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우메바 대탈출 이후 사흘이 지났다. 나는 운을 시험해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수동으로 모든 연료 탱크를 차폐했다. 모든 연료 탱크를 하나하나 연료 공급 시스템과 완전히 분리했다는 얘기다. 그런 다음, 한 번에 하나씩 연료 탱크를 열고 도관에서 아스트로파지 표본을 수집한 다음, 타우메바 오염이 있었는지 현미경으로 확인했다.
다행히도 연료 탱크 아홉 개는 모두 시험을 통과했다. 나는 스핀 드라이브를 다시 켜고 1.5g로 순항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면 경고가 작동하도록 ‘타우메바 경보기’를 대충 만들어낸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하지만, 원래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안 보이는 게 없다고 하지 않나.
경보 장치는 내가 타우메바 배양기에 사용한 것과 같은 아스트로파지 슬라이드다. 한쪽 면에는 조명이 있고, 다른 쪽 면에는 빛 센서가 있다. 이 시스템 전체가 실험실의 공기에 노출돼 있다. 슬라이드의 아스트로파지에 닿으면 타우메바가 그 아스트로파지를 먹어버릴 테고 슬라이드는 투명해질 것이며 빛 센서에서는 삑삑 소리가 나기 시작할 터였다. 지금까지는 경고음이 들리지 않았다. 슬라이드는 여전히 새까맣다.
사태가 진정되고 문제를 통제하고 나니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타우메바가 어떻게 풀려날 수 있었을까?
나는 엉덩이에 두 손을 얹고 격리 구역을 바라본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내가 말한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배양기는 새는 흔적 없이 여러 달 동안 작동했다. 소형 배양기는 완전히 밀폐된 강철 캡슐이었다.
어쩌면 지난번 사태 발발 이후로, 그러니까 에이드리언 때 이후로 깡패 타우메바 몇 마리가 우주선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녀석이 지금 이 순간까지 아스트로파지를 하나도 찾아 먹지 못한 걸까?
아니다. 실험을 통해 로키와 나는 타우메바가 식량 없이 겨우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 뿐, 그 시간이 지나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게다가 녀석들은 중간을 모른다. 고삐 풀린 듯 번식하며 발견되는 모든 아스트로파지를 소비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용기 중 하나가 새는 게 틀림없다. 이걸 전부 그냥 버릴 수는 없다. 지구를 구하려면 이 타우메바들이 필요하니까. 그럼 어쩌지? 어떤 게 문제인지 알아내야 한다.
나는 각 배양기를 최선을 다해 확인한다. 배양기가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으므로 제어판은 전혀 조작할 수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배양기는 완전히 자동화돼 있다. 꽤 간단한 시스템이다. 로키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우아한 해결책들을 찾아내곤 했다. 배양기는 내부의 기온을 관찰한다. 기온이 섭씨 96.415도 이하로 떨어지면, 타우메바가 다 먹어서 더 이상 아스트로파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스트로파지를 좀 더 펌프질해 넣는다. 그렇게나 간단하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타우메바에게 얼마나 자주 먹이를 주었는지 기록한다. 이를 통해, 내부의 타우메바 개체 수를 아주 대략적으로나마 예상한다. 시스템은 개체 수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만큼 아스트로파지 급여 속도를 조절한다. 물론, 시스템에는 현재 상태를 알려주는 표시가 있다.
나는 각 배양기의 표시를 확인한다. 모두 1,000만 마리로 추산되는 타우메바와 섭씨 96.415도라는 온도를 보여준다. 마땅히 보여야 하는 정확한 수치다.
“흠.” 내가 말한다.
배양기 내부의 기압은 배양기를 둘러싸고 있는 질소의 기압에 비해 훨씬 낮다. 저 배양기 중 하나라도 새고 있다면, 질소가 배양기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머잖아 타우메바가 전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흘이 흘렀는데도.
배양기는 새지 않는다. 문제는 소형 배양기가 틀림없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미생물이 에리디언 강철 0.5센티미터를 뚫을 수 있다는 걸까? 로키는 할 일을 제대로 처리했으며, 에리디언 강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에리디언 강철이 미생물을 붙잡아 두는 데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 로키가 알았을 것이다. 에리드에는 타우메바가 없지만, 다른 미생물이 있는 건 확실했다. 미생물은 에리디언들에게 새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보통이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결론으로 이어진다. 로키가 공학적으로 실수를 한 것이다.
