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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로 진행해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제가 한 번에 한 분씩 만나도록 하죠.”

우주비행사 세 사람이 내 앞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내가 이 휴게실을 쓰기로 하고, 이번 만남을 위해 문도 잠가두었다. 야오가 언제나 그렇듯 완고한 표정으로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두보이스가 그의 왼쪽에, 완벽한 자세를 보여주려는 듯 등을 굽히고 앉아 있었다. 일류키나는 야오의 왼쪽에 웅크리고서 맥주를 홀짝였다.

“개인 면담은 필요 없습니다.” 야오가 말했다. “이 임무에 비밀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꿈지럭거렸다. 스트라트는 왜 내게 이 일을 맡긴 걸까? 나는 사람들을 잘 다루는 사람도 아니었고, 민감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몰랐다. 스트라트는 승조원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왜지? 어쩌면, 나는 평소 스트라트 옆에 서 있기에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뿐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발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나는 이 정보를 얻어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누가 먼저 하실래요?”

두보이스가 손을 들었다. “다들 괜찮으시다면 제가 먼저 하죠.”

“그러시죠.” 나는 펜을 시험 삼아 빠르게 휘갈겨 써보았다. “그럼…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

그래. 어색한 주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세 사람은 나머지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남겨주고자 목숨을 버릴 생각이었다. 이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두보이스는 내게 빳빳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제 요구 사항은 이 서류에 자세히 적었습니다. 모든 게 정리된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중요 항목과 도표, 맨 아래에는 참고 자료까지 일부 적혀 있었다. “이게 대체 뭔가요?”

두보이스는 종이 가운데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는 질소 질식으로 죽고 싶습니다. 제가 조사한 모든 자료에서 그게 가장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몇 가지를 메모했다.

“그 서류에는 제가 반드시 죽을 수 있게 해줄 장비 목록이 들어 있습니다. 장비 무게도 제 몫의 개인 물품 질량에 충분히 포함되고요.”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대체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는 무릎에 올려둔 두 손을 맞잡았다. “질소 탱크와 EVA 우주복을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우주복을 입고 우주복이 산소 대신 질소를 집어넣게 하면 돼요. 질식 반사는 산소 부족 때문이 아니라, 폐에 과도한 이산화탄소가 들어갈 때에 나타납니다. 우주복의 시스템이 제가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계속 제거하고, 오직 질소만을 남겨둘 거예요. 저는 그냥 피곤해지고 아마 조금은 머리가 멍해질 겁니다. 그런 다음 의식을 잃겠지요.”

“알겠습니다.” 나는 전문가다운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EVA 우주복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요?”

“4절에 대안이 상세히 기술돼 있습니다. EVA 우주복을 쓸 수 없다면, 저는 우주선의 에어로크를 활용할 겁니다. 에어로크의 부피면 이산화탄소가 불편할 만큼 심하게 쌓이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몇 가지 메모를 남겼다. 사실 그럴 필요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두보이스의 서류는 매우 철저했다. “질소가 충분히 들어 있는 탱크를 마련하고, 첫 번째 탱크에 누출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보조 탱크도 준비하겠습니다.”

“아주 좋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종이를 옆으로 치웠다. “일류키나? 당신은요?”

그녀는 맥주를 내려놓았다. “전 헤로인을 원해요.”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야오조차 조금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죄송합니다, 뭐라고요?” 내가 말했다.

“헤로인이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전 평생 착한 아이로 살아왔어요. 약도 안 하고, 섹스도 제한적이었고. 죽기 전에 엄청난 쾌락을 경험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늘 헤로인으로 죽어가잖아요. 엄청 좋은 게 틀림없어요.”

나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러니까 … 헤로인 과다 투약으로 죽고 싶다고요?”

“바로 죽는 건 싫고요.” 그녀가 말했다. “난 즐기고 싶어요. 평범한, 효과 좋은 복용량으로 시작해서 황홀경을 맛볼 생각이에요. 중독자들은 다들 처음 몇 번이 가장 좋다고 하더군요. 그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라고. 저는 그 처음 몇 번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다가 때가 되면 과다 투약하고요.”

“그건… 저희가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과다 투약으로 인한 사망은 매우 불쾌할 수 있어요.”

일류키나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의사들한테 최선의 투약 일정을 알아내라고 하세요. 초기 투약의 쾌락을 최대화할 수 있는 알맞은 양을 알아내라고 해요. 그리고 사망에 이르는 투약에는 다른 약도 섞으면 되겠죠. 내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나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 적었다. “네. 헤로인이군요.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알아내겠습니다.”

“전 세계가 박사님 말에 따라서 움직이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제약 회사를 움직여서 저한테 줄 헤로인을 만들라고 하세요. 어려울 리 없죠.”

“알겠습니다. 분명히 스트라트가 전화를 걸거나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둘은 처리했고 하나가 남았다. “좋습니다. 야오 대장님? 대장님은요?”

“총을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92식 권총입니다. 중국군이 사용하는 표준형으로요. 가는 동안에는 총알을 습기 없이 밀봉된 플라스틱 통에 보관해 주십시오.”

최소한 그건 말이 됐다. 빠르고 고통 없는 죽음. “총이요. 알겠습니다. 그건 쉽겠습니다.”

