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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는 상대성이론에 대해 듣고 얼빠진 상태가 됐다. 처음 두어 시간은 아예 내 말을 믿지 않으려 들었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그의 여행이 설명된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실하게 증명해 주자 마음을 돌렸다. 로키는 상대성이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지만 우주의 법칙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영원처럼 긴 시간 동안 사슬을 만들고 있다.

나는 최대한 빨리 거푸집들을 만들어냈고, 로키는 제노나이트가 굳는 대로 빠르게 고리들을 찍어냈다. 괜찮은 시스템이었다. 결과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나오는 시스템. 내가 새로운 거푸집을 만들 때마다 로키가 한 번 찍어낼 때 만드는 고리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사슬, 사슬, 사슬.

살면서 사슬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리 하나의 길이가 5센티미터로 이루어진 사슬 10킬로미터라니. 그 말은 고리가 20만 개 있다는 뜻이다. 각 고리가 갈고리로 연결돼 있다. 이 사슬 때문에 우리는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리들만 꿰며 2주 동안 매일 여덟 시간 일해야 했다.

눈을 감아도 사슬이 보였다. 매일 밤 사슬 꿈을 꿨다. 한번은 저녁 식사로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국수가 아니라 매끄럽고 흰 사슬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다.

일단 모든 고리를 만든 뒤에는 그것들을 병렬로 조립했다. 둘이서 10미터짜리 사슬을 만들어서 20미터짜리로 연결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까다로운 부분은, 그 고리들을 전부 어딘가에 보관하는 일이었다. 10킬로미터면 엄청나게 많은 사슬이다.

결국은 실험실이 일종의 보관 창고로 변했다. 그런 다음에는 실험실로도 부족하게 됐다. 엄청나게 재능 있는 엔지니어인 로키는 에어로크에 간신히 들어가는 커다란 스풀을 만들었다. 나는 엄청나게 많은 선외활동을 해서 그 스풀들을 선체에 얹었다. 그런 다음, 사슬을 500미터씩 뭉쳐서 그 스풀에 보관했다. 물론, 선외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원심분리기를 꺼야 했다. 그러니까 그 이후로 벌어진 모든 일은 무중력상태에서 벌어진 것이다.

무중력상태에서 사슬을 연결해 본 적이 있나? 재.미.없.다.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500미터짜리 덩어리들을 마지막으로 조립하는 건 하나의 도전이었다. 나는 EVA 우주복을 입은 채로 그 덩어리 스무 개를 전부 연결해야 했다. 다행히, IVME 장비에 쓰던 조작기가 있긴 했다. 나사에서 그 조작기를 사슬 제작용 도구로 만든 건 아니지만 난 그렇게 썼다.

지금 나와 로키는 통제실에 떠 있다. 로키는 자기 구체에 있고, 나는 조종석에 있다.

“탐사선 상태는, 질문?” 내가 말한다.

로키는 자기 화면의 수치를 확인한다. 장치 작동 중.

로키는 표본 추출용 탐사선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공학은 내 강점이 아니니까.

표본 수집기는 강철 구체로, 지름이 20센티미터다. 맨 위에는 잘 만들어진, 두꺼운 고리가 달려 있어서 사슬과 연결할 수 있다. 작은 구멍들이 구체의 중앙선을 따라 나 있다. 이 구멍들은 안쪽의 텅 빈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 안에는 압력 검출기와 몇몇 작동기가 들어 있다. 압력 검출기는 탐사선이 알맞은 고도에 도달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때가 되면 작동기가 돌아가며 빈 공간을 밀폐한다. 바깥쪽 구체에 나 있는 구멍들과 배열이 맞지 않도록 일부러 내부 통을 몇 도 정도 비틀면 간단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배열이 틀어지고 개스킷을 적절한 위치에 몇 개 배치하면 빈 공간 내에 담긴 그 구역의 공기가 밀봉된다.

로키는 그 안에 온도계와 히터도 집어넣었다. 표본 수집기가 밀폐되면 히터는 안의 온도를 시작점으로 유지한다. 따지고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나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생명체는 온도 범위에 상당히 까다로울 수 있다.

남은 유일한 부품은 내 장비로는 읽어내거나 해독할 수 없었던, 이상한 아날로그 신호를 방출하는 작은 무전 송신기다. 이 송신기가 에리디언들에게는 표준적인 데이터 접속 방식인 모양이다. 어쨌든 로키에게는 이 신호를 수신할 수신기가 있고, 중요한 건 그 사실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로키는 복잡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에이드리언 생명체들을 위한 생명 유지 장치를 만들어냈다. 제공해야 할 환경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없는 시스템,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시스템이었다.

로키는 진짜 천재다. 모든 에리디언들이 이런 식인지, 아니면 로키가 특별한 건지 궁금하다.

“그럼… 준비된 건가?” 내가 말한다. 딱히 자신감이 넘치지는 않는다.

응.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나는 조종석에 앉아 안전띠를 맨다. 로키는 손 세 개를 활용해 구체 안의 손잡이를 잡는다.

