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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의 몸이 방 전체를 덥힌다.

거의 움직일 수가 없다. 원심력이 너무 거대하다.

“으으으은!” 나는 깨진 모니터를 짚고 일어나며 신음한다. 나는 몸을 끌고 파편들을 지나 다음 모니터로 향한다. 한 번에 몸을 너무 많이 들어 올리지는 않으려 한다. 힘을 아껴야 하니까.

나는 모서리에서부터 모니터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맨 아래의 화면 선택 버튼을 누른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나는 내비게이션 제어판을 기억한다. 수동 제어 모드에 모든 회전을 취소하는 버튼이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연료 구역이 넓게 개방되어 있었고, 나는 연료 탱크 여러 개를 폐기한 터였다. 어떤 손상이 일어났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스핀 드라이브를 작동시키는 것이었다. 비행 자세 조절에 사용하는 작은 스핀 드라이브라도.

나는 원심분리기 화면을 띄운다. 우주선이 겪고 있는 과도한 진동에 여전히 화가 나는지 화면은 빨간색과 흰색으로 깜빡이고 있다. 나는 애써 경고창을 끈 다음 수동 모드로 진입한다. ‘야, 이건 안 돼’라는 식의 대화창이 수없이 뜨지만, 그 창들을 모조리 꺼버린다. 곧 나는 케이블 스풀을 직접 제어하게 된다. 케이블 스풀이 최대 속도로 풀어진다.

통제실이 이상한 쪽으로 회전하고 기울어진다. 내 속귀도, 눈도 이런 차이를 즐기지 않는다. 나는 이런 변화가 우주선의 두 토막이 분리되면서, 내가 이곳 통제실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힘에 고약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논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벽에 토한다.

몇 초 후, 힘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훨씬 더 감당할 만하다. 사실은 1g도 되지 않는다. 이 모두가 원심력과 수학이라는 마법 덕분이다.

원심분리기 안에서 느끼는 힘은 지름의 제곱과 반비례한다. 케이블을 스풀에서 풀어냄으로써 나는 지름을 20미터(우주선의 절반 길이)에서 75미터(케이블이 완전히 연장되었을 때의 통제실로부터 무게중심까지의 거리)로 바뀌게 만들었다. 전에 얼마나 큰 힘을 감당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힘이 14분의 1로 줄어들었다.

나는 여전히 모니터에 붙박여 있다. 다만 그 강도는 비교도 못 하게 약하다. 대략 0.5g 정도로 추산된다.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모든 것이 뒤집힌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수동 모드로 원심분리기를 사용했으므로, 원심분리기는 내가 지시한 것만을 정확히 하고 다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원심분리기는 케이블을 늘였다. 승조원 탑승 공간이 안쪽을 향하도록 회전하지는 않았기에 원심력이 모든 것을 승조원 구역의 노즈콘 부분으로 밀어낸다. 지금은 내 기준으로 실험실이 ‘위’를 향하고 있으며, 숙소는 그보다도 더 ‘위’다.

승조원 구역 회전을 위한 수동 제어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걸 찾아볼 시간도 없다. 지금 당장, 나는 위아래로 뒤집힌 공간에서 활동해야 한다.

나는 통통 튀어가 에어로크를 개방한다. 안은 아수라장이지만 상관없다. 나는 구겨진 채 처박혀 있는 EVA 우주복을 풀어 장갑을 분리한 뒤 장갑을 낀다.

통제실로 돌아온 나는 제어판을 내려다보고 선다(지금은 제어판이 ‘아래’에 있다). 내가 이것저것 너무 많이 망가뜨리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로키의 몸을 내려다보며 서서 그의 등딱지 양쪽을 장갑 낀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린다.

이런 세상에.

나는 로키를 다시 내려놓는다. 이런 식으로 로키를 옮기려다가는 허리가 나갈 것이다. 하지만 잠깐이기는 해도 나는 로키를 들었다. 그는 200파운드처럼 느껴졌다. 0.5g 상태에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온전한 중력을 받았다면, 400파운드는 족히 나갔을 것이다.

로키를 들어올리는 데는 두 손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장갑을 벗고 다시 에어로크로 튀어가, 물건들을 이리저리 내던진 끝에 안전끈을 찾는다. 나는 로키의 등딱지 밑으로 안전끈 두 가닥을 집어넣어 감고 그 끈을 내 어깨에 맨다. 그 과정에서 팔 몇 군데에 화상이 생기지만, 그건 나중에 처리하기로 한다.

나는 안전끈을 각각 하나씩 내 겨드랑이 아래에 고정한다.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고, 확실히 멋져 보이지도 않겠지만, 이렇게 하면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데다 두 다리로 로키를 들 수 있다.