야오 사령관은 동료 승조원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죽을 겁니다. 두 분의 방법이 뭔가 잘못된다면, 내가 무기를 들고 기다리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정말 친절하시군요.” 두보이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내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으면 쏘지 마세요.” 일류키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야오가 말했다. 그는 나를 돌아보았다. “이게 전부입니까?”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것 참 어색하네요.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데로 좀 가보겠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몸부림친다. 팔의 화상이 그 어느 때보다 아프다. 진통제는 거의 아무 작용도 하지 못한다. 일류키나의 헤로인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니야. 안 쓸 거다. 하지만 이게 자살 임무였다면 썼을 것이다.

그 점에 집중하자. 이건 더 이상 자살 임무가 아니다. 제대로 패를 내기만 하면 나는 세상을 구할 뿐만 아니라 집에 간다.

고통이 왠지 줄어든다. 고통은 찾아왔다 사라진다. 기회가 생기면 화상에 관한 책을 뭐든 볼 생각이다. 통증이 언제쯤 멈추는지라도 알고 싶다.

톡.

“응?” 나는 웅얼거린다.

톡.

나는 소리가 나는 곳을 본다. 로키가 에어로크 벽을 두드리고 있다.

“로키!” 나는 침대에서 떨어졌다가, 바닥에 닿기 전에 오른쪽으로 구른다. 나는 바닥을 허둥지둥 가로질러 에어로크 벽으로 간다. “로키, 이 자식! 괜찮아?”

나는 로키의 몸속에서 나는 낮은 퉁퉁 소리를 듣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더 크게 말해봐.”

아픔…. 그가 웅얼거린다.

“그래. 너 아파. 네가 내 공기로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아프지! 거의 죽을 뻔했는데!”

그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는다. 나 어떻게 여기로 돌아옴, 질문?

“내가 옮겼어.”

그는 짜증을 내며 바닥을 발톱으로 톡톡 두드린다. 너 내 공기 만짐, 질문?

“응, 약간.”

그는 내 왼팔을 가리킨다. 한 팔 피부가 매끄럽지 않음. 손상, 질문?

로키는 초음파로 붕대를 뚫고 볼 수 있는 모양이다. 붕대 속은 꽤 못 봐줄 모습일 것이다. 심각한 꼴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로키 덕분에 그 생각이 확인됐다. “응. 근데 괜찮아질 거야.”

너, 나를 구하려고 너를 손상함. 감사.

“너도 똑같은 일을 했잖아. 네 방열 기관은 괜찮아? 너한테 불이 붙어서, 네가 온통 재랑 산화물투성이가 됐어.”

낫고 있음. 그가 벽과 바닥에 한가득한 재를 가리켰다. 이거 내 안에서 나옴, 질문?

“응.”

어떻게 나옴, 질문?

나는 조금 우쭐해진다.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다.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해냈으니까. 나는 이제 삼중으로 감싸인, 에어로크 벽의 강철 상자를 가리킨다. “내가 너한테 공기를 쏘는 장치를 만들었어. 네 방열기 환기구를 조준하니까 그 고약한 것들이 전부 나왔어.”

로키는 잠시 조용하다. 그러더니 여전히 조금 불안정한 몸으로 말한다. 저것들, 내 안에 얼마나 오래 있었음, 질문?

나는 머릿속으로 시간을 돌려본다. “한… 이틀.”

너 때문에 죽을 뻔함.

“뭐? 어째서? 내가 네 방열기에서 재를 전부 털어냈다고!”

로키는 다른 다리에 몸무게를 싣는다. 검은 물질 재 아님. 내 몸이 이걸 만듦. 이건 몸이 낫는 동안 상처를 덮고 있음.

“아….” 내가 말한다. “아, 이런….”

나는 로키의 방열기에서 재를 떨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상처에서 딱지를 뜯어낸 것이었다! “너무 미안해! 난 도와주려고 한 건데.”

괜찮음. 더 일찍 했으면 난 죽었음. 하지만 네가 그렇게 하기 전에 충분히 나았음. 제거가 약간 도움이 됨. 고마움.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미안해.” 내가 다시 말한다.

미안해하지 마. 나를 여기 넣었을 때 네가 나를 구함. 감사, 감사, 감사. 그는 다시 일어서려 하지만 겨우 1초쯤 서 있다가 주저앉는다. 나 약함. 나을 것임.

나는 물러나 침대에 앉는다. “무중력상태면 좀 더 편할까? 원심분리기를 끌 수도 있어.”

아니. 중력이 치료에 도움. 그는 다리를 움직여, 등딱지를 얹어놓을 침대 모양으로 만든다. 아마 그게 편안한 수면 자세일 것이다. 표본 통 안전, 질문?

“응. 지금은 실험실에 있어. 내가 밀폐된 통 안에 에이드리언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표본 통이랑 같이 아스트로파지를 좀 넣어뒀어. 잠시 후에 어떻게 됐는지 살펴볼 생각이야.”

좋음. 그가 말한다. 인간의 빛 감각 매우 유용.

“고마워.” 내가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게 유용하지 않아. 통에서 표본을 꺼낼 방법을 모르겠어.”

로키가 등딱지를 약간 기울인다. 너 표본 밀폐했는데 표본 접근 못 함, 질문?

“응.”

보통은 너 안 멍청. 왜 멍청, 질문?

“인간은 잠을 자야 할 때 멍청해지거든. 통증을 멈추는 약을 먹을 때도 그렇고. 난 지금 피곤하기도 하고 약도 먹었어.”

넌 자야 함.

나는 일어선다. “조금 이따가 자려고. 하지만 일단은, 궤도를 안정화해야 해. 우리 원지점이랑 근지점이…. 뭐, 괜찮은 궤도가 아니야.”

멍청할 때 궤도 조정. 좋은 계획.