나는 고도 조절용 제어판을 띄우고 옆높이를 시작한다. 우주선이 우리가 지나온 방향 쪽을 다시 가리키며 아래쪽 땅과 수평을 이루는 순간, 나는 회전을 멈춘다. 이제 우리는 우주선 궁둥이를 앞으로 해서 초속 12킬로미터로 돌진하고 있다. 나는 그 속도를 거의 0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방향 문제없음.” 내가 말한다. “추진기 작동.”

그래. 로키가 말한다. 로키는 자기 화면을 골똘히 지켜본다. 로키가 앞서 설치했던 카메라 덕분에 로키의 화면에도 내 화면 내용이 질감으로 표시된다.

“자, 간다 ….” 나는 스핀 드라이브를 켠다. 1초도 안 걸렸는데, 무중력에서 1.5g에 이른다. 나는 의자에 꽉 눌리고 로키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느라 네 번째 손으로 지지대를 붙든다.

헤일메리호가 느려지자 우리의 속도로는 더 이상 궤도에 머물 수 없게 된다. 나는 레이더 제어판을 본다. 화면을 보니 고도가 떨어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나는 수평선에서 아주 약간만 위쪽을 가리키도록 우주선의 비행 자세를 조정한다. 미세한 각도로.

그렇게 작은 각도조차 지나친 것이었다! 레이더는 우리가 빠르게 고도를 높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각을 다시 낮춘다. 이건 우주선을 운전하기에 서툴고 고약하고 끔찍한 방법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방법밖에 없다. 이런 조작을 미리 계산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변수도, 계산을 망칠 방법도 너무 많아서 어차피 거의 즉시 수동 비행을 하게 됐을 것이다.

몇 차례 과잉 수정을 거쳐, 나는 감을 잡는다. 행성에 대한 우주선의 상대속도가 떨어지는 동안 나는 각도를 조금씩 조금씩 증가시킨다.

탐사선을 투하해야 할 때 말해. 로키가 말한다. 그의 발톱이 어느 버튼 위에 머물러 있다. 스풀을 풀어 사슬이 마음껏 풀려나도록 하는 버튼이다. 우리로서는 사슬이 꼬이지 않기만을 바랄 수 있을 뿐.

“아직 아니야.” 내가 말한다.

비행 자세 화면을 보니, 우리는 수평선과 9도 각도를 이루고 있다. 60도까지 각을 올려야 한다. 오른쪽에서 뭔가가 내 눈에 들어온다. 외부 카메라 영상이다. 아래쪽 행성이… 빛나고 있다.

아니다. 행성 전체가 빛나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 바로 뒤쪽만이 빛나고 있다. 엔진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적외선이 대기와 반응하는 것이다. 헤일메리호가 타우세티보다 수십만 배는 많은 에너지를 그 자리에 쏟아 붓고 있다.

적외선이 공기를 너무 심하게 데우자 공기는 이온화된다. 문자 그대로 시뻘겋게 달궈진다. 우리 우주선의 각도가 심해질수록 밝기도 증가한다. 그러면서 헤일메리호의 영향을 받는 구역도 넓어지기 시작한다. 엄청난 결과가 있으리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식일 줄은 전혀 몰랐다. 우리는 하늘을 가르는 빨간색 줄무늬를 그리며 허공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는 아마 순수한 열에너지를 받으며 미립자 탄소와 유리산소로 찢겨나가고 있을 것이다. 산소는 O2조차 이루지 못할 것이다. 엄청난 열이다.

“엔진이 에이드리언의 공기를 엄청나게 데우고 있어.” 내가 말한다.

그걸 어떻게 알아, 질문?

“가끔은 열이 보이거든.”

뭐, 질문? 왜 나한테 말 안 함, 질문?

“시각과 관계된 건데, 설명할 시간이 없어. 그냥 날 믿어. 우리가 대기를 아주 뜨겁게 만들고 있어.”

위험, 질문?

“모르겠어.”

대답 마음에 안 듦.

우리는 점점 위로 각도를 튼다. 뒤쪽의 빛이 점점 더 밝아진다. 마침내 우리는 딱 맞는 각도에 이른다.

“비행 각도 도달.” 내가 말한다.

행복! 투하, 질문?

“기다려. 속력이….” 나는 항로 제어판을 확인한다. “초당 127.5미터야! 내가 계산한 그대로라고! 세상에, 이게 통하다니!”

나는 에이드리언의 인력이 나를 의자로 잡아당겨 앉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 현상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줘야 했다. 궤도에 진입한다고 해서 중력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은 궤도에서 경험하는 중력은 땅에서와 거의 같다. 궤도에서 우주비행사들이 경험하는 무중력은 계속 추락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뿐이다. 단, 땅의 곡률 때문에 우주비행사가 낙하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땅이 멀어진다. 그래서 그냥 영원히 떨어지는 것이다.

헤일메리호는 더 이상 추락하지 않는다. 엔진이 우리를 하늘에 붙들어두고, 우리는 각도 때문에 초당 127미터의 속도로 앞으로 비스듬하게 나아간다. 대략 시속 285마일의 속도다. 자동차치고는 빠르지만, 우주선치고는 놀랄 만큼 느리다.

우리 뒤쪽의 공기가 너무도 밝게 빛나자 외부 카메라가 디지타이저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을 멈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생명 유지 장치 제어판이 주 화면에 뜬다. ‘외부 온도 위험 수준’이라는 경고다.