나는 두 손을 실험실 승강구 쪽으로 뻗어 사다리의 가장 가까운 가로대를 붙잡는다. 처음에는 진도가 느리다. 통제실에는 사다리가 없다. 있을 이유가 없잖나? 통제실이 뒤집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안 했을 테니까.

어깨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건 무게를 적절히 분배한, 잘 설계된 배낭이 아니다. 200파운드짜리 외계인이 가느다란 끈 두 개에 매달려 내 빗장뼈를 파고든다. 나로서는 그저 로키의 체온보다 나일론 끈의 녹는점이 높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나는 신음하고 인상을 쓰며 한 번에 가로장을 하나씩 올라간 끝에 실험실에 발을 들인다. 나는 승강구 가장자리에 발을 디디고, 끈으로 로키를 끌어올린다.

실험실은 재앙이다. 모든 것이 천장 전체에 여기저기 쌓여 있다. 오직 실험대와 의자들만이 내 머리 위의 바닥에 남아 있다. 그것들은 바닥에 고정돼 있으니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좀 더 민감한 장비들은 실험대에 고정돼 있다. 다만, 그 민감한 기성품 실험 장비들은 팝콘처럼 여기저기 덜컥거리고 돌아다니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6~7g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그중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장비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위에 올라오니 중력이 더 작아진다. 나는 원심분리기의 중앙에 가까워져 있다. 높이 올라갈수록 일은 점점 쉬워질 것이다.

나는 발로 차서 실험실 비품과 장비들을 치우고 로키를 숙소 승강구까지 끌고 간다. 나는 조금 전에 했던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복한다. 중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빗장뼈는 여전히 아프다. 이번에도 승강구를 디딤대로 사용해 로키를 방으로 끌어올린다.

숙소 안의 작은 내 구역은 우리 둘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다. 로키의 구역은 실험실처럼 엉망진창이다. 그의 작업대는 제자리에 고정돼 있지 않으므로 지금은 천장에 있다.

나는 그를 끌고 천장을 가로질러 내 침대로 올라간다. 움직이는 회전축 덕분에 침대는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그 침대가 내 구역과 로키의 구역 사이의 에어로크에 접근하기에 편리한 단상이 된다.

에어로크 문이 내 쪽으로 열려 있다. 로키는 나를 구하러 오느라 그 문을 사용했다.

“인마, 대체 왜 그랬어?” 나는 투덜거린다.

로키는 내가 죽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해야 했다. 로키는 아무 어려움 없이 구심력을 다룰 수 있었다. 그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발명품을 만들어낸 다음, 그걸 우주선의 통제력을 되찾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나도 안다. 로키는 착한 녀석이라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하지만 이건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다. 로키에게는 구해야 할 행성이 있었다. 왜 나 때문에 자기 목숨과 임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단 말인가?

에어로크 문은 천장까지 닿지 않으므로 에어로크에 들어가려면 ‘도전! 용암 위를 건너라(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출연자들은 흐르는 용암 위에 설치된 여러 종류의 발판을 딛고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경주를 한다‐옮긴이)’를 해야 한다.

나는 내 침대에서 에어로크로 폴짝 뛰어 들어간 다음 끈을 사용해 로키를 당긴다. 그러다가 다시 기어나가려는 참에 에어로크 제어판을 본다.

아니다. 그건 한때 에어로크 제어판이었던, 망가진 상자다.

“아, 진짜 작작 좀 해!” 나는 소리친다.

에어로크는 양쪽에 모두 제어판이 달려 있다. 로키나 내가 필요한 대로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쓰는 제어판이 고장 나 있다. 아마 혼란 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무슨 파편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로키를 그의 환경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다. 에어로크 자체에 로키 쪽에서 공기를 들여올 수 있는 비상 밸브가 있다.

아주 특별한, 극단적인 경우에 사용하도록 달아놓은 것이다. 내가 우주선의 로키 구역에 들어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내가 그의 환경을 버틸 수 없다는 건 확실했고, 내 EVA 우주복도 포도알처럼 으깨질 테니까. 하지만 로키는 자신이 만든 공 모양의 우주복 같은 것에 들어가 내 구역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더더욱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 혹시라도 로키가 에어로크 안에서 자기 공 안에 들어가 있는데 비상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로키 쪽의 공기를 들어오게 할 안전밸브가 있는 것이다. 밸브는 로키가 공 안에 들어 있는 동안 가지고 다니는 자석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커다란 철제 레버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에어로크 안의 레버를 바라본다. 내 구역으로 통하는 에어로크 문과, 돌리는 바퀴식 자물쇠를 힐끗 본다. 나는 다시 레버를 보고 또 문을 돌아본다.

