 이름은 ‘40에리다니Ab’이다. 말하려면 입을 한참 놀려야 한다. 에리디언들에게 이 행성의 진짜 이름은 다른 에리디언 단어들이 모두 그렇듯 화음의 조합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그냥 ‘에리드’라고 부르겠다.
에리드는 그 항성계의 항성과 극도로 가깝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에 견주면 5분의 1 정도다. 그들의 ‘한 해’는 지구의 42일을 조금 넘는다.
에리드는 ‘슈퍼지구(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지구보다 큰 지구형 행성‐옮긴이)’라고 부르는 행성으로, 무게는 지구 질량의 8.5배쯤 된다. 지름은 지구의 두 배이고 표면 중력은 두 배를 조금 넘는다. 게다가 엄청나게 빨리 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에리드의 하루는 겨우 5.1시간이다.
이때부터 퍼즐 조각이 맞기 시작한다.
행성에는 특정한 조건이 맞아야 자기장이 생긴다. 녹은 철로 된 핵이 있어야 하고, 행성은 항성의 자기장 안에서 자전하고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만족되면 자기장이 생긴다. 지구에는 자기장이 있다. 그래서 나침반이 작동하는 것이다.
에리드에는 이 모든 특징이 강화된 채로 존재한다. 에리드는 지구보다 크고, 철로 된 핵도 지구보다 크다. 항성과 가까우므로 에리드의 자기장을 작동시킬 자기장도 훨씬 힘이 세다. 게다가 에리드는 극히 빨리 자전한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에리드의 자기장은 지구의 자기장보다 최소 25배는 강하다.
게다가 에리드의 대기는 극도로 밀도가 높다. 지구의 29배다.
강한 자기장과 짙은 대기가 정말로 잘하는 일이 뭘까? 방사선 방호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방사선을 다룰 수 있도록 진화했다.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또 전반적인 우주로부터 지속적인 방사선 폭격을 당하기에 DNA에 오류 수정 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우리의 자기장과 기후도 어느 정도 우리를 지켜주기는 하지만, 백 퍼센트 지켜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에리드에서는 그 효능이 백 퍼센트다. 방사선은 땅에 이르지 못한다. 빛조차도 땅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에리디언들이 눈을 진화시키지 않은 것이다. 에리드의 표면은 칠흑처럼 어둡다. 완전한 어둠 속에 어떻게 생물권이 존재하느냐고? 아직 로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태양이 비추지 않는 지구의 깊은 바다에도 생명체는 많다. 그러니까 확실히 가능한 얘기다.
에리디언들은 방사선에 극도로 취약하며 방사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예 알지 못한다.
다음 대화에도 한 시간이 걸리고 우리의 사전에도 수십 개의 단어가 더해진다.
에리디언들은 꽤 오래전에 우주여행을 발명했다. 따라갈 자가 없는 재료 기술로(제노나이트 말이다), 그들은 사실상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에리드의 적도에서 동기 궤도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에 균형추를 단 것이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궤도에 올랐다. 지구에서도 제노나이트를 만드는 방법만 알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궤도를 벗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에리드에는 달이 없다. 항성과 그렇게까지 가까운 행성에 위성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력의 조석력은 위성이 될 만한 천체들을 궤도에서 이탈시키고는 한다. 에리디언들 중 궤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본 건 로키와 그의 승조원들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동기 궤도를 넘어서 훨씬 먼 곳까지 미치는 에리드의 자기장이 그동안 계속 자신들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 가지 수수께끼가 남았다.
“나는 왜 안 죽음, 질문?” 로키가 묻는다.
“나도 몰라.” 내가 말한다. “뭐가 달랐을까? 나머지 승조원들은 하지 않는데 너만 한 일이 뭐야?”
“나 물건 고침. 내 임무 망가진 것 고치고 필요한 것 만들고, 엔진 계속 가동하는 것.”
듣자니 엔지니어 같다. “넌 주로 어디에 있었어?”