“공기가 뜨거워.” 내가 소리친다. “우주선이 뜨거워.”

우주선 공기에 안 닿음. 로키가 말한다. 우주선 왜 뜨거움, 질문?

“공기가 우리 적외선을 우리한테 튕겨내고 있어. 거기다 지금은 공기가 너무 뜨거워서, 그 자체로 적외선을 발산하고 있기도 해. 우린 익어가고 있다고.”

네 우주선 아스트로파지로 냉각됨, 질문?

“응. 아스트로파지가 우주선을 냉각해.”

만일을 대비해 선체 전체에는 아스트로파지 도관이 설치돼 있다. 뭐, ‘강철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많은 적외선으로 한 행성의 대기를 불태워버리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열이 발생하는 일반적인 상황에 대비해서 설치한 것이긴 하지만. 아스트로파지 도관은 대부분 태양이나 타우세티 때문에 우주선이 뜨거워지는데 열기를 방출할 수 없는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아스트로파지 열 흡수. 우리 안전.

“맞아. 우린 안전해. 준비도 돼 있고. 탐사선 투하해!”

탐사선 투하! 로키가 투하 버튼을 발톱으로 쾅 누른다.

스풀이 한 번에 하나씩 선체에서 미끄러져 아래쪽 행성으로 떨어질 때마다 끼익 소리와 철컹 소리가 난다. 스풀 하나가 떨어져 사슬을 모두 풀어내면 다음 스풀이 투하되는 식으로 총 스무 개의 스풀이 투하된다. 사슬이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한, 우리가 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6번 스풀 투하…. 로키가 보고한다.

생명 유지 장치 제어판이 다시 경고창을 깜빡인다. 나는 다시 경고를 꺼버린다. 아스트로파지는 항성의 표면에서 산다. 적외선이 조금 반사됐을 뿐인데, 아스트로파지가 이 정도 열을 못 다룰 것 같지는 않다.

12번 스풀 투하…. 로키가 말한다. 표본 수집기 신호 양호. 이제 표본 수집기가 공기를 탐지하고 있음.

“좋았어!” 내가 말한다.

좋음, 좋음. 그가 말한다. 18번 스풀 투하…. 공기 밀도 증가….

외부 카메라가 나갔기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하나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로키의 화면에 표시되는 내용은 우리가 세웠던 계획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금 사슬은 낙하하면서 풀리고 있다. 우리 우주선은 각도를 잡아 놓은 엔진 덕분에 계속 하늘에 떠 있지만, 사슬이 곧장 아래로 떨어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번 수풀 투하됨. 모든 스풀 투하. 표본 수집기 내부 공기 밀도, 아스트로파지 배양에 필요한 지표면 공기 밀도와 거의 같음….

나는 숨죽이고 로키를 지켜본다.

표본 수집기 닫힘! 밀봉 완벽, 히터 켜짐! 성공, 성공, 성공!

“성공!” 나는 소리친다.

성공이 눈앞이다! 이 방법이 정말로 통하다니! 우리는 아스트로파지 번식 구역의 에이드리언 공기 표본을 확보했다! 포식자가 존재한다면 분명 저 표본 안에 있을 것이다.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2단계야.” 나는 한숨을 쉰다. 이번에는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안전띠를 풀고 의자에서 기어 나온다. 에이드리언의 중력 1.4g가 30도 각도로 나를 아래로 잡아당긴다. 통제실 전체가 기울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상 통제실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엔진의 추진력이 아니다. 중력이다.

1.4g는 그리 나쁘지 않다. 모든 것이 좀 더 힘들지만, 말도 안 되게 힘든 것은 아니다. 나는 올란 EVA 우주복에 기어 들어간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 중력의 작용을 완전히 받으면서 선외 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EVA 우주복이나 에어로크 혹은 내가 받은 훈련의 어떤 부분도 이럴 가능성에 대비해 설계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완전한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주선을 밟고 돌아다닐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것도 지구 중력보다 큰 중력을?

게다가 중력이 큰데도 공기는 없다. 정말 최악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다. 나는 표본을 확보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 표본 수집기는 10킬로미터짜리 사슬 끝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사슬은 그냥 허공에 대롱대롱 늘어져 있다. 표본 수집기를 우주선으로 다시 가져올 쉬울 방법이란 없다.

이 모든 계획을 세울 때, 내가 처음으로 한 생각은 행성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우주선을 추진한 다음 다시 무중력상태에 이르면 표본 수집기를 회수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표본 수집기를 증발시켜 버리지 않는 한 그렇게 할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시험해 봐도 우주선을 에이드리언의 중력에서 벗어나도록, 하다못해 안정적인 궤도에라도 접어들도록 하려면 스핀 드라이브를 사용해야 했다. 스핀 드라이브는 우주선을 밀고 나갈 테고, 그러면 사슬과 표본은 우리 뒤쪽으로 처지게 된다. 그 말은, 표본 수집기가 우주선 뒤에서 작열하는 적외선에 흠뻑 젖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표본 수집기와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사슬이 모두 개별적인, 아주 뜨거운 원자가 된다.