로키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다. 뭔가를 만드는 면에서는. 그는 자기 행성 전체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엔지니어다. 로키가 일을 망쳤을 리가 없다.
아닐까?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나는 아스트로파지 실험용 슬라이드를 더 만든다. 이것들은 타우메바 탐지에 엄청나게 편리하고, 만들기도 쉽다.
소형 배양기 두 개가 담긴 플라스틱 통부터 시작한다. 조지와 링고에게 실으려고 했던 것들이다. 캡슐 모양의 금속으로만 보이는 이 배양기들은 확실히 밀폐된 것처럼 보인다. 안에서는 온갖 일이 벌어지더라도, 밖은 그저 매끄러운 에리디언 강철일 뿐이다.
나는 상자 구석에서 테이프를 떼어내고 뚜껑을 들어 올린 뒤 아스트로파지 슬라이드를 안에 집어넣고 모든 것을 다시 밀폐한다. 실험 원칙 하나. 실수로 순수 질소 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초특급 타우메바를 배양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내가 알게 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타우메바가 아스트로파지 슬라이드에 닿으면, 겨우 몇 시간 만에 슬라이드가 완전히 투명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어 시간을 기다렸는데, 슬라이드는 여전히 검은색이다. 뭐, 좋다. 초특급 타우메바는 없다.
나는 통의 봉인을 뜯고 뚜껑을 연 다음, 1분 동안 공기가 빠져나오도록 놔둔다. 그런 다음 다시 봉인한다. 이제는 내부의 질소 함량이 얼마 안 될 것이다. 타우메바82.5가 걱정해야 하는 양에는 훨씬 못 미친다. 저 미니 배양기에 새는 곳이 있다면 슬라이드에서 드러날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나도 결과는 없다. 두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확실히 해두려고 통 안의 공기 표본을 채취한다. 질소 농도는 거의 0이다. 그러니 질소 농도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통을 다시 밀봉하고 한 시간을 더 놔둔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소형 배양기는 새지 않는다. 최소한 조지와 링고에게 실으려고 했던 소형 배양기들은 그렇다. 어쩌면 이미 설치한 소형 배양기가 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배양기들은 존과 폴의 외부에 그냥 접착제로 붙여놓았다. 비틀스의 선체로든 무엇으로든 보호되지 않고 있다. 나는 존과 폴의 통을 가지고도 타우메바 탐지 실험을 반복한다.
같은 결과가 나온다. 타우메바가 전혀 없다.
“흠.”
좋다. 궁극의 실험을 할 시간이다. 나는 존, 폴 그리고 설치하지 않은 소형 배양기 두 개를 격리 구역에서 꺼낸다. 그것들을 내 타우메바 경보기 옆 실험대에 둔다. 이 녀석들이 깨끗하다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용의자들에게로 관심을 돌린다. 주요 배양기다.
타우메바가 에리디언 강철에서 탈출할 수 없다면, 당연히 제노나이트를 뚫고 탈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제노나이트 1센티미터는 29기압에 달하는 로키의 기압을 쉽게 버틸 수 있으니까! 제노나이트는 다이아몬드보다도 단단한데다, 어째서인지 불안정하지도 않다.
하지만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나는 배양기 통 열 개 전부를 대상으로 아스트로파지 슬라이드 실험을 반복한다. 한 번에 하나씩 시험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나는 이 과정 전체를 일률적으로 진행한다. 이제는 배양기 열 개가 모두 일반적인 공기로 가득한 밀폐된 통 안에 들어 있으며, 그 안에는 아스트로파지 슬라이드가 들어 있다.
긴 하루였다. 좀 자면서 쉬어도 좋을 시간이다. 녀석들을 하룻밤 놔두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봐야겠다. 나는 숙소에서 실험실로 침구를 가져온다. 타우메바 탐지 경보가 울리면 확실히 깨고 싶다. 너무 기진맥진해서 더 시끄러운 경보기를 만들 여력은 없다. 그러니 실험대와 더 가까운 곳에 귀를 두고 오늘은 이만 마무리할 생각이다.