“우주선에 내 방 있음. 작업실.”
뭔가 알 것도 같다. “작업실은 어디야, 질문?”
“엔진 근처, 우주선 뒤쪽.”
우주선에서 엔지니어를 둘 만한 공간이다. 유지 및 보수가 필요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엔진 근처.
“네 우주선에서는 아스트로파지 연료를 어디에 보관해?”
그는 대강 우주선 뒤쪽을 손짓한다. “아스트로파지 보관 장치가 많음 많음. 모두 우주선 뒤쪽. 엔진 근처. 연료 재보급 쉬움.”
그게 답이다.
나는 한숨을 쉰다. 로키는 이 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해결책은 너무도 간단했다. 그저 에리디언들이 몰랐을 뿐이다. 그들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너무 늦은 뒤에야 알았다.
“아스트로파지가 방사선을 막아.” 내가 말한다. “너는 대부분 아스트로파지에 둘러싸여 있었어. 너희 승조원들은 아니었고. 그래서 방사선이 네 동료들한테 닿은 거야.”
로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 말을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이해함.” 그가 낮은음으로 말한다. “감사. 이제 내가 왜 안 죽었는지 이해함.”
나는 로키의 종족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상상해 본다. 그들은 바깥세상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르면서도 지구의 우주 프로젝트를 훨씬 넘어서는 프로젝트로 종족을 구할 성간 우주선을 만들었다.
내 상황과도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내게는 좀 더 나은 기술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도 방사선이 있어.” 내가 말한다. “최대한 작업실 안에 머물러.”
“그래.”
“이 터널로 아스트로파지를 가져와서 벽에 넣어.”
“그래. 너도 그렇게 해.”
“난 그럴 필요가 없어.”
“왜 필요 없음, 질문?”
나야 암에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나는 어쨌든 여기서 죽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자살 임무를 띠고 여기 왔다고 설명하고 싶지 않다. 대화가 이미 너무 무거워졌다. 그래서 나는 로키에게 절반의 진실만을 전한다.
“지구는 대기 밀도가 낮고, 자기장이 약해. 방사선이 행성 표면에도 닿아. 그래서 지구의 생물들은 방사선에도 살아남도록 진화했어.”
“이해함.” 그가 말한다.
내가 터널을 떠다니는 동안 로키는 계속해서 수리 작업을 한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봐.”
“에리디언의 과학과 인간의 과학이 왜 이렇게 비슷할까? 수십억 년이 흘렀는데도 진도가 거의 비슷하네.”
나는 한동안 이 문제가 신경 쓰였다. 인간과 에리디언은 서로 다른 항성계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까지 서로 접촉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거의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에리디언들이 우주공학 면에서는 우리보다 약간 뒤처지지만, 그게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 왜 이들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아니면 현대 지구를 한물간 것처럼 보이게 할, 엄청나게 미래적인 시대에 이르지 않은 걸까?
“안 그랬으면 너랑 나 못 만남.” 로키가 말한다. “행성에 과학 적으면 우주선 못 만듦. 행성에 과학 많으면, 항성계 안 떠나도 아스트로파지 이해하고 파괴함. 에리디언과 인간의 과학은 둘 다 특정한 범위 안에 있음. 우주선은 만들 수 있지만, 아스트로파지 문제는 해결 못함.”
흠. 그 생각은 안 해봤네. 하지만 로키가 말하고 나니 당연한 얘기로 보인다. 지구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냥 죽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뒤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땀 흘리지 않고도 아스트로파지를 처리하는 방법을 아마 알아냈을 것이다. 어느 종이 타우세티로 우주선을 보내 해답을 알아내게 할 기술적 진보의 범위는 상당히 좁았다. 에리디언과 인간은 둘 다 그 범위에 들어왔고.