나는 근육을 움츠리며 머릿속으로 셋을 센다.

나는 레버를 당기고 내 구역으로 펄쩍 뛰어 들어간다.

살갗을 지지는 듯 뜨거운 암모니아가 에어로크와 숙소에 넘쳐난다. 나는 에어로크 문을 쾅 닫고 나온 뒤 바퀴식 자물쇠를 돌린다. 반대편에서 식식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아무것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두 눈이 불붙은 것처럼 화끈거린다. 폐 속에서 100개의 칼이 마구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몸 왼쪽의 피부 전체가 얼얼하다. 코는… 말할 것도 없다. 냄새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후각이 그냥 기능을 포기해 버린다.

목구멍은 완전히 닫힌다. 내 몸은 암모니아와 전혀 얽히고 싶지 않아 한다.

“컴….” 내가 쌕쌕 숨을 내쉰다. “컴…퓨…터….”

죽고 싶다. 사방이 고통이다. 나는 침대로 기어 올라간다.

“도와줘!” 내가 쌕쌕거린다.

“다발성 손상.” 컴퓨터가 말한다. “과도한 안구 점액. 구강 주변의 출혈. 2도 화상. 호흡 곤란. 부상자 분류 결과, 삽관술.”

다행히 뒤집혀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 팔들이 나를 붙든다. 뭔가가 내 목구멍에 사납게 쑤셔 넣어진다. 멀쩡한 팔을 뭔가가 쿡 찌르는 게 느껴진다.

“수액 및 진정제 투여.” 컴퓨터가 보고한다.

그런 다음, 나는 전등처럼 불이 나간다.



나는 의료 장비와 고통에 둘러싸인 채 깨어난다.

얼굴에 산소호흡기가 씌워져 있다. 오른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고, 왼팔은 손목에서 어깨까지 붕대로 감싸여 있다. 말도 안 되게 아프다.

다른 모든 곳도 아프다. 특히 눈이 그렇다.

그래도 보이기는 한다. 그건 좋은 일이다.

“컴퓨터.” 나는 쉰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지?”

“무의식 상태가 여섯 시간 십칠 분 지속되었습니다.”

나는 심호흡한다. 폐가 타르로 한 겹 코팅된 것처럼 느껴진다. 가래나 다른 걸쭉한 액체일 것이다. 나는 로키의 구역을 건너다본다.

에리디언이 죽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로키는 잠잘 때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하지만 죽은 에리디언에게도 아마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내 오른손 검지에 맥박 산소 측정 장치가 끼워져 있는 것을 본다.

“컴퓨….” 나는 기침한다. “컴퓨터, 내 혈중 산소 농도는?”

“91퍼센트입니다.”

“그 정도면 돼.” 마스크를 벗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다. 붕대를 감은 팔이 움직일 때마다 따끔거린다. 나는 몸에 붙은 다양한 장치를 떼어낸다.

왼손을 쥐었다 편다. 움직인다. 근육이 약간 쓰릴 뿐이다.

나는 아주 뜨거운 고압의 암모니아 폭발에 짧은 시간 노출됐다. 폐와 눈에 화학적 화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컸다. 아마 팔에는 물리적 화상도 입었을 것이다. 몸 왼쪽은 폭발의 가장 심한 타격을 받았다.

섭씨 210도(화씨로는 400도를 넘는다!)에 29기압. 아마 수류탄을 맞으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우주선 조종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우리가 에이드리언에 처박히지 않은 건 순전한 행운이었다.

우주선이 안정적인 궤도를 돌고 있든지, 우리가 에이드리언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연료 탱크에 그렇게 많은 동력자원을 두고 있다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 내가 아직 행성 근처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니…. 와.

살아 있는 게 다행이다.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이 순간 이후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우주가 내게 준 선물이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에어로크 앞에 선다. 중력은 여전히 0.5g이고, 모든 것이 아직 뒤집혀 있다.

로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나는 로키의 몸 맞은편 바닥에 앉는다. 에어로크 벽에 손을 댄다. 너무 신파적으로 느껴져서 다시 손을 뗀다. 내가 에리디언 생물학의 아주 기초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의사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태블릿을 가져다가 앞서 만들어놓았던 다양한 문서들을 훑어본다. 로키가 내게 해준 말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메모가 남아 있기는 하다.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에리디언의 몸은 모든 것을 동시에 처리하려고 작동을 멈춘다. 나는 로키의 작은 세포들이 저 안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그 세포들이 1) 로키가 진화해 적응한 에리드의 적정 기압에 비해 기압이 29분의 1로 떨어지고, 2) 갑자기 상당량의 산소에 노출되며, 3) 그의 신체에 적합한 것보다 200도는 차가운 곳에 있게 됨으로써 발생한 피해를 처리할 방법을 알고 있기를 바란다.