다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사슬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거대한 스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키는 10킬로미터나 되는 사슬을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크고 강한 스풀은 절대로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로키는 대신 꽤 똑똑한 생각을 떠올렸다. 일을 마친 뒤, 표본 수집기가 사슬을 타고 기어 올라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차례 실험을 해본 끝에 로키는 이 생각을 포기했다. 너무 위험성이 커서 시도해 볼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계획을 세웠다.

나는 로키가 고안한 새로운 권양기를 집어 들고, 내 우주복의 도구용 띠에 연결한다.

조심해. 로키가 말한다. 너는 이제 친구.

“고마워.” 내가 말한다. “너도 친구야.”

감사.

나는 에어로크를 회전시켜 바깥을 바라본다.



이상한 경험이다. 우주는 검다. 내 아래 펼쳐진 행성은 광활하다. 모든 것이 궤도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중력이 있다.

행성에서 나오는 붉은 빛이 헤일메리호의 가장자리 너머로 빠끔 고개를 내민다. 나도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니까 대기에서 튀어나오는 치명적인 열기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주선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에어로크 문이 ‘위’를 향한다. 나는 나 자신과 100파운드에 이르는 장비를 위로 끌어올려 그 구멍을 지나야 한다. 그것도 1.4g의 중력을 받으면서.

5분이 통째로 걸린다. 나는 낑낑댄다. 딱히 성스럽지는 않은 말을 잔뜩 쏟아내지만, 결국 해낸다. 머잖아 나는 우주선 꼭대기에 서 있다. 한 번이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져 죽는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우주선 아래로 떨어지자마자 엔진이 저승행 차표를 끊어줄 테니까.

나는 발치에 있는 난간에 줄을 연결한다. 내가 떨어지면, 무중력상태에서 쓰는 안전끈이 나를 구해줄까? 이 안전끈은 등산 장비가 아니다. 이런 용도로 만든 게 아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선체를 따라 사슬을 고정해 둔 지점까지 걸어간다. 로키가 만든 것은 커다란 제노나이트 정사각형이다. 그는 이 사각형을 선체에 붙이는 방법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제노나이트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낸 듯하다. 사슬이 아직 연결돼 있다.

나는 그 사각형에 다가가, 두 손과 무릎을 짚고 엎드린다. EVA 우주복을 입고 있으니 중력이 그야말로 잔인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것들 중 원래의 용도대로 쓰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아무 쓸모가 없을지도 모르는) 줄을 가장 가까운 난간에 걸고, 공구 벨트에서 권양기를 꺼낸다.

사슬은 30도 각도를 이루며 발밑의 행성 쪽으로 늘어져 점점 모습을 감춘다. 너무 멀리까지 이어져 있는 만큼 1킬로미터쯤이 지난 다음부터는 굵기가 너무 가늘게 보여 알아볼 수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로키의 화면에 나타난 표시 덕분에 사슬이 10킬로미터를 꽉 채워 이어져 있으며, 사람들로 가득한 두 행성 전체를 구원할 가능성이 담긴 표본 통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권양기를 사슬과 고정용 판 사이에 끼운다. 사슬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한 그대로다. 인간의 근육으로 그렇게 무거운 것을 움직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권양기를 고정용 판에 건다. 권양기를 감싸고 있는 통은 제노나이트다. 제노나이트와 제노나이트가 연결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감당할 만큼 큰 힘이 생기게 된다.

나는 제대로 고정됐는지 확인하느라 권양기를 두어 차례 쾅쾅 쳐본다. 잘 고정돼 있다.

그런 다음, 나는 작동 버튼을 누른다.

권양기 가운데에서 기어가 튀어나온다. 톱니 하나가 사슬 고리의 중앙에 걸린다. 기어가 돌면서 사슬을 권양기의 내부 장치로 끌어들인다. 안에서, 권양기는 고리를 180도 회전시킨 다음 옆의 톱니로 미끄러뜨려 고리를 풀어낸다.

사슬을 만들 때, 우리는 굳이 손으로 하나하나 이어붙이지 않아도 연결되는 ‘덫’ 형태의 고리를 사용했다. 이런 고리는 마구잡이로 움직여 분리될 가능성이 극히 낮았다. 그러나 권양기는 바로 그 고리를 분리하기 위해 고의로 설계한 것이었다.

일단 고리가 풀려나면 권양기는 고리를 옆으로 방출하고 다음 고리에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권양기가 작동하고 있어.” 나는 무전기에 대고 말한다.

행복. 로키의 목소리가 들린다.

권양기는 간단하고 직접적이며 우아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 권양기는 사슬을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강하고, 고리를 분리해 아래쪽 행성으로 떨어뜨린다. 사슬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 바로 옆에 기다란 사슬을 늘어뜨린다면 재앙이 될 것이다. 이어폰 선이 꼬이는 상황을 생각하고, 거기에 10킬로미터를 곱해보라.

안 될 말이다. 고리는 하나하나 자기만의 길을 따라 아래쪽 세상으로 사라질 것이고, 올라오는 사슬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권양기가 216번 고리에 이르면 속도를 높여.

“알겠어.”

지금까지 고리 몇 개를 끌어올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권양기는 잘 돌아가고 있다. 아마 1초에 고리 한 개쯤이 해체될 것이다. 안전하고 느린 출발이다. 나는 2분 정도 지켜본다. 대충 시간이 맞는 것 같다. “잘되고 있어. 지금 최소한 216개는 끌어올렸어.”