“이해했어. 훌륭한 주장인데.” 하지만 여전히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이상하긴 해. 우주에서 보면 인간과 에리디언은 가까운 곳에 있어. 지구와 에리드는 겨우 16광년 떨어져 있다고. 은하는 폭이 10만 광년이나 되는데! 그 드넓은 곳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드물 거야. 그런데 몇 안 되는 생명체인 우리 둘이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다니.”
“우리는 가족일 수도 있음.”
우리가 친척이라고? 어떻게….
“아! 네 말은…. 와아!” 이 말에는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다.
“안 확실. 가설.”
“엄청 좋은 가설이야!” 내가 말한다.
판스페르미아설. 나는 로켄과 늘 이 문제를 놓고 다퉜다.
지구의 생명체와 아스트로파지는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도 유사하다. 나는 아스트로파지의 조상 같은 것이 지구에 ‘씨를 뿌리지’ 않았을까 의심했다. 웬 우주의 시조 같은 종이 내 행성을 감염시킨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에리드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못 해봤다.
이곳 전체에 생명체가 있을지도 몰랐다! 아스트로파지류의 조상이 내가 가진 것과 같은 세포로 진화하는 일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이 ‘전-아스트로파지’ 유기체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만 해도 상당히 강하다. 그러니 어떤 형태의 생명체라도 있는 행성은 전부 그 ‘전-아스트로파지’ 유기체에 감염될 수 있었을 것이다.
로키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척일지도 몰랐다. 아주 오래전에. 고향의 내 집 앞에 있는 나무들이 나와 로키보다 가까운 친척이긴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말이지.
와.
“엄청나게 좋은 가설이야!” 내가 다시 말한다.
“감사.” 로키가 말한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알아낸 건 꽤 오래전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걸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만큼은 항공모함이 우리가 지내기에 완벽한 장소가 됐다.
중국 해군은 더 이상 스트라트의 명령에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저 윗사람들이 모든 행동을 일일이 승인하는 데 싫증이 나서, 결국 무기를 발사하는 것만 아니면 뭐든 스트라트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일반적인 명령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한밤중에 남극대륙 서안에 닻을 내렸다. 해안선은 아주 멀리 있었다. 달빛이 아니었으면 아예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대륙 전체에서 이미 모든 인간을 대피시켰다. 아마 과잉 대응이었을 것이다. 아문센-스콧 남극기지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 1,5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곳 사람들한테는 아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다.
이곳은 역사상 최대의 해양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 너무 커서, 미국 해군조차 이 지역에 상업 선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느라 대형을 넓게 벌려야만 했다.
스트라트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1호 구축함, 관측 상태 확인합니다.”
“준비됐습니다.” 미국인의 억양이 들렸다.
“2호 구축함, 관측 상태 확인합니다.”
“준비됐습니다.” 다른 미국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과학팀은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에 함께 서서 육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디미트리와 로켄은 가장자리에서 물러나 있었다. 리어델은 흑색 패널 농장을 운영하느라 아프리카에 가 있었다.
그리고 물론, 스트라트는 다른 모두보다 조금 앞에 서 있었다.
르클레르는 꼭 교수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거의 준비됐군요.” 그가 한숨을 쉬었다.
스트라트가 다시 무전기를 눌렀다. “1호 잠수함, 관측 상태 확인합니다.”
“준비됐습니다.” 응답이 들렸다.
르클레르는 태블릿을 확인했다. “3분… 주의하세요.”
“전 선박, 현재 황색경보 상황입니다.” 스트라트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반복합니다. 황색경보 상황입니다. 2호 잠수함, 관측 상태 확인합니다.”
“준비됐습니다.”
나는 르클레르 옆에 섰다. “믿을 수가 없네요.” 내가 말했다.
르클레르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이 일이 내 책임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태블릿을 만지작거렸다. “그레이스 박사님, 아시겠지만 저는 거칠 것 없는 히피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리옹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파리에서 보낸 대학 시절까지요. 저는 나무를 끌어안고 반전 운동을 하는, 이미 끝난 저항 정치 시대로 회귀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르클레르 박사는 인생 최악의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냥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나는 세상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기상학자가 됐어요. 우리가 스스로 빠져들어 가던, 악몽 같은 환경 대재앙을 막으려고요.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됐군요.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끔찍합니다. 박사님도 과학자이니 분명 아시겠죠.”