나는 고개를 저어 걱정을 떨치고 다시 메모를 살핀다.

“아, 여기 있다!” 내가 말한다.

거기에 필요한 정보가 있다. 로키의 등딱지 방열기에 있는 모세혈관들은 탈산소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경성 순환계는 수은을 기본으로 한 그의 혈액을 이 혈관으로 흘려보내고, 공기가 그 위를 지나간다. 산소가 없는 에리드의 대기에서는 이게 완전히 말이 되는 과정이다. 우리 환경에서는, 이렇게 하면 완벽한 부싯돌이 만들어진다.

방금 엄청난 산소가 인간의 머리카락 정도 굵기밖에 되지 않는 매우 뜨거운 금속관 위로 지나갔다. 그 관이 타버렸다. 로키의 환기용 기구에서 나오는, 내 눈에 보이는 연기가 바로 그것이다. 로키의 방열기가 문자 그대로 불탔다.

세상에.

기관 전체가 재 등의 연소 생성물로 완전히 차 있을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모세혈관들은 산화물로 코팅되어 있을 테고. 그 산화물이 열전도를 망칠 터였다. 망할, 산화물은 단열재였다. 최악의 결과였다.

그래, 로키가 죽었다면 죽은 것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미 죽은 로키를 더 다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로키가 살아 있다면, 나는 도와야만 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하지?



너무 많은 기압. 너무 많은 온도. 너무 많은 공기의 배합. 나는 이 모든 것을 꾸준히 살펴야 한다. 나 자신의 환경, 로키의 환경 그리고 에이드리언에 있는 아스트로파지 번식 구역의 환경까지도.

하지만 일단은 중력을 처리해야 한다. 《포세이돈 어드벤처》(해저 지진을 만나 뒤집힌 여객선에서 승객들이 탈출하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미국 영화‐옮긴이) 속에서 살아가는 건 질린다. 이제는 우주선의 방향을 바로잡을 때다.

나는 통제실로 어찌어찌 ‘내려’간다. 중앙의 제어판은 망가졌지만, 다른 제어판들은 제대로 작동한다. 어쨌든 이 제어판들은 서로 바꿔 쓸 수 있다. 시간이 나면 대체용 제어판을 가운데에 끼울 것이다.

나는 원심분리기 화면을 띄우고 제어판을 여기저기 눌러 본다. 마침내 승조원 구역 회전을 위한 수동 제어판을 발견한다. 이 제어판은 여러 명령어 사이에 깊이 묻혀 있다. 위기 상황에서 이걸 찾아보려 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나는 승조원 구역에 회전을 명령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1초에 1도로 속도를 설정한다. 완전히 회전하는 데는 3분이 걸린다. 실험실에서 쿵, 철컹, 쾅 하는 소리가 엄청나게 들린다. 그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로키가 더 이상 부상을 입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 느린 속도는 로키의 몸이 에어로크 천장을 따라서, 그다음에는 벽을 따라서, 마지막으로는 바닥으로 미끄러지게 해줄 것이다. 어쨌든 내 계획은 그렇다.

회전이 완료되자 중력이 절반인데도 모든 것이 다시 정상처럼 느껴진다. 나는 로키의 상태를 확인하러 다시 숙소로 내려간다. 이제 그는 에어로크 바닥에 있다. 지금도 몸 오른쪽이 위를 향하고 있다. 잘됐다. 그는 굴러 떨어지지 않고 미끄러졌다.

정말로 로키를 어떻게 해보고 싶지만, 일단은 로키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모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해야만 한다. 나는 우주선 에어로크에서 표본 통을 집어 든다. 거기에 표본 통을 놔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함께 구겨져 있던 EVA 우주복이 쿠션 역할을 해준 덕분에 표본 통은 갑작스러운 가속의 충격을 온전히 받지 않았다.

로키는 내부의 온도와 기압을 알 수 있도록 표본 수집기 겉면에 수치가 표시되게 하는 선견지명을 발휘했다. 에리디언의 6진수 체계에 따른, 아날로그식 다이얼 지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수를 충분히 봤기에 번역할 수 있다. 구체의 내부는 0.02기압에 영하 51도다. 그리고 나는 앞서 분광계를 통해 보았기에 대기의 구성 성분을 알고 있다.

좋다. 내가 복제하고자 하는 환경이 바로 이것이다.

