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감방에 앉아서 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중충한 교도소의 감방 같은 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대학교 기숙사 방 같은 모습이었다. 페인트를 칠한 벽돌 벽과 책상, 의자, 침대, 딸려 있는 화장실 등등. 하지만 문은 강철이었고 창문에는 창살이 붙어 있었다.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왜 바이코누르 로켓 발사 시설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감옥이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러시아인들에게 물어봐라.
발사는 오늘 이루어질 것이다. 머잖아, 근육질의 간수들이 의사와 함께 저 문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 의사가 내게 뭔가를 주사하면 그 순간이 내가 지구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나는 문의 자물쇠가 풀리는 철컥 소리를 들었다. 나보다 용감한 사람이라면 그걸 기회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문으로 달려가 간수들을 제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탈출의 희망을 오래전에 버렸다. 내가 뭘 어쩌겠나? 카자흐스탄의 사막으로 달려가 운을 시험해 볼까?
문이 열리고 스트라트가 들어왔다. 간수들이 문을 닫았다.
“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침대에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발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겁니다.” 그녀가 말했다. “금방 떠나시게 될 거예요.”
“야아아호오오오.”
스트라트가 의자에 앉았다. “안 믿으리라는 건 알지만, 나도 그레이스 박사님한테 이런 일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네에, 정말 감성적이시네요.”
그녀는 쏘아붙이는 내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내가 대학에서 뭘 공부했는지 아세요? 학사 전공이 뭔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역사예요. 난 역사를 전공했어요.” 그녀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과학이나 경영 학위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언론 정보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아니에요. 역사였어요.”
“안 어울리네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살아가면서 뭘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역사를 전공한 건 달리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능글맞게 웃었다. “날 보면 그런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죠?”
“네.”
그녀는 창살이 쳐진 창밖으로 멀리 떨어진 발사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실제로 그 전공이 마음에 들었어요. 요즘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좋은 시절을 살고 있는지 몰라요. 과거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참혹한 비극이었죠. 시간을 거슬러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요.”
그녀는 일어나서 방 안을 서성거렸다. “5만 년 동안,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인간의 문명은 한 가지, 오직 한 가지만을 위한 거였어요. 바로 식량이죠. 존재했던 모든 문명은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 인력, 자원을 식량에 들였습니다. 사냥하고, 수집하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치고, 식량을 보관하고, 분배하고…. 전부 식량 문제였어요.
로마제국조차 그래요. 황제들이나 군대들, 정복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가 알죠. 하지만 로마인들이 정말로 발명한 건, 농지를 확보하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과 식량 및 물을 운송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녀는 방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산업혁명으로 농업은 기계화됐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다른 것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겨우 지난 200년 동안의 일이에요. 그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 대부분을 식량 생산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역사 강의는 고마운데요.” 내가 말했다. “저는 지구에서 보내는 얼마 안 되는 마지막 순간을 좀 더 즐겁게 보내고 싶어서요. 그러니까 …. 뭐랄까 … 좀 나가주실래요?”
스트라트는 내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르클레르가 남극에서 핵무기를 사용해 준 덕분에 우리는 시간을 좀 벌었어요. 하지만 그리 많은 시간을 번 건 아니죠. 게다가 남극의 덩어리를 겨우 몇 번만 무너뜨려도 해수면 상승과 해양 생물군계의 파괴라는 직접적인 문제가 아스트로파지보다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돼요. 르클레르가 해준 말을 기억하세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죽을 겁니다.”
“알아요.” 내가 웅얼거렸다.
“아니, 박사님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사태는 이것보다 훨씬 나빠질 거예요.”
“인류의 절반이 죽는 것보다 나쁘다고요?”
“당연하죠.” 그녀가 말했다. “르클레르의 추산치는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식량을 배급하기 위해 협력하리라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인구 절반이 굶어 죽어 가는데 손 놓고 앉아 있을 것 같아요? 전성기에도 기근에 시달릴까 말까 한 인민 13억 명으로 이루어진 중국이라는 나라는요? 이런 나라들이 군사적으로 약한 이웃 나라들을 그냥 내버려 둘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쟁이 일어나겠죠.”