“실은 잘 몰라요.” 내가 말했다. “저는 과학자로서의 커리어 대부분을 지구가 아니라,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바라보며 쌓았습니다. 기후 과학에 대해서는 창피할 정도로 약합니다.”
“음.” 그가 말했다. “남극대륙 서부는 얼음과 눈으로 이루어진, 넘실거리는 덩어리입니다. 이 지역 전체가 바다 쪽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거대한 빙하예요. 여기에는 수십만 제곱킬로미터의 얼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녹이는 건가요?”
“실제로 얼음을 녹이는 건 우리가 아니라 바다겠지만, 맞습니다. 문제는 남극이 예전엔 밀림이었다는 거예요. 수백만 년 동안 남극은 아프리카만큼 초목이 무성한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륙의 이동과 자연스러운 기후변화로 얼어붙었죠. 그 모든 식물이 죽어서 분해됐습니다. 그 분해 과정에서 나온 기체들, 특히 메탄가스가 얼음 속에 갇혀 있어요.”
“메탄은 상당히 강력한 온실가스고요.” 내가 말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강력하죠.”
그는 다시 태블릿을 확인했다. “2분!” 그가 소리쳤다.
“전 선박, 적색경보.” 스트라트가 무전을 쳤다. “반복합니다. 적색경보.”
르클레르는 나를 등지고 섰다. “결국 이게 접니다.” 그가 바다를 내다보았다. “남극대륙에 대한 핵 공격을 명령하는 환경 운동가, 기상학자, 반전주의 활동가. 미국이 제공한 241기의 핵무기가 빙하의 균열을 따라 3킬로미터 간격으로 지하 50미터 깊이에 묻혀 있다가 동시에 폭발할 겁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사선은 극미량만 방출될 거라고 하더군요.” 르클레르가 말했다.
“네. 그나마 다행인 건, 저 핵무기들이 핵융합 수소폭탄이라는 겁니다.” 나는 재킷을 꽉 여몄다. “우라늄 등등과 반응해 훨씬 거대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소규모 핵융합 반응이 있어요. 이때 일어나는 큰 폭발은 그저 수소와 헬륨의 폭발일 뿐입니다. 거기서는 방사선이 나오지 않아요.”
“뭐, 의미가 있네요.”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공장에서 육플루오르화황이나 다른 온실가스를 대량 생산하도록 할 수는 없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한테 필요한 온실가스의 양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양의 수천 배에 달합니다. 석탄과 석유를 전 세계에서 백 년 동안 태우고 나서야 그 짓이 기후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걸 기억하세요.”
르클레르는 태블릿을 확인했다. “빙하는 폭발 선에 따라 쪼개지고, 천천히 바다로 들어가 녹을 겁니다. 다음 달에는 해수면이 약 1센티미터쯤 상승할 테고, 바닷물 온도가 1도 정도 떨어지겠죠. 그 자체로도 재앙입니다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엄청난 양의 메탄이 대기로 방출될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메탄이 우리 친구입니다. 그냥 친구도 아니고 절친이라니까요. 메탄은 당분간 우리를 따뜻하게 해줄 거예요.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래요?”
“메탄은 10년이 지나면 대기에서 분해됩니다. 우린 몇 년에 한 번씩 남극대륙 덩어리를 바다에 집어넣어 메탄 농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헤일메리호가 해결책을 찾아내면, 메탄이 사라질 때까지 그냥 10년을 기다리면 됩니다. 이산화탄소로는 그렇게 할 수 없죠.”
스트라트가 다가왔다. “시간은요?”
“60초 남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지구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냥 남극대륙을 계속 쑤셔서 메탄을 뱉어내게 하면 되는 건가요?”