남아 있는 실험실을 뒤진다. 왼팔을 최소한으로만 쓸 수 있기에 진행이 느리다. 그래도 최소한 물건을 옆으로 미끄러뜨려 치우는 데는 왼팔을 쓸 수 있다. 당분간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을 뿐이다.

나는 조금밖에 깨지지 않은 진공 용기를 발견한다. 지름이 약 1피트 정도 되는, 드럼 모양의 유리 원통이다. 나는 에폭시로 깨진 자리를 때우고 시험해 본다. 통에서 공기를 펌프로 빼내고 보니 진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진공을 유지할 수 있다면 0.02기압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표본 수집기 통을 안에 집어넣는다.

화학약품 저장용 서랍장은 아직 벽에 단단히 고정돼 있다. 나는 서랍장을 연다. 물론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지만, 대부분의 용기는 온전해 보인다. 나는 지구 아스트로파지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집어 든다.

그 안에는 실험 목적의 공급량을 포함해 대략 1그램의 아스트로파지가 들어 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더 구할 수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선체를 둘러싼 아스트로파지를 기본으로 한 냉각수 도관을 자르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

표본은 유리병 밑바닥에 가라앉은, 기름 낀 진흙 같아 보인다. 나는 유리병을 열어 면봉으로 그것을 한 번 떠낸다(그 정도의 아스트로파지에는 100조 줄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나는 아스트로파지를 진공실 안쪽 벽에 문지르고, 면봉을 표본 탐사선 옆에 떨어뜨려 넣는다.

나는 진공실에서 모든 공기를 펌프질해 빼낸다.

화학 비품에는 기체가 들어 있는 작은 원통 몇 개도 포함돼 있다. 다행히도 강철 원통은 강해서, 방금 우주의 핀볼 게임을 겪고도 살아남았다. 나는 한 번에 한 종류씩 송입 밸브를 통해 진공실에 기체를 집어넣는다. 에이드리언의 대기를 복제하고 싶다. 이산화탄소, 메탄, 심지어 아르곤까지 펌프질해 넣는다. 아르곤이 별로 중요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르곤은 비활성기체이므로 물질과 반응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나는 제논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내부의 공기를 영하 50도까지 떨어뜨릴 방법이 전혀 없으므로, 뭔지는 모르지만 안에 들어 있는 생명체가 지구의 실온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르곤을 다 넣은 바로 그때 찰칵하는 소리가 들린다. 표본 수집기에서 난 소리다. 로키가 설계한 그대로, 작은 밸브들은 외부 기압이 에이드리언의 아스트로파지 번식 고도의 기압과 일치되는 순간 열렸다. 로키 녀석. 내가 만나본 최고의 엔지니어다.

좋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표본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공기의 구성 성분과 기압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표본이 원래 있던 환경과 유사하게 만들었고, 포식자가 먹을 아스트로파지도 충분히 넣었다. 저 안에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는 포식자들이 있다면, 녀석들은 상태가 괜찮을 것이다.

나는 붕대를 감은 팔로 이마를 닦았다가 즉시 후회한다. 아파서 움찔한다.

“그게 그렇게 어렵냐, 라일랜드!” 나는 나 자신에게 성질을 터뜨린다. “화상 입은 팔은 쓰지 말라고!”

나는 사다리를 타고 다시 숙소로 내려온다.

“컴퓨터, 진통제.”

기계 팔이 위로 올라가, 내게 알약 두 개가 담긴 컵 하나와 물컵 하나를 건네준다. 나는 뭔지 확인하지도 않고 알약을 먹는다.

나는 내 친구를 돌아보고, 계획을 세워본다 ….



로키를 저 에어로크 안에 쑤셔 넣은 지 약 하루가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도 시간 낭비를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실험실에서 미친 과학자처럼 발명품 몇 가지를 만들었다. 이런 식의 기발한 장치를 만드는 건 사실 로키의 강점이지만, 나도 최선을 다한다.

나는 엄청나게 다양한 접근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로키의 몸이 최대한 자연 치유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에리디언은 둘째 치고 인간을 수술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로키의 몸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되도록 해주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지금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바가 있다. 내 생각이 틀렸더라도, 내가 생각한 치료법이 로키에게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재를 비롯한 다양한 연소 부산물 쓰레기가 로키의 방열 기관에 들어 있다. 그러니 방열 기관이 아마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로키가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면, 그 쓰레기를 치우는 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너무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상자를 손에 든다. 여섯 개의 면 중 다섯 개는 닫혀 있고, 남은 한 면은 열려 있는 상자다. 벽면은 4인치 두께의 강철로 돼 있다. 밀링머신을 고쳐 다시 작동하게 하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일단 그렇게 한 뒤 이 상자를 깎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상자 안에는 고전력 공기펌프가 들어 있다. 그야말로 간단하다. 이제 고압 기체를 아주 강하게 분사할 수 있다. 실험실 안에서 실험해 보니, 1피트 거리에서 1밀리미터 두께의 알루미늄 시트에 구멍이 났다. 제대로 작동한다. 나도 내가 무에서 이런 기계를 창조한 천재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사실 나는 상자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펌프는 고압 탱크에 달려 있던 것을 가져다 썼다.