속도 높여.

초당 고리 두 개면 꽤 괜찮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속도로는 사슬 전체를 끌어올리는 데 서른 시간이 걸린다. 나는 이곳에 그렇게까지 오래 나와 있고 싶지 않다. 이처럼 위험한, 지속적인 추진 상태에 오래 있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나는 조절 레버를 앞으로 민다. 권양기의 속도가 올라간다.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이므로 나는 레버를 마지막 단계까지 밀어놓는다.

이제 권양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고리들을 날려 보내고 사슬은 기운차게 끌려 올라온다.

“권양기가 최대 속도야. 다 잘되고 있어.”

행복.

나는 조절 레버에 손을 댄 채 눈은 사슬에 두고 있다. 표본 수집기가 권양기에 부딪히면 모든 게 꽝이다. 표본 통이 깨질 것이고, 모든 표본이 죽을 것이며, 우리는 사슬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할 테니까.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얼마나 하기 싫은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다.

나는 경계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바라본다. 지루함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이 사슬 전체를 끌어올리는 데 꽤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은 알지만, 표본 수집기가 나올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

표본 수집기 무전 신호 강함.로키가 말한다. 가까워짐. 준비.

“준비됐어.”

많이 준비.

“많이 준비됐어. 진정해.”

나 진정함. 너 진정해.

“아니, 너나 진정…. 잠깐. 표본 수집기가 보여!”

표본 수집기가 붙어 있는 사슬 끝이 아래쪽 행성에서 나를 향해 빠르게 돌진한다. 나는 조절 레버를 잡고 권양기 속도를 늦춘다. 표본 수집기가 점점 더 속도를 늦추어 기다시피 올라온다. 마지막 고리 몇 개만이 저마다의 최후를 향해 가고, 표본 수집기는 마침내 내 손이 닿는 범위로 들어온다. 나는 권양기를 멈춘다.

멍청한 실수로 커다란 구체를 떨어뜨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나는 사슬의 남아 있는 위쪽 고리를 잡고 권양기에서 풀어낸다. 이제 내게는 구체와 사슬이 있다. 나는 목숨이 달린 것처럼 사슬을 꽉 잡고 공구 벨트에 채운다. 그래도 손은 놓지 않는다. 이번 일을 하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을 생각이다.

상태, 질문?

“표본 수집기를 확보했어. 돌아갈게.”

놀라움! 행복, 행복, 행복!

“내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행복해하지 말라고!”

이해함.

나는 두 걸음을 내디딘다. 우주선이 떨린다. 나는 선체로 넘어져 난간 두 개를 잡는다.

“방금 대체 뭐였어?”

나 모름. 우주선 움직임. 갑자기.

우주선이 다시 떨린다. 이번에는 지속적으로 당기는 힘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어!”

안으로 들어와, 빨리, 빨리, 빨리!

수평선이 내 시야로 떠오른다. 헤일메리는 더 이상 각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 손잡이에서 저 손잡이로 기어간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안전끈을 연결할 시간이 없다. 그저 추락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또 한 번 선체가 갑작스럽게 출렁하더니, 내 발밑에서 옆으로 미끄러진다. 나는 뒤로 넘어지면서도 표본 수집기의 사슬을 죽자 살자 붙들고 있다. 무슨 일이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우주선이 뒤집혀 죽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목숨이 달린 듯 손잡이를 잡고 에어로크로 기어간다. 다행히도 에어로크는 아직 대체로 위쪽을 향해 있다. 나는 표본 수집기를 가슴에 꽉 끌어안고 안으로 떨어진다. 머리부터 떨어진다. 올란 헬멧이 무척 단단하다는 게 다행이다.

나는 투박한 우주복을 입은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움찔거리며 일어선다. 손을 위로 뻗어 바깥쪽 승강구를 잡고 쾅 닫는다. 에어로크를 회전시킨 다음 최대한 빨리 우주복에서 나온다. 당장은 표본 수집기를 에어로크에 둘 생각이다. 우주선에 대체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나는 반쯤 기고 반쯤 넘어지다시피 하며 통제실로 들어간다. 로키가 자기 구체 안에 있다.

화면이 많은 색깔로 번쩍임. 그가 시끄러운 소리를 누르고 외친다. 그는 질감 화면의 동영상을 지켜보면서 여기저기 카메라를 가리킨다.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아래층 어딘가에서 비명처럼 들려온다. 뭔가 구부러지고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 듯하다. 선체인 것 같다.

나는 조종석으로 들어간다. 안전띠를 찰 시간은 없다. “저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거야?”

사방에서. 그가 말한다. 하지만 가장 큰 소리는 우현 숙소 벽 부분에서 남. 안쪽으로 구부러지고 있음.

“뭔가가 이 우주선을 산산조각 내고 있어! 중력이 틀림없어.”

같은 생각.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이 우주선은 가속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1.5g의 중력을 4년간 버텨냈다. 이 정도 크기의 힘은 당연히 다룰 수 있지 않을까?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로키가 몸을 지탱하려고 손잡이 몇 개를 잡는다. 표본 수집기 있음. 이제 떠남.