“아뇨.” 그가 말했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이건 미봉책일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대기에 쓰레기를 퍼부으면 공기는 따뜻하게 유지되겠지만, 어마어마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날 겁니다. 그 경우에도 끔찍하고 예측 불가능한 날씨와 흉작, 생물군계의 절멸이 일어날 거예요. 하지만 어쩌면, 그저 가정이지만 메탄이 없을 때만큼 그 영향이 심각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죠.”
나는 나란히 서 있는 스트라트와 르클레르를 보았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토록 제한 없는 권한과 권력이 이토록 적은 수의 사람에게 주어진 경우는 없었다. 이 두 사람, 겨우 두 사람이 문자 그대로 세계의 얼굴을 바꿔놓게 될 것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는 스트라트에게 말했다. “일단 헤일메리호를 발사하고 나면, 스트라트 씨는 뭘 할 건가요?”
“나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죠. 일단 헤일메리호가 발사되면 내가 가진 권한은 종료돼요. 아마 심기가 상한 정부 몇 곳에서 권한 남용으로 나한테 소송을 걸 거예요. 남은 인생은 교도소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르고요.”
“내가 당신 옆방에 있겠네요.” 르클레르가 말했다.
“그게 조금이라도 걱정되긴 합니까?”
스트라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모두가 희생해야 해요. 인류가 확실히 구원되도록 내가 온 세상의 죄를 뒤집어써야 한다면, 그게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인 셈이죠.”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계시네요.” 내가 말했다.
“별로 안 이상해요. 대안이 내가 속한 종 전체의 죽음이라면, 답은 꽤 쉽거든요. 도덕적 딜레마도 없고, 뭐가 누구에게 최선인지 저울질할 일도 없죠. 그저 한 가지만 염두에 두고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집중하면 돼요.”
“나도 그런 식으로 나를 타이릅니다.” 르클레르가 말했다. “셋… 둘… 하나 … 폭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안선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폭발음도 없었고, 번쩍임도 없었다. 펑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르클레르는 태블릿을 보았다. “핵무기는 폭발했습니다. 충격파가 10분쯤 뒤 여기에 미칠 거예요. 멀리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항공모함의 갑판을 내려다봤다.
스트라트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박사님은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르클레르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로키와 나는 몇 시간에 걸쳐 생물학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 둘 다 상대방의 몸이 작동하는 방식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니었다면 우리가 형편없는 과학자인 거겠지.
에리디언의 생리학은, 솔직히 말해 놀랍다.
에리드가 항성과 무척 가까운 만큼 생물권에 들어오는 에너지 자체의 양은 터무니없이 많다. 그리고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있는 에리디언들은 인간에 비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말도 안 되게 많다. 얼마나 많으냐고? 에리디언들은 DNA에 기반한 생명체의 주된 에너지 저장 매체인 ATP만을 담아두는 액낭을 몸에 갖추고 있다. 보통 ATP는 세포 내에 저장되지만, 에리디언들은 ATP가 너무 많아서 이를 저장할 더욱 효율적인 저장고를 진화시켜야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에너지는 터무니없이 많은 양이다. 에리디언들은 광물에서 산소를 떼어내 금속을 얻는다. 에리디언들은 사실상 생물학적 제련소나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에는 머리카락, 손톱, 치아의 법랑질 등 중요한 기능을 하는 여러 ‘죽은’ 물질이 붙어 있다. 에리디언들은 이런 개념을 궁극의 궁극까지 진전시켰다. 로키의 등딱지는 산화광물로 만들어져 있다. 뼈는 벌집 모양의 합금이다. 피는 대체로 액체 상태의 수은이다. 그의 신경조차도 빛에 기반한 자극을 전달하는 무기질 규산염이다.
전체적으로, 로키에게는 생물학적 물질이 겨우 몇 킬로그램밖에 없다. 단세포 유기체들이 혈류를 따라 흐르며, 필요한 대로 신체를 만들고 고친다. 이것들은 소화 과정을 관리하고, 로키의 등딱지 한가운데에 안전하게 들어 있는 뇌가 시키는 일을 하기도 한다.