나는 히죽거린다. “새로운 단어를 추가할게. 빈정대기.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 진짜 의미와 반대로 말함. 빈정대기.”

로키는 자기 언어로 ‘빈정대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노래한다.



극도로 지치기도 했고 약 기운도 돌아서, 나는 아기처럼 잔다. 백만 배는 나아진 기분으로 눈을 뜨지만, 화상은 백만 배나 심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붕대를 본다. 새것이다.

로키가 작업대에서 공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는 자기 구역을 치워두었다. 새것 같다. 깼음, 질문?

“응.” 내가 말한다. “좀 어때? 나아가고 있어?”

그가 발톱 하나를 까딱거린다. 훨씬 많은 치료 필요. 하지만 어떤 치료 완료. 별로 못 움직임.

나는 머리를 다시 털썩 베개에 기댄다. “나도.”

로봇 팔이 네가 자는 동안 네 팔에 뭔가 함.

나는 붕대를 가리킨다. “이 천을 갈아준 거야. 인간의 치료에는 천을 가는 게 중요하거든.”

로키는 최근의 발명품을 다양한 공구로 쿡쿡 찔러본다.

“그건 뭐야?”

나는 에이드리언 생명체를 보관한 장치를 보러 실험실에 감. 지금은 표본을 꺼내도 네 공기를 들여보내지 않을 장치를 만듦. 그가 커다란 상자를 들어 올린다. 네 진공실을 이 안에 넣어. 이걸 닫아. 이게 에이드리언의 공기를 안에 있게 함.

로키가 장치 윗부분을 열고, 경첩이 달린 막대 두어 개를 가리킨다. 밖에서 이것들을 조종. 표본 수거. 장치 밀폐. 내 장치 개봉. 표본 가짐. 표본으로 인간 과학을 함.

“똑똑한데.” 내가 말한다. “고마워.”

로키는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지만, 천천히 해야 한다. 어제처럼 또 한 번 ‘멍청한 날’을 보내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나는 하마터면 표본을 망치고 로키를 죽일 뻔했다. 이제는 내가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는 똑똑해졌다. 이건 진보다.

“컴퓨터, 커피!”

잠시 후, 로봇 팔이 내게 자바 커피를 한 컵 내민다.

“있잖아.”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말한다. “어떻게 너랑 내가 같은 소리를 듣는 걸까?”

로키는 장치 안의 골조 작업을 계속한다. 유용한 특징. 둘 다 진화. 안 놀라움.

“그래, 하지만 왜 같은 주파수를 듣느냐고? 왜 네가 나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를 듣는다거나 하지 않는 거야? 아니면 훨씬 낮은 주파수라든지.”

나는 실제로 훨씬 높은 주파수와 훨씬 낮은 주파수를 들음.

그건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짐작했어야 한다. 청각은 에리디언들의 주된 감각 정보다. 당연히 로키는 나보다 넓은 가청 범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래, 하지만 왜 겹치는 대역이 있느냐는 거야. 왜 너랑 나랑 완전히 다른 주파수를 듣지 않는 걸까?”

로키는 한 손에 들고 있던 공구를 내려놓는다. 그래도 두 손이 남아 계속 장치에 뭔가를 꽂아 넣는다. 새로이 자유를 찾은 손으로, 로키는 작업용 벤치를 긁는다. 너 이거 들림, 질문?

“응.”

이건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임. 먹이가 도망치는 소리임. 물건이 물건에 닿는 소리 매우 중요. 듣도록 진화.

“아! 그렇지.”

로키가 짚어주니 당연한 말로 들린다. 목소리, 악기의 소리, 새 울음소리 등 모든 소리는 엄청나게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는 행성에 따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구에서 돌 두 개를 부딪치면, 에리드에서 돌 두 개를 부딪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난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더 나은 질문. 그가 말한다. 왜 우리는 같은 속도로 생각, 질문?

나는 자세를 바꿔 옆으로 눕는다. “우린 같은 속도로 생각하지 않아. 넌 나보다 계산 속도가 훨씬 빨라. 기억력도 완벽하고. 인간은 그렇게 못해. 에리디언들이 머리가 더 좋아.”

그는 빈손으로 새 공구를 잡더니 다시 작업한다. 계산은 생각이 아님. 계산은 과정임. 기억은 생각이 아님. 기억은 저장임. 생각은 생각임. 문제, 해결. 너랑 나는 같은 속도로 생각함. 왜, 질문?

“흠.”

나는 잠시 고민한다. 정말로 좋은 질문이다. 어째서 로키가 나보다 1,000배나 영리하지 않은 걸까? 혹은 1,000배쯤 멍청하거나.

“글쎄…. 우리가 비슷한 지능을 가진 이유에 대해서 가설이 있긴 해. 가설이지만.”

설명.

“지능은 우리가 각자 행성에 사는 다른 동물들보다 유리해지도록 진화한 거야. 하지만 진화는 게을러. 일단 문제가 해결되면, 그 특징은 진화를 멈추지. 그러니까 너랑 나는 둘 다 각자 행성의 다른 동물들보다 똑똑한 정도로만 지능이 있는 거야.”

우리는 동물들보다 훨씬 훨씬 더 머리 좋음.

“우리는 진화가 이끄는 정도로 머리가 좋아져. 그러니까 우리는 행성을 확실히 지배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로키는 이 점을 생각해 본다. 받아들임. 그래도 왜 지구 지능이 에리드 지능과 같은 수준으로 진화하는지는 설명 안 됨.