“네.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고대의 대부분 전쟁이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이유, 즉 식량 때문에 말이죠. 종교든, 명예든 뭐든 핑계가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항상 식량이었어요. 농지와 그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요. 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은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일단 절망에 빠진, 굶주린 국가들이 식량을 얻으려고 서로를 침략하기 시작하면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 테니까요. 태평천국운동이라고 들어 봤어요? 19세기에 중국에서 일어난 민란입니다. 전장에서 군인 40만 명이 목숨을 일었어요.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기근 때문에 2,00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전쟁이 농업을 방해했다는 것, 알겠죠? 이 사태의 규모는 그 정도로 엄청난 겁니다.”
스트라트는 두 팔로 자기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지금처럼 약하게 보인 건 처음이었다. “영양실조, 소요 사태, 기근, 모든 기간 시설이 식량 생산과 전쟁에 투입될 겁니다. 사회 조직 전체가 붕괴할 거예요. 역병도 돌겠죠. 엄청나게 많은 역병이 전 세계에서 말입니다. 보건 의료 체계에 과부하가 걸릴 테니까요. 한때는 쉽게 통제했던 질병의 발발도 억제할 수 없을 거예요.”
그녀가 돌아서서 나를 마주 보았다. “전쟁, 기근, 질병, 사망. 아스트로파지는 말 그대로 종말입니다. 헤일메리호는 지금 우리가 가진 전부예요. 나는 헤일메리호의 성공 확률을 눈곱만큼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희생할 거예요.”
나는 침대에 누워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 말로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다면야.”
그녀는 문으로 돌아가 노크했다. 경비병이 문을 열었다. “아무튼요. 그냥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 건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지옥에나 떨어져요.”
“아, 그럴 거예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박사님을 포함한 세 사람은 타우세티로 가겠죠. 나머지 우리는 지옥으로 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지옥이 우리한테 다가오는 거지만.”
그러셔? 글쎄요. 지옥이 너에게 돌아가고 있다, 스트라트. 나라는 형태로. 내가 바로 지옥이야!
내 말은…. 글쎄, 스트라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뭔가 말할 생각이다. 못된 말을.
거의 4년이 걸리는 여행을 시작한 지 18일이 지났다. 이제 막 타우세티의 태양권 경계, 그러니까 항성의 강력한 자기장이 미치는 가장자리에 다다른 참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성간 방사선을 막아줄 정도로 강력한 자기장의 경계. 지금부터는 선체에 미치는 방사선의 영향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
나야 상관없다. 나는 아스트로파지로 둘러싸여 있으니까. 하지만 외부 방사선 센서 수치가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는 걸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건 뭔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장대한 계획의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기나긴 여행길에 올랐으며 내 현재 상태는 ‘집 현관에서 나가고 있음’일 뿐이다.
지루하다. 나는 별로 할 일도 없이 우주선에 혼자 있다.
나는 청소를 하고 실험실 비품 목록을 다시 작성한다. 아스트로파지나 타우메바로 할 수 있는 어떤 연구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세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논문을 좀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아, 게다가 내게는 몇 달 동안 어울린, 지능이 있는 외계 생명체도 있다. 그 녀석에 대해서도 몇 줄 휘갈겨야 할지 모르겠다.
비디오 게임도 한가득 있다. 우주선이 만들어질 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소프트웨어는 헤일메리호에 전부 실려 있다. 그거면 꽤 오랫동안 할 일이 있을 것이다.
타우메바 배양기를 확인한다. 열 개의 수조가 모두 괜찮다. 나는 가끔 녀석들에게 아스트로파지를 준다. 그냥 녀석들이 건강하게 계속 번식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배양기는 금성의 대기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므로 타우메바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남으면서 금성에서의 생존 확률을 높일 것이다. 이 짓을 4년 동안 하다 보면, 내가 금성에 타우메바를 내려줄 때쯤에는 녀석들도 금성과 잘 어울리는 존재가 되겠지.
그래, 나는 이미 타우메바들을 내려주기로 결심했다. 안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
내가 돌아가게 될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조차 안 된다. 내가 떠난 이후로 지구에서는 13년이 흘렀다. 그리고 내가 돌아가기 전에, 지구는 또다시 13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6년. 내 학생들은 모두 어른이 되겠지. 그 애들이 모두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건 인정해야 한다. 몇 명은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튼, 태양계로 돌아가자마자 금성에 잠깐 들러 타우메바를 내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떻게 타우메바의 씨앗을 뿌려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아이디어는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타우메바가 들끓는 아스트로파지를 공 모양으로 뭉쳐서 금성에 던지는 것이다. 아스트로파지가 금성에 재진입할 때의 열을 흡수할 테고, 타우메바는 야생으로 풀려나게 된다. 그러면 녀석들은 야유회를 즐기게 될 것이다. 금성은 지금 아스트로파지 중심일 게 틀림없다. 타우메바가 먹이를 찾는 순간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만은 분명하고.