만일 꿀벌이 걸어 다니는 벌집을 만들도록 진화했고, 벌들의 여왕에게 인간 정도의 지능이 있었다면 그 생명체가 에리디언과 유사할 것이다. 다만 에리디언의 ‘벌’은 단세포 유기체라는 점만이 다르다.
에리디언들은 근육도 무기질이다. 이들의 근육은 신축성 있는 주머니 안에 밀봉된, 구멍이 많고 스펀지와 비슷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에리디언의 체내 수분 대부분이 이런 주머니에 묶여 있다. 기압이 너무 높아서, 에리드에서는 물이 섭씨 210도에서도 여전히 액체 상태다.
에리디언에게는 두 종류의 독립된 순환계가 있다. ‘환경성’ 순환계와 ‘열성(熱性)’ 순환계다. 환경성 혈액은 섭씨 210도다. 하지만 열성 혈액은 섭씨 305도로 유지되는데, 이 정도면 에리드의 기압에서도 물을 증발시키기에 충분한 온도다. 두 순환계 모두 필요에 따라 근육을 팽창시키거나 수축시킬 수 있도록 온도를 조절하는 혈관을 갖추고 있다. 팽창을 원한다면? 뜨겁게 하면 된다. 수축을 원한다면? 차갑게 하면 된다.
간단히 말해, 에리디언들은 증기기관처럼 움직인다.
이런 이유로, 환경성 순환계는 근육이 식으면 결국 열 흡수원이 된다. 이 순환계는 정상 온도까지 몸을 계속 냉각해야 하므로 방열기가 존재한다. 로키도 어떤 의미에서는 ‘숨을 쉬지만’, 이는 단지 등딱지 맨 위에 달린 방열기 같은 기관 속 모세혈관으로 암모니아를 내보내기 위해서일 뿐이다. 맨 위의 가는 금 다섯 개가 공기를 체내로 들여보내거나 내보내지만, 어느 순간에도 그 공기가 로키의 혈류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에리디언들은 ‘숨을 쉬지’ 않지만, 산소를 활용하긴 한다. 그저 인체보다 훨씬 더 자립적일 뿐이다. 이들의 몸속에는 식물성 세포와 동물성 세포가 있다. 산소가 이산화탄소로, 이산화탄소가 산소로, 둘이 왔다 갔다 하면서 언제나 균형을 맞춘다. 로키의 몸은 하나의 작은 생물권이다. 그의 몸에 필요한 것은 음식을 통해 얻는 에너지와 열기를 배출할 기류뿐이다.
한편, 열성 혈액은 너무 뜨거워서 그 안에서는 어떤 생물학적 물질도 생존할 수 없다. 물질 내의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이런 특성은 들어오는 음식에서 병원균을 소독하기에 편하다.
하지만 일하는 세포가 열성 혈액계에 필요한 일을 하려면, 열성 혈액계도 환경성 순환계 정도로 식어야만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에리디언들은 근육을 아예 움직이지 못한다. 에리디언들이 자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들은 인간처럼 ‘잠을 자지’ 않는다. 마비당한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두뇌 역시 유지 및 보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의식적인 작용을 전혀 하지 못한다. 잠든 에리디언은 깨어날 수가 없다.
에리디언들이 잠들어 있는 서로를 지켜보는 이유가 그래서다. 누군가는 잠든 에리디언을 안전하게 지켜주어야 하니까. 아마 석기시대 원시인 시절(석기시대 에리디언 시절?) 때부터 시작한 행동이겠지만, 이제는 단순한 사회적 규범이 됐다.
내게는 이 모든 것이 놀랍다. 하지만 로키에게 이건 지루한 주제다. 한편,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전적으로 놀라며 충격을 받는다.
“너 빛 들음, 질문?” 로키가 말한다(그는 놀라거나 감명 받았을 때 문장의 첫 음을 약간 떤다).