“응, 나가자!” 나는 스핀 드라이브 출력을 최대로 올린다. 무리하면 우주선은 2g까지 추진력을 낼 수 있다. 그리고 물론, 지금은 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주선이 앞으로 출렁한다. 우아한 움직임이 아니다. 제대로 엔진이 점화된 것 같지 않다. 그야말로 공황에 빠진 비행이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효율적인 방법은 오베르트 효과를 이용해 비스듬히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우주선을 아래쪽 땅과 대략 평행으로 유지하려 한다. 나는 에이드리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엔진을 활용하지 않아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고 싶을 뿐이다. 내게 필요한 건 속력이지 거리가 아니다.

스핀 드라이브를 최대 출력으로 10분간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궤도에 머무는 데 필요한 초속 12킬로미터의 속력이 생긴다. 그저 지평선보다 조금 높은 곳을 향하며 추진기를 작동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우주선이 계속 앞쪽으로 기울어지며 비스듬하게 흘러간다. 대체 무슨 일이지?

“뭔가 잘못됐어.” 내가 말한다. “우주선이 내 말을 듣지 않아.”

로키는 별 어려움 없이 매달려 있다. 그는 나보다 힘이 몇 배는 더 세다. 엔진 손상, 질문? 에이드리언 열 많음.

“그럴지도 몰라.” 나는 항로 제어판을 살펴본다. 속력이 올라가고 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숙소 밑 큰 방에서 선체 구부러짐. 로키가 말한다.

“뭐? 그 아래에는 공간이 없는…. 아.” 로키는 반향 위치 측정을 통해 선체 전체를 감지할 수 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만을 감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로키가 ‘숙소 밑 큰 방’이라고 말할 때는 연료 탱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엔진 끔, 질문?

“그러기엔 우리 속도가 너무 느려. 대기로 떨어지고 말 거야.”

이해함. 희망.

“희망.” 그래, 희망. 이 순간 우리에게 있는 것은 희망뿐이다. 우리가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기 전에 우주선이 망가지지 않으리라는 희망.

이후의 몇 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덧붙여 말해두자면,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꽤 긴장되는 순간들을 보냈다. 선체에서 계속 끔찍한 소음이 난다. 하지만 우리가 죽지는 않았으므로 선체가 찢어진 건 아닐 것이다. 결국 10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을 때 우리 속력은 궤도에 머물 정도에 이르렀다.

“속력이 괜찮아. 엔진 끌게.” 나는 스핀 드라이브의 출력 슬라이더를 0으로 조절한다. 안심하고 머리를 좌석의 머리 받침대에 털썩 기댄다. 이젠 서두르지 않고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볼 수 있다. 엔진을 사용할 필요는….

잠깐.

머리가 받침대에 털썩 기대졌다. 정확히 말하면, 받침대에 떨어졌다.

나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힘을 푼다. 팔이 아래쪽, 왼쪽으로 떨어진다.

“어….”

아직 중력이 있음. 내가 본 것을 로키가 말로 되풀이한다.

나는 항로 제어판을 살핀다. 속력은 괜찮다. 우리는 에이드리언 주변의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뭐, 사실은 턱없이 엉망진창인 상황이다. 원지점과 행성 간의 거리가 근지점에 비해 2,000킬로미터 더 멀다. 그래도 궤도는 궤도잖아, 젠장. 안정적이기도 하고.

나는 스핀 드라이브 제어판을 다시 살핀다. 세 개의 스핀 드라이브가 모두 0에 놓여 있다. 추진력이 전혀 없다. 나는 진단 화면을 급히 띄우고, 세 개의 스핀 드라이브 전체에 흩어져 있는 1,009개의 리볼버 삼각형 모두가 정지돼 있음을 확인한다. 정말이다.

나는 다시 팔이 툭 떨어지게 놔둔다. 팔은 똑같이 이상하게 움직인다. 아래쪽, 왼쪽으로.

로키도 한 팔로 비슷한 동작을 해본다. 에이드리언 중력, 질문?

“아니야. 우린 궤도를 돌고 있어.” 나는 머리를 긁적인다.

스핀 드라이브, 질문?

“아니. 스핀 드라이브는 꺼져 있어. 추진력이 0이야.”

나는 팔이 다시 떨어지게 놔둔다. 이번에는 팔이 좌석의 팔걸이에 부딪힌다.

“아야!” 나는 손을 턴다. 정말 아프다.

나는 실험 삼아 다시 팔이 떨어지게 놔둔다. 이번에는 더 빨리 떨어진다. 그래서 아픈 것이다.

로키가 작업복의 공구 벨트에서 공구 몇 개를 꺼내 하나씩 떨어뜨린다. 중력이 높아짐.

“말도 안 돼!” 내가 말한다.

나는 항로 제어판을 다시 살핀다. 지난번 봤을 때보다 속도가 상당히 증가했다. “속력이 높아지고 있어!”

엔진 켜져 있음. 유일한 설명.

“그럴 리가 없어. 스핀 드라이브는 꺼져 있다고. 우리 우주선을 가속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힘이 증가함. 그가 말한다.