나는 식품 저장량을 확인한다. 아직 일정에 맞추고 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더 먹을 수 있는 진짜 음식, 먹을 만한 포장 음식이 남아 있다. 그 뒤부터는 코마 슬러리를 먹어야 할 것이다.
다시 코마에 들어가기는 망설여진다. 내게는 코마에서 살아남는 유전자가 있지만, 그건 야오나 일류키나도 마찬가지였다. 필요도 없는데 굳이 죽음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항로를 정확하게 재프로그램했다고 100퍼센트 확신할 수도 없다. 맞는 것 같긴 하다. 무작위로 확인해 볼 때마다 나는 계속 집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코마에 빠져 있는 동안 뭔가 잘못된다면? 깨어나 봤는데, 태양계에서 1광년쯤 벗어나 있다면?
하지만 고독과 외로움, 역겨운 음식을 견디다 보면 결국은 그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고 봐야지.
외로움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나는 자꾸 로키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그는 내 유일한 친구다. 정말이다. 로키는 나의 유일한 친구다. 상황이 정상적이던 시절에도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걸 별로 하지 않았다. 가끔은 다른 선생님들이나 교직원과 저녁을 함께 먹기도 했다.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 토요일 밤에 가끔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 팽창 때문에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한 세대는 늙어 있을 것이다.
나는 디미트리가 좋았다. 아마 헤일메리호 친구들 중에서 그를 제일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조차 없다. 러시아와 미국은 전쟁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맹을 맺고 어떤 전쟁을 함께 치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혀 모르겠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통제실로 올라간다. 조종석에 앉아 항로 제어판을 띄운다. 정말로 이러면 안 되지만, 이건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나는 스핀 드라이브를 끄고 관성으로 항행한다. 중력이 즉시 사라지지만 나는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스핀 드라이브를 끄면 안전하게 페트로바스코프를 이용할 수 있다. 나는 우주를 잠시 훑어본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을 빠르게 찾아낸다. 페트로바 주파수의 빛으로 이루어진 작은 점, 블립A의 엔진이다. 내가 저 빛이 나는 곳에서 100킬로미터 이내에 있었다면 내 우주선 전체가 증발했을 것이다.
나는 타우세티 항성계의 한쪽에 있고 로키는 그 항성계의 반대편에 있다. 세상에, 타우세티만 해도 멀리서는 전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블립A의 엔진에서 나오는 불길은 지금도 선명히 알아볼 수 있다. 빛을 추진력으로 사용하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양의 힘이 방출된다.
어쩌면 이런 방법을 미래에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구와 에리드는 아스트로파지 덕분에 페트로바 빛을 대량으로 방출해 의사소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40에리다니에서도 보일 만큼 빛을 깜빡이려면 아스트로파지가 얼마나 들지 궁금해진다. 모스부호 같은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에리디언들에게는 위키피디아 사본이 있으니까. 반짝이는 빛을 보면, 그들은 우리가 뭘 하려는지 알아낼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대화’는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40에리다니는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져 있다. 그러니 우리가 “야, 요즘 어떻게 지내?” 같은 메시지를 보내면, 그 답변이 돌아오기까지 32년이 걸리게 된다.
나는 화면의 작은 빛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꽤 오랫동안은 로키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든 로키의 우주선이 있을 만한 위치를 알 수 있으니까. 로키는 내가 준 정확한 비행 계획을 활용할 것이다. 내가 로키의 공학적 기술을 신뢰하는 만큼 그는 내 과학을 신뢰한다. 하지만 몇 달 뒤에는 페트로바스코프가 더 이상 그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빛이 너무 어두워서가 아니다. 페트로바스코프는 아주 예민한 장비니까. 페트로바스코프가 로키를 볼 수 없게 되는 건, 우리의 상대속도가 로키의 스핀 드라이브에서 나오는 빛에 적색편이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도달할 때면 그 빛이 더 이상 페트로바 파장이 아니게 된다.
뭐라고? 내가 로키의 엔진에서 나오는 빛이 페트로바스코프의 감지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을 알아내기 위해 상대성이론을 가지고 특정 시점에서의 우리 상대 속도를 계산하는 엄청난 일을 한 다음 로런츠변환까지 했다고? 그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내 친구를 얼마나 더 오래 볼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 그거 좀 딱한 것 아닌가?