“응. 나는 빛을 들어.”
나와 수다를 떨면서도 로키는 수많은 손을 사용해 복잡하게 보이는 무슨 장치를 조립한다. 그 장치는 거의 로키만큼 크다. 나는 이 장치의 몇몇 부분이 로키가 지난 며칠간 수리해 온 부품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그는 대화를 계속하면서, 동시에 섬세한 기계류를 다룰 수 있다. 에리디언들은 인간보다 여러 가지 작업을 한 번에 처리하는 능력이 훨씬 뛰어난 것 같다.
“어떻게, 질문?” 그가 묻는다. “어떻게 빛 볼 수 있음, 질문?”
나는 눈을 가리킨다. “이게 초점을 맞춰서 빛을 감지하는 특별한 신체 부위야. 이 부위가 정보를 뇌로 보내.”
“빛이 정보를 줌, 질문? 공간을 이해할 만큼 충분한 정보임, 질문?”
“응. 소리가 에리디언들에게 정보를 주듯이 빛은 인간에게 정보를 줘.”
로키는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그는 작업하던 장치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우주에서 빛 들음, 질문? 항성과 행성, 소행성 들음?”
“맞아.”
“놀라움. 소리는, 질문? 너 소리 들을 수 있음.”
나는 귀를 가리킨다. “소리는 이걸로 들어. 넌 소리를 어떻게 들어?”
그는 자기 등딱지 전체와 팔들을 가리킨다. “모든 곳. 바깥쪽 껍질에 아주 작은 수용체가 있음. 모두가 뇌에 보고. 촉각과 비슷.”
그러니까 로키는 온몸이 마이크인 셈이다. 그의 뇌는 만만찮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의 두뇌는 몸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하고, 소리가 몸의 각기 다른 부위에 와 닿을 때의 시간차를 감지해야 한다 …. 와, 이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긴, 그렇게 치면 나의 뇌는 단지 안구 두 개를 가지고 주변 환경 전체를 구현한 3D 모형을 제공한다. 어디서나 감각적 정보는 정말이지 인상적이다.
“너만큼 잘 듣지는 못해.” 내가 말한다. “빛이 없으면 난 공간을 이해할 수 없어. 네가 말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못해.”
로키가 분리용 벽을 가리킨다. “이거, 벽.”
“이건 특별한 벽이야. 빛이 이 벽을 통과해.”
“놀라움. 처음 벽 만들 때 나 많은 선택지 줌. 이 벽 고른 이유는 빛이 통과하기 때문, 질문?”
너무 오래전 일 같다. 분리용 벽이 서로 다른 질감과 색깔의 육각형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였던 시절이라니. 물론, 나는 투명한 육각형을 골랐었다.
“응. 내가 이걸 고른 이유는 빛이 이 벽을 통과하기 때문이야.”
“놀라움. 나는 소리의 다양한 ♬♩♪♬에 따라 선택지 줌. 빛 생각 안 해봄.”
나는 수수께끼의 단어가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노트북을 힐끗 본다. 이제는 노트북을 봐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가끔은 기억나지 않는 화음이 나온다. 컴퓨터는 그 단어가 ‘특성’이라고 알려준다. 뭐, 그 단어를 모른 건 딱히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자주 나오는 단어는 아니니까.
“그냥 운이 좋았네.” 내가 말한다.
“운이 좋음.” 로키도 동의한다. 그는 장치를 몇 군데 더 조율하고 둘러매고 있는 띠에 공구를 집어넣더니 말한다. “다함.”
“그게 뭐야?”
“내가 작은 공간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장치.” 그는 즐거워한다, 내 생각이지만. 로키는 등딱지를 평소보다 약간 더 높이 들고 있다. “기다려.”