“우리 지능은 동물들의 지능에 근거를 두고 있어. 그럼 동물의 지능은 뭐에 근거할까? 동물들은 얼마나 똑똑해야 할까?”

위험 요소나 먹잇감을 제때에 식별해 행동할 수 있을 만큼.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말한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동물한테 반응하기까지 주어지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위험 요소나 먹잇감이 동물을 죽이거나, 동물에게서 도망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일까? 나는 그게 중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

중력, 질문? 로키는 장치를 완전히 내려놓는다. 나는 그의 온전한 관심을 끌어냈다.

“그래! 생각해 봐. 동물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건 중력이야. 중력이 높아지면 땅과 접촉하는 시간이 늘어나. 그러므로 움직임이 더 빨라져야 해. 나는 궁극적으로 동물의 지능이 중력보다 빨라야 한다고 생각해.”

흥미로운 가설. 로키가 말한다. 하지만 에리드 중력 지구 중력의 두 배. 너랑 나는 같은 지능.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다. “장담하는데, 우리 중력은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거의 동일할 거야. 필요한 지능이 거의 같을 정도겠지. 지구의 100분의 1 정도 되는 중력을 가진 행성에서 온 생명체를 만나면, 우리가 보기엔 분명히 아주 멍청할걸.”

가능함. 그가 말한다. 로키는 다시 장치를 만지기 시작한다. 다른 유사성. 너랑 나는 둘 다 우리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함. 왜, 질문? 진화는 죽음을 싫어함.

“종족 전체로 봐서 좋은 일이잖아.” 내가 말한다. “자기희생 본능은 종 전체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줘.”

모든 에리디언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음.

나는 키득거린다. “인간들도 그래.”

너랑 나는 좋은 사람. 로키가 말한다.

“그러게.” 나는 미소 짓는다. “그런 것 같아.”



발사까지 아흐레.

나는 방 안을 어슬렁거렸다. 방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지만,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내 방은 작은 부엌까지 딸린, 온전한 소형 이동식 주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은 것보다 나았다. 러시아인들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임시 주거지 수십 채를 세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가 최근에는 정신없이 바빴지만.

아무튼, 나는 도착한 이후로 거의 침대를 써본 적이 없었다. 그냥, 언제나 새로운 사건이나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문제들이었다.

헤일메리호는 완성됐다. 200만 킬로그램이 넘는 우주선과 연료가 딱 좋게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었다. 이 정도면 국제 우주정거장 질량의 네 배에 달했는데, 조립 시간은 그 20분의 1밖에 걸리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총비용을 추적했었지만, 10조 달러쯤에서 포기했다. 그럴 의미가 없었다. 이건 더 이상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지구 대 아스트로파지의 싸움이었고, 그 어떤 비용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었다.

ESA의 우주인들이 지난 몇 주 동안 우주선에 타고서, 각 단계 별로 우주선을 점검하고 있었다. 점검을 담당한 승조원들은 약 500개의 문제를 보고해 왔고, 우리는 지난 몇 주간 그 문제들을 처리했다. 그중 어느 것도 헤일메리호를 버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오류는 아니었다.

정말이다. 이제 아흐레 후면 헤일메리호가 발사된다.

나는 책상 역할을 하는 탁자에 앉아 서류를 펄럭펄럭 넘겼다. 몇몇 서류에는 서명을 하고, 다른 서류들은 내일 스트라트에게 보여주려고 한쪽에 밀어놓았다. 어쩌다가 내가 관리자가 된 걸까? 다들 인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모양이다.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이거라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카자흐스탄의 초원 지대는 평평하고 아무 특징이 없었다. 사람들은 보통 발사 시설을 중요한 것 근처에 짓지 않는다. 이유야 뻔하다.

나는 아이들이 그리웠다.

아이들 수십 명이. 따지고 보면 여러 해를 걸쳐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그 숫자는 수백 명에 달했다.

아이들은 내게 욕을 하지도 않았고, 한밤중에 나를 깨우지도 않았다. 녀석들의 옥신각신하는 다툼은 보통 선생님들이 억지로 악수를 하게 하거나 방과 후 벌칙을 주는 방법으로 몇 분 안에 해결됐다. 그리고 이건 좀 이기적인 얘기지만, 녀석들은 나를 우러러봤다. 나는 그렇게 존경받던 일이 그리웠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의 아이들은 임무가 성공하더라도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헤일메리호가 타우세티에 이르기까지는 13년이 걸릴 테고, (승조원들이 우리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가정을 두고) 비틀스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데는 또다시 13년이 걸릴 터였다. 그러니까 무얼 해야 할지 알기까지만 해도 사반세기가 걸린다는 얘기였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나의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닐 것이다.

“계속해야지.” 나는 웅얼거리며 다음 문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왜 그냥 이메일을 보내는 대신 서류로 된 보고서를 작성하느냐고? 러시아인들에게는 나름의 일 처리 방식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 불평하느니 그들과 보조를 맞춰 일하는 게 쉽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의학적 음식 급여 시스템의 14번 슬러리 펌프에서 발생한 오류에 관한 내용으로, ESA 승조원이 보낸 것이었다. 14번 펌프는 3차 시스템의 유일한 부품으로, 오류가 있다고 해도 95퍼센트는 제대로 작동했다. 그렇다고 이런 오류를 내버려 둘 이유는 없었다. 마지막 발사에 할당된 질량 83킬로그램은 아직 어디에 써야 할지 결정되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 여분의 슬러리 펌프를 실으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래 봐야 겨우 250그램이니까. 궤도에서 출발하기 전에 승조원들이 이 펌프를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류를 치워놓고, 창밖에서 빛이 잠깐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아마 임시 주거지로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지프가 지나가는 빛이었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창문 너머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들어오곤 했다. 나는 그 불빛을 무시했다.