그렇다.
뭐, 나의 애절한 매일 일과가 끝났다. 나는 페트로바스코프를 끄고 다시 스핀 드라이브를 켠다.
나는 점점 줄어드는 진짜 음식의 양을 확인한다. 이제는 ‘길에 나선 지’ 32일이 됐다. 내 계산에 따르면 지금부터 51일 후부터 나는 완전히 코마 슬러리에 의존하게 된다.
나는 숙소로 간다. “컴퓨터. 코마 식량 표본을 줘.”
기계 팔이 비품 저장 공간으로 들어가 흰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가지고 돌아오더니 침대에 떨어뜨린다.
나는 그 주머니를 집어 든다. 당연히 가루다. 장기 보관을 하는데 왜 액체를 넣겠나? 헤일메리호의 급수 시설은 폐쇄 순환식이다. 물이 내게 들어왔다가 다양한 방법으로 내 몸에서 빠져나간 뒤, 정화되어 재사용된다.
나는 그 포장된 음식들을 실험실로 가져가 열고 가루 조금을 비커에 붓는다.
물을 조금 더하고 한 번 휘젓자 우유처럼 흰 슬러리가 된다. 나는 냄새를 맡아본다. 사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 그래서 한 모금 마셔 본다.
노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나는 뱉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다. 아스피린 같은 맛이 난다. 그 고약한 알약 같은 맛. 나는 몇 년 동안 매일 끼니로 이 ‘쓴 약맛 죽’을 매일 먹어야 한다.
어쩌면 코마도 그리 나쁜 건 아닐지 모르겠다.
나는 비커를 옆으로 치워둔다. 저 비극은 때가 되면 마주하도록 한다. 지금은 비틀스 작업을 할 생각이다.
로키 덕분에 내게는 네 개의 작은 타우메바 배양기가 있다. 내 손 정도 크기의, 강철 비슷한 캡슐이다. ‘강철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이 아직 발명하지 못한 에리디언의 강철 합금이기 때문이다. 이 금속은 우리가 가진 어떤 금속 합금보다도 단단하지만 다이아몬드 절삭기만큼 단단하지는 않다.
우리는 미니 배양기의 통에 대해 여러 번 고민했다. 당연하게도 처음 떠오른 생각은 제노나이트로 배양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지구의 과학자들이 그걸 어떻게 열겠느냐는 점이었다. 우리의 공구 중에는 제노나이트를 자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극도로 높은 열뿐이지만 그러면 안에 있는 타우메바가 상할 위험이 있다.
나는 뚜껑이 달린 제노나이트 통을 제안했다. 기폐식 문처럼 꽉 조일 수 있는 것 말이다. USB에 그 통을 안전하게 열 방법을 남길 생각이었다. 로키는 이 생각을 즉시 거부했다. 아무리 잘 밀봉하더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여행 중 배양기가 경험하게 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많은 공기가 흘러나와 안의 타우메바를 질식시킬 수 있었다. 로키는 배양기 전체가 단일한 물질로 이루어진 완전하게 밀폐된 통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리디언 강철로 결정했다. 에리디언 강철은 강하고 쉽게 산화되지 않으며 극도로 내구성이 강하다. 지구에서는 다이아몬드 절삭기로 그 강철을 자를 수 있다. 게다가 지구인들이 이 강철을 분석해 직접 만들 수도 있다.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다!
배양기 자체에 대한 로키의 접근법은 단순했다. 안에는 타우메바 군집 그리고 금성과 비슷한 대기가 들어 있다. 또한 아주 강한, 아스트로파지로 가득 찬 강철 비슷한 관도 둥글게 말려서 들어 있다. 이후 타우메바는 오직 가장 바깥쪽의 아스트로파지에만 접근할 수 있을 테니, 총 길이가 대략 20미터에 이르는 관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 기본적인 실험을 좀 해보니까 그렇게 하면 작은 타우메바 개체 수가 몇 년 동안 유지되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폐기물에 관해서라면 타우메바들이야 그냥 자기 똥 속에서 뒹굴게 될 것이다. 캡슐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산화탄소를 잃고 메탄을 얻게 되겠지만 상관없다. 인간 기준으로는 적은 양이지만, 캡슐 안의 아주 작은 미생물들에게는 그 캡슐이 광활하고 거대한 동굴이나 마찬가지니까.