“맞아.” 내가 말한다. 이제는 숨쉬기가 힘들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힘은 1g 혹은 2g보다 훨씬 높다. 상황이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온 힘을 다해, 나는 화면으로 손을 뻗어 제어판들을 휙휙 넘긴다. 내비게이션, 페트로바스코프, 외부 화면, 생명 유지 장치… 모든 것이 완전히 정상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나는 ‘선체 구조’ 화면에 이른다.

나는 구조 제어판에 별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이 화면은 그저 우주선의 회색 윤곽선을 보여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으로 이 화면이 내게 뭔가 전해주고 있었다.

좌현의 연료 탱크에 불규칙한 빨간색 얼룩이 있었다. 선체가 찢어진 걸까? 그럴 수도 있었다. 연료 탱크는 압력 용기 바깥에 있으니까. 연료 탱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고 해도 우리는 공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우주선에 구멍이 났어.” 내가 말한다. 나는 외부 카메라로 전환하려고 애를 쓴다.

로키는 자기 카메라와 질감 패드로 내 화면을 지켜본다. 그는 별문제가 없다. 이 엄청난 힘에도 전혀 곤란해하지 않는다.

나는 카메라 각도를 돌려서 영향을 받은 선체를 살핀다.

있다. 우주선의 좌현에 난 거대한 구멍. 길이는 20미터, 폭은 그 절반쯤 될 게 틀림없었다. 구멍의 가장자리를 통해 수수께끼가 드러났다. 선체가 녹은 것이다.

에이드리언의 대기에서 일어난 역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리적 폭발이 아니라, 공기에 반사된 순수하고 완전한 적외선 때문에. 우주선은 선체가 너무 뜨거워졌다고 내게 경고하려 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나는 선체가 녹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스트로파지가 식히고 있으니까! 하지만 물론, 선체는 녹을 수 있다. 아스트로파지가 완벽한 열 흡수재라고 해도(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열이 흡수되려면 일단 금속을 통해 전도되어야 한다. 선체의 바깥쪽 층이, 열기가 선체의 두께를 통해 전달되는 것보다 빠르게 녹는점에 이르면 아스트로파지는 아무 소용이 없다.

“확인했어. 선체 파손. 좌현 연료 탱크야.”

왜 추진력, 질문?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아 이런! 아스트로파지가 연료 탱크에 있어! 그게 우주에 노출된 거야! 그 말은 아스트로파지가 에이드리언을 볼 수 있다는 뜻이고! 내 연료가 번식하러 에이드리언으로 이주하고 있어!”

나쁨, 나쁨, 나쁨!

거기에서 추진력이 나오는 것이었다. 내게는 번식할 준비가 된, 발정 난 아스트로파지가 수조, 수백조 마리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들이 에이드리언을 본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공급처일 뿐만이 아니라 조상의 고향이기도 한 에이드리언을. 아스트로파지가 수십억 년에 걸쳐 찾도록 진화된 그 행성을.

아스트로파지 층이 하나하나 우주선 밖으로, 에이드리언 쪽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다음 아스트로파지 층이 노출된다. 우주선은 떠나는 아스트로파지에서 나오는 적외선 추진력으로 떠밀려 간다. 다행히도 그 뒤에 남아 있는 아스트로파지들이 에너지를 흡수해 주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녀석들은 추진력도 흡수한다.

완벽 체계와는 거리가 멀다. 이건 혼란스럽고도 간헐적인 폭발이다. 어느 순간에든 이 체계는 훨씬 더 크고, 방향성이 훨씬 부정확한 적외선 불기둥으로 악화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증발한다. 나는 멈춰야 한다.

연료 탱크를 버리면 된다! 통제실에서 보낸 첫날에 그 기능을 봤었는데! 어디 있더라…?

팔을 화면까지 들어올리는 데 온 힘이 들지만, 나는 간신히 아스트로파지 제어판을 띄운다. 우주선 구조도에 표시된 연료 구역은 아홉 개의 직사각형으로 나뉘어 있다. 이 직사각형들을 고장 난 선체와 대조할 시간은 없다. 나는 낑낑거리며 억지로 팔을 앞으로 뻗어 알맞은 장소라고 생각되는 곳을 누른다.

“망가진… 연료 탱크…. 버림….” 나는 이를 악물고 말한다.

그래, 그래, 그래! 로키가 나를 응원하며 말한다.

탈착형 연료 탱크 화면이 뜬다. ‘아스트로파지 112.079kg’. 그 옆에는 ‘폐기’라는 이름표가 붙은 버튼이 있다. 나는 그 버튼을 쾅 친다. 확인 창이 뜬다. 나는 확인을 누른다.

갑자기 가속도가 울컥 치솟으며 나는 옆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로키조차 자세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는 자기 구체의 옆면에 쾅 부딪히지만,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고 손 다섯 개를 모두 써서 손잡이에 매달린다.

선체가 전보다 시끄럽게 신음한다. 가속은 멈추지 않았다.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조종석이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내가 정신을 잃기 직전인 것으로 보아 우리는 아마 6g 이상의 중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추진이 계속됨. 로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다.