그는 장치를 놓아둔 채 우주선으로 다시 사라진다. 그러더니 투명한 제노나이트 판 몇 개를 가지고 돌아온다. 각각의 판은 두께 약 1센티미터, 폭 1피트 정도의 오각형이다. 나도 이런 식으로 단위를 섞어서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다. 하지만 뇌에서 그렇게 떠올린 걸 어쩌나.
“이제 나 공간 만듦.” 그가 말한다.
로키는 모서리를 맞대고, 튜브에 들어 있는 일종의 걸쭉한 액체형 접착제를 사용해 오각형들을 조립해 붙인다. 머잖아 조립된 절반의 십이면체 두 개가 생긴다. 로키는 자랑스러운 듯 그 두 물체를 내게 내밀더니, 둘을 한데 합친다. “공간.”
그 ‘공간’은 오각형으로 이루어진 측지선 구체(측지선을 따라 장력이 작용하는 직선 구조재를 연결해 만든 구체. 측지선이란, 공간의 두 점을 잇는 곡선 중 가장 짧은 것을 말한다‐옮긴이)다. 전체 지름은 약 1미터다. 로키가 들어가기에는 충분히 크다.
“뭐에 쓰는 공간이야?” 내가 묻는다.
“너의 우주선에서 나를 살게 해주는 공간과 장치임.”
나는 눈을 치켜뜬다. “내 우주선에 들어온다고?”
“인간 기술 보고 싶음. 허락, 질문?”
“그럼! 허락하지! 뭘 보고 싶어?”
“모든 것! 인간의 과학이 에리디언 과학보다 좋음.” 그는 내 옆에서 떠다니는 노트북을 가리킨다. “생각하는 기계. 에리디언들은 없음.” 그는 내 도구 상자를 가리킨다. “에리디언들에게 없는 기계가 많음.”
“그래. 와서 뭐든 원하는 대로 봐!” 나는 분리용 벽에 달린 작은 에어로크 서랍을 가리킨다. “그걸 어떻게 저기로 집어넣으려고?”
“너 터널에서 나가. 나 새로운 분리용 벽 만듦. 더 큰 에어로크.”
그는 완성된 장치를—인제 보니 그건 생명 유지 장치다—자기 등딱지 쪽으로 당기더니 장치에 매달린 끈을 찬다. 장치는 로키의 등딱지 맨 위에 나 있는 방열용 구멍을 덮는다.
“장치가 네 방열기를 막는 것 아냐? 위험하지 않아?”
“아님. 이건 뜨거운 공기를 차가운 공기로 만듦.” 그가 말한다.
에어컨이라. 200도가 넘는 곳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종족이 그런 물건을 만들 줄은 몰랐다. 하지만 우리 모두 버틸 수 있는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로키는 구체를 몸에 두르고 접착제로 밀봉한다. “나 시험함.”
그는 잠시 그 자리에 떠 있더니 말한다. “된다! 행복!”
“좋았어!” 내가 말한다. “근데 어떻게 작동하는 거야? 열은 다 어디로 가?”
“쉬움.” 그가 말한다. 그는 장치의 작은 부품을 톡톡 두드린다. “여기에 아스트로파지. 아스트로파지는 96도 이상의 모든 열 흡수.”
아, 그렇지. 인간에게는 아스트로파지가 뜨겁다. 에리디언에게는 아스트로파지가 상당히 차갑다. 완벽한 에어컨 냉매가 된다. 로키가 해야 하는 일은, 아스트로파지로 채워진 냉각핀 같은 것에 공기를 통과시키는 것뿐이다.
“영리한데.” 내가 말한다.
“감사. 너 이제 나가. 나 터널에 쓸 큰 에어로크 만듦.”
“좋아, 좋아, 좋아!” 내가 말한다.
나는 벽에 고정해 두었던 매트리스를 포함해 터널에 있던 내 물건을 챙겨, 그것들을 통제실에 쑤셔 박는다. 그런 다음 나도 통제실로 들어가 에어로크 문 두 개를 다 밀폐한다.
나는 다음 한 시간을 정리하면서 보낸다. 이곳에 손님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