나는 잠결에 빠진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데 잔다니 잘못된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약 여섯 시간 뒤에 깨어난다. “커피.”
하지만 유모 팔은 아래층 숙소에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응답은 없다.
“아, 그래….” 나는 일어나 앉아서 기지개를 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격리 구역으로 발을 끌며 걸어간다. 타우메바 배양기 실험이 어떻게 됐는지 보자.
나는 첫 번째 배양기의 아스트로파지 슬라이드를 확인한다. 완전히 투명하다. 그래서 다음 배양기로 이동한다.
잠깐만. 투명하다고?
“어….”
나는 아직 100퍼센트 정신을 차린 게 아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본다.
그래도 투명하다.
타우메바가 슬라이드에 닿았다. 배양기에서 나왔다!
나는 실험대의 타우메바 경보기를 휙 돌아본다. 경보음은 울리지 않지만, 나는 눈으로 확인하려고 달려가 본다. 경보기 안의 아스트로파지 슬라이드는 여전히 검은색이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가만 ….” 내가 말한다.
나는 격리 구역으로 돌아가 다른 배양기들을 확인한다. 배양기에는 모두 투명한 슬라이드가 들어 있다. 배양기가 새고 있다. 배양기 전부가 새고 있다. 소형 배양기는 괜찮다. 그 녀석들은 타우메바 경보기 바로 옆 실험대에 놓여 있다.
나는 목 뒤를 문지른다.
문제는 발견했지만, 이해가 안 된다. 타우메바가 배양기에서 나오고 있다. 어떻게? 제노나이트에 균열이 있었다면, 초과 압력 때문에 질소가 스며들어 모든 것을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행복하고 건강한 타우메바 개체들이 배양기 열 개에 전부 담겨 있다. 왜지?
나는 숙소로 내려가 아침을 먹는다. 한때 로키의 작업실이 있었던 제노나이트 벽을 바라본다. 벽은 아직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부탁한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다. 나는 그 구역을 대체로 창고로 쓰고 있다.
나는 아침용 부리토를 씹으며, 코마 슬러리까지 남은 음식이 또 한 끼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잊으려고 애쓴다. 나는 구멍을 바라본다. 내가 타우메바라고 상상한다. 나는 질소 원자보다 수백만 배는 크다. 하지만 질소 원자가 지나가지 못하는 구멍을 지나갈 수 있다. 어떻게? 게다가 구멍은 어디서 난 거지?
나쁜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의심이라고 해야 더 맞겠지.
만약 타우메바가, 더 나은 표현이 없어서 그렇긴 하지만, 제노나이트 분자 사이사이를 우회할 수 있다면? 구멍 같은 건 애초에 없다면?
우리는 단단한 소재를 마법의 장벽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자 규모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단단한 소재는 분자로 이루어진 가닥이거나 원자로 이루어진 격자이거나 둘 다에 해당한다. 작고 작은 영역으로 내려오면, 단단한 물체들은 벽돌로 만든 벽이라기보다는 빽빽한 밀림에 더 가깝다.
정글이야 얼마든지 헤치고 나갈 수 있다. 덤불을 타고 넘고 나무를 우회하고 나뭇가지 아래로 허리를 숙여야 할지언정, 통과할 수는 있다.
1,000개의 테니스공 발사기가 그 밀림 가장자리에, 임의의 방향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자. 테니스공은 밀림 어디까지 들어가게 될까? 대부분은 맨 앞의 나무 몇 그루도 지나지 못할 것이다. 몇 개는 운 좋게 튀어 좀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그보다 적은 수의 테니스공은 여러 번 운 좋게 튈 수도 있다. 하지만 머잖아 가장 운 좋은 테니스공조차 에너지를 잃는다.
밀림 속 60피트 지점에서는 테니스공을 하나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그 밀림이 1마일 폭이라고 해보자. 나는 밀림을 통과할 수 있지만, 테니스공이 그럴 가능성은 없다.