나는 내가 버린 연료 탱크가 손상된 구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깨진 연료 탱크가 한 개 이상인 게 틀림없었다. 섬세하게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몇 초 뒤면 힘이 너무 세져서 아예 화면으로 손을 뻗을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깨진 연료 탱크가 있다면 내가 방금 버린 통과 붙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붙어 있는 연료 탱크는 두 개였다. 나는 아무거나 하나를 고른다. 50대 50 확률이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나는 아이콘과 폐기 버튼, 확인 버튼을 누른다.

울컥하면서 우주선이 흔들리고, 나는 헝겊 인형처럼 사방을 나뒹군다. 주변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는 가운데 나는 로키가 둥글게 몸을 말고 벽 이곳저곳에 튕겨 나오며 부딪히는 곳마다 은색 핏자국을 남기는 것을 본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 이제는 힘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나는 이제 좌석으로 끌려 들어가는 대신 끌려 나오고 있다. 몸이 안전띠에 걸려서 눌린다.

다른 무엇도 아닌 원심분리기 화면이 전면에 뜬다. ‘과도한 원심력 경고’라는 메시지가 깜빡인다.

“으으응.” 내가 말한다. 내가 하려던 말은 ‘세상에’이지만, 더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우주로 폭발해 나가는 그 많은 연료. 그 많은 연료가, 예의를 지켜 우주선의 장축을 놔둘 리는 없었다. 연료는 일정한 각도를 이루며 폭발해 나갔고, 그 바람에 우리는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아마 연료 탱크가 폭발하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했을 것이다.

뭐, 최소한 연료 누출은 막았다. 우주선에 작용하는 새로운 추력 벡터는 없었지만, 이제는 회전만 감당하면 됐다. 나는 간신히 숨을 한 모금 들이킨다. 통제를 벗어난 추진력보다는 약하다고 해도 원심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심력이 화면과 먼 쪽이 아니라 가까운 쪽으로 내 팔을 당긴다는 점이다.

스핀 드라이브를 다시 켤 수만 있다면, 어쩌면 원심력을 없애는 것도….

결국 조종석이 망가진다. 고정대가 뜯겨나가는 퍽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앞으로, 화면 쪽으로 처박힌다. 여전히 금속제 좌석에 안전띠로 매인 채다. 그 안전띠가 뒤에서부터 나를 으깨려 한다.

일반적인 중력에서는 의자 무게가 대단치 않을 것이다. 한 20킬로미터쯤 될 것 같다. 하지만 엄청난 구심력을 받자 꼭 등에 시멘트 벽돌을 진 것 같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이거구나. 의자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폐를 부풀릴 수가 없다. 현기증이 난다.

이런 걸 기계적질식이라고 한다. 보아뱀이 먹이를 죽이는 방법이 이것이다. 살아서 마지막으로 하는 생각이 보아뱀이라니 참 이상하다.

미안해, 지구야. 나는 생각한다. 이게 훨씬 나은 마지막 생각이다.

이제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내 폐가 공황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고 해도 탈출에 필요한 힘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저 죽음을 더욱 속속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의식이 유지될 뿐이다.

고마워, 부신(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옮긴이)아.

우주선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부러질 것은 이미 다 부러졌고, 남아 있는 것은 이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것뿐인 것 같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따갑다. 왜지? 내가 우는 건가? 나는 내가 속한 종족 전체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 바람에 내 종족 전체가 죽게 생겼다. 울 만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 눈물은 감정적인 눈물이 아니다. 고통의 눈물이다. 코도 아프다. 무슨 물리적인 압박 때문이 아니다. 뭔가가 안에서부터 내 콧구멍을 태우고 있다.

실험실에서 뭔가 깨진 것 같다. 무슨 고약한 화학약품인 것 같다. 숨이 안 쉬어지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아마 저 냄새는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까.

그때, 나는 난데없이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어떻게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헉 하며 숨을 들이쉬고, 새로 찾은 자유를 누리며 쌕쌕거린다. 나는 즉시 격렬한 기침 발작을 일으킨다. 암모니아. 사방에 암모니아다. 못 견딜 정도다. 폐부가 비명을 지르고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때 새로운 냄새가 난다.

불.

나는 휙 몸을 굴려,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로키를 본다. 로키는 자기 구역에 있는 게 아니다. 통제실에 있다!

그가 내 안전띠를 자르고 의자를 풀어놓았다. 로키가 의자를 옆으로 밀친다.

로키는 뒤뚱거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겨우 몇 뼘 떨어진 곳에서 느껴진다. 그의 등딱지 맨 위, 방열기 틈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로키의 무릎이 꺾인다. 그는 내 옆의 화면에 풀썩 넘어져 화면을 깨뜨린다. LCD 유닛에서 불이 나가고 플라스틱 베젤이 녹는다.

나는 연기 한 줄기가 실험실로, 또 실험실 너머로 이어지는 것을 본다.

“로키! 뭘 한 거야!”

이 정신 나간 녀석이 숙소의 커다란 에어로크를 사용한 게 틀림없다! 로키는 나를 구하려고 내 구역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죽어가고 있다!

로키는 몸을 떤다. 몸통 아래쪽 다리가 꺾인다.

지구를…. 구해…. 에리드를…. 구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더니 푹 고꾸라진다.

“로키!”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의 등딱지를 꽉 잡는다. 손을 버너에 올려놓는 것만 같다. 나는 움찔하며 물러난다. “로키… 안 돼….”

하지만 로키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