상자 안에는 또 배터리와 카메라, 스테퍼 모터 몇 개, 드릴 하나도 들어 있다. 내 계획이 통하려면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실험실을 어느 정도 청소해 두었다. 장비는 대부분 망가졌지만, 몇 가지는 고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다른 실험을 하고 있는, 실험대 맞은편으로 건너간다.

내게는 작은 제노나이트 조각이 있다. 사슬의 고리 20만 개를 만들 때 남은 찌꺼기다. 나는 에폭시를 아낌없이 발라, 이 조각을 거칠게 깎아 만든 드릴 날에 붙였다. 에폭시는 한 시간째 굳어가고 있다. 지금쯤은 완성됐을 것이다.

드릴 날을 집어 들자 제노나이트도 딸려온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둘을 당겨서 떼어보려 한다. 떼어지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이 방법은 통할지도 모른다.

나는 상자로 몇 가지 실험을 더 해본다. 모터의 리모컨도 제대로 작동한다. 진짜 리모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건 플라스틱 통의 뚜껑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스위치일 뿐이다. 나는 스위치에서 이어진 전선이 강철의 작은 구멍을 통과하도록 한 다음, 그 구멍을 합성수지로 메웠다. 이 리모컨으로 안에 들어 있는 모든 부품의 전원을 켜고 끌 수 있다. 이게 내 ‘리모컨’이다. 고열이나 암모니아에도 모터에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것을 숙소로 옮기고 에폭시를 준비한다. 나는 에폭시를 한데 저어, 강철 상자의 열린 면 가장자리에 듬뿍 바른 다음 상자를 에어로크 벽에 붙인 채 잡고 있는다. 그런 뒤, 상자가 떨어지지 않게 들고서 10분간 그냥 서 있는다. 에폭시가 굳어지는 동안 상자를 벽에 테이프 같은 것으로 붙여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밀봉이 정말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 인간의 손은 실험실에 있을 만한 그 어떤 도구보다 나은 죔쇠다.

나는 조심조심 상자를 놓고, 상자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상자는 떨어지지 않는다. 에폭시를 몇 번 찔러본다. 꽤 단단해 보인다.

5분만 굳히면 되는 에폭시지만, 완전히 굳어질 때까지 한 시간을 기다릴 생각이다.

나는 실험실로 돌아간다. 그게 낫겠지? 내 작은 외계인 어항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봐야 한다.

알고 보니 별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진공실 안에서 휙휙 날아다니는, 작은 비행접시들이라도 보게 될 줄 안 걸까?

하지만 원통은 전과 정확히 똑같은 모습이다. 표본 수집기는 내가 놓아둔 자리에 그대로 있다. 발라둔 아스트로파지도 변하지 않았다. 면봉은….

잠깐만 ….

나는 쭈그리고 앉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진공실을 들여다본다. 면봉은 변했다. 약간일 뿐이지만 …. 좀 더 푹신푹신해졌다.

멋진데! 저기에 내가 살펴볼 만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현미경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아.

문득 어떤 깨달음이 든다. 내게는 표본을 추출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그 부분을 간과하고 말았다.

“멍청이!” 나는 이마를 쾅 친다.

두 눈을 비빈다. 화상의 통증과 진통제 때문에 드는 멍한 기분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난 지쳤다. 대학원 시절에 얻은 한 가지 교훈은, 멍청해질 만큼 피곤하다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일단 통이 하나 있고, 언젠가 그 통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만 생각해 두자. 방법은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나는 태블릿을 꺼내 통의 사진을 찍는다. 과학의 법칙 1번. 뭔가가 예상치 못하게 변화한다면, 기록하라.

좀 더 과학자답게 굴고자 나는 실험 장치 쪽으로 웹캠을 설치하고 컴퓨터가 초당 1프레임의 속도로 타임랩스 사진을 찍도록 한다. 뭔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다면 그게 뭔지 알고 싶다.

나는 통제실로 돌아간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내비게이션 제어판을 좀 건드리자 우리가 아직 에이드리언의 궤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럭저럭 안정적이다. 이 궤도도 시간이 지나면 붕괴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나는 우주선의 시스템을 전부 확인하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진단을 한다. 이런 상황을 처리하도록 설계된 건 전혀 아니었으나 우주선은 꽤 잘해냈다.