내게는 비틀스의 우선순위가 더 높았다. 나는 필요한 순간 녀석들이 바로 발사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고 싶었다. 혹시 헤일메리호에 재앙에 가까운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임무에 중대한 위기를 일으킬 정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 녀석들을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다. 발사시에 지구와 가까울수록 녀석들이 안전하게 지구에 도착할 확률도 높아지니까.
소형 배양기들을 설치하는 것 외에도 나는 이 녀석들의 연료를 다시 채워야 한다. 비틀스를 헤일메리호의 임시 엔진으로 썼을 때, 나는 비틀스 연료 공급량의 거의 절반을 써버렸다. 하지만 비틀스 하나를 가득 채우는 데는 아스트로파지 60킬로그램밖에 들지 않는다. 에리디언들이 만든, 나의 수입 아스트로파지 공급량에 비하면 양동이 속의 물 한 방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비틀스의 작은 연료 탱크를 여는 것이다. 이곳의 모든 것이 그렇듯, 비틀스의 연료 탱크도 재활용하라고 만든 게 아니었다. 이건 마치 일회용 라이터에 새 부탄가스를 채우는 것과 같다. 그냥,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다. 연료 탱크는 완전히 밀폐돼 있다. 나는 연료 탱크를 밀링머신에 고정한 다음, 6밀리미터짜리 날을 사용해 안으로 들어간다. …엄청난 작업이지만 내 솜씨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어제는 존과 폴의 작업을 마쳤다. 오늘은 링고를 작업할 것이고 시간이 남으면 조지도 작업할 생각이다. 조지가 가장 쉬울 거다. 조지의 연료는 다시 채울 필요가 없다. 이 녀석은 엔진으로 쓴 적이 없으니까. 그저 녀석에게 소형 배양기를 탑재하기만 하면 된다.
소형 배양기를 어디에 실을지 생각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배양기는 작은 탐사선 안에 싣기에는 너무 크다. 그래서 나는 이착륙 장치에 에폭시로 배양기를 붙인다. 그런 다음, 비틀스의 위쪽에 작은 추를 점용접한다. 비틀스의 내부 컴퓨터는 탐사선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관해 아주 민감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프로그램하느니 추를 덧붙이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무게라는 문제가 나온다.
배양기 때문에 더해진 무게로 비틀스는 바람직한 무게보다 1킬로그램이 더 나가게 된다. 그건 괜찮다. 비틀스의 설계에 관해 의논하느라 스티브 해치와 수없이 했던 회의가 생각난다. 좀 괴짜이기는 해도, 스티브는 엄청난 로켓 과학자다. 비틀스는 별을 보는 방법으로 우주 내에서의 자기 위치를 파악하며, 들어 있어야 하는 것보다 연료량이 적으면 필요한 만큼 가속력을 천천히 줄인다.
간단히 말해 녀석들은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냥 좀 더 오래 걸릴 뿐이다. 숫자를 헤아려보니 지구 시간으로는 사소한 차이였다. 비틀스야 원래 계획보다 몇 달 더 여행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나는 비품 보관장으로 가서 BOCOA(Big Ol’ Container Of Astrophage, 아스트로파지가 담긴 나만의 커다란 통)를 꺼낸다. 바퀴가 달린, 내광성 금속 통이다. 안에는 아스트로파지 수백 킬로그램이 들어 있고, 나는 1.5g의 중력을 받고 있다. 그래서 바퀴를 달아놓은 것이다. 기계 조립 장치와 무거운 것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않겠다는 단호한 열망이 결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알면 아마 놀랄 것이다.
너무 뜨거워서, 나는 수건을 대고 손잡이를 잡는다. 바퀴 달린 통을 실험대까지 밀고 가 의자에 앉은 뒤 체계적으로 연료 재보급 작업을 준비한다. 플라스틱 주사기를 마련한 뒤, 그걸로 100밀리미터의 아스트로파지를 한 번에 6밀리리터씩 구멍에서 뿜어낸다. 무게로는 대략 600그램이다. 전부 고려했을 때, 나는 비틀스 하나마다 200번씩 이렇게 연료를 넣어줘야 한다.
나는 BOCOA를 열고….
“우웩!” 나는 움찔하며 통에서 물러난다. 끔찍한 냄새가 난다.
“어….” 나는 말한다. “왜 이런 냄새가 나지?”
그때 문득 생각난다. 나는 이 냄새를 알고 있다. 이건 죽어서 썩어가는 아스트로파지의 냄새다.
타우메바가 다시 날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