타우메바와 질소의 차이가 그것이다. 질소는 테니스공처럼 그냥 직선으로 움직이며 여기저기 부딪치고 튕긴다. 질소는 비활성 물질이다. 하지만 타우메바는 나와 같다. 타우메바에게는 자극반응 능력이 있다. 타우메바는 환경을 인지하고, 그 감각 정보에 기반해 방향성이 있는 행위를 한다. 타우메바가 아스트로파지를 찾아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타우메바에는 확실히 감각이 있다. 하지만 질소 원자들은 엔트로피의 지배를 받는다. 질소는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언덕을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테니스공은 그저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려올 때까지만 굴러갈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게 정말 이상하게 보인다. 어떻게 에이드리언에서 온 타우메바가 제노나이트를, 에리드라는 행성의 기술적 발명품을 뚫고 조심조심 나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말이 안 된다.
생명체는 아무 이유 없이 어떤 특성을 진화시키지 않는다. 타우메바는 대기 상층부에 산다. 빽빽한 분자 구조를 헤치고 나아가는 능력을 발전시킬 이유가 뭐지? 대체 어떤 진화상의 이유가….
나는 부리토를 떨어뜨린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는 실험실로 돌아가 골 아픈 실험을 한다. 실험 자체가 골 아픈 건 아니다. 그냥 결과가 내 예상대로 나올까 봐 걱정된다.
내게는 지금도 로키의 아스트로 화염방사기가 있다. 우주선에 있는 것 중 제노나이트를 분해할 만한 열을 낼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로키의 터널 체계 덕분에 우주선 전체에는 가져다 쓸 제노나이트가 충분히 있다. 나는 숙소의 분리용 벽을 자른다. 한 번에 조금씩밖에 자르지 못한다. 그런 다음에는 생명 유지 장치가 온도를 다시 떨어뜨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스트로 화염방사기는 엄청난 열을 낸다.
결국 내게는 네 개의 거친 원반이 생긴다. 원반은 각기 지름이 몇 인치쯤 된다.
그래, 인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영국식 단위로 돌아간다. 미국인으로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나는 그 원반들을 실험실로 가져가 실험을 준비한다.
나는 아스트로파지를 원반 하나에 문질러 바르고, 다른 원반을 그 위에 얹어놓는다. 아스트로파지 샌드위치다. 맛있겠지만, 제노나이트 ‘빵’을 지나간 다음에나 먹을 수 있다. 나는 두 원반을 에폭시로 붙인다. 그와 똑같은 샌드위치를 하나 더 만든다.
그런 다음, 나는 비슷한 샌드위치를 두 개 더 만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노나이트 대신 밀링머신에서 잘라 온 평범한 플라스틱 원반을 사용한다.
좋다. 네 개의 완전히 밀폐된 아스트로파지 표본이다. 그중 둘은 제노나이트 원반에, 그중 둘은 플라스틱 원반에 있고 넷 모두가 에폭시로 밀봉돼 있다.
나는 깨끗하고 밀봉이 가능한 통을 두 개 가져와 실험대에 올려놓는다. 제노나이트 샌드위치와 플라스틱 샌드위치를 각 통에 집어넣는다.
표본 보관장에는 자연 상태의 타우메바가 가득 들어 있는 금속 병이 몇 개 있다. 타우메바82.5가 아니라 에이드리언에서 가져온 원래의 타우메바다. 나는 타우메바 병을 통 하나에 넣고 연 다음, 재빨리 실험 장치를 밀봉한다. 이건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타우메바 사태가 발발할 경우 나는 그 사태를 통제할 방법을 알고 있다. 질소가 있는 한은 괜찮다.
나는 격리 구역의 1번 배양 수조로 간다. 나는 주사기를 사용해 타우메바로 오염된 공기를 통에서 꺼낸 다음, 즉시 질소로 통을 완전히 헹궈낸다. 주사기 때문에 생긴 구멍에는 테이프를 붙인다.
실험대로 돌아온 나는 다른 용기를 밀봉하고, 주사기를 사용해 타우메바82.5를 집어넣는다. 이번에도 테이프로 구멍을 막는다.
나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두 개의 상자를 들여다본다. “좋아, 이 교활한 말썽쟁이들. 어디 뭘 할 수 있는지 보자….”