내가 버린 연료 탱크 두 개는 더 이상 근처에 없지만, 나머지 일곱 개는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 진단 검사에 따르면 선체 여기저기에 금 간 부분이 있으나, 전부 내부에 생긴 금으로 보인다. 외부를 향해 난 금은 하나도 없다. 좋은 일이다. 나는 내 아스트로파지가 다시 에이드리언을 보는 사태를 원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실금 하나가 빨간색으로 강조돼 있다. 나는 더 자세히 살펴본다. 금 간 곳의 위치가 컴퓨터를 흥분시킨다. 금은 연료 구역과 압력 용기의 가장자리 사이에 있는 칸막이벽에 나 있다. 컴퓨터가 왜 걱정하는지 알 것 같다.

칸막이벽은 숙소 아래쪽의 창고 구역과 4번 연료 구역 사이에 있다. 나는 그리로 가서 살펴본다.

로키는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놀랄 건 없다. 강철 상자는 내가 놔둔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지금 쓸 수도 있겠지만 한 시간을 꽉 채워 기다리겠다는 내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창고 판을 열고 상자들을 잔뜩 꺼낸다. 손전등과 공구함을 들고 창고 구역으로 들어간다. 안은 비좁다. 높이가 겨우 3피트 정도다. 나는 족히 20분 동안 그 안을 기어 다닌 뒤에야 금 간 곳을 발견한다. 내가 그 금을 발견한 건 그저 깨진 자리 가장자리에 서리 같은 작은 물질이 쌓여 있어서다. 진공 속으로 빨려 나가는 공기는 아주 빠르게, 아주 차가워진다. 사실은 저 얼음이 공기의 유출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새는 구멍이 너무 작아서, 무슨 문제가 되려면 몇 주는 걸렸을 것이다. 어쨌든 우주선에는 예비용 기체가 많이 들어 있을 테고. 그렇다고 해서 구멍이 그냥 새도록 놔둘 이유는 없다. 나는 에폭시를 작은 금속 조각에 듬뿍 발라 금 간 곳을 밀봉한다. 5분이 훨씬 지나서까지 붙잡은 다음에야 에폭시가 굳기 시작한다. 온도가 낮을 때는 에폭시가 굳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공기 유출 때문에 칸막이벽의 이 지점은 온도가 영하다. 실험실에서 열선 총을 가져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 그러면 일거리가 엄청나게 많아진다. 나는 그냥 조각을 더 오래 붙잡고 있는다. 약 15분이 걸린다.

나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내내 움찔거린다. 이제는 팔이 쉼 없이 아프다. 계속 찌르는 듯하다. 한 시간도 채 흐르지 않았지만 진통제가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컴퓨터! 진통제!”

“더 많은 진통제는 세 시간 사 분 뒤에 쓸 수 있습니다.”

나는 인상을 쓴다. “컴퓨터, 현재 시각은?”

“모스크바 표준시로 오후 7시 15분입니다.”

“컴퓨터, 모스코바 표준시 오후 11시로 시간 설정해.”

“시간 설정 완료.”

“컴퓨터, 진통제.”

컴퓨터는 포장된 알약과 물주머니 하나를 내민다. 나는 그것들을 급히 삼킨다. 뭐 이런 멍청한 시스템이 다 있담. 우주인들이 세계를 구할 거라고 믿으면서, 각자가 먹는 진통제 용량은 스스로 관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멍청하다.

좋아. 충분히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다시 상자로 관심을 돌린다.

일단은 제노나이트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야 한다. 일이 잘못되면, 그 순간 온갖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대강 설명하자면, 내 생각은 상자 안의 드릴로 제노나이트에 구멍을 뚫은 뒤 쏟아져 들어오는 기압을 상자로 버티는 것이었다. 결과는 모른다. 어쩌면 상자가 단단히 버텨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의료용 호흡기를 끼고 보안경을 쓴다. 엄청나게 뜨거운 고압 암모니아가 이 방에 분사된다면, 나는 그것 때문에 죽지 않아야 했다.

앞서 나는 금속 막대를 일종의 못처럼 다듬어 두었다. 못의 전체 지름은 내가 강철 상자 안에 마련해 둔 드릴 날보다 조금 컸다. 나는 그 못과 망치를 준비해 들고 있다. 상자가 기압을 못 이기고 터져버리면, 나는 망치로 못을 구멍에 때려 박고 그걸로 틈새가 막히기를 바랄 생각이었다.

물론, 기압이 상자를 아예 날려버리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그냥 풀로 칠한 접합부 가장자리에서 불쑥불쑥 새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상자가 떨어질 때까지 망치로 내리친 다음 못을 박기로 했다.