쌓아놓은 다음 서류는 바닥짐으로 쓸 만한 물건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헤일메리호는 필요에 따라 아스트로파지를 펌프질해 공급함으로써 장축의 무게중심을 유지했다. 그래도 우리는 최대한 물건들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 ESA 승조원들이 균형을 더 적절하게 잡을 수 있도록 창고 구역의 비품 자루 몇 개를 다시 배치….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폭발로 방이 흔들리면서 창문이 박살 났다. 충격파 때문에 의자에서 완전히 나자빠진 내 얼굴을 유리 파편이 베고 지나갔다.

그다음은 정적이었다.

그런 다음, 멀리서 사이렌이 들렸다.

나는 무릎을 꿇고 일어났다가 발을 딛고 일어섰다. 먹먹해진 귀를 뚫느라 몇 차례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다가가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한때 내 문까지 이어져 있던, 작은 3단짜리 계단이 몇 피트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는 계단과 문 사이에 흙이 뒤집혀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차렸다.

계단은 울타리 기둥처럼 깊게 박힌, 4×4인치 각재로 땅에 고정돼 있었다. 그러나 내 이동식 주택에는 그런 지지대가 없었다.

내 집 전체가 움직이고 계단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레이스! 괜찮아요?” 스트라트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이동식 주택이 내 옆집이었다.

“네!” 내가 말했다. “대체 뭐였어요?”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잠깐만요.”

잠시 후, 나는 손전등이 깜빡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잠옷에 부츠를 신고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무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에토 스트라트. 크토 프로이스크호디트?” 그녀가 물었다.

“브즈리프 브 이슬레도파텔슈콤 트센트레.” 응답이 들려왔다.

“연구 센터가 폭발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바이코누르는 발사용 시설이었지만, 연구동이 몇 개 있긴 했다. 실험실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교실에 가까웠다. 우주비행사들은 보통 발사 전 일주일을 바이코누르에서 머물렀고, 대체로 발사 당일까지 공부하며 준비하고 싶어 했다.

“아, 세상에.” 내가 말했다. “누가 있었어요? 거기 누가 있었나요?”

스트라트는 잠옷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 뭉치를 꺼냈다. “잠깐, 잠깐만요….” 그녀는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먼젓번 종이를 땅에 버리며 종이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 나는 한눈에 그게 무슨 서류인지 알아보았다. 1년 동안 매일 봐온 서류니까. 일정표였다. 모두가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늘 보여주는 일정표.

스트라트는 찾던 페이지에 이르자 멈췄다. 그녀는 헛숨을 들이켰다. “두보이스와 셔피로. 연구동에서 아스트로파지 관련 실험을 하는 일정이네요.”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안 돼! 아니, 제발 아니라고 해줘요! 연구동은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고요. 여기 있는 우리한테까지 폭발이 이 정도 손해를 끼쳤다면….”

“알아요, 나도!” 그녀가 다시 무전기를 켰다. “주 승조원, 위치 보고 바란다. 응답하라.”

“야오, 이상 없습니다.” 첫 번째 응답이 들려왔다. “침대입니다.”

“일류키나, 이상 없습니다. 장교 주점인데요. 방금 폭발은 뭐였죠?”

스트라트와 나는 우리가 바라는 응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두보이스.” 그녀가 말했다. “두보이스! 응답하세요!”

정적.

“셔피로. 애니 셔피로 박사. 응답 바람!”

이어지는 정적.

스트라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그녀는 한 번 더 무전기를 켰다. “스트라트 이동 요청. 지상 관제 센터까지 이동할 지프가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오버.” 응답이 들려왔다.

이어진 몇 시간은 솔직히 말해 대혼란이었다. 기지 전체가 일시적으로 폐쇄되고 모두가 신분증 확인을 받았다. 웬 종말론자들이 임무를 방해하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잘못도 드러나지 않았다.

스트라트와 디미트리, 나는 벙커에 쭈그리고 앉았다. 왜 벙커에 있었느냐고? 러시아인들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테러 공격 같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인들은 혹시 모르니 요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 야오와 일류키나는 다른 어느 벙커에 들어가 있었다. 다른 선임 과학자들도 또 다른 벙커들에 들어가 있었다. 어느 한 지점도 효과적인 타격점이 되지 못하도록 모두를 흩어놓은 것이다. 암울한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결정이었다. 어쨌든 바이코누르는 냉전 시대에 세워졌으니까.

“연구동들은 분화구처럼 변했어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두보이스나 셔피로의 흔적은 없고요. 거기서 근무하던 다른 직원 열네 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핸드폰에 사진을 띄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진에는 완전한 파괴가 담겨 있었다. 연구동이 있던 구역은 러시아인들이 설치한 강력한 투광 조명등으로 밝혀져 있었다. 구조대원들이 와글거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상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잔해도 없었고, 파편조차 거의 없었다. 스트라트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어떤 사진은 땅을 클로즈업해 찍은 것이었다. 둥글고 반짝이는 구슬이 그 지역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이 구슬들은 웬 거죠?” 그녀가 말했다.

“금속 응축물입니다.” 디미트리가 말했다. “금속이 증발했다가 빗방울처럼 응축됐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그녀가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 실험실 안에 금속을 증발시킬 만큼의 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어요. 아스트로파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디미트리가 말했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는 그냥 ‘폭발하지’ 않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걸까요?”