두어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나는 결과를 본다. 결과는 내가 예상한 그대로다. 내가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
나는 고개를 젓는다. “안 돼.”
타우메바82.5 실험 장치 안에 있던, 제노나이트로 덮였던 아스트로파지는 사라졌다. 플라스틱으로 덮였던 아스트로파지는 변함없이 남아 있다. 한편, 다른 실험 장치에서는 아스트로파지 표본이 둘 다 아무 해를 입지 않았다.
그 의미는 이렇다. ‘대조군’ 표본(플라스틱 원반)은 타우메바가 에폭시나 플라스틱을 통과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제노나이트 표본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타우메바82.5는 제노나이트를 뚫고 지나갈 수 있지만, 자연 상태의 타우메바는 그러지 못한다.
“이 멍청아!” 나는 내 머리를 쾅 때린다.
나는 내가, 와, 진짜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타우메바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배양기 수조에서 보냈다. 몇 세대나 번식했다. 그리고 나는 진화를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아닌가? 나는 내가 질소 저항력을 갖춘 타우메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난 너무 멋져! 노벨상은 언제 받으러 오라고?
우웩.
그래, 나는 질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타우메바 종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진화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다. 진화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키워낸 타우메바들은… 제노나이트 배양 수조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했다.
물론 이 타우메바에게는 질소 저항력이 있다. 하지만 진화는 모든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교활한 녀석이다. 그래서 타우메바는 질소에 대한 저항력만 키운 것이 아니라, 제노나이트 자체에 숨어들어 질소로부터 숨는 방법까지 알아냈다! 안 그럴 이유도 없잖은가?
제노나이트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가망이 없는, 단백질과 화학물질의 복잡한 사슬이다. 하지만 타우메바에게는 그 사이로 꿈틀꿈틀 기어들 방법이 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배양 수조 안에서 질소 종말이 일어나고 있는데. 질소가 닿을 수 없는 제노나이트 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타우메바는 일반적인 플라스틱을 지나가지 못한다. 에폭시 수지도 지나가지 못한다. 유리도 지나가지 못한다. 금속도 지나가지 못한다. 지퍼백이나 지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덕분에, 타우메바82.5는 제노나이트를 통과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생명체를 가져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기술을 써서 그걸 개조했다. 당연히 의도치 않은 결과가 생겼다. 내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한 것 자체가 나로서는 멍청할 만큼 오만한 짓이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그래, 이게 세상의 종말인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다. 이 타우메바는 제노나이트에 침투할 수 있다. 그래도 문제없다. 다른 어딘가에 보관하면 된다. 어쨌든 녀석들은 질소 저항력을 갖추고 있을 테니까. 이 타우메바가 살아남는 데 제노나이트가 필요한 건 아니다. 나는 로키와 함께 처음 이 종을 격리했을 때, 유리로 된 실험 장비로 이 녀석을 철저히 시험했다. 타우메바는 금성에서도, 삼세계에서도 자기 일을 할 것이다. 아무 문제없다.
나는 배양 수조를 휙 돌아본다.
그래. 괜찮아. 금속으로 커다란 배양기를 만들어야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내게는 밀링머신과 필요한 원자재가 모두 있다. 시간이 남아 돌기도 하고. 가동 장치는 로키가 만들어준 배양기에서 가져다 쓰면 된다. 제노나이트로 만들어진 건 통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금속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바퀴부터 다시 발명할 필요는 없다. 그냥 바퀴를 가져다가 다른 자동차에 끼우면 된다.
“그래.” 나는 나 자신을 안심시킨다. “그래, 괜찮아.”
나는 그냥 금성의 대기를 유지할 수 있는 상자만 만들면 된다. 어려운 일은 로키 덕분에 이미 다 처리됐다.
로키!
나는 갑자기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느낀다.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 사이에 머리를 묻을 수밖에 없다. 로키도 같은 종의 타우메바를 우주선에 싣고 있다. 로키의 타우메바도 내 것처럼 제노나이트 배양기에 보관돼 있다.
로키의 우주선은, 연료 탱크를 포함해 중요한 부분 전체가 제노나이트로 만들어져 있다. 로키의 타우메바와 그의 연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아…. 안 돼….”