안다. 터무니없이 위험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는 로키가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남을지 알아보고 싶지 않았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 어때서?

나는 망치와 못을 꽉 잡는다. 그런 다음 드릴을 작동한다.

드릴로 제노나이트를 뚫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나는 지루한 나머지 흥분이 식는다. 겨우 1센티미터지만, 꼭 다이아몬드를 갈아내는 것만 같다. 드릴이 하도 단단해서 조금이나마 작동한다는 게 다행이다. 내부 카메라 동영상은 일이 느리고도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무나 금속을 뚫는 것보다는 유리를 뚫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파편과 덩어리가 떨어져 나온다.

마침내 드릴 날이 반대편으로 뚫고 들어간다. 드릴은 즉시 상자 안으로 튀어 들어오더니 압력 때문에 옆으로 굽혀진다. 에리디언의 공기가 작은 상자로 솟구쳐 들어오면서 후웅 소리가 난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 다음, 몇 초 뒤 다시 눈을 뜬다.

상자가 터질 것이었다면 바로 그 순간 터졌을 것이다. 내 봉인이 버텨줬다. 어쨌든, 지금은 그랬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호흡기나 보안경을 벗지는 않는다. 밀봉이 언제 뜯어질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카메라 화면을 확인한다. 조심스러운 조준이 필요한 작업이므로 내가 이런 카메라를 만든 것은 아주 영리한….

카메라 영상이 멎어 있다.

손목이 아파서 나는 손목을 치운다.

아, 그렇지. 웹캠은 29기압 210도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된 게 아니다. 그리고 내 단단한 강철 상자는, 뭐랄까 단단하다. 강철은 훌륭한 열 전도체다. 너무 뜨거워서 지금은 만질 수조차 없다.

나는 아직도 멍청하다. 처음에는 에이드리언 표본을 가지고 우왕좌왕하더니 이제는 이 상자를 가지고도 이런다. 자고 싶지만, 로키가 더 중요하다. 나야 아무리 멍청해져 봤자 영원히 그렇게 살 건 아니니까. 나는 밀어붙이기로 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 사실을 고려하기에는 너무 멍청해져 있다.

그래, 카메라는 멎었다. 상자 안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제노나이트가 투명하기에 에어로크 안의 로키는 여전히 보인다.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해봐야겠다.

나는 고압 펌프를 작동시킨다. 아직 작동한다. 어쨌든 소리는 난다. 펌프는 로키 쪽으로 엄청난 고압 기체를 분사하고 있을 것이다. 29기압에서 공기는 거의 물처럼 작용한다. 정말이지, 이 공기로는 물건을 밀어 쓰러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암모니아는 투명하다. 그래서 암모니아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서보 제어장치로 분사각을 조정한다. 작동은 되는 건가? 전혀 모르겠다. 서보가 뭔가 하고 있더라도 펌프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펌프로 위아래, 왼쪽 오른쪽을 조금씩 쓸어나간다.

마침내 뭔가를 발견한다. 에어로크의 레버 하나가 약간 움찔거린다. 나는 그쪽으로 펌프를 집중한다. 레버가 몇 인치쯤 밀린다.

“찾았다!” 내가 말한다.

이제는 펌프가 어느 방향을 겨누고 있는지 안다. 나는 어림짐작을 좀 해보고, 로키의 등딱지 환기구 쪽을 겨냥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앞뒤로, 위아래로 격자를 그리며 탐색해 나간 끝에 결과를 얻어낸다.

와, 대단한 결과다!

나는 스위트 스폿(배트로 공을 칠 때 가장 효율적인 곳‐옮긴이)을 맞힌다. 갑자기 로키의 등딱지 환기구가 검은 연기를 토해낸다. 로키의 몸에 불이 붙었을 때 쌓인 고약한 먼지와 잔해들이다. 강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오래된 컴퓨터에 공기 분사기를 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환기구 하나하나를 맞히려고 펌프를 앞뒤로 쓸어간다. 나중의 환기구들은 첫 번째 환기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란만을 일으킬 뿐이다. 모든 환기구가 같은 기관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인간의 입과 코처럼. 구멍이 여러 개인 이유는 만약을 위해 여분을 마련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몇 분이 지나자 더 이상 재 같은 먼지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펌프를 끈다.

“그래, 친구.” 내가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나머지는 네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날 나머지 시간을 2차, 3차 방어용 상자를 만들며 보낸다. 나는 그 상자들을 내 장치 위 적당한 자리에 붙인다. 에리디언의 공기는 이제 세 겹의 봉인을 뚫고서야 내 구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로키가 깨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