스트라트는 구겨진 일정표를 보았다. “이 표에 따르면, 두보이스는 아스트로파지 동력 발전기로 몇 가지 실험을 더 해보고 싶어 했어요. 셔피로는 관찰 겸 보조를 하려고 함께 있었고요.”

“말도 안 돼요.” 내가 말했다. “그 발전기들은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아주 아주 적은 양의 아스트로파지를 사용한다고요. 건물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양은 도저히 안 돼요.”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우린 주요 과학 요원과 예비 과학 요원을 잃었습니다.”

“이건 악몽이에요.” 디미트리가 말했다.

“그레이스 박사님. 가능한 대체 인력 최종 후보자 명단을 올려주세요.”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이봐요, 당신 무슨 돌로 만든 인간이라도 돼요? 방금 우리 친구들이 죽었다고요!”

“네, 그리고 우리가 이 임무를 실현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사람도 죽을 겁니다. 대체할 과학 요원을 찾을 때까지 아흐레가 남아 있어요.”

나는 눈물이 고였다. “두보이스… 셔피로….” 나는 훌쩍이며 눈물을 훔쳤다. “두 사람이 죽었어요. 죽었다고요…. 아, 하느님….”

스트라트가 내 따귀를 때렸다. “정신 차려요!”

“이봐요!”

“나중에 울라고요! 임무가 먼저예요! 작년에 추린 코마 저항력이 있는 후보자 명단 아직 가지고 있죠? 그걸 살펴봐요. 새로운 과학 전문가가 필요해요. 지금 당장!”



“표본 수집 중….” 내가 말한다.

로키는 실험실 천장의 자기 터널에서 나를 지켜본다. 로키의 장치는 작동해야 하는 방식 그대로 작동한다. 투명한 제노나이트 상자에는 내가 내부 환경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밸브와 펌프 들이 여러 개 달려 있다. 진공실은 뚜껑이 열린 채로 안에 놓여 있다. 상자에는 기후 통제기까지 달려 있어, 안의 온도를 영하 51도로 차갑게 유지한다.

로키는 그렇게 오랫동안 표본을 (인간의) 실온에 놔둔 것을 나무랐다. 사실, 로키에게는 이 주제에 관해 할 말이 아주 많았다. 우리는 로키가 이 문제에 관한 의견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무모한’, ‘머저리’, ‘바보 같은’, ‘무책임한’을 우리의 공통 단어 목록에 추가해야 했다.

그가 사정없이 던져댄 다른 단어도 있었지만, 로키는 내게 그 뜻을 말해주지 않으려 했다.

진통제를 끊은 지 사흘이 지나자 나는 훨씬 똑똑해졌다. 로키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동안 나는 그냥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멍청함이 강화된 인간이었다.

로키는 내가 약을 사용하지 않은 채로 세 번 잠들었다가 일어날 때까지 지금 쓰고 있는 상자를 내게 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도 팔이 너무 심하게 아프지만, 로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이번에는 로키가 상당히 많이 치료되기도 했다. 그의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 겉모습은 전과 똑같은데, 예전보다 훨씬 잘 돌아다닌다. 그래도 속도는 예전 같지 않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상처를 입은 채로 걸어 다니고 있다.

합의에 따라, 우리는 중력을 0.5g로 유지한다.

나는 상자 안의 집게를 몇 차례 폈다가 오므린다. “이것 좀 봐. 나는 에리디언이다!”

그래. 아주 에리디언. 서둘러 표본을 가져와.

“너 참 재미없다.” 나는 면봉을 쥐고, 준비해 둔 유리 슬라이드 쪽으로 가져간다. 눈으로 보일 만큼 문지른 자국을 남기며 면봉으로 슬라이드 전체를 훑은 다음, 면봉을 다시 진공실로 가져온다. 진공실을 밀폐하고 슬라이드를 작고 투명한 제노나이트 통에 넣은 다음 상자를 봉인한다.

“좋아. 이거면 될 거야.” 나는 내 공기가 들어가도록 밸브를 돌린 다음, 위에서 상자를 연다. 슬라이드는 제노나이트 통 안에 들어 있기에 안전하다. 이건 은하에서 가장 작은 우주선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이 안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에이드리언의 생명체 관점에서는 그렇다.

나는 현미경대로 향한다.

로키가 머리 위의 터널에서 따라온다. 그렇게 작은 빛도 볼 수 있는 거 확실, 질문?

“응. 오래된 기술이야. 아주 오래됐어.” 나는 통을 현미경 트레이에 올려놓고 렌즈를 조정한다. 제노나이트는 현미경으로 그 너머를 볼 수 있을 만큼 투명하다.

“좋아, 에이드리언. 뭘 줄 거니?” 나는 접안경에 얼굴을 댄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스트로파지다. 평소처럼 아스트로파지들은 모든 빛을 빨아들여 검은색으로 보인다. 그야 예상한 일이다. 나는 백 라이트와 초점을 조정한다. 그러자 사방에서 미생물이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실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녀석들에게 물 한 방울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이다. 물 딱 한 방울. 바깥의 물웅덩이에서 가져온 것이면 더 좋다. 그 안에는 생명체가 우글거리기 마련이다. 이 실험은 언제나 잘 진행된다. 가끔 실험 이후로 한동안 물을 먹지 않으려 드는 녀석이 나오지만 말이다.

“이 안에 생명체가 엄청 많아.” 내가 말한다. “종류도 다양해.”

좋음. 예상함.

당연히 그렇겠지. 생명체가 있는 행성에는 어디에나 생명체가 존재한다. 내 가설은 그렇다. 진화는 생태계 안의 모든 구석구석을 채우는 데 극도로 뛰어나다.

지금 나는 수백 가지의 독특한 생명체를 보고 있다. 인간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외계의 종족이다.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현미경을 상하좌우로 회전하다가 괜찮은 아스트로파지 덩어리를 발견한다. 찾아낼 만한 포식자가 있다면, 녀석은 아스트로파지가 있는 곳에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꽤 형편없는 포식자이겠지.

나는 현미경의 내부 카메라를 탁 켠다. 영상이 작은 LCD 화면에 나타난다. 나는 화면을 조정하고 녹화를 시작한다.

“시간이 걸릴 수 있어.” 내가 말한다. “상호작용을 봐야… 와아!”

나는 더 잘 보려고 다시 현미경에 얼굴을 붙인다. 아스트로파지가 공격당하기까지 겨우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가 엄청나게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이 생명체가 그만큼 공격적인 걸까?

로키가 내 머리 위를 앞뒤로 날쌔게 오간다. 무엇임, 질문? 무슨 일임, 질문?

괴물이 아스트로파지 덩어리 쪽으로 몸을 날린다. 아메바처럼 일정한 형태가 없는 방울 형태의 생명체다. 녀석은 훨씬 덩치가 작은 먹잇감에 몸을 바싹 붙이더니 양옆으로 스며들며 아스트로파지 덩어리 전체를 감싸기 시작한다.

아스트로파지가 꿈틀거린다. 녀석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탈출하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겨우 짧은 거리를 움찔움찔 가더니 멈춘다. 보통 아스트로파지는 몇 초 안에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할 수 있지만, 이 녀석들은 그러지 못한다. 괴물에게서 나온 화학 분비물이 녀석들의 능력을 없애는 게 아닐까?

둘러싸는 과정이 완료되자 아스트로파지는 그 생명체에게 포위된다. 몇 초 뒤, 아스트로파지의 모습이 세포처럼 변한다. 더는 아무 특징 없는 검은색이 아니다. 녀석들의 세포 기관과 세포막이 현미경 불빛을 받아 완전히 보인다. 녀석들은 열과 빛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죽었다.

“찾았어!” 내가 말한다. “포식자를 찾았어! 이 녀석이 내 눈앞에서 아스트로파지를 먹었다고!”

찾음! 로키가 환호한다. 격리해.

“응, 격리할게!” 내가 말한다.

행복, 행복, 행복! 로키가 말한다. 이제 네가 이름 지어.

나는 비품 중에서 나노 피펫을 가져온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지구 문화. 네가 찾음. 네가 이름 붙임. 포식자 이름 무엇, 질문?

“아.” 내가 말한다. 이 순간에는 별로 창의적인 기분이 아닌데.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기에는 너무 흥분된다. 이건 타우세티에서 온 아메바니까 …. “타우메바라고 할까.”

타우메바. 지구와 에리드의 구원자.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텍사스식 볼로타이가 있어야 했다. 어쩌면 카우보이 모자도. 지금 나는 목장 주인이니까. 나는 대략 5,000만 마리의 타우메바를 내 농장에서 키우고 있다.

내가 에이드리언의 대기 표본에서 타우메바 몇 마리를 격리하자마자 로키는 배양용 수조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녀석들이 할 일을 하도록 놔두었다. 수조는 그저 에이드리언의 대기와 아스트로파지 수백 그램으로 가득한 제노나이트 상자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게 맞는다면, 타우메바는 온도 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굉장히 강했다. 녀석들은 영하 51도에서 살면서, 늘 섭씨 96.415도를 유지하는 아스트로파지를 먹는다. 하긴 다들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니까.

게다가 녀석들은 번식도 한다! 뭐, 내가 녀석들이 쓸 아스트로파지를 잔뜩 주기는 했다. 이건 마치 설탕물로 채운 병에 이스트를 집어넣는 것과 같다. 하지만 술을 만드는 대신, 우리는 더 많은 타우메바를 만들고 있다. 이제는 실험에 쓸 타우메바가 충분히 생겼으니 내가 일을 시작할 차례다.

염소를 화성에 데려다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염소는 즉시 (끔찍하게) 죽는다. 염소들은 화성에서 살도록 진화하지 않았으니까. 좋다. 그럼 타우메바를 에이드리언이 아닌 행성에 데려다 놓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알고 싶은 게 그것이다.

로키가 주 실험대 위의 자기 터널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진공실 안에 새로 만들어 놓은 신선한 대기를 가지고 모의실험을 해본다.

산소 없음, 질문? 그가 묻는다.

“산소 없음.”

산소 위험. 로키는 내부 기관에 불이 붙은 뒤로 약간 예민해졌다.

“나는 산소로 숨을 쉬어. 괜찮아.”

폭발 가능.

나는 보안경을 벗고 그를 올려다본다. “이 실험에는 산소를 쓰지 않아. 진정해.”

응. 진정.

나는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소량의 기체가 진공실로 들어가도록 밸브를 돌린다. 압력계를 확인하고….

다시 확인. 산소 없음, 질문?

나는 머리를 위로 홱 쳐들고 그를 노려본다. “그냥 이산화탄소랑 질소뿐이야! 이산화탄소랑 질소뿐이라고! 그것 말고는 없어! 그만 좀 물어봐!”

응. 그만 물어봄. 미안.

로키를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몸에 불이 붙는다는 건 그리 재미있는 일이 아니니까.

우리는 지금 두 행성의 대기를 만들어봐야 한다. 아니, 지구와 에리드가 아니다. 지구와 에리드는 단지 우리가 사는 행성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신경 쓰는 행성은 금성과 삼세계다. 아스트로파지가 걷잡을 수 없이 번식하는 그곳.

금성은 내가 사는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이다. 크기는 지구와 비슷하고, 대기는 농도가 짙은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삼세계는 로키의 고향 항성계의 세 번째 행성이다. 나는 그곳을 ‘삼세계’라고 부른다. 에리디언들은 자기 언어로조차 그 행성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3번 행성’이라고 번호를 붙여놓았을 뿐이다. 에리디언들에게는 천체를 올려다보며 신들의 이름을 따서 행성의 이름을 붙인 고대인들이 없었다. 그들은 겨우 몇백 년 전에야 자기 항성계의 다른 행성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3번 행성’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삼세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외계인들과 협업해 인류를 멸망에서 구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뭔가의 이름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삼세계는 아주 작은 행성이다. 겨우 지구의 달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기가 없는 우리의 이웃 달과는 달리, 삼세계에는 대기가 있다. 어째서? 나도 모른다. 삼세계의 표면 중력은 겨우 0.2g인데, 이 정도면 대기가 생기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런데도 삼세계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희박한 대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로키 말에 따르면, 삼세계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84퍼센트, 질소 8퍼센트, 이산화황 4퍼센트, 기타 미량 가스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게 지구의 1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지상기압으로 존재한다.

나는 수치를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안의 실험 장치를 눈으로 살펴본다. 이런 아이디어를 낸 나 자신이 꽤 자랑스럽다.

얇게 펴 바른 아스트로파지가 유리판에 놓여 있다. 나는 유리판을 아스트로파지로 코팅했다. 유리에 적외선을 쪼여서 반대편에 있는 아스트로파지를 끌어들이는 이 방법은 스핀 드라이브에서와 같은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세포 단 하나의 두께로 이루어진 획일적인 아스트로파지 층이 생긴다.

그런 다음, 나는 이 슬라이드에 타우메바 종자를 뿌렸다. 녀석들이 아스트로파지를 먹으면, 현재는 불투명한 슬라이드가 점점 투명해질 것이다. 현미경으로 봐야 하는 작은 생명체들의 수를 세는 것보다는 빛의 밝기를 측정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좋아…. 진공실에는 금성의 상층부 대기를 복제한 공기가 들어가 있어. 아무튼, 나는 최선을 다해서 복제했어.”

아스트로파지의 번식 구역은 대체로 기압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스트로파지는 행성에 부딪힐 때 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다가 허공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셈이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는 크기가 너무 작기에 이렇게 브레이크를 밟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녀석들은 이때 만들어진 열을 모두 먹어 치운다.

그 결과, 아스트로파지는 기압이 0.02일 때 멈추게 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0.02기압이 우리의 기압 표준이 될 것이다. 금성의 대기는 지상으로부터 70킬로미터 정도에서 0.02기압이며, 그곳 온도는 대략 영하 100도다(고맙다, 무한한 참고 자료!). 그러므로 금성 유사체 실험에서 내가 설정한 온도도 그 정도다. 로키의 온도 조절 시스템은 당연하게도 완벽히 작동한다. 초저온에서조차.

좋음. 이제 삼세계

“삼세계의 공기는 0.02기압 고도에서 몇 도야?”

영하 82도

“알았어, 고마워.” 내가 말한다. 나는 다음 진공실로 이동한다. 아스트로파지와 타우메바의 환경은 똑같다. 나는 삼세계의 대기와 0.02기압의 온도를 모방한, 적당한 기체를 들여보낸다. 관련된 정보는 로키의 완벽한 기억력에서 얻는다. 삼세계의 대기는 금성과도, 에이드리언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기체 몇 가지가 섞여 있을 뿐 대부분 이산화탄소다. 놀랄 건 없다. 아스트로파지는 자기들이 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산화탄소 밀집 지역으로 가니까.

이 행성들이 헬륨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런건 우주선에 실려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그야 쉽다. 나는 내 몸으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 질소는 어떠냐고? 두보이스와 그가 선호했던 죽음의 방식 덕분에, 질소도 엄청 많이 실려 있다.

다만 삼세계에는 이산화황이 약간 존재한다. 전체 대기의 4퍼센트다. 없는 셈 치기에는 많은 양이므로 조금 만들어내야 한다. 실험실에는 상당히 많은 종류의 시약들이 있지만, 기체 이산화황은 없다. 다만 용액 상태의 황산은 있다. 나는 냉동고의 망가진 냉각 코일에서 구리관을 일부 회수해 촉매로 쓴다. 내게 필요한 이산화황을 만들어내는데는 그게 꼭 마법처럼 통했다.

“좋아, 삼세계도 됐어.” 내가 말한다. “한 시간 기다렸다가 결과를 확인해 볼 거야.”

희망 있음. 로키가 말한다.

“응. 희망이 있어.” 내가 말한다. “타우메바는 아주 튼튼해. 거의 진공상태에서도 살 수 있고 극도로 추운 환경에서도 문제가 없는 걸로 보여. 금성이랑 삼세계에서도 살 수 있을지 몰라. 타우메바의 먹이한테는 살 만한 곳인데 타우메바라고 안 될 것 뭐 있겠어?”

그래. 좋음. 모든 게 좋음!

“응. 이번만큼은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어.”

그때, 불이 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